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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08화 (309/653)

308화. 무림과 플레이어 (1)

일대 제자, '태풍검(颱風劍)' 소유명.

정신없이 몰아치는 검이 특징인 소유명은 무당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보물이었다.

소유현이 일부러 소유명을 무당산에서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도 무당의 후기지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과시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래…….'

뼈를 깎는 수련과.

그걸 넘어 일대 제자에 어울릴 만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

언제나 무당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해 왔단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

그 모든 노력과 고생들이 오늘날 흔들리려 한단 말인가?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꿀꺽…….

소유명의 목구멍을 따라 마른침이 넘어갔다.

지금까지 수많은 산해진미들을 보면서도 코웃음을 쳤던 자신이었으나 눈앞에 있는 저 음식만큼은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사제의 말처럼, 사파의 간악한 사술이라도 부린 게 아니라면 이건 말이 되질 않는다.

"왜. 먹고 싶어? 정 그러면 좀 나눠줄 수도 있어.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말이야."

진혁이 젓가락으로 큼지막한 고기 한 점을 집고 소유명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고깃점이 어서 먹어 달라며 교태를 부리는 것만 같다.

"먹어. 응? 이거 먹고 술 한 잔 딱 하면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 방에 가실걸?"

고기가 입술에 스칠 듯 가까이 움직였다.

이미 다른 사제들은 완전히 넘어간 듯 동공이 고기 조각을 따라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반사적으로.

"큭!"

결국, 소유명의 목에 핏대가 돋아났다.

"무당의 도사를 욕보이다니. 이 치욕은 네놈의 목으로 받아내겠다!"

쿠쿠쿠쿠쿠!

동시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객잔 안을 휩쓸었다.

식탁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천장과 기둥에서도 쌓여 있던 먼지가 흩날렸다.

"아니, 왜 사람이 좋은 마음에 먹을 걸 주려 하는데, 그렇게 발끈해?"

"무당의 육식은 금기 중 금기. 그걸 아는 놈이 감히 이런 짓거리를 해?"

"음…… 모르는데?"

"뭐?"

"내가 무당파의 규율이 뭔지 어떻게 알아?"

진혁이 세상 순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 그건……."

그 모습에, 소유명이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탑 밖에 있는 자가 무림의 규칙을 알 리 만무하다.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정말로 선의를 가지고 접근했을 경우, 무례한 건 자신들이 된 꼴이었다.

그때.

"저 녀석 다 알고 있다. 무당뿐 아니라 모든 문파의 규율과 규칙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지."

천유성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네가 어린 양 같은 눈망울을 짓는 걸 보니 역겨워서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더군. 그래서 끼어들었다."

천유성이 이제야 후련해진 듯 음식을 하나 더 집어 먹었다.

반면.

"감히……."

소유명의 얼굴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수치심과 분노로 인해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객잔을 비워라!"

"대, 대사형?"

"말려들으면 너희까지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손님들 역시 데리고 나가라. 음식 값이나 물품이 파손되는 건 나중에 배상해주겠다."

"하지만, 장로께서 아시면……."

"윤호.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아, 알겠습니다."

사제들이 말리려 했으나 소유명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차마 말리지 못했다.

대사형이 이 정도로 화가 난 건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

텅 빈 객잔.

진혁이 소유명과 정면에서 마주봤다.

"감히 무당을 농락하다니…… 나름대로 각오는 되어 있다는 거겠지?"

"시비를 건 건 그쪽이 먼저야. 내가 은혜는 그대로 갚아도 원한은 100배로 갚자는 주의여서 말이야."

"그 되도 않는 원칙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겠구나."

스릉!

소유명이 검을 뽑았다.

칼날이 눈부신 광휘를 뿜어냈다.

'이걸로 단 둘이 있을 있게 되었군.'

사실, 단순히 음식을 가지고 모욕을 했다고 해서 검을 뽑은 건 아니다.

다른 사제들은 모르고 있지만, 무당과 화산 그리고 오대세가의 고위급 사이에서는 비밀리에 진혁에 대한 추살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죽은 제자들에 대한 복수라는 명분으로.

'장로님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문제가 생겨도 형식 상 문책이 전부겠지.'

오히려 놈을 죽일 수 있다면…… 향후 그 공로를 크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소유명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청아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였다.

"과연…… 탑 밖에서 온 네놈이 내 검을 몇 합이나 받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칼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무당이 자랑하는 절기, 태극검(太極劍).

검이 향하는 곳에 검의가 깃들어 있다고 알려진 검법이다.

하지만.

'귀엽네.'

진혁의 입장에선 그 모든 게 우스울 뿐이었다.

녀석의 스승인 소유현이 직접 오더라도 상대가 안 될 판에.

한참 밑에 있는 일대 제자 따위가 까분다니.

"후회할 텐데……."

"후회는 무슨. 하수에게 삼 합을 양보해주겠다. 먼저 오거라."

소유명이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였다.

여유가 넘치는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철저하게 짓밟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뭐,"

순간, 진혁의 신형이 사라졌다.

'검마천령보'를 펼치자 바닥에 먼지가 채 땅에 닿기 전에 소유명의 뒤를 잡았다.

"헉!?"

소유명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대와의 격차를 깨달았을 땐 이미 모든 게 너무 늦어버렸다.

콰앙!

주먹이 척추를 강타했다.

"크억!"

기역자로 접힌 허리.

그 와중에 호신강기를 펼친 걸 보니, 그래도 일대 제자라는 게 완전히 거품은 아니다.

"이야! 역시, 상수답게 잘 막으시네요. 그걸 반응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진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빌어먹을 놈이!"

