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뉴비-331화 (332/653)

331화. 테이밍 마스터 (2)

섬의 중심부.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 안에선 엑센시온과 하이신스의 모습이 보였다.

"순조롭게 안으로 들어오네. 이게 함정인 줄은 까맣게 모른 채 말이야."

중앙에 놓인 거대한 수정구를 바라보던 하이신스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상대가 착각하면 착각할수록.

이후에 절망감도 더욱 커지는 법.

어서 빨리 진혁과 나머지 인간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죽여야 더 짜릿할까? 역시, 서로를 구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 걸 지켜보게 하는 게 제일 좋겠지? 아니야. 그냥 손끝부터 천천히 고문하며 죽이는 게 좋으려나?"

이번에야말로 엘리스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하이신스는 온 몸이 바짝바짝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모든 게 너무 지나치게 순조롭다."

엑센시온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중얼거렸다.

진혁과 엘리스를 더욱 깊숙이 유인하려는 건 원하는 바였지만. 문제는 그 속도다.

"아니, 잘 풀리고 있으면 좋은 거지. 뭘 그렇게 쓸데없는 거에 불안해하고 그래?"

"신수 스일리아나 수룡족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놈의 발목을 붙잡아 두고 있어야 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슈브 니구라스의 현현까지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만, 이렇게 되면 그 근간이 흔들릴 위험이 있어."

자신들이 실패해도 슈브 니구라스의 현현 타이밍까지만 버틴다면 변수는 없을 터.

이중 삼중으로 완벽하게 덫을 설계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놈이 그것까지 계산해서 서두르고 있다는 뜻은 설마 아니겠지? 그거야 말로 과대망상이라고."

"그래.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조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라. 이미 두 명의 가주가 저 인간을 얕보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걸."

"……."

엑센시온의 말에, 하이신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대로다.

데카서스 가문을 이끌던 아뮬람도 레비시타 가문을 이끌던 아비가일도.

모두 필살이라 자신하던 계획을 세운 채 진혁과 맞섰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

재가 되어 사라져버린 두 가문의 잔해만이 덩그러니 비어버린 자리에 맴돌고 있을 뿐이다."그 멍청한 놈들이랑 날 동일시하지 마. 애초에 우리 가문은 급이 달라. 게다가 이번엔 엘리스를 박살냈던 당신까지 왔잖아. 우리가 준비한 병력만 해도 신격들이랑 전쟁을 벌여도 될 정도라고."

하이신스가 주먹을 쥐었을 때였다.

저벅.

"이거, 위대한 가주분들께서 걱정이 많으신가 보군요."

동굴 안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노인.

바로 마인 협회를 이끄는 수장 '니체'다.

"네놈은…… 그 마인인지 뭔지 하는 놈 아니더냐?"

"밖에서 망이나 보라고 했더니, 벌써 자신의 본분을 까먹기라도 한 거야? 하스팅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함께할 일도 없었을 텐데……."

엑센시온과 하이신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인들은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것일 뿐이었기에, 한 자리에 있는 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눈엣가시처럼 보지 말아 주십쇼. 아무렴, 제가 어울릴 만한 자격도 없이 이곳에 찾아왔겠습니까?"

이어지는 니체의 말에…….

"현재 상층부에 있는 신격들이 왕관들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왕관은 탑의 균형을 이루는 핵심 성유물. 당연히 뱀파이어 분들께서도 그중 하나를 필요로 하실 텐데요? 여러분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유 왕관'이 말입니다."

"……!?"

"……!!"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변했다.

모든 뱀파이어들이 가장 간절하게 찾고 있는 보물의 이름이 여기서 튀어나올 줄이야.

'순혈의 왕관'.

'시작의 피'가 담긴 성배라 불리는, 7개의 왕관들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왕관이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인간 주제에 알아선 안 될 걸 알고 있구나."

두 가주의 안색이 180도 달라졌다.

싸늘하게 식은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으으으……."

니체의 뒤에 있던 멜레나는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전신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후후. 이 늙은이는 뱀파이어 가문의 역린을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순혈의 왕관을 얻기 위해선 여러분들도 도움이 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도움이라고? 네놈 따위가 무슨 도움을 준다는 것이냐?"

"여러분들에게 저희 인간들은 벌레에 불과하다고 느껴지시겠지만……. 벌레에게도 나름대로 힘이 있습니다. 왕관의 존재와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

마인들이 유일하게 거주자들보다 우위에 있는 점이 있다면…….

그건, 무서울 정도로 악착같이 탑에 대한 정보를 확보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말해라. 그런 정보를 어떻게 손에 넣은 거지? 그 마계 쪽 녀석들한테서 들은 건가?"

"이런, 아무리 그래도 저희 비밀을 쉽게 말씀드릴 수야 있겠습니까?"

다만.

스르륵…….

니체의 옆으로 검보라색 구체가 떠올랐다.

[잊혀진 원소의 정령수 '블랙네스'를 소환합니다!]

땅, 불, 바람, 물, 빛.

정령수는 5대 원소 중 하나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나타난 정령수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은 새로운 정령이었다.

암속성의 이질적인 마력.

"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엑센시온마저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랐다.

왕관의 존재를 아는 것에 이어.

