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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20화 (321/653)

320화. 용들의 전쟁 (2)

고대룡.

탑의 상층부에 서식하는 최강의 포식자를 일컫는 말이다.

[고대종 '???'가 현현합니다!]

검붉은 스파크와 함께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났다.

"크오오오……!"

낮게 포효하는 것만으로도 대기가 떨린다.

짙게 깔려 있던 먹구름은 어느새 좌우로 갈라져 있었고.

주위를 잠식했던 무거운 마력 역시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더 강한 존재에 의해…….

……기존의 것들이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크아아아!"

청룡이 날이 선 울음을 내뱉었다.

맞서 싸우려는 것보단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발악에 가까웠다.

당황한 건 사마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 말도 안 돼……."

청룡을 잠에서 깨우는 데에만 십수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깨운 청룡을 복종시키는 진법을 그리는 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물과 인력이 투입되었고.

그것도 천마신교의 2인자라는 위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그가 아니라면 감히 그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대업이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한 세력 전체와 맞먹을 만큼 거대한 신수를 손에 넣었다.

무림맹이든 이빨 빠진 천마든.

더 이상 자신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을 터.

이제 모든 계획이 마침내 결실을 맺을 차례였다.

그랬어야 했는데…….

'제국을 움직인 걸로도 모자라…… 저런 터무니없는 용까지 부리고 있단 말이냐.'

이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넘어섰다.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러는 것마저 사치였다.

대응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라! 당장!"

사마자가 내기를 집중했다.

[금술(禁術) '망중고독'이 발동됩니다!]

우우웅!

"크오오오!"

청룡의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이성을 제거하고 오롯이 명령에만 복종하게 만드는 금술.

상대가 상위 포식자라고 한들,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싸우게 만들 수 있다.

발톱에 쥔 여의주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뿜어졌다.

파칙!

츠츳!

갈라져 있던 먹구름 사이에서 노란 스파크가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

하늘에서 수십 줄기의 낙뢰가 떨어졌다.

정확히 고구마의 머리로 향해서.

그러나.

[고대종 '???'가 Lv??? '기록 이전의 용언(龍言)'을 사용합니다!]

떨어지던 낙뢰들이 한 줌의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아예 발동되던 사실 자체가 부정이라도 된 것처럼.

"같은 용언이라도 청룡과 고대종의 용언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지."

이제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마자를 향해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지렁이 한 마리로 싸우고 싶다면, 여의주 한 개로는 많이 부족할 거야."

"크오오오오!"

고구마가 화답하듯 날개를 폈다.

공중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룡을 더 이상 봐주지 못하겠다는 듯이.

부우우웅!

곧이어 거대한 몸체가 하늘 높게 솟구쳤다.

"크아아아!"

"크오오오!"

상천에서 만난 두 마리의 용.

이어진 것은 서로가 서로의 숨통을 끊기 위한 사투였다.

상대적으로 빠른 청룡이 고속으로 움직이며, 틈을 노렸다.

유연한 신체를 바탕으로 바람을 타는 기술이 일품이다.

반면, 고구마는 중심을 잡은 채 다가오는 청룡의 몸을 낚아채려 했다.

한 번이라도 붙잡히면…….

그걸로 가느다란 청룡의 몸통은 두 토막으로 쪼개질 것이다.

"케에에!"

고구마의 발톱을 피한 청룡이 등 뒤를 잡았다.

브레스의 위력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발동 시간.

얼마나 오랫동안 기를 모으는지에 따라 그 파괴력은 천차만별이 된다.

당연히 먼저 자리를 잡는 쪽이 화력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화르륵!

먼저 브레스를 모으기 시작한 청룡이 극한까지 모은 마력을 방출했다.

뒤이어 고구마 역시 청염을 토해냈다.

콰콰콰콰콰!

두 개의 브레스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궤도가 틀어지며, 고구마의 브레스가 청룡의 뒤쪽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콰아아아앙!

작은 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정도의 위력.

허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용들이 전쟁을 벌이는 사이.

홀로 남은 사마자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방해하는구나. 이유가 대체 뭐냐? 네놈은 그저 탑을 등반하는 게 목적인 플레이어일 터. 차라리 내 편에 붙었다면 어렵지 않게 다음 층계로 갈 수 있을진대…… 이렇게까지 무림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이유라…….

하긴, 원래 사마자 편에 붙어도 탑의 다음 층계로 가는 조건을 달성할 수 있긴 하다.

놈의 말대로 그 편이 훨씬 손도 덜 가고 수월하기도 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사는 게 꼭 효율성만을 따지는 게 아니더라고."

스승님을 만났다.

자신이 믿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아무리 세가 기울었다고 한들 모시던 이가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고 한들…….

주군을 버리지 않았다.

천마를 만났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있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림이 무림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싸웠다.

그 끝이 비참했을지라도 결코 후회 따윈 하지 않았다.

"내가 어지간한 건 그냥 넘기겠는데.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을 배신하고. 수단과 방법 따윈 가리지 않은 채 학살을 자행하는 쓰레기가 승승장구하는 꼴은 못 보겠어."

그건 내가 탑을 오르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보는 정상은…… 분명, 과거의 정상과는 다를 것이다.

시련의 탑의 정상은 그런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구구절절하게 문답이나 늘어놓고 있을 셈이냐? 너도 한 세력의 우두머리라면 부하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직접 싸워야지."

진혁이 발뭉을 앞으로 뻗었다.

부웅!

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궤적을 따라 보라색 운무가 일어났다.

