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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09화 (410/653)

409화.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규칙 (1)

"이대로 가면 다 죽어! 흩어져서… 어?"

다급하게 외치던 파라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툭!

잡혀갔던 엘프 둘이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떨어진 것이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찰나.

단창에 바람구멍이 난 점핑 스파이더의 사체가 지면에 추락했다.

콰앙!

"둘 다 숨은 붙어 있어."

프레이가 창에 묻은 체액을 가볍게 털어냈다.

프레이가 창에 묻은 체액을 가볍게 털어냈다.

좋아.

이걸로 희생자가 생기는 건 막았고 다음은….

반대쪽에선 오러 블레이드를 발동한 티본이 탈마이트를 도끼 채 베어버리고 있었다.

"지옥 마수들 따위가 감히 위대한 해골인 이 몸에게 덤비다니 가소롭군. 달그락."

두두두두!

덩치는 몇 배나 차이가 났지만, 유령군마를 탄 티본은 종횡무진 적들 사이를 누볐다.

"그오오오!"

"오오오!"

검게 물든 오러에 닿는 순간, 탈마이트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마, 말도 안 되게 강하다."

"이게 언데드 몬스터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세상에나…."

전투를 구경하던 엘프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실력.

티본과 프레이는 다수의 상위 마수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뽐내고 있었다.

이런 흐름이라면 상대의 수가 얼마든지 간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저 강진혁이란 인간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어.'

파라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해골 데스 나이트와 푸른 머리 소녀는 진혁에게 그야말로 깍듯이 대했다.

충실한 병사,

아니, 그보다는 말 한 마디에 움직이는 장기말에 가까웠다.

위아래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체 저 인간은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모르긴 몰라도 인지를 아득히 넘어선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파라곤의 피부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처음 진혁을 따르라는 명령이 내려왔을 땐 "미친 짓입니다."란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소수의 인원으로 신전 안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땐 '자살행위'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하지만.

'가능해.'

이제는 다르다.

정말로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수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그동안 포로로 잡힌 수많은 엘프들을 구해내는 일이.

쿠웅!

마지막 마수가 쓰러졌다.

"집들이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진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본격적으로 군타페르의 수족들을 제거할 시간이다.

* * *

신전의 최심부.

역십자 제단이 위치한 곳에선 엄청난 규모의 마수들이 모여 있었다.

신전 초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상위 종들로만 말이다.

"놈들의 현 상황은 어떻지?"

옥좌에 앉아 있던 레미아가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다수의 엘프들을 이용해 정면을 흔들고 강진혁과 소수 정예들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신경 써서 너무 약하지도 너무 강하지도 않은 마수들을 배치를 해뒀으니, 사지로 들어왔다는 건 절대로 모를 겁니다."

모드레드가 즉각 대답했다.

레미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곧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움직이겠구나."

"예. 모두 저 혼자 살겠다는 박쥐 덕분이죠.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 멜레나? 그래도 너 같은 걸 동료라고 받아준 놈을 배신했는데?"

모드레드의 말에, 멜레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거야.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크하하! 그래, 맞다. 함께한 동료라도 언제든지 등에 칼을 꽂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 그게 바로 너지."

거짓 정보를 넘김으로써, 흑마석이 있는 곳으로 진혁을 유도했다.

칠죄종 중 하나인 '탐식'이 흑마석을 지키고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더 많은 전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진혁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러나….

탐식은 물론, 그곳엔 어떠한 마수들도 있지 않다.

전원이 이 제단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최우선 목표는 진혁을 제거하고 게이트의 활성화를 막는 것.

흑마석이 아깝긴 했지만, 골칫거리를 제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마음에 들지 않아. 고작 인간 하나 죽이려고 이렇게 공을 들이다니."

레미아의 옆에 있던 거구의 마수가 으르렁댔다.

칠죄종 '탐식'.

닥치는 대로 적을 포식하며 그 마력과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괴물이다.

기형적으로 커다란 2중 턱과 날카로운 가시들이 잔뜩 돋아난 모습은, 그 어떤 마수들보다 기이하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너무 우습게 보지 마. 당신과 같은 칠죄종인 나태도 저놈에게 당했으니까."

"그 게을러터진 놈과 나를 같이 수준으로 비교하는 건가?"

탐식의 동공이 가늘게 찢어졌다.

"물론, 그건 아니야. 상층부에서 쫓겨난 머저리와 당신은 아예 차원이 다르니까. 난 그저 모든 변수를 차단하려는 것뿐이야. 당신도 알잖아? 군타페르께서 특별히 이번 일을 완수하라 명하신 거?"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격한 반응이 조금 누그러졌다.

군타페르란 이름이 거론된 이상 아무리 탐식이라도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만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면 그분께서도 확실하게 보상할 거야. 너와 나 모두에게 말이지."

"……."

"그러니 자존심 상해도 조금 참아. 절대 당신의 힘을 과소평가해서 이런 작전을 짠 게 아니니까."

"빌어먹을. 대신, 엘프 포로 100마리는 나에게 넘겨라. 모처럼 이곳까지 왔으니 적어도 엘프 고기 맛은 봐야겠다."

"후후. 그거야 얼마든지 제공해주지."

