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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73화 (274/653)

273화. 의義와 협俠의 세계. 무림(武林) (2)

운무관.

정파에서 관리하는 이곳은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중에서 가장 실전에 입각한 무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천마신교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청해성에 위치한 곤륜파였기 때문이다.

마교의 중원 진출 시 가장 먼저 맞부딪치게 되는 중원의 방파제.

피로 피를 씻는 정사대전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서 그 세를 유지하는 정파의 자존심.

그것이 구름과 용을 상징하는 '곤륜(崑崙)'이었다.

'허탕을 치는 것도 이젠 지겹군.'

무관의 관주인 종무량은 언제나처럼 하루를 시작하며, 입관을 하려는 사람들의 명단을 살폈다.

제국과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인 데다 천마신교가 폐관을 끝낸 이후 언제 어디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

뛰어난 인재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하지만, 운무관의 문을 두드리는 놈들 중에 제대로 써먹을 만한 놈은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드물었다.

"이번에 무림맹에서 직접 선별해 들어온 애들은 어떤가? 명문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무가의 아이들이 보이던데."

종무량이 옆에 있던 태 총관에게 물었다.

나이가 지긋한 태 총관은 운무관의 대소사는 물론, 잡일까지 도맡아 하는 실질적인 살림꾼이었다.

"예. 확실히 배우는 게 빠릅니다만, 너무 어립니다. 제대로 여물려면 한참은 기다려야겠죠."

"역시, 급하게 써 먹으려면 낭인이나 왈패들이라도 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장문인들의 눈을 피해 이런 식의 편법을 쓰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실적을 달성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마교에 대항하기 위해선 이쪽도 도의니 인륜이니 하는 것 따위는 접어 둬야만 했다.

"저희 같은 경우엔 질보다 양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소모품이야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300명이 넘는 자들이 몰려왔으니까요."

"흐음. 칼받이는 많을수록 좋겠지."

종무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사람이 안채에서 나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연무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쯧.

종무량의 혀가 거칠게 튕겼다.

'1류, 2류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3류 중간급이라도 되는 놈들이라도 좀 들어와라. 내가 그리 큰 걸 바라는 것이었더냐.'

기대치를 바닥으로 두었다고 생각했으나, 직접 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하긴, 실력이 있는 놈이라면 이런 변두리에 있는 무관에서 신분패를 받는 게 아니라, 가문을 등에 업고 중앙에 있는 명문 무관을 찾았겠지.

그때였다.

'흠?'

불평불만만 내뱉던 종무량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앞에서…… 제법 무게가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남자 셋과 가면을 쓴 이인.

맨 앞에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남자야 별 볼 일 없었지만, 그 외에 나머지는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다.

'호오. 완전히 쭉정이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군.'

어쩌면 꽤나 재미있는 시험이 될지도 모르겠다.

"태 총관."

"하명하십시오. 관주."

"바로 시험을 시작하게. 이번에는 어서 빨리 결과를 보고 싶군."

종무량이 기대가 담긴 눈을 품은 채 자리에 앉았다.

***

"칠성천검(七星天劍), '천도악'이라고 합니다."

"호오. 청해를 주름잡는다는 일곱 개의 검의 주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저는 청호라고 합니다. 세간에선 흔히 '뇌령운검(雷令雲劍)'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죠."

"오오! 당연히 들어 봤습니다. 대협도 굉장한 분이었군요. 하하하!"

"소인은 무적신권(無敵神拳). '태룡'이라고 하오."

"이럴 수가. 그 유명한 태룡 대협까지!"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사건의 주인공을 직접 뵈게 되다니."

"이번 시험은 역대 가장 치열하겠군요. 굉장한 실력자들이 모두 모였으니 벌써부터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것만 같습니다."

모두들 자기소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껄껄껄 거리며 웃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다.

"칠성천검이 뭐냐? 뇌령운검은 또 뭐고? 정사대전을 겪으며 살아남은 절대 고수들인가? 월영. 아는 놈들이야?"

