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얽히고설킨 실타래 (3)
팽팽했던 균형은 진혁의 개입으로 인해 완전히 기울었다.
츳!… 서걱! 푹!
"컥!"
"끄아악!"
진혁은 여포가 자랑하는 특유의 합격진을 철저하게 파훼하며 각각을 고립시켰고. 실력이 떨어지는 부관 순으로 정리해 나갔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정도로 잔혹하게.
그렇게 하나 둘.
수족들이 모두 쓰러지자 결국 여포는 혼자 남게 되었다.
"네가 뒤, 내가 앞이야. 시간은 충분하니까 천천히 틈을 만들면 돼."
"그래. 알고 있다."
진혁과 천유성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마치, 자로 잰 듯한 움직임.
완벽하게 분담된 공수는 여포가 손을 쓸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이 망할 쥐새끼들이…!"
카앙!
방천극이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이렇게 몰린 건, 그 빌어먹을 삼형제와 싸웠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순순히 포기하면 고통 없이 보내줄 수 있어."
발악을 하면 할수록 고통만 길어질 뿐이다.
"인정할 수 없다. 내가… 내가 고작 여기서… 이런 머저리들에게! 천하의 여포가 이런 놈들 따위에게…!"
여포가 최후를 직감한 듯 처절하게 발악했다.
이제는 감정에 휩싸여 창의 궤도마저 단순해졌다.
'슬슬 시작해 볼까.'
카가각!
진혁이 날아오는 창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급격히 꺾인 궤도.
뒤에 있던 천유성이 깜짝 놀랐다.
"아니 잠깐!?"
카앙!
간신히 창을 튕겨냈지만, 서로의 거리가 완전히 어긋났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간격 안으로 갑자기 들어오게 된 것이다.
서로의 틈을 보완해주기로 했는데, 이건 완전히 한쪽을 호랑이 굴에 집어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꼴이 되었다.
천유성은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달았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또 나를 미끼로 쓴 거냐!"
하지만, 욕설을 내뱉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여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네놈 하나는 데리고 가겠다."
우우웅!
[여포가 특수 스킬 '방천난무(方天亂舞)'를 발동합니다!]
적토마 위에서 펼치는 패도적인 초식.
긴 창의 거리를 살린 베기와 찌르기가 동시에 펼쳐졌다.
"비, 빌어먹을!"
……이건, 위험하다.
천유성이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천유성이 추혼검무(追魂劍舞) 제4식 '사하일식(沙煆日蝕)'을 발동합니다!]
카아아앙!
부드러운 사선이 여포의 창을 상쇄시켰다.
한 점에서 만난, 그야말로 완벽하게 동수를 이룬 일격이었다.
……지금이다!
진혁이 천유성이 만들어준 소중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측면에서 파고들어….
푹!
급소를 꿰뚫는다.
심장을 파고든 바너드에서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이… 비…겁한… 쓰레기…가…."
여포가 핏발이 선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양아버지를 배신한 너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이건 칭찬으로 들어야 하나? 그리고 애초에 여럿이서 다구리 치는 건 너희 쪽에서 먼저 시작한 거잖아?"
목숨을 건 전투에 비겁하고 자시고할 건 없다.
애초에 그런 걸 따졌다간 이 탑에서 살아남지 못했으니까.
쿠웅!
여포의 몸이 모로 쓰러졌다.
동시에.
띠링! 띠링!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방천화극'을 획득하셨습니다!]
['적토마'를 획득하셨습니다!]
[중형 거점 '소패성'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셨습니다! - 원하실 경우 거점 변경을 하실 수 있게 됩니다.]
레벨업과 보상을 알리는 수많은 상태창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4레벨이라고? 뭐가 이렇게 많이 올라?'
아무리 영웅 등급의 여포를 잡았다고 해도 비정상적인 경험치다.
150레벨이 넘은 시점에서 레벨업에 필요로 하는 경험치 양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올림포스와 셰리의 개입을 난이도 상향의 요소로 받아들여준 건가?
그렇게 가정한다면 모든 일이 앞뒤가 맞는다.
'고생고생을 했다고 욕을 해댔었는데, 이렇게 보상을 얻고 나니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네.'
