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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399화 (400/653)

399화. 1층의 테마파크 (4)

……빠르다.

하지만.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진혁이 좌우로 간격을 조절하며, 날아오는 화산탄들을 피했다.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으로.

'역시 예상했던 대로야.'

몸 상태를 확인한 진혁이 생긋 웃었다.

다른 스탯들은 전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로 인해 받은 적응형 스탯만큼은 제대로 작동했다.

탑 등반과 관련된 능력 봉인이라면 몰라도, 이벤트 상황에서는 특전까지 막아두진 않은 것이다.

그래. 이런 맛이 있어야 탑을 한 번 정복한 의미가 있지.

"큭!"

"뭐 저리 날쎈 거냐?"

"할 수 없어. 그냥 계획대로 다 같이 덮쳐!"

화산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번엔 회전목마와 놀이기구 사이에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스릉!

날카로운 검이 예기를 발했다.

데미지를 입히면 그대로 탈락시킬 수 있는 특징.

죽음이라는 공포가 사라진 이상,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혁에게 덤벼들었다.

'좋아. 어디, 새로 얻은 무기가 얼마나 쓸 만한지 시험해볼까.'

진혁이 양손에 홍련과 바너드를 쥐었다.

서로 다른 빛이 칼날을 따라 뿜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화르륵!

검로를 따라 눈부신 불꽃이 흐드러졌다.

아름답다.

공기 중에 고착화된 열기는 검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커억?"

"무슨… 놈의 칼질이…?"

물론, 그 길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의 몸은 불꽃에 삼켜져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애용할 만하네. 바너드도 사기였지만,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야.'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다.

홍련(紅孌)

입수 난이도: SSS

공격력: 92,500

내구도: 320,000 / 353,000

내용: 레드 드래곤의 이빨로 만든 단검으로 매우 가볍고 단단합니다. 화속성 효과로 인해 공격 적중 시 화염 데미지 +5,000이 추가됩니다.

특수 능력: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볍고 무게중심도 잘 잡혔을 뿐더러 공격력과 특수 능력까지 사기적이다.

이건 마음에 들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진혁이 부드럽게 홍련을 회전했다.

"젠장…."

"강한 건 알았지만, 아예 손도 못 댈 정도라니."

"목에 걸린 상금이 빌딩 한 채였는데, 아쉽게 됐어."

"그래도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탈락당한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물론, 패배자의 구차한 넋두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19명이 탈락해 외부로 강제 이동됩니다.]

"오지원은 서커스 존에 있어?"

진혁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에게 물었다.

팔이 날아간 남자는 저항할 모든 수단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래. 하지만, 당신이 오 상무한테 갈 때쯤엔 모든 게 끝나 있을 거다."

"끝날 거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나 보군."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오 상무를 제외한 적아 길드 전체가 너희 본진을 노리고 떠났거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킬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스킬을 갖고서 말이야."

"어이가 없네. 그럼, 너희 쪽엔 오지원 한 명만 남아 있다는 거냐?"

"재밌지 않나? 누가 누구의 목을 먼저 따는지? 화끈하게 벌이는 마지막 피날레. 일종의 타임어택인 셈이지."

재밌긴 개뿔.

다른 건 몰라도 오지원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다.

'혼자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 쪽 본진을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느 쪽이든 계산을 완전히 잘못하고 있는 거다.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서걱!

단칼에 눈앞에 있는 남자를 베어버린 진혁이 재차 속도를 올렸다.

***

콰콰콰콰콰!

각종 스킬들이 유원지를 휩쓸었다.

폭발로 인해 일어난 얼음 가루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괴… 괴물이다."

"저거 능력 봉인된 거 맞아? 왜 맨 몸으로 스킬을 죄다 두드려 맞고도 멀쩡한 건데?"

"막아. 당장 막으라고!"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앞에서 줄기줄기 피어오르는 살기.

천유성이 긴 장검을 붙잡은 채 앞으로 걸어왔다.

"네놈들 때문에 내가 그 망할 고인물 자식에게 빚을 졌다. 차라리 원망이나 해댔으면 기분이 이렇게까지 찝찝하진 않았을 걸…. 빌어먹을 모두 너희들 탓이다."

압도적인 무력.

자신 있게 나섰던 이예지와 김다희 역시 그 기세에 완전히 눌려버렸다.

"두더지 잡기와는 완전히 딴판이네…."

"정면승부는 하지 말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룰의 허점을 이용해 이기는 것과 순수하게 전투를 벌이는 건 천지차이다.

아무리 많은 플레이어와 강력한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만만치 않다.

천유성은 그 모든 걸 메울 정도로 강했으니까.

탓.

"크악!"

검이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탈락 당했다.

중앙으로 온 플레이어들은 총 150명이 넘었지만, 그 중에서 50명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차라리 나머지 두 명 먼저 처리하자. 서포팅을 하는 게 더 성가셔."

이예지가 유연화와 이태민을 바라봤다.

천유성이 이토록 날뛸 수 있는 건 저 두 사람이 철저하게 보조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태민이야 기계 군주 능력이 봉인됐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유연화 쟤는 가만히 냅두면 안 되긴 하지."

무슨 인간 탱크도 아니고.

자기보다 훨씬 더 큰 남자들을 맨 주먹으로 두드려 패는 게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거기에 체력은 어찌나 좋은지.

