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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97화 (398/653)

397화. 1층의 테마 파크 (2)

"이, 이 사람이 할 말 안 할 말이 따로 있지…… 지금 그게 무슨 망발이십니까?"

격한 반응이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저희를 놀리고 싶으신가 보군요."

오지원이 호위 비서를 만류했다.

"짓궂으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왔지만, 이건 좀 가슴 아프네요. 언론이 워낙 저희를 물어뜯는 걸 좋아해서 그렇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담담한 반응에, 오히려 진혁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말았다.

이야. 이걸 참아?

일부러 슬쩍 찔러 봤는데, 도발적인 말투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은 걸 보면 과연 호랑이 밑에서 강아지가 나오지는 않는가 보다.

"바쁘신 분들이 한가하게 관광이나 온 것 같진 않은데…. 뭐, 그건 그렇다치고 저희에겐 무슨 볼일이십니까? 기업하고 엮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별건 아닙니다. 사실, 저희가 이번 이벤트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유명인사가 둘이나 있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지원해 드릴 테니 이번 건 저희에게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찌라시를 통해 듣긴 했는데….

'역시, 기업에서도 탑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가.'

대충 예상이 가긴 한다.

이번 이벤트에 참석한 것도 전부 화려한 데뷔전을 위한 밑밥인 게 틀림없겠지.

"미안하지만, 우리도 여기서 꼭 얻어야 할 게 있거든요. 선의의 경쟁이라면 환영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겠네요."

"흐음. 저도 그렇게 유도리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께서도 저희와 친하게 지내셔서 나쁠 건 없을 텐데요?"

든든한 재벌가와 척을 지는 것보단 연을 만들어두는 게 좋다는 뜻.

오지원이 과시하듯 자신의 양 옆에 도열해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예. 상무님."

"강진혁 플레이어라… 한 번쯤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깔끔한 검은색 고급 정장에 마찬가지로 검은색 가죽 장갑.

단발머리 여자와 긴 생머리의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강하다. 그것도 꽤나.

'호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희 적아 길드의 랭커들입니다. 시련의 탑을 오른 경험은 없지만, 전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인원들을 선별해 특별 훈련을 거쳤죠."

차세대 유망주.

거기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서포팅까지 받은, 그야말로 로열 로더들이다.

여기에 있는 두 명은 그 로열 로더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천재들이겠지.

"그래서."

진혁이 피식 웃었다.

"햇병아리들 데리고 무력시위 하면 제가 어이구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역시 하면서 고개라도 숙여야 하는 건가요?"

"해, 햇병아리?"

"언니. 우리에게 한 말이야 저거?"

발끈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만약, 상대가 진혁만 아니었다면 즉시 칼을 뽑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분노는 강렬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오지원이 나섰다.

"……아무래도 한 배를 타긴 어려울 것 같군요. 하지만, 굳이 다른 길로 가는 배들이 서로 맞부딪칠 필요는 없겠죠."

한국 자동차와 적아 길드의 데뷔 날에 이런 식의 잡음이 일어나서 좋을 건 없다.

더욱이 상대가 영웅이라 칭송받고 있는 진혁이라면 더욱더.

'상대 쪽에서 먼저 시비를 거는 모양새가 되면 모를까. 여기서 더 자극했다간 모양새가 안 좋아지겠지.'

원래 이런 일은 어떤 식으로 보이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오지원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상황을 조금 더 이용해봐야겠군.'

적아 길드의 데뷔전을 장식하는 용도로서 진혁만큼 이슈가 되는 인물은 없다.

상대가 강한 거야 의심할 필요도 없지만, 승패에는 좀 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법이니까.

오지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맴돌았다.

변수.

그걸 창조하는 거야 말로 일상이 암투와 정치인 자신의 특기다.

***

적아 길드와 두 BJ로 인해 이번 회차 이벤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어지간한 길드의 레이드보다도 높은 조회수와 관심.

