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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48화 (349/653)

348화. 19층의 히든 플레이스 (2)

패도의 왕관.

가장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성유물로. 이 왕관은 언제나 탑에 거대한 파란을 불러 일으켜왔다.

역대 탑 내부에 있던 대형사건 중 절반 이상이 이 왕관의 주인이 교체되는 것과 맞물려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진혁은 그 누구보다 빨리 왕관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상층부의 세력들이 이 정보를 알았다간 벌떼처럼 19층으로 몰려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19층에 위치한 사막의 사구 속에선….

두 그림자가 마주하고 있었다.

"……."

2m에 이르는 마른 신장.

유쾌하게 올라간 입 꼬리.

얼핏 보기엔 유명한 영화배우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계를 돌아다닐 때 위화감을 없애기 위한 수단일 뿐.

껍데기 속에 간직한 본신의 모습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었다.

니알라토텝.

아자토스를 섬기는 메신저이자 전령으로. 관리자를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탑의 층계를 자유로이 부유할 수 있는 50층의 신격이다.

그 앞에는….

중절모에 외눈 안경을 쓴 노년의 신사가 서 있었다.

하얀 수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바로, 상단의 주인이자 탑의 중간 관리자. '릭 헤네시'였다.

"일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까지 내려온 건 실수였다. 차라리 대리자를 보내든지 아니면 다른 관리자를 이용하는 편이 나았어."

릭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킥킥. 이런이런, 내가 그 위대하신 릭 헤네시님의 심기를 거슬렸나 보군."

그러자 니알라토텝이 잔뜩 이죽이는 소리를 내뱉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방 한 가운데 있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근사한 와인을 한 잔 가득 따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한 모금 하겠어? 아니, 당신은 그 이상한 커피 아니면 먹지 않았던가?"

"술이라면 사양하겠다. 그보다 대답해라. 니알라토텝 어째서 패도의 왕관을 즉각 회수하지 않고 방치했던 거지?"

"아… 그거?"

날카로운 질문을 받은 니알라토텝이 유리잔에 담긴 와인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쭈욱!

그 순간, 손가락을 통해 잔에 있던 와인이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나도 빨리 회수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그건 하나의 여흥으로 남겨두자고 하셨어."

"천마에 대한 예우라도 보이고 싶었다는 건가?"

"설마, 단순히 흥미정도셨겠지. 애초에 어머니 앞에선 아래층에 사는 거주자들 따위, 적수로 생각할 수조차 없으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군."

릭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그 인간 쪽은 괜찮은 거야? 강진혁이었던가? 당신이 아끼는 인간이라는 건 알겠는데, 생각보다 우리 계획을 많이 방해하고 있잖아. 혹시라도 그 의심의 화살이 당신에게 향했다간 골치 아파진다고."

"강진혁과는 충분히 친분을 쌓아두었다. 그자가 향하는 표적은 어디까지나 하스팅에 국한된 것일 터. 이미 가브리엘을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뿌려두었다."

"호오. 에덴 쪽까지 포섭해 둔 거야?"

"아니. 그녀는 내막을 모른다. 단지, 하스팅이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다고 믿을 뿐이지."

릭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우우우웅!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 벌어지며 무수히 많은 아이템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향이군."

릭이 커피 맛을 깊이 음미했다.

"휘유! 다시 봐도 당신의 아공간 능력은 굉장해. 탑 그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휘파람을 불던 니알라토텝이 한 마디 덧붙였다.

"큭큭! 그나저나 하스팅이 이 사실을 알면 기절하겠어. 우리의 선택을 받은 건 자신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더라니까? 그 굽신거리는 꼴을 당신도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 녀석은 자신이 모든 걸 관리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있는 게 가장 좋아."

"맞아. 맞지. 그게 더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기도 하고."

