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야차(夜叉) (4)
[2개의 고유 능력이 융합합니다!]
[3개의 고유 능력이 융합합니다!]
다중융합(多衆融合).
4개의 능력들을 기반으로 각기 다른 방식의 조합을 시도한다.
욱씬하고.
묵직한 통증이 전신을 꿰뚫었다.
치열하게 전투를 한 데다, 여러 개의 능력을 동시에 융합했기에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덕분에 한순간 의식을 잃을 뻔했다.
빌어먹을.
'집중……하자.'
진혁이 스스로를 다잡았다.
뇌수가 타들어가고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여기서 실수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아직 대성하지 못한 흑천마황공의 융합.
거기에 함께하는 능력들 또한 최상급에 해당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적응형 능력치'가 고통을 완화하며, 벌어진 격차와 현실이 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로 그때.
['툼그레이브의 다리(측정 불가)'를 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첫 번째 능력이 성공을 알렸다.
'툼그레이브의 오른팔'을 베이스로 '흑천마황공'을 조합해 만든 다리.
파츠츠!
진혁의 종아리 뒤로 3개의 검은색 칼날이 생겨났다.
고속으로 진동하는 칼날은 가속은 물론, 공격까지 겸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검마천령보(劍魔千靈步)(측정 불가)'를 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검마제왕보'의 레벨을 그대로 승계받습니다.]
뒤이어 또 다른 스킬이 만들어졌다.
이번엔 '검마제왕보'를 베이스로 '흑천마황공'과 '바람의 영역'을 융합한 결과물이다.
검마천령보.
검마제왕보의 상위 보법으로 본래라면,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다.
무수히 많은 연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아무리 과거의 경험이 있다고 한들 융합하자마자 바로 사용할 수 있던 기존의 것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하지만.
이 다리라면…….
'가능해.'
버틸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후우.'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새로 얻은 다리에…….'
'새로 얻는 능력을 발현시킨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Lv12 '검마천령보(劍魔千靈步)'가 발동됩니다!]
인지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초신속(超神速),
툭…….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
콰앙!
야차의 머리가 좌로 돌아갔다.
"……!?"
콰득!
고개를 돌리자 이번엔 왼쪽 옆구리에서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허리 축을 중심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크윽!"
물리적인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지금까지와 비할 수 없었다.
'내가…… 기척을 놓쳤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기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는데도 잔상조차 쫓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우웅!
부웅!
여섯 개의 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허나, 닿지 않는다.
툭…… 툭. 츳.
뒤를 보면, 앞에 있고.
투쾅!
콰아앙!
앞을 보면 뒤에 있다.
그나마도 기의 잔향으로 대략의 위치를 가늠할 뿐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
뿌드득!
그럴 리가 없다.
괴력난신을 사용한 상태에서 쫓지 못할 상대 따위……
"있을 리가 없단 말이다!"
[야차가 괴력난신(怪力亂神) '무등야포(舞燈野砲)'를 사용합니다!]
여섯 개의 팔에서 푸른색 빛이 점멸하더니, 이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지형이 바뀌었다.
붉게 타오른 단면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무차별 난사에 가까운 폭격.
'이거라면 적어도 위치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야차가 두 눈을 부릅떴다.
바로 그때.
마침내 시야에 무언가 잡혔다.
찾았다.
바로 앞에서 10m 지점.
이 거리라면…….
여섯 개의 팔이 한 지점을 향해 모였다.
6줄기의 빛이 진혁을 분쇄하기 위해 직선 궤도로 회오리쳤다.
그런데.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 사이로…….
……길이 뚫린다.
점멸하듯 빛줄기를 피해 버린 진혁이 순식간에 야차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왼손에 쥔 '송곳니'에 검은 달이 나타났다.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은 짙은 초승달이.
"괴력난신의 진짜 힘은 원거리가 아니야. 답답하다고 해서 능력의 본질을 망각하지 마라."