바로 그때.

콰아앙!

신전의 정문 입구가 박살났다.

석문이 격파됨에 따라 자욱한 가루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드디어 왔구나."

레미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과연, 이 안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얼마나 절망감에 빠질지.

그걸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

무언가 이상하다.

뿌연 연기 속에서 다가오는 건 한 명이 아니었다.

"이야, 여기가 그 유명한 마인들이 마왕과 소통을 하던 제단이라는 건가? 정말 쓸데없이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놨네."

진혁과 티본 그리고 프레이. 심지어 하이엘프들까지.

신전 안에 들어왔던 인원 전원이 이곳에 도착했다.

"어떻게…? 분명, 흑마석 쪽으로 힘을 실었어야 할 텐데…?"

레미아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갔기에,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게 당연했기에.

이 모든 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말해라! 어째서 이곳으로 온 거냐!"

"함정인 줄 알았어."

-호수에 있을 때 당신이 끓여줬던 차… 꼭 다시 먹고 싶네. 정말 취향에 맞았거든

그때 끓여준 차는 적당히 주위에 난 잡초를 뽑아 우려낸 거다.

주주총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 차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멜레나는 아주 질색을 하며 온갖 불평이란 불평은 다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차를 다시 마시고 싶다는 건….

알려준 거다.

이 통화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지금 알려주는 내용과는 정반대의 계획을 짜라는.

"애초에 성질 급한 마족들이 전투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는 것도 말이 되질 않았고."

"빌어먹을 멜레나. 이 찢어 죽일 년이 또 다시 나를 속여!?"

격노한 모드레드가 검을 휘두르려 했다.

카앙!

"큭!"

적색 섬광이 모드레드의 검을 튕겨냈다.

진혁이 어금니를 집어넣고 대신 바너드와 홍련을 꺼냈다.

"우리 회사가 악질이니 뭐니 말이 많긴 해."뭐, 틀린 말은 아니지.부려먹고 괴롭히고 착취하고….이곳은 악덕 기업 중에 악덕 기업이다. 그 누구도 자진해서 들어오려고는 하지 않는.하지만."다른 건 몰라도 사원의 안전 하나만큼은 반드시 보장해."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사원을 건드릴 순 없다.

설령 그 대상이 탑의 상층부를 부유하는 상위 신격이라 해도.

쿠쿠쿠쿠!

진혁의 몸을 따라 유형화된 마력이 피어올랐다.

장난기 따위라곤 조금도 없는 음성.

지독한 살기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흉흉함을 자아냈다.

"프레이."

"응."

"멜레나를 구출해 줘."

"명령… 접수했어."

프레이가 한 쌍의 단창을 바람개비처럼 돌렸다.

"티본은 엘프들을 이끌고 역십자 제단으로 가는 길을 확보해주고."

"달그락. 알겠다, 마스터는?"

"나는 적의 머리를 칠 거야."

레미아, 이번 싸움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저 서큐버스를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 * *

우우우웅!

각종 정령 마법들이 하이엘프들의 손끝을 따라 발현됐다.

"인간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서포트 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물과 얼음, 그리고 불과 바람이 정면을 휩쓸었다.

귀족급에 해당하는 정예들답게 그 위력 또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시작이다.

콰앙!

진혁이 단숨에 적진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고유 능력 '멘트라 테이밍'이 발동됩니다!]

정신계열 능력인 멘트라 테이밍.

상위 종에겐 잘 통하진 않았지만, 잠시 집중력을 흔들 수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

"크오오오!"

몇몇 마수들이 혼란을 일으켜 멈칫하거나 주위 동료를 공격했다.

그 틈을 이용해 진혁이 더더욱 앞쪽으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앙!

하이엘프들의 지원과 측면에서 활약하는 티본과 프레이 덕분에 포위가 되는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오롯이 정면의 적들만 신경 쓰며 전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화르륵!

오른손의 홍련에는 '태초의 불꽃'이 그리고 왼손의 바너드에는 '별의 가호'가 깃들었다.

불과 신성력. 모두 마계의 마수들에게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능력이었다.

거기에.

'추혼검무'의 초식이 펼쳐지자 막을 수 없는 검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서걱!

"키에에에!"

닿는 족족 잘려나간다.

가속도가 실린 데다, 예지에 가까운 몸놀림은 손을 델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카아앙!

수십의 적을 베어버린 검이 처음으로 가로막혔다.

"크흐흐! 드디어 네 녀석과 맞붙어 볼 수 있게 되었군. 이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모드레드와 트리스탄.

살아남은 원탁의 기사들이다.

그그그극!

홍련과 바너드에 전해지는 압박감이 제법 묵직했다.

레미아에게 '서큐버스의 타액'까지 주입 받았는지,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속도 또한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런데.

부웅… 콰앙!

모드레드가 다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진혁이 공격한 것이 아니다.

바로 옆에 있던 트리스탄이 창을 휘두른 것이다.

"트리스탄!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쳇. 그걸 막다니…."

"설마, 너도 저 놈에게 붙어먹은 배신자였다고? 이… 이 망할 것들이 아주 쌍으로 날 물먹여?"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모드레드가 이성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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