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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296화 (297/653)

296화. 잃어버린 언어 (2)

[기둥의 언어가 본모습을 드러냅니다.]

잃어버린 언어를 나타내는 문자 속엔 이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 언어 또한 함께 새겨져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쳤다.

과거 시련의 탑을 오를 땐 잃어버린 언어에 대해서만큼은 파악이 되질 않아 많은 정보를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이 언어가 뜻하는 게 어떤 걸 포함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데 페레리움 혼 마카든마시아]

크툴루 신격들의 언어다.

그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

잃어버린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할 경우…….

……50층의 힘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잃어버린 언어 중에는 크툴루 녀석들이 쓰는 것 외에도 또 다른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기둥을 해방시켰음에도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없는 종류였다.

'아직 뭔가 더 있다는 건가.'

새영언환 녀석이 50층이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더 거대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다.

'재밌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래서 탑을 오르는 걸 멈출 수 없다.

아무리 위험하고 절박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계속해서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거리들이 나와 줬으니까.

'이게 이런 식으로 연성이 가능하다니…… 호오. 이것도 놀라운데? 이 부분은…… 뭔지 모르겠고. 진짜 파도 파도 끝이 없구나.'

진혁이 룬어들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하지만, 단순히 암기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건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닌 결계를 만들기 위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결국, 결계사의 1차 전직인 룬의 해석사로 보이지 않는 걸 보기 위해선…….

'나 역시 그에 걸맞은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거겠지.'

전직 퀘스트.

이 모든 건 바로 이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진혁의 손끝에 마력이 집중되었다.

12개의 기둥에 룬어들이 재조합되며 '종막'을 뜻하는 룬어가 나타났다.

파츠츠!

끊어졌던 마력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잃어버린 결계를 배우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2차 전직 시험을 시작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상태창이 나타났다.

우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졌다.

……시작이다.

***

저벅.

발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흰색 로브를 입은 흑발의 남자가 별빛 속에서 나타났다.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벨토르 드 로안마스크.

현 제국보다 수천 년은 더 된 고대 왕국 출신으로 생전 결계술을 전공한 괴짜다.

동시에 결계술에서 관해서만큼은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경지에 오른 전설이기도 했고.

'두 번째 전직 퀘스트가 이 남자를 상대하는 거였나.'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벨토르는 이미 죽은 지 한참이나 되었다.

지금 저 모습은 과거의 모습을 투영한 거겠지.

물론, 존재 자체는 거짓이나, 그 실력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미 이 일대가 저자의 결계 안에 집어삼켜졌으니까.

'역대 최강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네.'

'탐식의 눈'이 빠르게 상대의 상태창을 훑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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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벨토르 드 로안마스크

성별: 남

나이: ???세

레벨: 294

힘 43 민첩 55 체력 36 마력 36 룬어의 이해 519

보유한 스탯 포인트: 0

직업: 룬의 지배자

고유 능력: 고대 결계

스킬: '언어 해독' Lv35, '룬어학' Lv33, '블링크' Lv33, '마력흡수' Lv31, '고속 연산' Lv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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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 조건: 2차 전직 시험을 통과할 경우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역시나.

복사 조건 역시 시험과 관계가 되어 있다.

전직을 통해 고유 능력과 스킬까지 얻게 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기회.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이야. 어떤 머저리가 결계사를 선택한 걸로도 모자라 2차 전직까지 하려 하네."

벨토르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근엄한 말투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분야를 대성한 인물답게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뭐지 이 반응은?

허나, 진혁이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벨토르가 재차 질문을 이어나갔다.

"왜 그랬냐?"

"……예?"

"아니, 왜 이런 쓰레기 같은 직업을 골라서 고생길을 걷느냐고. 더럽게 힘들고 어렵고 응? 게다가 이게 또 노력에 비해서 성과는 쥐뿔도 없어요. 내가 이거 마스터하느라고 죽을 똥을 쌌는데, 탑의 상층부에 있는 놈들한텐 눈도 못 마주치고 꼬리를 말아야 했다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직 시험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 2차 전직 전까진 바꿀 수 있어."

쌓인 게 많았는지 속사포처럼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계사란 직업이 괜히 인기가 없는 게 아니다.

투자 대비 산출이 극악에 가까웠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긴 하겠지.

하지만.

"제가 당신처럼 오랜 시간 이쪽 분야를 수련하진 않았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계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이었거든요."

이 말은 진심이다.

처음엔 그저 재미와 인성질을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고른 거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직업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별종이네. 기껏 충고를 해 줘도 들어먹질 않고."

"대선배님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후우…… 뭐 좋아."

결국 벨토르가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전직을 하고 싶다고 했지? 시험은 아주 간단해. 지금까지 배운 결계술을 총동원해 날 가둬 봐. 1초라도 내 발을 묶어둘 수 있다면 그걸로 합격점을 주지."

"결계로만…… 말씀입니까?"

