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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46화 (247/653)

246화. 영웅들을 위한 대연회

"그게 무슨 소리냐?"

천유성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위에 있는 놈들이라면 신격에 준하는 존재들을 뜻하는 말일 터.

그놈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중급 마족인 안트라드 기억나지?"

"성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해골바가지 말이로군."

"그래. 그놈."

"꽤 강력한 마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게 위층에 있는 놈들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그 마족을 소환하려면 저주받은 성물들을 모아야 하거든. 하지만, 안트라드를 현현시킬 정도로 놈들의 성물은 완전하지가 않았어. 장소 역시 제대로 된 곳이 아니었고."

빈약한 조건에 비해, 터무니없이 강한 놈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본신의 힘을 상당히 갖고서.

그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누군가 초월적인 힘을 행사해 도와줬다…… 이런 말인가?"

"바로 그런 말이지. 그리고 이런 종류는 신격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럴 만한 이유도 없고."

마족들이 날뛰는 걸 좋아하지만, 시스템에 무리하게 개입하면서까지 날뛰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사실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테니까.

"마인들을 도와준 건 관리자야. 그것도 아마, 굉장히 높은 선과 닿아 있겠지. 어쩌면 가장 높은 곳일지도 몰라."

진혁이 창에 비친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곳에서는 보일 리 없는 탑의 상층.

그곳엔 탑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관조하는 절대자들이 있을 것이다.

"상급 관리자가…… 관여하고 있다니."

천유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너무 무거웠기에.

그리고 탑을 올라갈수록 그 위험도가 급속도로 올라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혈관에 도는 피가 차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글쎄다. 우선은 오늘 하루를 즐겨야지."

"뭐라고?"

"중층부에 와서 정신없이 싸우기만 했잖아? 성채에서도 제대로 쉬어 보기도 전에 마인 놈들이 방해를 했고. 지금은 뒤통수를 치려는 놈이 있다는 걸 인지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마치, 방법이 다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생각해 둔 게 몇 개 정도는 있어. 먹힐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

"하여간 네놈의 자신감은 언제 봐도 어이가 없다."

상대는 무려 상급 관리자다.

신격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탑에 관한 모든 것들을 관장하는 초월체란 말이다.

그런데 대체 뭘까. 이 자신감은?

"그래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랑 함께하면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피식.

천유성이 처음으로 웃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내가 직원들 복지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챙겨 주거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 사람들은 내가 반드시 지킬 거야."

"그래. 네 말대로 오늘 하루를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지금까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전부 해결해 온 게 바로 눈앞에 있는 고인물 아니던가.

이번에도 뭔가 돌파구를 마련할 게 틀림없었다.

그게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진혁이란 플레이어였으니까.

그때였다.

"어휴. 진짜 귀찮아서 죽는 줄 알았네."

엘리스가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다가왔다.

그 옆에는 테레사와 안드리아도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인데?"

"이상한 놈들이 치근덕거리면서 춤을 추자느니, 호수로 밤마실을 가자느니 하더라고."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시는 분도 계셨죠."

엘리스와 테레사가 끔찍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천유성이랑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나름대로 꽤 혹독한 시간들을 보낸 모양이었다.

"헤헤. 그거야 언니들이 너무 예뻐서 그래요."

안드리아가 생긋 웃었다.

으음. 확실히 지금 저 둘이라면 귀족들이 안달이 날 만하긴 하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은발의 엘리스와 대조적으로 하얀 드레스에 금발을 지닌 테레사는 어딜 내놔도 단연 돋보였으니까.

거기에 엘리스와 자매처럼 보이는 안드리아까지 있었으니, 이 정도 사달이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용케 그 많은 사람들을 뚫고 왔네."

"뭐, 좋은 말로 잘 타일러 줬어."

"말로?"

"응. 말로."

으음…….

어째 믿기가 힘들다.

이 녀석이 사근사근한 말투로 거절을 했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는데?

그러자 안드리아가 진혁의 귓가에 대고 진실을 전해 줬다.

"엘리스 언니도 세게 말하기는 했는데, 정확히는…… 테레사 언니가 '기운'을 해방했어요."

"……!"

설마, '타락'을 쓴 건가.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흑화한 테레사라면 일반인들은 그 기운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흑화 버전은 솔직히 나도 부담스러울 정도니까.'

고고한 여왕님 두 명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뿌려내고 있는 걸 상상하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잠시 뒤.

"아! 다들 모여 있었군.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하고 싶었는데, 쌓인 업무가 워낙 많아서 말이야."

"연회의 주인공들께서 가장 구석진 곳에 계셔서 찾기가 꽤나 힘들었네요."

에브라함과 페시스까지 합류하자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월영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모였다.

***

편안한 분위기 속.

고급 와인과 맛있는 안주들이 대화에 풍미를 더했다.

그동안 워낙 정신없이 보냈던 터라, 지금의 순간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취기가 오른 에브라함이 진혁에게 말을 걸어 왔다.

"나는 제국의 존폐라는 대의를 위해 그 외의 나머지 걸 모두 포기했다. 아무리 많은 걸 희생해서라도 제국이라는 뼈대만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대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과를 단신으로 이루어냈어."

복잡한 심정이 담긴 말에는…….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녹아 있었다.

동시에.

스릉!

허리춤에 차고 있던 예식용 레이피어가 뽑혔다.

"은혜를 입은 자에게 바치는 제국 고유의 예우네."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오랜 세월 마모되어 잃어 버린 긍지와 자긍심 또한 깨우치게 해 주었다.