"시덥잖은 대화는 이 정도면 됐다. 이번에는 반드시 왕관을 회수해라 니알라토텝. 더 이상 일이 틀어졌다간 너 역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미 뛰어난 자들을 포섭해 놨으니까. 당신이야 말로 그 인간의 손에 네크로노미콘이 넘어가지 않도록 해줘. 그 책은… 하. 제발 좀 영원히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 정말이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야."

"알겠다. 그 부분은 내가 따로 조치하도록 하지."

"좋아. 당신만 믿고 있겠어. 우리 영원한 동반자 씨."

니알라토텝 역시 즐겁다는 얼굴로 와인 잔을 채웠다.

***

휘이이잉!

모래 바람이 열풍과 함께 몰아쳤다.

작은 모래알들이 섞여 있는 폭풍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실제로 이곳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들도 폭풍이 몰아치는 때만큼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파고들어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정말 엄청나긴 엄청나군."

천유성이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유아시스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임시 거점.

종유석들이 가득 차 있는 동굴은 폭풍을 피해갈 수 있는 훌륭한 피난처가 되었다.

"19층은 밖에서 가져온 식량을 아공간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어차피 폭풍이 멈추기 전까진 나가지 못할 테니. 그동안 제가 근사한 프랑스식 요리를 대접해 드릴게요."

테레사가 모처럼 실력을 뽐내겠다는 듯 두 팔을 걷어붙였다.

마블링이 가득한 소고기와 지중해산 성게와 랍스타. 거기에 고급 적포도주까지.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재료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매콤한 토마토소스인 아라비아타 소스를 관자와 새우살에 곁들이자, 군침이 가득 도는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이건 뭐.

레이드를 하러 온 건지. 먹방을 찍으러 온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심지어 완전히 꽁해 있던 엘리스마저 반지 속에서 아우성을 치는 게 느껴졌다.

잘하면 삐져 있는 걸 풀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분주하게 요리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진혁은 유아시스에게 다가갔다.

"유아시스 씨."

"예?"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아. 네 물론이죠. 어떤 건가요?"

네 다리를 말아 식빵 자세를 하고 있던 유아시스가 환하게 웃었다.

"다른 게 아니고 저희가 이번에 가려고 하는 곳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태양의 사구 말씀이로군요."

19층 유적의 히든 플레이스 '태양의 사구'.

1년, 365일 내내 해가지지 않는 장소다.

모든 빛이 모이는 곳이란 말을 증명하듯. 그곳은 내부로 갈수록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최심부는 태양에 비견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과거에도 이곳을 찾은 적이 있지만, 가장 깊은 곳까지 가는 덴 실패했었다.

당시에는 왕관이란 목표도 없었을 뿐더러. 태양의 사구를 공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구 안에 있는 방들이 적혀 있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지도라면…?"

"드라이어드 종족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숲의 수호자들이 자신의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 말이죠."

사구의 특성상 강한 마력을 띠는 물건은 안쪽으로 빨아들이려 한다.

왕관이 있다면, 현재 사구의 최심부에 있을 터.

제한된 시간 안에 왕관을 찾으려면 반드시 그 내부의 모습이 적혀 있는 지도가 필요하다.

"정말… 강진혁 플레이어님은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어떻게 저희 일족의 비밀들을 그렇게 낱낱이 알고 계신 건가요?"

"죄송하지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건 정보의 출처가 아니라 정보를 통해 어떤 걸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게 핵심이겠죠."

진혁의 말에 유아시스가 잠시 멈칫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무기를 뽑아드는 한이 있더라도, 비밀의 출처를 파악해야만 했다.

내부에 첩자가 있을지. 그것도 아니면 어딘가 구멍이 생겼는지 파악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최우선 사항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진혁이 했던 말처럼. 주어진 정보를 활용해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알겠어요."

유아시스가 머리카락에 꽂아둔 꽃송이 하나를 꺼냈다.

우우우웅!

꽃잎이 흐드러지며, 점점 더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꽃잎으로 만든 거대한 지도가 나타났다.

