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뉴비-398화 (399/653)

398화. 1층의 테마파크 (3)

저녁시간,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메인 이벤트인 약탈전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양갈비를 베이스로 한 바비큐 파티.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래. 이런 게 휴일이지. 짐이 원하는 게 이런 것이었느니라."

엘리스가 두 눈을 반짝였다.

입가에 흥건히 맺힌 침과 꼬르륵거리는 배.

당장이라도 익어가는 고기들을 각종 야채들과 섞어 먹어치우고 싶었다.

"이야."

"오빠. 진짜 제대로 한 상 차렸네?"

"주군. 이걸 정말 주군께서 다 하신 겁니까?"

다른 사람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모처럼 솜씨 좀 부려봤어. 다들 좋아하니 다행이네."

진혁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

'이세계 식당'으로 단련된 솜씨는 이미 몬스터들에게 조차도 호평을 받는 중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한 요리사들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거다.

'이런 보조 스킬들도 틈틈이 올려둔다면 앞으로도 크게 도움이 되겠지.'

상층부.

특히, 환수와 정령수들이 주로 등장하는 층계에 갈수록 '이세계 식당'은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바로 그때.

"우욱! 주인. 우리는 왜 이런 걸 주는 거야?"

"달그락! 마스터. 나는 좀 더 칼슘이 풍부한 우유가 필요하다."

"고귀한 종족이자 사신수인 이 몸에게 이런 천박한 음식은 어울리지 않는군. 적어도 한 달 정도 고아낸 마력즙은 넣어 와야 먹을 수 있다."

운디네와 티본, 말랑흑두루미가 각자의 접시에 놓인 음식물들을 보며 불평을 늘어놨다.

검은색 액체가 섞인 큼직한 물방울과 여기저기 금이 간 갈비뼈.

싸구려 유리로 만들어진 여의주까지.

한 눈에 봐도 실패한 음식들이다,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다 몸에 좋은 것들이야."

"너무하네 주인. 우리도 맛있고 좋은 걸 먹을 권리라는 게 있다."

"달그락!"

"어이가 없군."

흠…. 다들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다.

그래. 맞는 말이지.

의식주는 삶의 질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거니까.

이렇게 내버려두다간 불만이 쌓일 우려가 있었다.

그렇다면….

진혁이 근사하게 생긴 마정석에 황금색 소스를 부었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

"모오오기."

고구마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래 우리 구마. 이거 맛있겠지?"

"모기!"

"맞아. 진짜 정성을 다해 만든 거야."

"모기모기."

고구마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걸 보고 맛없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파렴치한 놈들이 있어. 공짜로 얻어먹는 주제에 바라는 것만 많은 괘씸한 종자들이 말이야."

"모기이이이!"

격렬한 분노.

이글거리는 화염이 캠프장 주위를 집어삼켰다.

"히이익!"

"고, 고대종한테 이르면 어떡하자는 겁니까?"

"크흠! 사실 생각해보니 싸구려 여의주도 맛있을 것 같긴 하다. 요즘 내가 불량식품을 좋아해서."

순식간에 불평이 사라졌다.

모두가 허겁지겁 각자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

역시, 이래서 가장 위만 잘 포섭해두면 조직 전체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법이다.

***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야영하고 있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장소.

고급 펜션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저택엔 오지원과 적아 길드가 자리 잡았다.

"강화석이라…."

"이걸 그렇게 얻고 싶어 한 거야? 뭐, 좋긴 한데… 아주 특별할 건 없잖아?"

이예지와 김다희가 두더지 잡기에서 얻은 강화석을 살폈다.

이벤트용 강화석은 일반 강화석보다 확률을 조금 더 올려줄 뿐.

기를 써서 얻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온갖 재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적아 길드의 입장에서는.

"그거야 평범한 강화석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겠지. 입수 난이도만 봐도 이 강화석은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뭔가 더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차가운 외모의 남자가 대신 입을 열었다.

김형진.

적아 길드의 부마스터로. 개인의 실력만 본다면 여느 대형 길드의 마스터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김 실장님은 별 걱정만 많다니까. 천유성인지 뭔지 하는 놈 우리 둘이서 이긴 거 못 봤어요?"

"맞아. 상대해 보니 별것도 아니더만. 고인물 코퍼레이션인지 뭔지 그거 과장된 거라니까? 그 왜. 있잖아? 소문이라는 게 시기만 적절하게 타면 터무니없이 부풀려지는 거?"

이예지와 김다희가 시시덕댔다.

하지만, 김형진은 두 사람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소문은 결코 부풀려진 게 아니다.

오히려 사실보다 축소된 거겠지.

그걸 알고 있기에, 이번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상대는 강진혁이 있는 초대형 길드입니다."

두더지 잡기에서야 룰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천유성을 이길 수 있었지만….

약탈전은 전혀 다르다.

각 길드 간에 전면전이 가능한 이상 그야말로 고인물 코퍼레이션 전체와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겠지. 놈들이 얼마나 괴물인지는 나도 여러 루트를 통해 들어왔다."

오지원이 발렌타인 30년을 한 모금 머금었다.

"허면, 필요도 없는 강화석은 넘겨버리고.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미 사람들에게 저희 이름은 충분히 알렸는데 괜히 이 이상 무리를 했다간…."

"그러니까. 김 실장 말은 놈들이랑 싸우면 내가 박살이 날 거다. 이런 말인가?"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인 게 아니야.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번 이벤트 내에서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오지원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번 이벤트에서는 플레이어들 간의 전투 외에도 한 가지 변수가 개입된다.

완전히 판을 뒤엎을 수 있는 최강의 변수가.