부웅!

소유명이 검을 휘둘렀지만, 진혁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해버렸다.

"분명 세 수를 양보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 혹시 숫자 세는 법을 까먹었다면. 하나 다음이 둘이고 둘 다음이 셋이야."

"나도 숫자 세는 법쯤은 알고 있다!"

"흐음. 알기만 하고 제대로 사용은 하지 못하면. 그게 더 심각한 건데."

"으아아악!"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문 소유명이 강기를 끌어올렸다.

파츠츠!

푸른 기운이 검신을 완전히 뒤덮었다.

[소유명이 '태극십삼검(太極十三劍), 제3식'을 발동합니다!]

검이 여러 개로 나뉘는가 싶더니 이내 객잔 전체를 아우르기 시작했다.

무당파가 자랑은 태극검.

그것도 5성 공력을 쏟아 부어 펼치는 제3식이다.

"이걸로 토막을 내 주마!"

콰콰콰콰콰!

식탁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지고 기둥들에 거대한 검상이 생겼다.

휘말리기라도 했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 위력이다.

하지만.

소유명이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무당파의 장문인조차도…….

[고유 능력…….]

검마의 영역엔 접근하지 못했단 사실을.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

검게 타오르는 겁화가 송곳니를 따라 그 형을 갖췄다.

같은 검강이라고 하더라도 그 격은 결코 같지 않다.

초식에 대한 이해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분위기가 급변했다.

"사람들을 내쫓아준 건 나로서도 고마운 일이야."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은 조금 전까지 능글맞게 웃고 있던 인물과 동일한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말려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

"이, 이럴 수가……."

소유명이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기운은…….

'설마, 스승님보다도 강하다는 말인가?

놀랄 새도 없이 검격이 뿜어졌다.

좌에서 우로.

무거운 공력이 실린 검이 천지를 베어버릴 듯 날아왔다.

콰아앙!

일 검에 소유명의 검에 실린 검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단순히 검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내기의 회복 속도가 소모되는 양을 따라잡지 못했다.

거기에.

상대는 자신이 펼치는 태극검의 검로를 전부 읽고 있었다.

어디로 공격을 할지. 다음 초식이 이어지는 곳이 어디인지. 모두.

완전히…… 괴물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화과산의 원숭이처럼.

소유명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꼈다.

콰아앙!

카카카캉!

피부 한 꺼풀을 벗겨내는 살초들이 연거푸 펼쳐졌다.

합이 오고갈수록 그 차이는 더욱 격렬하게 벌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칠어진 숨소리.

소유명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하던 초식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파훼되었으니까.

"3식을 사용하길래 제법 기대했는데, 이건 너무 실망스럽네. 태극검은 그런 식으로 쓰는 게 아니야. 완전히 헛배웠어."

"큭! 농락하지 말고 죽여라!"

"그럴 순 없지. 넌 소중하게 쓸 장기말이거든. 내 말만 잘 듣는다고 하면 살려줄 거야."

"웃기지 마라. 죽으면 죽었지, 네놈의 말 따위 들을 성 싶으냐?"

"흐음. 그래?"

진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송곳니의 속도가 한 단계 빨라졌다.

이제는 아예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몰아쳤다.

카카카카카캉!

강기가 사라졌다.

송곳니 역시 사라졌다.

이번 건…….

피할 수 없다.

죽음을 직감한 소유명이 체념한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날아온 건 칼이 아니었다.

입가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퍼졌다.

"……?"

살짝.

소유명은 자신도 모르게 혀끝을 움직였다.

죽음의 공포와 쌓인 피로를 잊게 만들 정도로 혀에서 느껴지는 감칠맛은 각별했다.

오물.

큼지막한 고기 조각이 이를 거쳐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존재할 수 있다니.'

깊게 배어 있는 양념과 아직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는 속살의 조화.

그동안 풀과 콩만 먹으며 살아 온 세월이 바보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오물오물.

냠냠.

소유명이 게 눈 감추듯 고기를 먹어치웠다.

곧바로 또 다른 고기 조각이 사라졌다.

맛있다.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충족감은 그 어떠한 감정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7개의 고기를 먹어치운 뒤였다.

"이야. 잘 먹네. 아주 잘 먹어."

진혁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소유명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헉?"

"무당의 도사가 육식은 금기니 어쩌니 하지 않았어?"

"누, 누가 말이냐. 나는 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

"입가에 기름기나 좀 지우고 말해라."

"큭!"

소유명이 재빨리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어차피 증인 따위는 없다.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게 나로서는 다행인 셈이 되었군."

무당파의 일대 제자가 대련에서 패배한 것과. 금기를 어기며 게걸스럽게 고기를 탐한 것.

둘 중에 어느 걸 골라야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미안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겐 '방송 시스템'이라는 게 있거든. 증인 따위는 없어도 지금 있던 일을 그대로 녹화한 뒤 저장할 수 있어."

"뭐, 뭐라고?"

소유명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탑 밖에서 온 자들이 기괴한 도술과 술법을 부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런 것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가능할 리가.

방송 시스템은 이런 데서 활성화시킬 수 없다.

기본적으로 보스가 있는 던전이나 유적에서만 킬 수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점을 소유명은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 내게 대체 뭘 원하는 거냐."

그렇게까지 겁먹을 필요 없다.

정말로 별거 아닌 제안 하나만 할 생각이었으니까.

"마침, 내가 사원을 모으는 중이거든."

무당파의 일대 제자. 고인물 코퍼레이션 해외영업팀에 입사하다라…….

딱 좋은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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