진혁이 넌지시 운을 뗐다.

"저도 처음 들어봅니다."

"청해를 주름잡는 굉장한 놈들이라는데?"

"제가 보기엔 부모님 등골을 주름잡는 놈들로밖엔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니야. 분명 뭔가 있어."

무적신권이란 별호는 정말로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으면 붙이기 힘들다.

'석양이 진다'를 외쳤던 과거 내 모습과 겹치는 것만 봐도 심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졌다.

본능이 말해준다.

저건…… 틀림없이 '진짜'라고.

아니, 진짜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뭔 대사건의 주인공이라고 하잖아. 분명 온갖 음모와 복면인들의 암투가 있던 무시무시한 사건이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천마신교로 가는 식료품 마차 하나가 털렸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하필 하인들을 시킨 거라 호위가 없었던 마차였죠."

"……으음. 분위기만 보면 분명 은거기인들 같은데."

진혁이 볼을 긁적였다.

"별호고 뭐고 간에 짐은 이런 옷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엘리스가 이곳에 오기 전 시장에서 산 옷을 불만스러운 듯이 바라봤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걸 즐겨 입는 성격이니 좀 심심하긴 하겠지.

"좀 참아. 여기서 네 원래 복장은 너무 눈에 띄어."

"그래도 짐은 왕관이 좋으니라. 모피로 만든 망토와. 황금 지팡이도!"

아주 꼬마 여왕 폐하 놀이라도 할 생각인가?

마음 같아서는 유모차 안에 감금시켜 버리고 싶다.

엘리스가 연신 칭얼댔지만, 진혁은 모든 불만을 한 귀로 흘러 넘겼다.

나중에 비녀라도 하나 사서 끼워 주든가 해야지 원.

그때였다.

"주목!"

단상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운무관의 신분패 시험을 시작하겠다."

근엄한 표정의 태총관이 연무장을 내려다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입구에 들어오면서 각자 엽전 한 개씩을 받았을 거다."

"그러고 보니……."

"맞아. 검은색 엽전을 하나 주던데……."

"나도야. 이거 맞습니까?"

하나둘 품속에 간직했던 작은 엽전을 꺼내들었다.

흑철을 주재료로 주조한 엽전의 표면에는 투(鬪)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반 시진(1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본인을 포함해 5개 이상의 엽전을 모아 오는 사람만 1차 시험을 통과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생사 여부는 가리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겁이 나는 자는 빠지도록."

"다, 다섯 개라니……."

"최소한 네 명은 쓰러뜨리란 건데."

"끄음……."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대략 300명.

그중에서 5개라는 건 60명 정도만이 2차 시험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지만, 2차 시험에만 가도 최소한 3급패는 받을 수 있으니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적어도 이번 1차 시험만 통과한다면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할 수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공기가 가라앉고 눈빛에 이채가 스민다.

스릉.

철컹!

호흡을 가다듬는 것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각자의 병장기가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 이럴 때는 낯선 이방인이 표적이 된다.

별호까지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한 자들보다는 당연히 이쪽을 노리겠지.

'우리가 어지간히 얕보이긴 했나 보네.'

월영이나 엘리스는 체구 자체가 워낙 작고 가늘었다.

살짝만 힘을 줘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게다가 진혁 역시 만사가 귀찮은 듯 허점을 훤히 드러내고 있으니, 먹잇감으로선 이보다 더한 건 없으리라.

"얌전히 엽전을 넘기면, 다치지 않아도 될 거다."

기다렸다는 듯, 한 무리의 남자들이 다가왔다.

조금 전 칠성천검이니 뇌령운검이니 하던 놈들이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약한 이들을 상대로 무력을 휘두르고 싶진 않군."

당연히 무적신권이라는 별호를 가진 거한도 있었다.

이야.

이렇게 다들 모아 놓고 보니 무림계의 어밴져스를 보는 기분이다.

근엄한 외모와 기세는 무림맹주와 천마에게도 안 밀리겠네.

