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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41화 (342/653)

341화. 신들의 경매소 (2)

쿵! 쿵! 쿵!

발걸음 소리가 점차 커졌다.

경매소 전체가 흔들릴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 체구가 5m에 이르는 남자였다.

터질 듯한 근육질의 체구와 반쯤 벌거벗은 몸.

덥수룩한 수염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전신을 짓누른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그리스 신화 최강의 전사라 불리는 대영웅을.

'기껏해야 하수인들을 보내 대리 경매를 진행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경매의 판이 예상보다 더욱 엄청난 모양이다.

이토록 거물이 이곳까지 올 정도면 말이다.

쿵!

발걸음이 멈췄다.

"크하하! 드디어 만나게 됐군. 외눈깔 할망구들이 이곳에 올 거라 이야기했을 땐 반신반의 했었는데, 이 멍청한 곳까지 온 보람이 있었어."

마침내 진혁 앞에 선 헤라클레스가 껄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를 만나러 이곳까지 왔다는 겁니까?"

"그렇다. 나는 예언 따위는 믿지 않지만, 두 눈으로 본 것은 믿는다."

헤라클레스가 손가락을 들어 진혁을 가리켰다.

"50층의 놈에게 한 방 먹이는 건 제법 볼 만했다. 솔직히 말해 그런 식으로 살아남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

서론이 마무리되고.

본론이 튀어나왔다.

"이빨 빠진 북유럽 놈들이 접근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놈들이 무얼 제안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가라앉은 배다."

로키와 토르.

두 신격과 이쪽이 접촉했다는 건 이미 그리스 쪽에도 들어간 모양이다.

하긴, 정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헤르메스가 있으니까.

"함께해 봤자 오히려 손해라는 말입니까?"

"그런 말이지. 기왕 탑을 오를 거면, 강한 세력과 함께하는 게 너에게도 좋지 않겠는가?"

북유럽 최고 신격인 오딘이 왕관을 잃어버린 뒤, 북유럽 신격들의 영향력은 땅에 추락했다.

실제로 그리스 신격들이 대놓고 오딘의 영역에 침범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확실히 그리스도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는 세력이긴 하지. 선택을 하게 된다면 든든하게 뒷배로서의 역할을 다 해줄 테니.'

적어도 탑의 30층 후반대와 40층 초반대를 공략하는 데 있어선 뛰어난 효율을 자랑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왜일까.

진혁은 섣불리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스와는 결코 엮여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계 놈들보다 더 음흉한 게 바로 저놈들이야.'

토사구팽.

사냥을 끝낸 사냥개는 반드시 처리하는 게 그리스 신격들의 철칙이었다.

과거에도 저걸 몰라서 개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흐음. 지금 당장하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네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됐지만, 지금 대답을 들어야겠다. 내가 원하는 건 당장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그렇다면 안타깝지만, 거절해야겠네요."

진혁의 의사표현에, 헤라클레스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 말, ……진심인 거냐?"

"오늘은 순수하게 경매를 즐기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지. 함께할 세력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요."

진혁이 정말로 아쉽다는 듯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보통 이쯤이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게 정상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는 그렇다는 뜻일 뿐.

"그거, 참…… 아쉽게 됐군."

앞뒤라는 걸 재지 않는 대영웅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우우웅!

성가신 적이 될지도 모르는 변수는 아예 떡잎부터 짓밟아 놓아야 한다.

그것이 헤라클레스가 적과 아군을 나누는 기준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주먹이 가로질렀다.

살기가 가득 실린 일격.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진혁 역시 상대에 반응할 수 있는 신체를 구축했다.

[고유 능력 '툼그레이브의 오른팔'이 발동됩니다!]

완전히 변한 오른팔.

안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과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뻗은 팔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호오?"

헤라클레스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설마 하니, 자신의 공격을 인간이 막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얼굴이다.

그러나 당황한 건 진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짜 많이 강해지긴 했구나.'

헤라클레스의 일격을 한 순간이나마 견뎌 내다니.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시련의 탑이 나타난 지 2년도 되지 않는 시점에서 신격들을 마주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간극 스탯이 최대치로 활성화됩니다!]

쿠쿠쿠쿠쿠!

훨씬 작은 손이 거대한 주먹을 붙잡고 있는 광경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잠시뿐이었다.

밀린다.

적어도 아직은…….

상위 신격과의 정면 승부는 성립될 수 없는 일이었다.

슈브 니구라스와의 전투로 인한 피로도가 쌓여 있는 것도 단단히 한몫했다.

"……."

진혁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기껏해야 몇 초.

버티는 건 그게 한계다.

"아직도 우리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 거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재수 없는 놈들과는 함께 안 해. 무엇보다 누구 밑에 들어가는 취미는 더더욱 없거든."

"그런가? 유언치곤 꽤나 짧군."

헤라클레스의 팔에 굵은 심줄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아악!

은은한 녹색 기체가 흩뿌려졌다.

"크아아악!"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급히 뒷걸음질 치는 꼴이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감히, 나에게 독을 뿌려!?"

'천독(千毒)'과 '검은 눈물'을 섞은 독특한 배합법.

헤라클레스가 유일하게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게 바로 독이었다.

"집착하는 남자는 매력 없는 거 몰라? 자꾸 들러붙으니까 이럴 수밖에 없는 거 아니야?"

"아주 찢어 죽여 버리겠다!"

헤라클레스가 분노가 가득 실린 고함을 내질렀다.

콰드드득!

대리석으로 만든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는가 싶더니…….

콰앙!

이내 몸이 총알처럼 튕겨나갔다.