거기에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참전까지 겹치자 그 화력은 더욱 커졌다.

-자기주도적: 적아 길드 홈페이지 봄?

-미친거야: ㅇㅇ. 와 대놓고 고인물 코퍼레이션 저격했던데? 7개 상위 이벤트랑 마지막 메인 이벤트 자기들이 싹 다 먹을 거라고,

-너구리: ㅋㅋㅋㅋ. 책상머리에서 회의만 하던 놈들이라 그런지 미쳤네. 감히 강진혁한테 덤빌 생각을 하다니.

-회백: 그래도 오지원이 데리고 온 랭커들 장난 아니긴 함.

-혁명: 애초에 머기업이 자본력으로 찍어 누르는 거니까.

-배무혁: 완전히 헌터판 만수르와 맨시티지.

-이운하: 이건 못 참을 것 같긴 함.

-김태양: 아 빨리 메인 이벤트 보고 싶네.

'흐음. 이것들 봐라…?'

채팅창을 바라보던 진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온 이벤트 장소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진다.

평소라면 그저 적당하게 걸어오는 시비라고 웃어넘길 법도 하지만….

글쎄.

이렇게 어그로를 끌었으면, 가만히 있기엔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다.

"모든 보상을 날름하면 너무 도둑놈처럼 보일까 봐 참으려 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왜 날 자꾸 못되게 보이게 만드는 걸까? 하아. 진짜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네 세상이. 그치?"

진혁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쿠쿠쿠쿠쿠쿠!

그곳에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놀이기구. 아니, 고문기구가 있었다.

[이벤트 장소 14구역, 초고속 회전목마에서 오래 버티기]

도전자: 1058명 - 탈락 994명

보상: 머메이드 조개의 진주가루 500g(AA랭크)

무려 시속 750km로 회전하는 지옥의 수레바퀴.

게거품을 문 근육질 말들과 해골로 만든 마차에는 멀미를 유발하게 하는 마법까지 걸려 있었다.

"끄으으…."

"주, 죽여 줘."

당연히 그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역시 제정신일 리 만무했다.

토사물과 눈물이 뒤섞인 회전목마는 그 자체로도 지옥을 연상케 만들었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이런 지옥을 경험한 이가 있었으니까.

"꺄아아아!"

엘리스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처음 브라함의 반지에 갇혀 빙글빙글 돌았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모두가 백기를 드는 와중에도 엘리스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으득."적아 길드에서 온 마법 계열 플레이어도 제법 깡다구 있긴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아무리 그래 봤자 실전으로 단련된 엘리스를 이길 순 없을 테니.'

다른 쪽도 순항 중인 것 같네….'

진혁이 주위를 둘러봤다.

서로 다른 이벤트에 참여 중인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

펀치 게임에서는 유연화가 활약하는 중이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주먹에 온 마력을 쏟아 붓는다.

2차 각성 '화랑(花郞)'으로 전직을 끝마친 유연화는 이미 격투에 관해서만큼은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랭커가 되어 있었다.

화르륵!

주먹이 푸른 불꽃에 휘감겼다.

폭주하는 마력이 일순간에 하나의 점으로 응집되었다.

콰아앙!

펀치 기계가 반쯤 박살나며, 점수가 최고 점수를 가볍게 넘겨버렸다.

-twi: 캬아. 저게 사람 펀치냐?

-MAESTRO: 10톤 트럭이 정면충돌하면 저런 꼴 날 것 같긴 하다. ㅎㄷㄷ.

-조현우: 몬스터들 전부 맨손으로 때려잡는 영상이 괜히 인기가 많겠어?

반대쪽, 나무 조각 높이 쌓기는 이태민이 소환한 드론들의 독무대였다.

우우웅!

[이태민이 Lv16 '융단 건설'을 발동합니다!]