방천화극과 적토마를 포함해 소패성의 거점까지 얻었다.
보통 3개 중에 1개만 얻을 수 있다는 걸 고려한다면, 최고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뭐. 보상의 세세한 내용이야 차차 확인하면 될 테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스탯 포인트를 분배하는 일이다.
진혁이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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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레벨: 160
힘 109 민첩 121 체력 73 마력 402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정기 109.91
보유한 스탯 포인트: 12
보유한 코인: 13,683,466
직업: 룬의 지배자
고유 성창: 역천(逆天)의 륜, 페이즈 2
고유 능력: '융합(融合)', '검의 무덤', '별의 가호', '아누비스의 심판', '혈마기(血魔氣)', '만다라(曼茶羅)', '1초 무적', '천독(千毒)', '하얀 맹수', '만상공유(萬祥共有)', '태양의 성역',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 '트리플 매직', '거신의 일격', '화룡의 숨결', '고속검(高速劍)', '툼그레이브의 오른팔', '버서커', '바람의 영역', '음영극살(陰影亟殺)', '태초의 불꽃', '혈폭(血爆)', '검은 눈물', '툼그레이브의 다리', '괴력난신(怪力亂神)', '군단의 핵', '고대 결계', '천마신공(天魔神功)', '멘트라 테이밍', '니힐리즘', '멸천만독(滅天萬毒)', '적토승마(赤兎乘馬)'
스킬: 스킬의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점점 더 추가되는 고유 능력들을 보자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렇게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상층부의 거대 세력들하고도 충분히 싸워볼 만하겠어.'
이제 조만간이다.
지금까지 차근차근 쌓아올린 결과물들이 빛을 발할 순간이.
[마력이 402 → 414로 상승합니다.]
가진 포인트는 전부 마력에 투자했다.
앞으로 더 많은 고유 성창들을 복사할수록, 필요로 하는 마력도 늘어날 것이기에.
"다들 고생했어."
숨을 가다듬는 천유성과 저 멀리서 한 쌍의 붉은 단검을 가지고 오는 엘리스 그리고 무표정하게 전장을 정리하고 있는 프레이까지.
이걸로.
미궁에서의 싸움은 모두 끝났다.
***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쯤 되면 화도 나지 않는군요."
니알라토텝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패성의 한쪽엔 이전에는 없던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졸졸졸….
지면에서 흘러 나오는 황금색 물줄기는 틀림없는 '태양의 샘물'이었다.
물론, 안에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이 사라졌기에, 남아 있는 건 이처럼 찌꺼기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죄송합니다. 그 녀석들이 라그나로크와 손을 잡은 터라…."
셰리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전신을 덜덜 떨었다.
"강진혁이 그쪽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라…. 하필 이 타이밍에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하. 예상을 못 했다. 그래서 태양의 샘물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이런 말이로군요. 진짜 너무 간단한 답변이네요."
니알라토텝이 차게 식은 눈으로 셰리의 품 안쪽을 바라봤다.
"심지어 제가 준 '홍련(紅蓮)'까지 빼앗긴 겁니까?"
레드 드래곤의 송곳니로 만든 걸작.
중급 관리자가 갖기엔 과분한 성유물을 기껏 하사해줬더니. 그걸 날름 상대에게 갖다 바쳤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 공간에서 숨을 내쉬고 있는 것 자체가 역겨울 지경이었으니까.
"잠시… 잠시만요!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놈의 다음 목적이 뭔지 알아냈습니다. 뭘 하려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부요. 그러니 제발…."
"안 됐지만 당신에게 다음은 없습니다. 상급 관리자들도 이미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오는 중이거든요."
"사, 상급 관리자라니! 그, 그건 니알라토텝 님께서 막아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해주셨던 것처럼요."
"가능이야 합니다만, 그렇게까지 해줄 정도로 당신의 가치가 있어 보이질 않는군요. 뭐, 그동안 우릴 위해 일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앞으론 푹 쉬시죠."
니알라토텝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검은 손톱의 끝이 셰리의 이마에 닿았다.
위에서.
츠…걱!
아래로.
손톱이 가볍게 몸을 훑었다.
