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상층부의 거대세력 (2)
"……."
하스팅에 관한 정보.
뜻밖의 엄청난 주제에 진혁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던 카드 중 하나가 나왔다.
놈이 워낙 베일에 싸여 있던 탓에 과거에도 그 꿍꿍이를 알기 힘들었는데, 그걸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지, 그 이야기를 들으려면 에덴에 합류하라 이건가…….'
상층부의 거대 세력 '에덴'.
확실히 다른 선택지보단 장점이 많은 곳이다.
구성원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마계와 극상성을 띠고 있기에, 향후 여러 가지로 변수를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택을 하기 전에 먼저…….
띠링!
[Lv15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진혁의 눈이 상대를 꿰뚫었다.
그러나.
[대천사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색 운무가 일어났다.
"큭!"
시큰하고.
진혁의 눈에 강렬한 통증이 일어났다.
정수리부터 척수까지 꿰뚫리는 것만 같았다.
"후후. 장막 뒤를 보려는 건 반칙이에요. 저희 쪽에서도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가진 스킬의 종류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해 두고 있거든요."
가브리엘이 생긋 웃었다.
역시나. 상위 신격 앞에서 '눈'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상대로부터 원하는 걸 알아낼 수단은 존재했다.
"알겠습니다. 어설프게 떠보는 건 여기까지만 하죠."
"그 말은, 저희 쪽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절이라니 아쉽네요. 하스팅에 관한 정보를 꼭 알고 싶어 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음…….
"뭔가 착각하고 계시나 본데, 저는 당신들의 세력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지. 하스팅에 관한 정보를 포기하겠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예?"
"제 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하나 넘겨드리겠습니다."
"일종의 정보 교환을 하자는 말씀인가요? 저희와?"
"맞습니다. 아마, 에덴에서도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때였다.
"어이가 없군."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성 천사가 끼어들었다.
"미물 따위에게 제안을 한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인데, 감히 한 줌의 티끌도 안 되는 지식으로 우리에게 거래를 하겠다는 말이더냐?"
"데미엘 그만하세요."
가브리엘이 제지했지만, 남성 천사는 쉽게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천사시여.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저자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탑의 중층부에 조금 희귀한 아이템 나부랭이가 있다…… 따위일 텐데요. 그런 걸로 하스팅에 관한 정보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데미엘이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왕관을 소유하고 있지만, 50층의 경계선에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 그게 전부 '그 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 아닙니까?"
모든 게 시답잖다는 데미안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50층을 안전하게 돌아다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성유물 중 하나.
'네크로노미콘.'
50층에 관한 온갖 정보들과 고대 신들에 관한 내용이 기록된 마술서이다.
그런데 신격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금서가 일개 플레이어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는 그 책의 일부가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하스팅에 관한 정보를 넘겨준다면 그 책의 일부가 있는 곳 역시 알려드리죠."
"이거…… 생각보다 더 위험한 남자셨네요. 당신이란 사람은."
가브리엘 역시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책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짓일 확률은 없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거래를 하죠."
가브리엘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
[청룡의 여의주 1개를 입장료로 지불하셨습니다.]
입구에 있던 관리자가 여의주를 꼼꼼히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료로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럼, 편안한 경매 되시길……."
관리자가 한 걸음 비켜서자,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개방되었다.
그렇게 나타난 대경매장.
이미 많은 신격들이 참석했는지, 내부는 꽤나 분주했다.
"마정석을 적어도…."
"다섯 번째 아이템은 반드시 우리 쪽에서…."
"……그래. 알고 있다."
대부분 자신이 소속된 세력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번에 출품될 물건들을 어떻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상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벅.
진혁이 경매장 안으로 들어오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시련의 탑'이 나타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벌써 탑의 중층부에 도달한 루키.
신격들도 어찌하지 못한 최강의 존재를 몰아낸 화제의 랭커.
역대 무수히 많은 차원에 무수히 많은 탑이 나타났었지만, 이토록 빠르게 탑을 등반한 플레이어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저 녀석이 강진혁이라는 자인가?"
"맞아. 우리 쪽에서도 몇 번인가 이름이 나왔던 인물이다."
"무림과 제국의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했더군. 천마신교의 사마자를 처리한 것도 바로 저 녀석 때문이었어."
"사마자라면 제천대성 그 원숭이가 자신의 사도로 삼으려고 했던 후보잖아?"
"호호. 저기 잔뜩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걸 보니 맞는 것 같네요."
신격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바로 그때.
파츠츠!
검은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멀리서 구경하던 이들과는 달리,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낸 채 다가오는 모습.
길게 튀어나온 엄니와 붉은색 문신이 새겨진 얼굴이 인상적인 남자다.
"그 빌어먹을 면상을 드디어 보게 되는구나. 내 부하들이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져서 정말이지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분노가 뚝뚝 묻어 나온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군타페르.
마계 군단장 중 하나로 놈의 부하와는 거인들의 성체에서 한 번 부딪친 적이 있었다.
마인들을 통해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걸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니…….
확실히 이쪽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 없겠지.