"네까짓 게 내 능력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뭘 안다고!"
글쎄.
"반박하고 싶으면 탑의 정상 한 번 정도는 찍고 오든가."
"뭐?"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흑월야(黑月夜)가 드리웁니다.]
서걱!
야차의 피부에 붉은색 선이 그어졌다.
그 위로.
툭.
진혁의 왼손이 닿았다.
"이젠 좀 쓰러져라."
천살침투경.
혈지침투경으로 인해 한 번 뒤틀린 내부를.
콰드드드…….
다시 한 번 뒤흔든다.
콰아아앙!
야차의 등이 새우처럼 꺾였다.
등 뒤로 거대한 파동이 일어났다.
세 줄기의 소닉붐이 원형을 그리며 천장까지 닿았다.
"쿨럭! 커……어윽……,"
야차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솟구쳤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혁의 다리에 생긴 검은 칼날이 야차의 전신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콰콱!
카카가각!
붉은 선이 죽죽 그어졌다.
양손으로 어떻게든 급소는 지키고 있었지만, 진혁은 계속해서 위치를 옮기며 발을 휘둘렀다.
"허억……. 허억."
야차가 비틀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상처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리를 했는지. 야차의 몸이 눈에 띄게 비틀거렸다.
"내가 피를…… 저딴 놈 하나한테 밀려서 피를 흘리다니. 젠장. 젠장. 젠자아앙!"
기가 약해진다.
흉흉하던 패기 또한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끄아아악!"
시작이었다.
야차가 갑자기 머리를 움켜잡았다.
***
"간신히 성공했군."
"운이 좋았어요. 뭐, 저 사람이 야차를 약화시켜 둔 덕분이지만요."
독고룡과 채홍아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어느새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는 불꽃.
바로 도깨비 불이다.
색깔이 변했다는 건 세뇌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상급 도깨비를…… 전부 죽인 건가."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채홍아의 창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도 없이 그놈들을 전부 죽였을 줄이야.
과연, 마교제일창이라 불릴 만한 실력이다.
"고작 여섯 마리로 우리 둘을 어떻게 하겠다고 한 게 웃기는 거지. 그래도 네놈이 도움이 될 일이 다 있구나. 저 녀석을 몇 년간 굶기는 것보다 너와의 전투 한 번이 몇 곱절은 더 많은 기력을 소모하게 만들었어. 죽이기 전에 감사의 인사 정도는 하도록 하마."
"요즘은 감사 인사로 사람을 죽이나? 아무리 세상이 흉흉해졌다고 해도 너무한데……."
"후후. 대업을 위한 길이다. 기쁜 마음으로 죽어라."
독고룡이 도깨비 불에 더욱 많은 내기를 주입했다.
화르륵!
불꽃이 더욱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크아아아!"
야차의 동공에 흰자가 드리웠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완벽하게 모든 조각들이 맞물리는. 그리고 최강의 패를 손에 넣는 순간을.
"그럼, 이제 시험을 한 번 해봐야겠지."
독고룡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쳐라."
"캬아아!"
콰앙!
야차가 달려들었다.
세뇌를 당한 만큼 공격 루트가 더욱 단순해 졌다.
일직선으로 오는 공격은 빠르지만, 위협적이지까진 않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파앙!
"……흡!"
최소한의 동작으로 야차의 팔을 피하려던 진혁이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붉은 파동이 공기를 꿰뚫었다.
채홍아다.
파앙! 팡! 파아앙!
창의 앞부분을 잡은 왼쪽 손이 창의 궤도를 결정하고.
뒷부분을 잡은 오른쪽 손을 회전시켜 가속을 극대화한다.
'탄환 같군.'
아니, 탄환은 탄창 안에든 총알이 떨어지면 쇳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탄환이 무한대로 들어있는 총과 같다.
게다가 독고룡이 뿜어낸 혈독까지 코끝을 찔렀다.