"그래…… 네놈 말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있다간 내가 죽게 생겼구나. 허면, 나 역시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겠다."

스윽.

사마자의 품에서 하얀 보석이 나왔다.

형언할 수 없는 빛을 간직한 마석.

틀림없다.

최상급 여의주인 '백염의 여의주'다.

인간의 몸으로 용과 같이 기상을 다룰 수 있는 것은 물론,

'여의주를 이용한다면…… 새로운 용을 탄생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사마자가 소룡들을 불러옵니다.]

우우우우웅!

지면을 따라 묘한 마력이 일어났다.

"설마, 내가 이것까지 쓰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사마자의 곁으로 푸른 비늘로 뒤덮인 용들이 나타났다.

고구마와 싸우는 청룡과는 조금 다르다.

훨씬 더 작은 크기에, 발톱에 쥐어진 여의주 역시 여의주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마력이 깃들어있었다.

"금술로 만들어낸 열화판이다. 크기도 위력도 본체의 십분지 일에 불과하지."

하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어지간한 절정급 고수는 손쉽게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더군다나 지금 진혁의 눈앞에 있는 소룡들은 고작 한 마리가 아니었다.

총 일곱.

"크르르……."

"키에에엑!"

소룡들이 아가리를 벌린 채 진혁을 위협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제법이네. 이번 건 솔직히 좀 놀랐어. 그런 여의주를 가지고 있었으면서 여태까지 쓰지 않고 꼭꼭 감춰 뒀던 거냐?"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준비했던 비장의 수다. 네놈 따위에게 써야 하는 게 뼈아프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고대종이 청룡을 압도하고 있다고 한들, 숨통을 끊기까진 앞으로 몇 시진은 더 걸릴 터.

다시 말해.

지금 진혁을 도울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용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 속에서도 진혁의 표정엔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차갑게 사마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

"그 여유 있는 척하는 태도는 이제 역겹기까지 하구나. 차라리 살려달라고 애걸이라도 해라. 공포에 찌들어 있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글쎄. 굳이 그래야 하나?"

겁을 먹을 필요도.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적어도 용족에 관해서만큼은…….

지금 이 순간 시련의 탑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상성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진혁이 발뭉에 마력을 주입했다.

똑똑히 알려주마.

이 싸움의 승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파츠츠!

검신을 타고 억겁의 세월 동안 잠들었던 용살검이 추억을 회고했다.

[발뭉의 특수 능력이 사용되었습니다.]

[Lv5 '전장 선택'이 발동됩니다!]

[신화를 재현합니다.]

시야가 검게 물든다.

살기등등하게 노려보던 사마자도.

브레스를 뿜어내기 위해 대기 중에 녹아 있는 기를 흡수하는 소룡들도.

전부 감각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

이제는 백골이 되어 버린 파프니르의 시체와.

지그프리트의 신화가 잠들어 있는 장소.

이곳이 바로 '마룡의 무덤'이다.

"그 짧은 찰나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리는 없을 테고. 설마, 주술의 한 종류인가?"

사마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난데없이 이질적인 공간으로 넘어왔으니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소룡들 역시 불안한 얼굴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있는 1분 1초가 자신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두근! 두근! 두근!

진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고동쳤다.

한 대영웅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몸속으로 스며든다.

'과연, 최강은 최강이라 이건가.'

흥분감과 고양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용을 베어버린 기억이 당장이라도 그 위업을 재현하기 위해 꿈틀거렸다.

좋아.

진혁이 '검마천령보'를 사용했다.

바람과 함께 신형이 사라졌다.

툭!

나타난 곳은 소룡들의 한복판.

마치, 두 개의 혼이 한 몸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이질적이면서도 같은 검격이 펼쳐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폭풍이 몰아친다.

"케에에엑!"

가장 가까이 있던 소룡의 몸통이 반으로 잘려나갔다.

"헉!?"

사마자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바람의 기운을 겹겹이 두른 용의 비늘이 일격에 잘릴 줄이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설령, 탈마의 경지에 이른 천마조차도 소룡들의 비늘을 한 번의 검격으로 베어버릴 순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 그 이상이라는 말이냐? 네놈이?"

천마보다도 한 수 위라는 말이다.

지그프리트와의 혼신일체.

스킬이 발동되는 3분 남짓만큼은.

'내가 천마를 뛰어넘는다.'

폭주하는 마력을 억제하는 행위 따윈 하지 않는다.

진혁이 양 손으로 잡은 발뭉을 고속으로 찔렀다.

퍼퍽!

이번에는 소룡 한 마리의 상반신이 사라졌다.

비명을 지르거나 피할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두 마리가 죽자 나머지 소룡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뭉쳤다.

"크오오오오!"

용들이 가진 최강의 고유 성창.

'브레스'다.

쿠쿠쿠쿠쿠!

다섯 마리가 동시에 입을 모아 거대한 마력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와 바람의 기운이 한 점을 향해 응축되었다.

"그럼, 이쪽도 그에 걸맞은 걸 꺼내주지."

드래곤에게 브레스가 있다면.

지그프리트에겐 그 브레스를 벨 수 있는 검이 있다.

보라색 등급의 성유물.

마룡을 베어버린 마검이.

다시 한 번 거칠게 포효했다.

[한정 능력 '드래곤 슬레이어'가 발동됩니다!]

오직 드래곤을 죽이는 데 특화된 검로.

그리고 그 검로를 통해 결과를 강제할 수 있는 검격.

발뭉의 날끝을 기점으로.

눈처럼 새하얀 선이 공간을 잘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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