태양의 사구에 있는 모든 방들과 위치가 적혀 있다.

'좋아.'

진혁이 만족스러운 듯 주먹을 살짝 쥐었다.

이것만 있다면 왕관을 찾는 게 훨씬 더 쉬워질 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유아시스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그게…."

급격히 무너지는 표정.

흔들리는 동공엔 깊은 당혹감이 배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그녀가 폭포 밖에 배치해둔 드라이어드들이 죽어나가고 있었으니까.

"자매들이… 전부… 대체 어떤 놈들이…이토록 잔인한 짓을…."

유아시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동료들이 전부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있다.

진혁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단순히 유적을 찾아온 플레이어나 거주자들이 아니야.'

그랬다면 드라이어드들을 마주하고 대화를 시도하든가 아니면 레이드를 포기했을 거다.

유적이 매력적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노력 대비 산출이 나올 때의 이야기.

숲의 일족을 학살해가면서까지 안으로 들어와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어야 할 게 있지 않은 한은.

'하스팅… 왕관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그것 외에는 말이 되지 않았다.

서둘러야 한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

식사가 미뤄지고 대신 진혁은 방금 전 있던 일에 대해 모두에게 털어 놓았다.

"사정은 알겠다. 그렇다고 해서 저 폭풍 속을 지나가자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진혁 씨…."

천유성과 테레사가 난색을 표했다.

"……생존 확률이 3%도 되지 않을 거예요."

프레이도 담담하게 현실을 전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건 둘째치더라도 저 모래 칼날 속을 헤집는다면, 30분도 안 돼 몸이 너덜너덜 해질 게 분명했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었으니까.

"괜찮아. 사실, 저 안에서도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방법이 있다고? 그게 정말이냐?"

"응. 조금 제약이 있긴 한데… 이렇게 된 이상 도전이라도 해봐야지."

진혁이 종유석 끝에 있는 물방울을 모았다.

파츠츠!

룬어로 된 마력을 주입하자 물방울이 청록색 빛을 띠기 시작했다.

"무슨 제약이 있길래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던 거냐?"

"마력이나 내공이 정말 깊어야지만, 효과가 있거든. 나야… 괜찮겠지만, 나머지는 효과가 없을까봐 그게 좀 걱정이 돼서."

"그건… 가만히 넘겨 들을 수 없군."

천유성이 두 눈을 치켜떴다.

"내가 네놈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정말로 그런 뜻인 건가?"

"아니, 내가 널 무시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만에 하나인 경우가 걱정돼서 그런 거라니까?"

"쳇! 그게 날 무시하는 행동이란 말이다!"

천유성이 낚아채듯 물방울을 훔쳤다.

그리고 곧바로 '호신강기'를 발동시켰다.

은은한 빛이 뿜어지며, 천유성의 몸이 완벽하게 강기로 뒤덮였다.

물방울의 효과까지 곁들여지자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갑옷이 만들어졌다.

"똑똑히 보아라. 너보다 내가 먼저 저 폭풍을 돌파할 테니. 뒤처지지 않게 잘 따라오기나 해라."

천유성이 당당히 모래 폭풍 사이로 걸어갔다.

"진혁 씨는 안 가시나요?"

"잠시, 잠시만 기다려 보죠. 일단 조금만 지켜보고요."

테레사가 물었지만, 진혁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신, 신중한 얼굴로 천유성을 관찰했다.

잠시 뒤.

"크아아아! 젠장. 이거 효과가 있는 거 맞는 거냐? 주, 죽을 것…같단 말이다!"

천유성의 비명 소리가 폭풍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흠.

역시 무리였나 보다.

천유성이 고통스러워할 정도면, 이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유석이 필요할 듯싶었다.

"생각해보니 동굴 안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 돼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그쪽이 더 안전하겠네요."

진혁이 재빨리 진로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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