그리고 그 옆에는 아타락시아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갑주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엑센시온.
엘리스를 배신한 현대 아타락시아의 가주까지 이번 경매에 참석한 건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하다.
압도적일 만큼.
가주급들을 탑의 아래층에서 만났을 때는 그 힘이 제약되어 있었지만, 이곳에선 온전히 본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몸에 걸치고 있는 각종 무구들 역시, 하나같이 이름이 알려진 최상급 성유물들뿐이었다.
"경매고 나발이고 간에, 네놈의 목을 따는 게 내가 원하는 바다."
군타페르의 손톱이 날을 세웠다.
"이렇게 많은 신격들 앞에서 나 하나 상대로 분풀이를 하려고? 나도 명색이 참가자 자격으로 온 거야…… 이런 짓을 했다간 다들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신격들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놈들은 네 목숨 따위에 관심 없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있어야 움직이는 게 바로 신격이란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에서는 힘이 곧 규칙이자 법.
거주자나 플레이어가 신격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도로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야만 한다.
물론,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진혁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상식이었고.
그게 먹이사슬의 현 위치였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딱 하나.
군타페르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미안하지만, 내가 인기가 제법 많거든."
"그게 무슨 헛소리…… 헉!? 네놈은!"
말을 하던 군타페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흐음. 누가 누구의 목을 따겠다는 거지? 그는 내 사도가 되기로 약속했다. 다시 말해. 마계의 후원을 받는 플레이어란 뜻이지."
베리엘이 끼어들었다.
"이 녀석이 마계의 검은 사도가 될 거라고?"
"응. 사도? 내가? 나?"
이번엔 두 명의 동시에 놀랐다.
아…… 맞다.
슈브니구라스와의 전투에서 이 녀석을 꾀어내려고 사도가 되니 어쩌니 했었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이어서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덤으로 천유성까지 팔아 넘겼었던 기억도 아주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러니 그 손은 떼는 게 좋을 거야. 나와 전쟁이라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베리엘…… 이 더러운 타락천사가! 마신께서 네놈을 좀 예뻐해 준다고 해서 너무 기고만장하는 것 아니더냐?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는 언제든지 네놈이 우리를 배신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배신이라… 그거 영 듣기가 거북한 말이군."
"거북하면 뭐 어쩌겠다는 거지?"
"어쩌기는. 그 목을 잘라서 내 성문 앞에 걸어둘 생각이다."
파칫!
파츠츠…!
공기가 한층 무겁게 급변했다.
신격들 사이에 신경전이 전투로까지 번지게 된다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몰랐다.
완벽하게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러나 극단까지 치닫던 마력은 그 끝을 맺지 못했다.
"자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준비할 게 많다 보니 제가 조금 늦었네요."
앙증맞은 토끼의 외형을 한 수인족이 어느새 중앙에 나타났던 것이다.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베리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섰다.
"도망치는 것이냐?"
"너와는 달리 나는 이번 경매에 꽤 흥미가 있거든. 너도 괜한 곳에 힘 빼지 말고 느긋하게 경매나 즐기라고. 네놈의 멍청한 사도를 키우려면 이번 경매에서 뭐라도 하나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
"……큭. 이 썩을 놈이…."
군타페르가 주먹을 부러져라 쥐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난동을 부리진 않았다.
베리엘의 말대로 사도를 성장시키는 것 역시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들. 진정들 하신 것 같으니, 그럼 대망의 경매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 물건은 일주일 전 탑의 45층에서 갓 입수한 따끈따끈한 신상입니다!"
토끼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 거대한 유리 상자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3m가 넘는 발톱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바로, 고대종 중 하나인 '베헤모스'의 발톱이다.
엄청난 덩치를 지닌 마수답게 발톱의 일부만으로도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베헤모스라니."
"보기 힘든 고대종인데, 45층에 있었다는 건가요?"
"용케도 그 흔적을 찾아냈군."
섬을 집어삼킨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기본 입찰 마정석만 해도 7억 개.
허나, 신격들이 가세하자 순식간에 마정석의 단위가 바뀌었다.
"10억!"
"15억!"
"30억!"
"80억!"
베헤모스의 발톱이면 무기나 방어구로 만들기엔 최고의 재료일 터.
허나, 아예 끼어들 엄두도 나지 않은 수준이다.
"구경은 잘 하고 있는 거냐, 애송이? 아! 하긴, 구경밖에 할 일이 없겠군. 너 같은 빈털터리가 함부로 끼어들 판이 아니니까. 크하하하!"
군타페르가 광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진혁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저런 게 아니었다.
"판도라의 상자는 올림포스에서 오신 헤르메스 님께 낙찰되셨습니다!"
"초월급 마도석은 에덴에서 오신 가브리엘 님께 낙찰되셨습니다!"
"원소의 심장은 정령계의 대리인 자격으로 오신 유아시스 님께 낙찰되셨습니다!"
쉴 새 없이 진행되는 경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물건은……!"
이번 경매에 있어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경매품이 등장했다.
드디어 나왔다.
스윽…….
진혁이 천천히 아공간 인벤토리를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