수만 년 전 탑에서 그 존재를 감춰버린 6번째 정령수를 만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0층만 신경 쓰는 하스팅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대신, 저와 거래를 하신다면, 상층부의 신격들도 여러분께 함부로 덤비지 못하도록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물론, 왕관을 손에 넣는 것까지도 말이죠."

니체가 판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

진혁은 정령수들의 지원을 받으며 최단거리로 섬 내부를 주파했다.

"허억. 허억. 허억."

"너, 너무 빨라."

"저분은 아예 체력이 무한이기라도 한 거예요? 그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도 지치질 않다니."

공격대가 사력을 다해 뒤를 따라왔지만, 진혁의 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유연화와 이태민조차도 시야에서 진혁을 놓치지 않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유일하게 여유가 있는 사람은 천유성 한 명뿐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먼저 가겠다. 무리해서 따라오려고 하다가 나가떨어지지 말고. 후방에 오는 적들을 막아라."

"저…… 저희도 아직 따라갈 수 있어요.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아니."

천유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들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짐만 된다."

냉정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사람에게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었으니.

유진아 역시 그걸 알았기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후방을 책임지도록 할게요. 먼저 가도록 하세요."

"현명한 생각이다."

천유성이 더욱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섬 안쪽까지 온 두 사람 앞에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났다.

크기만 해도 약 20m.

붉은 스파크가 쉴 새 없이 점멸했다.

"게이트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심상치 않군. 최소한 상위 미궁이나 유적에 해당하는 것 같다."

천유성이 게이트 입구를 살폈다.

각종 룬어로 장식된 게이트에선 처음 경험해 보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유성아."

"뭐냐?"

"미안한데, 게이트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와 줄 수 있어?"

"갑자기 정찰을 가라고? 나 혼자서 말이냐?"

"이 게이트…… 예전에 한 번 공략해 본 적이 있는 종류인데, 기억이 살짝 애매해서 그래. 일대를 크게 돌면서 청록색을 띤 마정석이 있으면 찾아줘."

"빌어먹을…… 알겠다. 하면 될 것 아니냐 하면."

천유성이 툴툴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홀로 남은 진혁이 게이트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난이도 측정 불가.]

['????'로 이어지는 통로가 개방됩니다.]

[입장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2명입니다.]

난이도 측정 불가라는 위험성에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진혁은 적당한 핑계를 대 천유성을 멀리 내보냈다.

공격대뿐 아니라, 네 실력으로 위험하다는 말을 했다간, 그 녀석이 미쳐 날뛸 테니까.

자존심 센 바보는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적절하게 피할 구실을 제공해 주는 편이 좋으리라.

우우우웅!

내부로 들어가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건 설마…….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신전은…… 결코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이건…… 내…… 성이야.

'브라함의 반지'에 있던 엘리스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마력이 주입되면서 엘리스가 반지 밖으로 나왔다.

"그립네. 한때는 이곳에서 살았었는데……."

아타락시아의 가주로서 그 시작을 알린 장소.

동시에 가주들의 배신으로 인해 그 끝을 고한 종착지이기도 했다.

"뱀파이어 놈들이 장난을 친 건가? 네가 살던 곳을 그대로 재현해서?"

"아니. 이건 가짜가 아니야. 공간 자체를 연결한 거라고 봐야겠지."

굳이, 엘리스를 자극하려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놈들이 한 짓이 확실하게 먹혔다는 것이다.

엘리스의 붉은 동공에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후회와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가 느껴졌다.

바로 그때.

"크르르……."

"컹!컹!컹!컹!"

"으르르."

진혁과 엘리스의 뒤쪽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떨어지는 침.

머리가 세 개 달린 검은 개가 침입자를 바라봤다.

지옥의 파수견이라 알려진 케르베로스다.

하지만 그보다 눈이 가는 건 케르베로스의 옆에 있는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성 뱀파이어였다.

"하이신……스!"

엘리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민 가주.

그 원흉 중 또 하나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아타락시아의 꼬맹이. 아니, 이제는 전(前)대 가주라고 불러주는 편이 좋으려나?"

"엑센시온은 어디 있지?"

"역시, 만나자마자 그 남자부터 찾는 건가. 난 안중에도 없는 게 조금은 섭섭한데?"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당장. 질문에 대답이나 해! 그 자식 지금 어디 있냐고!"

"근처에 있어.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곧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하이신스가 생긋 웃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네가 그 강진혁이란 인간이구나? 우리 계획에 재란 재는 다 뿌리고 다닌다던?"

"이야. 영광이네. 가주께서 내 이름을 다 기억해 주고. 그런데 너희가 그 강아지를 데리고 있다는 건. 그리스 쪽 머저리들과 손을 잡았다는 걸로 해석해도 되는 걸까?"

"……말이 너무 길었네. 대화는 이만 끝내도록 하지. 죽여 버려. 전부."

"크르르……!"

하이신스의 명령에 케르베로스의 입가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화르륵!

엄청난 열기가 일어났다.

제어를 잃어버린 시뻘건 화염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케르베로스가 '지옥 겁화'를 발동합니다!]

과연, 명계의 수문장이라 부를 만하다.

아까 전에 상대했던 까마귀 녀석도 나름대로 신수로서의 격이 있었지만.

케르베로스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격을 지니고 있었다.

"가자, 엘리스."

"응."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해줘서."

진심이 담긴 말이 전해진다.

동시에.

[고유 성창 '개벽의 계시록'이 개방됩니다!]

엘리스의 모습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