기계의 정교함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고유 능력을 가볍게 웃돌았다.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플레이어들조차 낑낑대는 와중에, 아예 대규모건설 현장을 방불케 하는 드론들의 향연은 감탄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재희: 단일 플레이어로 던전 공략이 가능한 랭커는 진짜 몇 없는데, 그 중 하나가 이태민임.

-종민: ㅇㅈㅇㅈ. 양산형들은 드론들로 상대하고 보스 공략 때는 무슨 건담 같은 거 타고 싸우더만.

-서준사랑: 이번 이벤트 보상들 아주 싹 다 쓸어가 버리네ㅋㅋㅋㅋ.

점점 더 달아오르는 분위기.

피구에서는 '여우구슬'을 다루는 안드리아가 술래잡기에서는 그림자 이동술을 보유한 '월영'이 우위를 점했다.

클레이 사격에서는 프레이가 총을 든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단창을 던져 클레이를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kil: 진짜 압도적이다. 다들 엄청나네.

-다라노: 구미호 상대로 피구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엌ㅋㅋ

-mirra: 프레이는 미래의 아내.

-dark: ?

물론, 몇몇 곳에서는 적아 길드의 랭커들이 보상을 획득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혁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곳에 한해서다.

들어가는 노력은 큰데 리턴은 적은.

한 마디로 영양가 없는 곳들만 말이다.

그런데.

-test: 오오오! 머박 사건!

-천강이: 말도 안 돼.

-셀: 다들 13채널 보셈.

빨리.이벤트장 한 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

"크윽…."

천유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완벽한 패배.

변명 따윈 할 수 없었다.

-캐시: 이거 지금 실화냐?

-Lsymon: 내가 알던 두더지 잡기 게임은 이게 아니었어.

-bky: 보니까. 아예 밥만 먹고 두더지만 잡은 것 같은데?

-이나계: 아무리 그래도 검성 칭호까지 받은 천유성이 지다니.

-기상: 검 대신 망치 들어서 그런듯?

-쌍쌍바밤바: 이번 이벤트에서 S급 보상 2개던데, 그 중 하나는 고.코에서 뺏겼네.

['두더지 잡기'의 최종 승자는 적아 길드의 플레이어 이예지와 김다희입니다.]

뛰어난 동체시력과 빠른 손놀림을 요하는 종목.

거기에 이번 이벤트의 핵심 보상 중 하나인 '한정 강화석'까지.

그러한 조건들 때문에 여기엔 특별히 천유성이 배정되었다.

든든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사용한 것이다.

"버릴 건 버리고 딱 하나만 취해라. 정확히 상무님 말대로 됐네."

"다른 건 몰라도 두더지 잡기엔 당신이 올 줄 알았어."

이예지와 김다희가 생긋 웃었다.

팔다리는 모두 내주더라도 하나만 제대로 공략해 상대가 원하는 것 중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 메인 이벤트의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을 거다.

그 대전제 하에 오지원은 철저하게 얻을 건 얻고 버릴 건 버렸다.

진혁과 멤버들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 각 이벤트의 특성과 접목하고.

어디에 누가 투입될지 사전에 예측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이건 내 실수다."

"괜찮아."

"뭐?"

"네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미안하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애초에 상대가 아예 허수아비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도 않았어."

진혁이 아공간에 있던 홍련을 꺼냈다.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해 홍련을 강화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일 터.

그렇기 위해선 천유성이 뺏긴 강화석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곧 있을 메인 이벤트에선 플레이어들이 각각의 팀을 구성해 서로가 획득한 보상들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약탈전'.

수단 방법 따윈 가리지 않는다.

특정 규칙 하에 그저 서로의 보상을 빼앗을 뿐.

"내 걸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알려줘야지."

예전부터 잔고가 든든한 노예를 한 명 정도 갖고 싶긴 했었다.

싸울 명분이야 이미 충분하고도 남았고.

[약탈전은 오늘 자정 12시에 시작됩니다.]

상태창이 유독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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