좋아. 그렇다면…….

진혁이 옆에 있던 천유성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유성아."

"큭…… 뭐냐?"

"아무래도 안 되겠어. 쟤들이 너보고 허접나부랭이에 개방에서 키우는 진돌이한테도 질 것 같은 놈이라고 하네. 말이 좀 심하긴 하다. 그치?"

당장 가서 검성의 쓴 맛을 한 번 보여 줘야 한다.

이건 못 참지.

"웃기지 마라. 내가 왜 네놈의 말에 놀아나야 하는 거지? 게다가 너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히 다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거냐."

"왜냐하면…… 내가 이런 걸 갖고 있거든."

진혁이 상태창 하나를 활성화시켰다.

그곳엔 익숙한 모습이 있었다.

천유성이다.

정확히는…… 프랑스제 고급 메이드복을 입은 천유성이지만.

"내가 이거 한국대 게시판에 쫙 풀고 사발 한 번 풀까? 그 얼음 같은 한국대 의예과의 마스코트인 천유성이 사실 비밀스러운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안트라드와 싸울 당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영상은 천유성의 요청에 의해 일부 편집이 된 영상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모자이크나 편집 따윈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원본'이다.

"그걸…… 가지고 있었다는 거냐?"

"아무렴, 내가 이 귀한 걸 버렸을 리가 없잖아. 복사본만 해도 3천 개 정도는 만들어 뒀지. 만에 하나 내가 누군가에 의해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즉시 전 세계에 업로드가 될 거야."

"너…… 이 빌어먹을 자식이!"

천유성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물론, 그런 거에 겁을 먹을 진혁이 아니었다.

"개강총회 때 한 번, 엠티 때 한 번, 다시 종강 총회 때 한 번. 마지막으로 졸업식 때도 한 번. 즐거운 건 모두가 같이 봐야 제 맛이지. 안 그래?"

"넌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거다. 언젠가 마왕한테 영혼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분노하던 천유성이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마왕이라…….

[신격 '썩어 가는 심장'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아마 무리일 거다.

마왕도 어쩌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으니까.

***

스릉!

검이 눈부신 검광을 뿌렸다.

천유성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쪽 무리 중에서 가장 강해 보이더니, 역시 그대가 나서는 것이오? 나는 칠성천검의……."

"닥치고."

천유성이 말을 끊었다.

"내가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니 입을 놀릴 시간에 검을 휘둘러라."

"이름도 밝히지 않고 바로 싸우겠다니. 꼭 하수들이 감정에 휘둘리다가 패배하는 법이지. 무림의 선배로서 먼저 삼합을 양보해 주겠소."

서걱.

"……어라?"

조각조각 난 칠성검이 떨어졌다.

바지가 잘려서 속곳이 보인 건 덤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검격.

청도악은 아직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바짓가랑이를 따라 익숙한 액체가 줄줄줄 흘러내렸다.

"호오. 내 무적신권을 꺼낼 만한 상대를 마침내 만났군. 자,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제1보! '권왕 무…… 꾸어어억!"

그것이 거대한 덩치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와.

사람이 저렇게 높게 날아갈 수도 있구나.

진혁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하늘 높게 솟구치는 태룡 씨를 바라봤다.

그래도 무적이라는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가 보다.

10m 높이에서 지면에 처박혔는데도 팔다리가 꿈틀대는 걸 보면 말이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콰콰콰콰콰콰!

백금석으로 만든 연무장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

"엽전인지 나발인지 전부 토해내라. 다 죽여 버리기 전에."

동영상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천유성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

"유성아. 우리 몫까지 16개 정도만 있으면 돼. 살살 좀 해. 알지? 너 장의사가 아니라 의사야."

이렇게 말해 봤자 이미 들리지 않겠지.

손속에 사정을 둬 살상까진 하지 않았지만, 나름 무게감 있게 등장했던 무림인들이 울고 불며 도망가는 꼴은 꽤나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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