"물론, 난 기본적인 파훼법만 쓸 거야. 이건 네 수준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실력 있는 놈은 3개월 정도면 통과할 수 있거든."

"음. 3개월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바쁘거든요."

진혁이 시선이 한 쪽으로 향했다.

언덕 아래. 경계를 허무는 거울이 당장이라도 닫힐 것처럼 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성장을 한 덕에 처음 이걸 얻었을 때처럼 30분이란 제한 시간이 걸려 있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남아 있는 건데?"

"3시간이요."

"……3개월이 아니라 3시간?"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정도 남았어요. 이제 2시간 59분 30초네요."

"……."

벨토르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기대를 한 내가 바보지. 그냥 가라. 1차 전직 수준으론 4중 연산을 하기도 힘들 텐데, 내 시험을 통과하는 건 어림도 없……."

그러나 벨토르는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몸 주위에 하얀색 룬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3중…… 4중 그리고 그걸 넘어 다섯 겹의 결계들이 완벽하게 그 식을 갖췄다.

"4중 연산이라면…… 뭐, 이런 거요?"

"호오……."

벨토르의 입에서 묘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

"후우……."

엘리스가 길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은 군데군데 상해있고.

격전으로 인해 쓰고 있던 가면까지 다 부서져 있었다.

물론, 엘리스가 이토록 힘을 끌어올린 만큼 상대 또한 온전하지 못했다.

"그으으……아아아……."

전신이 붉은색 작살로 꿰뚫린 모습은 살아 있는 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그렇게 처참한 몰골을 하고도 녀석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우웅!

['사념체의 도끼'가 소환됩니다.]

무식하게 커다란 도끼가 나타났다.

검은 자루에 붉은 실핏줄이 이어져 있는 게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무기였다.

"진짜 질기긴 하네. 저렇게까지 했는데도 움직인다고?"

엘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블러드 로드'를 완전히 개방한 상태에서 한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도 움직일 줄이야.

일개 사념체가 이 정도면 슈브 니구라스는 대체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려는 거야…….'

도무지 진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불안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처음 회랑에서 계약을 한 날부터. 오늘까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다.

계약자가 자신의 기대를 저버릴 리가 없다는 걸.

"나도 이런 데서 우물쭈물 거릴 수는 없지."

파츠츠츠!

엘리스의 손에 새로운 작살이 나타났다.

['진홍의 혈새화(血崽花)'가 소환됩니다!]

피를 먹는 혈새화의 이름을 본 떠 만든 작살.

화려하게 장식된 성유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스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작살을 어깨 너머로 젖혀 들었다.

'이건 가능하면 도심 한복판에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지하주차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대피했지만, 혹시 숨어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려들 우려가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너무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탓에 도시 일부분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허나 어쩔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갔다간 도저히 저 괴물을 쓰러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힘을 최대한 억제하고 위력을 일점으로 축소하는 수밖에.'

꾸드득…….

엘리스의 하얀 이마에 힘줄이 돋는가 싶더니.

붉은 동공이 일순간 수축했다.

"그오오오!"

검은 염소가 도끼를 하늘 높게 치켜들었다.

그에 맞춰.

파아앙!

공기를 찢은 굉음과 함께 한 줄기 붉은 섬광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풍압으로 인해 발생한 돌풍이 건물들의 유리창을 모조리 깨버렸고.

가로등과 가로수들이 엿가락처럼 꺾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의 투창은 검은 염소의 심장 부위를 꿰뚫고 반대편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짧은 적막이 흐른다.

교차하는 시선 속.

영원 같았던 침묵이 마침내 끝을 고했다.

"그오오우아……?"

검은 염소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바람이 난 구멍이 어떻게든 수복되려 했으나, 상처는 오히려 빠르게 악화되었다.

[진홍의 혈새화의 특수 능력이 발동됩니다.]

[신성 계열의 능력이나 절대 판정의 치유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한, 상처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울컥이며 뿜어져 나온 피가 도로 위를 검게 물들였다.

"정말이지 추한 생명체로구나. 존재 자체부터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느리라."

엘리스가 차가운 눈으로 검은 염소를 올려다봤다.

그걸로 끝이다.

검은 염소의 거대한 체구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오오오……."

도로가 박살나며, 조금 전까지 숨을 내뱉던 대형 마수의 숨이 끊어졌다.

이걸로 끝났다.

아니, 끝났다고 생각했다.

"과연, 아타락시아의 가주…… 아니지. 전대 가주다워. 봉인된 이후 완전히 퇴물이 된 줄 알았더니 아주 녹이 슨 건 아닌가 봐?"

건물 사이로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긴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이 그림자 너머로 다가왔다.

뾰족한 송곳니와 시그니처 마크인 붉은 눈동자.

틀림없다.

뱀파이어, 그것도 최강의 혈통이라 칭송받는 진조다.

"……너."

엘리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지독한 분노와 그걸 넘어 그 대상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환희가 공존하는, 그런 감정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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