아니, 튀어나가려고 했다.

발이 지면에서 채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 헤라클레스의 팔목을 붙잡았다.

"감히 날 막아서다니! 웬 놈이냐?"

"명색이 그리스 최고의 신격 중 하나라는 분이…… 플레이어에게 당한 걸로도 모자라 이성까지 잃어버리신 건가요?"

"넌……!?"

헤라클레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무리 제멋대로 날뛰는 대영웅이라지만, 이번에는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상대 역시 한 신화를 망라하는 최강의 신격체였으니까.

싸울 자세를 잡던 진혁도 어느새 새롭게 나타난 상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또 거물이 나타났다.

'왕관을 보유하고 있는 세력도 경매에 참석한 건가.'

마계에서도 한때 왕관을 보유했었으나, 현재는 빼앗긴 상태.

그리고 그 대상이…….

눈앞에 있는 존재 탓이다.

'신성하다'라는 말은 흔히 사용되긴 했지만, 이토록 잘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신의 뜻을 관철하고 집행하는 대리자들.

그 자체만으로도 막강한 신격 중 하나가 진혁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오랫동안 만나 뵙고 싶었는데, 드디어 볼 수 있게 됐네요."

아름다운 여성이 생긋 웃었다.

긴 금발을 한쪽으로 묶은 모습.

몸은 부러질 듯 가녀렸지만, 흘러나오는 마력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대천사 가브리엘.

4대 천사 중 하나이며, 시련의 탑 44층을 지배하는 거대 세력 '에덴'의 일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는 일격에 잠재울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이기도 했다.

"혹시 오늘 메인 경매가 취소되었다는 걸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와 봤는데, 다행이네요. 덕분에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오늘은 경매가 개최되지 않을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밖에 있던 세틸다인지 뭔지 하는 요정나부랭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헤라클레스가 즉시 되물었다.

"신격들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들이 참석하는 중소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될 예정이에요."

다만.

"메인 경매는 이틀 뒤로 밀렸습니다. 새롭게 출품되는 물건 중 하나가 워낙 귀한 거라서 말이죠."

"설마, '그게' 나온다는 건가?"

"예. 그러니 헤라클레스 님도 괜히 힘을 빼지 마시고 돌아가셔서 충분한 자금을 모아 오세요. 너무 허무하게 끝나는 경매는 저희 쪽도 원치 않으니까요."

가브리엘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진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도 이틀 뒤에 다시 뵙도록 할게요. 그때는 아마 많은 신격과 세력분들을 만나 좋은 조건으로 세력을 선택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저희 '에덴'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미소로 예의를 지킨다.

이건 천사들이 지닌 기본적인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이틀 뒤.

꽤나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경매에 나오는 게 어떤 건지 대충 예상이 갔으니까.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쯤해서 돌아가도록 해야겠네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전 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 국의 대통령과 길드들은 이번 일에 대한 최대 공헌자인 강진혁 플레이어에게 감사의 인사를 개인적으로 전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가 마스터로 있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세계 8대 길드에 포함되게 되었다는 속보입니다!]

쏟아지는 기사들이 연일 매스컴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전에도 몇 번의 끔찍한 아웃브레이크들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절망적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호오. 제법이구나. 한데, 왜 짐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 것이냐?"

엘리스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음. 있긴 한데, 이상한 팬클럽에서 올린 글들이 대부분이더라고. 어떻게. 이거라도 좀 보여줄까?"

얼핏 보기론 뱀파이어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들이 즐비하긴 하던데.

그래도 무관심보다는 더 낫지 않겠는가?

"되, 되었다! 짐은 짐의 고귀한 기품에 걸맞은 취미를 즐길 것이다."

"취미라고? 네가 먹고 자는 거 말고 취미라는 것도 할 줄 알아?"

"엣헴. 보고나서 놀라지 말거라. 인간들도 많이 하는 거니까."

"흐음. 영 수상한데……."

진혁이 미심쩍은 얼굴로 엘리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짜 거미줄과 해골. 음산한 촛불이 켜져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하여간, 취향 한 번 기가 막히다.

"영화라는 것을 보고 있었느니라."

엘리스가 태블릿에 있는 영상을 가리켰다.

으음 이건……?

알고 있는 영화다.

트와일라잇.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이 나오는 판타지풍 로맨스의 대표작이지.

"이야. 너도 이런 걸 봐?"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쁘구나."

"응?"

아니 달달하다든가. 멋있다든가.

그런 감상이 나와야 정상인데, 어째서 기분 나쁘다라는 감상이 떡 하니 튀어나온 걸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감히, 늑대인간들 따위가 고귀한 종족에게 덤비다니. 내가 가주로 있었을 때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느니라! 대체 저곳에 있는 가주들은 무얼 하길래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한 것이냐!"

엘리스가 분한 듯이 작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콩콩 내려쳤다.

이 바보 뱀파이어한테서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한 게 멍청한 거지.

"공감 1도 안 가는 소리는 그쯤하고 나갈 준비나 해."

"외출을 한다고?"

"모처럼 휴식 시간이 생겼는데,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거야?"

경매소가 다시 열릴 때까지 이틀이란 시간이 있다.

19층으로 가는 건 그 이후의 일이 될 테고.

그러니 그때까진.

쌓인 피로를 마음껏 풀어둘 생각이다.

"오오오오! 당연히 가겠…… 아니. 뭐, 계약자가 꼭 간절하게 같이 가 달라고 애원한다면 못 가 줄 것도 없긴 하겠지. 고귀한 종족은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엘리스가 침대에서 폴짝 뛰며 일어나려다가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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