진혁은 제국의 영웅이자, 은인이었다.

[에브라함이 '기사의 신념'을 발동합니다.]

순간, 따스한 기운이 연회장 내부를 감싸 안았다.

기(氣)로 구현한 황금색 꽃잎이 천장에서 하나하나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건, 어느새 사라져 버린 소리였다.

담소를 나누는 소리도. 연주단의 악기 소리도 전부 멈춰 버린 내부의 광경.

귀족들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있다.

백색 탑을 이끄는 마탑주와 적색 기병을 이끄는 기사단이.

황실을 수호하는 근위대와 수많은 명가의 가주들이.

모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중앙 단상에 있는 라인하르트 역시 감격에 겨운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제국이 당신들에게 '명예 작위'를 수여합니다.]

['거인들이 성채'가 제국에서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 '공국(公國)'의 지위로 격상됩니다!]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이번 일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됩니다.]

상태창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명예 작위에 공국…… 지위를 준다니.'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제국으로서는 파격적인 보상을 한 셈이었다.

진혁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이번엔 페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이번 일을 매우 흥미롭게 봤습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 하나같이 쟁쟁한 멤버들로만 구성된 신흥 세력."

현재 탑 내에서도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세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거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정말 기대됩니다. 아마 탑에 커다란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세력으로 자리매김 하겠죠. 그 전설적인 시작을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가치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페시스의 호감도가 매우 높은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페시스의 호감도까지 올라갔다.

느긋하게 쉬면서 맛있는 거나 먹을 생각으로 연회에 참석한 거였는데…….

'이건 예상치도 못한 보상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군.'

새삼, 초대 라인하르트를 불러낸 게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연설이 있었기에 귀족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반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엘리스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냐?"

엘리스가 토끼눈을 떴다.

"아니 그냥. 기특해서. 역시, 아타락시아 가주 자리는 거저 얻었던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훗. 이제야 내 진가를 좀 알아보네. 내가 지금이야 이렇지. 예전에는 다들 말 한 번이라도 걸어보려고 줄을 섰던 뱀파이어야."

"그래그래."

진혁이 엘리스의 장단을 맞춰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 그러고 보니, 무덤에서 네가 했던 말은 무슨 뜻이야?"

"응?"

"테……센시오 테 아르펨이었나? 초대를 불러 낼 때 했던 주문 있잖아."

황실어 같긴 한데, 별로 쓸 데가 없어 보여 따로 공부해 두진 않았었다.

제국이라는 단어 정도만 간신히 알아들은 게 고작이었달까.

"아…… 그거?"

엘리스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황가의 핏줄을 이은 자만이 제국을 지킬 수 있다. 뭐 이런 뜻이야. 애송이 주제에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

"……흐음. 꽤 멋진 놈이었네. 초대 황제라는 녀석."

"나쁘진 않았어. 입만 번드르르하지도 않았고."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응? 물어봐."

"그 녀석 죽은 이유가 설마, 네가 피를 전부 뽑아 버려서 그런 건 아니지?"

그랜드 소드마스터면 200살 이상도 살아 있을 수 있을 텐데, 어째 수명이 다소 짧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범인은 이 흡혈귀 때문일지도…….

엘리스가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머나. 왠지 오늘 밤 네 사인은 그게 될 것 같네."

차갑게 가라앉는 공기.

송곳니가 유독 뾰족하게 보이는 밤이다.

***

새벽까지 이어진 연회가 끝났다.

모두가 취기와 포만감에 빠져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날만큼은 모든 피로를 잊어버리겠다는 듯 긴장의 끈이 느슨해졌다.

바로 그때.

툭…… 툭.

진혁이 조심스럽게 단잠에 빠져 있는 페시스를 깨웠다.

"으음, 헉…… 지, 진혁 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페시스가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맡에 불길한 미소를 한가득 짓고 있는 진혁이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만약 페시스가 아니라 천유성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았을지도 몰랐다.

진혁이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지금부터 저랑 같이 잠깐 산책 좀 가 주시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거든요."

"예? 산책이요? 이 밤중에? 꼭 가고 싶다는 곳이 대체 어디 길래……."

페시스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에 갔던 황제의 무덤에 다시 한 번 가고 싶어서요."

"화, 황제의 무덤을요? 아니, 거길 대체 왜 다시 가시려는 겁니까?"

"꼭 손에 넣어야 할 게 있는데, 아까 전엔 너무 정신이 없던 터라 미처 챙겨오지 못한 게 있거든요."

"설마, 도굴을 하시겠다는 건 아니겠죠?"

"어허. 도굴이라뇨! 저를 대체 뭘로 보고!"

진혁의 노기 어린 발언에, 페시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하긴, 이제 공국의 대공이 되신 진혁 님께서 그런 짓을 할……."

"장기 렌트라고 해 주십쇼."

"예?"

"국제 정세와 자원 갈등에 따른 피치 못한 결정이었습니다."

페시스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본능적으로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졌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호감도를 올려 둔 것도 체념을 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후우. 어지간한 건 황실에 말하면 그냥 내어줄 텐데, 그냥 부탁을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지간한 거면 저도 그렇게 하겠는데, 이건 그런 수준의 물건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현 황제도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모르고 있을 거예요."

"황제도 모른다는 게…… 서, 설마?"

페시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래. 페시스라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위대한 탐험가라는 이명을 얻을 수 있는 존재는 탑 내에서도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페시스 씨도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제국에 잠들어 있는 용살검(龍殺劍). '발뭉'에 관한 소문 정도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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