혼자서 열댓 명을 작살내버리고도 힘이 남아돈다.

"좋아. 그렇게 하자. 자기 편이 당하면 저 얼음장 같은 녀석에게도 틈이 생기겠지."

"희생은 좀 크겠지만, 길드원들에게 잠깐 맡겨두자고."

두 사람이 즉각 움직였다.

"……!"

"누나!"

순식간에 다가온 이예지와 김다희가 검을 휘둘렀다.

암살자를 떠올릴 정도로 빠르고 매서운 기습이었다.

콰앙!

"아악!"

이태민의 몸이 몇 미터 가량 솟구쳤다.

"태민아!"

"지금 한 눈 팔 여유가 있어?"

"……이 망할 자식들이!"

유연화가 양 주먹으로 턱을 가린 채 스텝을 밟았다.

부웅!

건틀릿을 낀 주먹이 이예지의 안면을 노렸다.

하지만, 이예지는 어깨의 움직임만 보고 그 공격을 흘려냈다.

검이 복부를 노렸다.

이번엔 유연화가 팔꿈치를 내리쳐 검의 궤도를 틀었다.

숨 한 번 고를 사이에 다섯 합이 넘는 공방전이 오고갔다.

"……."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천유성이 즉각 유연화와 이태민 쪽에 가세하려 했다.

바로 그때.

"네 상대는 나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김형진이 움직였다.

자로 잰 듯, 날카로운 검격.

바스타드 소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게감은 결코 만만하게 넘길 수 없었다.

등을 보였다간 그대로 당할 정도다.

"그 유명한 검귀를 직접 상대하게 되어 영광이군. 적아 길드의 김형진이라고 한다."

"비켜라."

"그럴 순 없지. 우리도 명령받은 게 있거든."

"그럼, 베어버리겠다."

카앙! 콰앙!

천유성이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력이 없어도 '추혼검'의 초식은 묘리가 사라진 건 아닐 터.

수없이 단련된 경험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김형진 역시 무시무시한 기세로 천유성의 검격을 받아쳤다.

기교와 속도에서는 조금 밀렸지만, 힘에서만큼은 오히려 천유성을 웃돌고 있었다.

'단기간에 뚫기는 무리다.'

천유성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필이면 가장 긴박한 순간, 이런 강적을 만나다니.

자칫하다간 또 다시 맡은 임무에 실패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또 다시 그 녀석의 능글맞은 미소를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젠장."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기에 최후의 최후까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보다는 결과를 만드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방어 스킬 '망부석의 저주'를 발동합니다!]

[불리한 상황을 오래 끌수록 망부석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최대 판정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광역 군중제어기의 효과로 인해 현재 이 지역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10분간 움직임이 제약됩니다.]

우우웅!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소금 결정화.

적, 아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소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일종의 시간 끌기용 스킬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천유성에게 있어 이 방법이 유일하게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뭐, 뭐야 이건?"

"몸이… 변하고 있어?"

당황스러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10분…. 안에 끝내라.'

천유성이 진혁이 달려갔던 방향을 향해 중얼거렸다.

***

저벅.

진혁이 하늘까지 닿을 듯 높게 쳐져 있는 텐트 앞에 도착했다.

이곳이 적아 길드가 있는 본진이다.

일전에 만났던 남자가 말했던 대로, 텐트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하나뿐이었다.

'유성이가 망부석을 사용했으니, 남은 시간은 10분 정도겠군.'

빨리 끝내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유롭게 웃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오지원.

이번에 제대로 엮이게 된 한국 자동차 오강원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생각보다 더 빨리 왔군요. 스킬에 쓴 코인만 2000만은 될 텐데, 그걸 다 막아낸 겁니까?"

"뭐, 조금 성가시긴 했지. 그런데 쓸 코인 있으면 차라리 나한테 주지 그래?"

"후후. 만약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저희 쪽으로 들어온다면 그 이상의 코인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나도 비슷한 제안을 좀 하려고 했는데…. 우리 밑으로 들어오면, 적아 길드를 3배는 더 크게 만들어줄게."

"……저보고. 당신 밑으로 들어가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응."

"하하. 어이가 없군요.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당신은 일개 개인입니다. 대체 기업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글쎄. 내 생각엔 강함을 측정하는 데 있어 덩치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 잘나신 분이 나한테 긴장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그냥 강한 놈이 강한 거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군요. 뭐, 좋습니다. 벌주를 마시고 싶다는데 사양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진혁이 타협의 의사를 보이지 않자, 오지원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일그러진 공간 너머로 뱀의 허물이 나타났다.

저건…?

"제가 왜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줄 아십니까?"

서커스.

이벤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자유'가 허락된 곳이다.

그리고 유희의 특성상 특별히 한 가지 조건이 더 해금됐는데….

바로, 소유하고 있는 성유물이나 기타 방법을 통해 신격을 제약 없이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똑똑히 보십쇼. 아무리 당신이 대단하다 해도 한낱 인간. 그 격의 차이가 뭔지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뱀의 껍질로부터 기묘한 마력이 솟구쳤다.

우우우웅!

[신격 '여덟 개의 주인'이 나타납니다!]

천막을 가득 채운 건 거대한 뱀이었다.

8개의 머리와 8개의 꼬리를 가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야마타노 오로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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