"그보다, 매수하라고 한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됐지?"

"일단 시키신 대로 최대한 약을 쳤습니다만, 아무래도 돈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쓸 만한 놈들은 아무리 돈을 퍼부어봤자 움직이지 않겠지. 어차피 머릿수만 채우면 돼."

이걸로 준비는 전부 끝났다.

"똑똑히 지켜봐라. 마지막에 웃는 게 누가 되는지."

데뷔전은 완벽할 거다.

항상 자신만만하게 날뛰던 건방진 놈은 나무에서 떨어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도 나를 인정해주시겠지.'

한국 자동차의 뒤를 이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이번 적아 길드만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말이다.

***

[자정이 되었습니다.]

[메인 이벤트 '약탈전'이 시작됩니다.]

[현재까지 획득한 보상을 본인이 원하는 특정 장소에 놓아두십시오. 이후, 공격팀과 수비팀을 설정해 상대가 가진 보상을 뺏고 자신이 가진 보상은 지키면 됩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코인을 사용해 공격과 방어에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스킬들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고유 능력과 스킬은 이번 이벤트에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스탯 또한 평균 10레벨로 초기화 됩니다.]

[이번 이벤트에서 입은 피해는 실제 피해로 이어지지 않으며, 사망에 이르는 데미지를 입을 경우 그대로 '탈락' 처리됩니다.]

상태창들이 어지럽게 나타났다.

동시에.

퍼퍼펑!

퍼엉!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았다.

드디어 이번 이벤트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할 거냐?"

천유성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본인이 한 실책으로 인해 일이 커진 만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아마, 놈들도 우리가 가진 걸 노리고 이쪽으로 올 거야. 넌 여기 남아서 우리 보상을 지켜."

"뭐? 나보고 수비나 하란 말이냐?"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수비도 중요한 거 알잖아.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을 거야. 놈들이 가진 자본력이면 공격 카드나 수비 카드를 빵빵하게 준비해올 거거든."

정상적인 전투라면 아예 게임이 되지 않는 전력 차.

하지만, 그걸 메울 수 있게 만드는 게 바로 약탈전에 존재하는 '스킬'이다.

코인을 들이부을수록 유리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번 이벤트는 기본적으로 적아 길드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비공식적이긴 해도 코인 공장을 운영한다는 말이 돌고 있으니까.'

그걸 고려한다면 마냥 우습게 볼 수만은 없을 거다.

'일단 우리 쪽도 방비를 해야 하긴 할 텐데….'

누구와는 달리 코인을 그렇게 무지성으로 낭비할 수만도 없는 노릇.

최대한 가성비 좋게 효율을 뽑아내야 한다.

띠링!

진혁이 스킬 상점을 오픈했다.

[방어 스킬을 열람합니다.]

[카테고리 163개]

기본적인 것부터 다양한 신화에 속한 영역까지.

그 종류만 해도 수만 가지에 이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벤트에 사용하는 것치곤 바가지에 가까운 금액들로 책정된 스킬들이었다.

'이 중에서 제일 쓸 만한 게….'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분명, 이 이벤트에서 기억에 남는 스킬들이 몇 종류가 있다.

……찾았다.

[망부석의 저주 - B급(350,000코인)]

이게 답이다.

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30cm 크기의 조각상이 나타났다.

"이걸 가지고 정면에서 적을 막아. 태민이랑 연화가 같이 있어줄 거야. 안드리아랑 프레이는 오른쪽을 맡아주고. 테레사 씨는 왼쪽에서 오는 길에 매복해 주세요. 월영은 계속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힘들어 보이는 곳을 지원해 주면 돼."

"나는?"

엘리스가 의욕 있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는 뒤에서 그냥 쉬고 있어."

"뭐, 뭐? 왜 나만 쉬고 있으라는 건데! 내가 최강 전력 아니야?"

기본 패시브 능력인 '진조의 피'와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가 없는 엘리스는…. 최약체 그 자체다.

햇빛이 들지 않는 회랑에서 그 오랜 세월을 골골대며 복수나 꿈꿔왔을 텐데, 기본적인 체력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괜히 까불었다 얻어맞고 울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음. 최강…이라서 너무 게임이 재미없어질까 봐 빠져 있으라는 거야. 알잖아. 고렙들이 쪼렙들 노는 데 끼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야?"

"응, 그 이유 때문이야."

"그러면서 왜 시선을 피하는 건데?"

"어떻게 위대한 아타락시아의 가주님과 정면으로 마주봐? 당연히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지."

"아니, 나 진짜 세다니까? 믿어봐 진짜로. 계약자.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응? 뱀파이어가 말 하면 듣는 척이라도 좀 해 봐."

엘리스가 무어라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진혁은 구매한 공격 스킬들을 챙겨 상대 진형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상대의 방어가 탄탄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먼저 갈게."

탓.

진혁이 빠르게 움직였다.

'검마천령보'를 사용할 순 없었으나, 애초에 기본적으로 쌓아온 신체 스펙 덕에 매우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

순식간에 바뀌는 풍경.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적아 길드는 '펜션'과 '서커스' 이벤트 장소 인근에 자리를 틀었다.

가격이 비싼 대신 방어와 공격에 가장 유리한 장소를 고른 것이다.

'이쯤에서부턴 슬슬 대기하고 있을 텐데….'

바로 그때.

콰콰콰콰!

"……!"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날아왔다.

이글거리는 화산탄이 바로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100만 코인이 훌쩍 넘는 공격 스킬 카드 '대분화'다.

"무식하게 비싼 것도 사놨네."

이 상태에서 저런 걸 한 방이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게임 오버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