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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49화 (350/653)

349화. 19층의 히든 플레이스 (3)

19층 유적에는 수천 개의 동굴들이 존재한다.

어디가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미로.

때문에 길을 잃었다간 영원히 이 안을 헤매다가 죽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사박.

진혁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스팅…….'

유적 밖에 있던 유아시스의 일족들이 살해당한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나머지 일행들도 그걸 알았기에,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런데.

"잠깐만요!"

정신없이 달리던 진혁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무슨 일인가요?"

유아시스가 두 귀를 쫑긋했다.

"앞에 몬스터들이 있습니다. 군집체…… 수는 약 백 마리 이상이에요."

"마력 기척은 느껴지지 않은데, 몬스터들이 있다고요?"

테레사가 정신을 집중해 주위를 살폈다.

허나, 감각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반 동면 상태여서 마력 탐지에는 잡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면 전부 깨어나서 덤벼들 거예요."

이런 종류의 특징을 지닌 놈들에 대해 알고 있다.

블랙 스콜피온.

5m가 넘는 체구에 속도마저도 빠르다.

거기에 꼬리에 있는 맹독은 '별의 가호'로도 회복하기 힘들 만큼 지독했다.

좀 전에 상대했던 샌드웜과는 차원이 다르게 까다롭다는 뜻이다.

그 숫자가 무려 백여 마리.

만약 돌파한다고 해도 시간이 끌릴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냐?"

"우회……를 해서 가야겠지."

진혁이 힐끗 통로의 옆쪽을 바라봤다.

"설마, 곡괭이로 길이라도 뚫자는 건 아니겠지? 그거야말로 한 세월이 걸릴 거다."

"걱정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진혁이 천천히 벽을 향해 다가갔다.

스슥.

손바닥으로 옆을 훑었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지금 그렇고 있을 때가……!"

"쉿. 기다려 봐. 조금만."

진혁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뒤로 돌아가던 진혁의 발걸음이 다시 한 번 멈췄다.

"찾았어. 바로 여기야."

얼핏 보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법한 평범한 벽이다.

그러나 그건 그림자가 교묘하게 맞물려 생긴 착시 현상일 뿐.

자세히 보면 그 사이에는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 있었다.

"먼저 들어갈 테니 바로 따라와. 나머지 분들도요."

진혁이 틈 사이로 서서히 사라지자, 지켜보던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이런 곳이……."

"저도 이곳에 몇 번이고 왔었지만, 전혀 몰랐어요."

심지어 유아시스마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진혁이 들어간 자리를 바라봤다.

* * *

아까보다 훨씬 더 습해진 내부.

오래 묵은 쾨쾨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능하면 여기는 피하고 싶었는데…….'

이 통로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태양의 사구로 이어지는 통로들 중 가장 위험하고 까다로운 통로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한된 시간 내에 통과하려면 이곳밖엔 없다.

그리고 기왕 이곳에 오기로 한 이상 해야 할 일도 있었다.

[고유 능력 '태초의 불꽃'이 발동됩니다!]

송곳니 끝을 따라 붉은 화염이 솟구쳤다.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며, 주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르륵!

하얀 모래가 깔린 거대한 공간.

묘한 위화감이 전신의 신경을 자극한다.

"여기서부터는 죄다 함정투성이야. 어디서 어떤 게 오는 건지 일일이 설명해 줄 순 있지만, 그랬다간 엄청나게 시간을 잡아먹을 거야."

"결국, 네놈이 가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거군."

"맞아. 다들 신체 능력이 뛰어나니 내가 가는 곳만 잘 밟으면서 따라오면 돼."

"젠장. 어째 네놈이랑 있으면 개고생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유성이 툴툴대며 겉옷에 넣어둔 방어구를 꺼냈다.

툭!

푹!

테레사 역시 착용하고 있는 갑주를 벗었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조금 달라진 복장을 한 세 사람이 자세를 잡았다.

'여긴 오랜만이라 살짝 긴장되긴 하네.'

혹여라도 잘못 길을 접어들어 잠자고 있는 놈을 깨우기라도 했다간, 차라리 블랙 스콜피온 백 마리를 상대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릭을 통해 개인적으로 몇몇 아이템들을 구매해 올 걸 그랬다.

상단주인 릭이라면 경량화 마법과 기척 차단 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 역시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가는 수밖에.'

진혁이 두 다리에 마력을 집중했다.

우우우웅!

'바람의 영역'과 '검마천령보'가 동시에 펼쳐지자…….

팟!

한 줄기 선풍이 모래 위를 가로질렀다.

빠르게.

그러면서 가볍게.

진혁이 과거의 기억을 곱씹으며 모래 위를 질주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진혁이 밟은 길을 정확하게 따라왔다.

그런데.

푸욱!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났다.

마지막에 달리던 유아시스의 발굽이 그만 모래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든 것이다.

콰득!

모래 알갱이들이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쿠쿠쿠쿠쿠쿠!

지면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하얀 알갱이들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동굴 전체가 떠나갈 것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유……아시스 씨?"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거워서. 다이어트라도 했어야 했는데……."

가녀린 사슴이어도 사슴은 사슴.

몸무게가 100kg이 넘는 체구의 특성 상 모래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통로의 주인이 깨어납니다!]

[극심한 레벨 차이로 인해 '공포' 효과가 발동됩니다!]