"싫…어…."
붉은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하여간, 버러지 주제에 바라는 것만 많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니알라토텝의 말에, 옆에 있던 남자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중간 관리자의 대응이 어설펐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강진혁이란 인물이 만만치 않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 처음엔 저희 올드 가드들이 몇이나 상한 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호오. 그대가 그렇게 말할 정도인가요? 올드 가드의 수장이 고작 플레이어 한 명을 상대로?"
슈브니구라스에게도 한 방 먹인 게 바로 진혁이다…라는 말을 차마 니알라토텝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에도 방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자와 토끼라…. 큭큭! 하긴, 그게 적절한 비유겠죠."
니알라토텝이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곧, 특유의 살기어린 냉소를 지은 채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토끼 사냥은 어떻게 시작하실 생각인가요?"
"놈의 다음 행선지를 파악했습니다. 올림포스 측과 연계해 놈이 라그나로크에 태양의 샘물을 넘기기 전 제거하겠습니다."
"이제야 듣기 좋은 말들이 좀 나오네요. 좋습니다. 이번 일은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죠."
이제 머지않아 '아포칼립스' 중 하나가 시작된다.
그때를 위해.
모든 일들은 단 하나의 차질 없이 완벽하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
시련의 탑 1층.
탑의 튜토리얼 지역이자, 수많은 이벤트 장소들이 몰려 있는 이곳은, 탑이 개방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특히 98% 이상의 지역이 플레이어들의 손에 의해 공략되면서 일반인들조차 출입이 허가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여기가 이렇게 북적거리는 걸 보게 되다니…."
진혁이 감회에 젖은 얼굴로 수많은 인파들을 바라봤다.
언제나 유령도시였던 게임과 달리, 지금은 가족, 연인 단위의 관람객들로 인해 이곳이 시련의 탑인지 명동 한복판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재밌게 놀자고 하더니 짐을 고작 이딴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냐? 분위기 있는 것까진 아니어도 레이디에게 외출을 하자고 했으면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늘."
한껏 꾸민 엘리스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의 휴일을 탑 내에서 보내게 된 게 꽤나 불만인 모양이다.
"너무 불평만 하지 마. 다 같이 어울리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으니까. 그보다… 사자 분수상 쯤에서 만나기로 한 거 맞는데. 2시에."
진혁이 두리번거리던 바로 그때.
"진혁 씨! 여기예요!"
저 멀리서 환하게 웃는 금발의 여성이 다가왔다.
테레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툴툴대는 천유성 역시 함께 있었다.
"제가 좀 늦었나요?"
"아니에요. 아직 축제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아 있으니… 딱 맞춰 오신 거예요."
축제 이벤트.
바로 이것 때문에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이들은 1층을 찾았다.
시련의 탑에선 매년 탑이 개방된 날을 기념일로 삼아 축제를 여는데, 이때 제법 쏠쏠한 보상을 가진 이벤트들이 대량으로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그 보상이 꼭 필요한 게 아니라 넘겼었지만, 이번 회차에선 탑을 오르는 데 필요한 각종 물품들이 꽤나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테레사가 두 눈을 반짝이며 카탈로그에 있는 물건들을 살폈다.
"신성력을 올려주는 반지에 목걸이에… 와아. 진짜 통도 크네요."
"B급이긴 해도 나쁘지 않은 무공 비급도 몇 개 보이더군."
"짐은 여기 이 꽃반지가 마음에 드는구나. 여기부터 가자."
심지어 불평만 쏟아내던 천유성과 엘리스마저 혹한 표정을 지었다.
"한 몫 단단하게 챙길 수 있는 기회죠. 그러니 제가 일부러 여러분들을 부른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협동 미션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와 달라 한 거 아니냐? 보니까 4인 이상이 있어야 되는 곳도 있던데."
"넌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사람 섭섭하게."
"됐고. 그래서 어디부터 갈 거냐?"
천유성이 단칼에 본론부터 물었다.
정말이지. 정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놈답다.
역시, 이런 녀석에겐 시작부터 빡센 이벤트를 제공해 줘야지.
"애니멀 파크."
첫 시작은 초대형 동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