"절대 못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
독고룡이 옆에 있는 뇌령단주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수들을 처리하고 이곳에 합류하게 된 뇌령단의 수는 합이 스물일곱.
전원이 절정급 이상으로 구성된 정예들이었다.
"걱정 마십쇼.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야차에…… 두 명의 십대 고수, 거기에 뇌령단 전체를 상대하는 건…….
무리다.
승률은 없다.
철저하게 포위당해 체력을 갉아 먹히다가 죽게 될 뿐이다.
하지만.
희망 따윈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진혁의 표정엔 여전히 동요나 공포라는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너희도 내가 야차의 체력을 빼앗길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최대한 시간을 끌고 싶었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뭐라고?"
"우리 사원들이 다른 건 몰라도 애사심 하나만큼은 투철하거든."
슬슬 시간이 다 됐다.
이렇게나 오래 끌었으면 아무리 통로를 잘 막아 뒀다고 해도 충분히 뚫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 말을 증명하듯.
"모오오기이이이!"
한줄기 빛이 주술로 만들어진 벽을 뚫었다.
브레스…… 아니.
브레스와 흑천마황공 게다가 블러드 로드까지 섞인 복합 스킬이다.
후두둑.
자욱한 먼지 속에서 익숙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내가 하도 소란스러워서 일도 팽개쳐 두고 왔더니. 이런 일이 있었구만. 그래. 뒤에서 본좌의 제자를 죽이고 야차를 깨울 생각을 했다는 것이냐?"
암황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우, 우호법!?"
"하필이면……."
독고룡과 채홍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물을 마주하게 됐다.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곳을 봉쇄해 두었던 건데.
설마, 강력한 주술로 만들어 둔 방벽이 이토록 빠르게 뚫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암황의 옆으로.
"감히……. 인간 주제에 내 거를 해치려고 해?"
"주군을 죽이려 하다니. 두 놈 다 죽여 버리겠다."
엘리스와 월영이 보였다.
둘은 특히나 분노로 인해 온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악덕 주인님이 아니라. 소중한 주인님한테 무슨 짓이야!"
"아깝다 조금만 더 확실하게 끝내…… 크흠! 다들 주인님을 구하자구!"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이걸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야차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인데…….
도깨비 불이 의식을 완전히 잠식함에 따라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마력이 일렁였다.
'저 기운…… 어디서 느낀 적이 있어.'
어디였지?
분명, 익숙한 종류였는데…….
무언가 퍼즐이 맞춰질 듯 맞춰지지 않는다.
고민하던 진혁이 이내 머리를 털었다.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자.
"엘리스."
"응."
"네가 고구마랑 정령수들을 이끌고 나머지를 맡아줘. 뇌령단주는 몰라도 저 둘은 방심하지 말고 처리해야 해."
"그렇지 않아도 아주 박살을 내줄 생각이야.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깨나 했거든."
저벅.
엘리스가 걸어감에 따라 입고 있던 옷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무림 특유의 복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짧은 치마와 손목까지 오는 검은색 토시가 자리 잡았다.
긴 은발 역시 붉은 룬어가 새겨진 끈으로 묶였다.
근접 전투에 치중한 복장.
전력을 발휘한 고유 성창은 아니었으나 그에 못지않은 마력이 느껴졌다.
[엘리스가 '블러드 스피어'를 소환합니다.]
채홍아의 것과 비슷한 피로 만든 붉은 창이 나타났다.
"나 혼자서 전부 쓸어버릴 테니까. 너희는 도망치는 날파리들이나 처리해."
엘리스가 한 갈래로 길게 묶은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넘겼다.
"알겠습니다."
월영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구마와 정령수들도 각기 자리를 잡았다.
"겁먹지 말고 전부 죽여라! 놈들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좌호법이 우리를 먼저 죽일 거다."
독고룡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 소리와 함께.
콰앙!
쾅!
동시다발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