[모든 플레이어와 거주자들의 레벨이 10 단계씩 하락합니다!]

연거푸 나타나는 붉은 상태창.

모래 속에서 나타난 건 거대하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는 몬스터였다.

동굴 한가운데 우뚝 솟아난 빌딩처럼 15m가 넘는 크기의 곤충이 나타났다.

네임드 가디언 '개미 귀신'.

사구 속에 숨어 먹잇감을 포식하는 함정형 몬스터다.

"위험해. 생존 확률 2% 미만이야."

프레이가 단창을 꺼내 들었다.

"……쳇."

"결국 싸움을 피할 수는 없게 된 건가요."

천유성과 테레사 역시 굳은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개미 귀신이 아래를 내려다 봤다.

가장 먼저 먹어치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선별하기라도 하듯.

그리고 결정이 끝난 순간, 샛노란 눈이 천유성을 향해 고정되었다.

"키에에엑!"

수십 개의 이빨이 벌어지며, 개미 귀신의 입에서 보라색 체액이 뿜어졌다.

먹잇감을 단숨에 즙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산성액.

광범위하게 흩뿌려진 체액이 곧장 천유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빠르다.

치이이익!

체액이 순식간에 모래를 녹여버렸다.

물론.

천유성은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에서 빠져나간 뒤였다.

"쳇! 들개들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들어온 셈이 되었군."

우우우웅!

'검의 노래'를 통해 강화된 검.

푸른색 강기가 화려하게 솟구쳤다.

재빨리 개미 귀신의 몸에 올라탄 천유성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추혼검무가 개미 귀신의 외피 위로 펼쳐졌다.

카카카카카칵!

칼날이 외피를 헤집고 그 속살까지 파헤쳤다.

제아무리 레벨이 높은 몬스터라 해도 맨몸으로 검강을 버텨낼 순 없다.

문제는…….

"헉?"

워낙에 덩치가 큰 탓에, 그 정도 상처로는 치명상이라 말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키에에에!"

개미 귀신이 길게 포효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놀랄 만큼 빠른 속도다.

쿠쿠쿠쿠쿠!

모래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몸통 전체를 이용한 육탄 공격은 가로막는 게 그 무엇이든 분쇄시켜버릴 기세다.

"피해!"

그러나 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돌진하는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었다.

콰콰콰콰콰콰!

개미 귀신이 지나갈 때마다 생겨나는 흔적.

천유성이 모래를 박차고 옆을 향해 도약했다.

"큭!"

자세가 무너졌다.

그 틈을…….

……포식자는 놓치지 않았다.

"키이이에에에!"

또 한 번의 날카로운 포효와 함께. 개미 귀신의 몸이 모래를 갈랐다.

추혼검을 극성까지 펼치더라도 저 공격을 받아낼 수는 없다.

피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바로 그때.

"……저지하겠습니다."

뭐라 말릴 새도 없이 프레이가 앞으로 나섰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던 개미 귀신의 이마가…….

연약한 소녀의 팔에 처음으로 막혔다.

푸른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났다.

꾸구구국…….

두 힘의 균형이 팽팽하게 유지되며, 기괴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현자의 돌로 만든 최강의 전투병기라는 말이 새삼스레 실감됐다.

그러나.

교착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먹잇감들의 계속된 저항에 짜증이 난 개미 귀신이 본격적으로 마력을 해방시킨 것이다.

[개미 귀신이 고유 능력 '개미 지옥'을 발동합니다!]

먹어 치워야 할 사냥감이…… 성가신 '적'으로 격상된 순간이다.

쑤욱하고.

다리가 지면으로 빠져들었다.

개미지옥.

모래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대군형 광역 스킬이다.

모래 속이라면 행동들이 전부 제한될 터.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 움직일 수가 없어요."

"생존 확률…… 0.01% 미만이야."

"젠장, 뭐라도 좀 해 봐라. 사막의 장례식 따위는 사양이란 말이다!"

주르륵.

개미 귀신의 입에서 군침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거대한 몸이 서서히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 * *

'좋아.'

진혁이 허리까지 가라앉는 걸 바라봤다.

사실, 드라이어드인 유아시스가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러 이 루트를 강행한 건…….

놈을 깨우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미지옥'이 발동됨으로써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 더불어 유아시스에게 빚도 하나 지울 수 있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모두가 곤경에 처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습.

큰 눈망울에선 당장이라도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질 것만 같았다.

거기에 프레이의 순간 근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다들 침착하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뭔가 방법이 있는 거냐?"

"응. 해볼 만한 게 있어. 단지……."

말끝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자 뜨거운 주전자라도 잡은 것처럼 천유성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난 안 한다. 절대로."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보나마나 내가 미끼로 움직이는 동안 무언갈 하겠다든가 아니면, 나보고 대신 희생해달라는 것 아니냐? 교묘하게 말로 사람을 구워삶아서 사지로 몰아넣는 게 네놈의 주특기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녀석도 이쯤 되니 자신의 미래가 어떤지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할게. 생존 확률은 0%지만."

프레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는 듯. 무표정한 얼굴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 외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겠지.

하지만 말이다.

"아니."

진혁이 망령목으로 만든 낫을 꺼내들었다.

"미끼가 되는 건 나야."

탈출을 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그걸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지켜보는 눈은 최대한 없는 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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