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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35화 (436/653)

435화. 각자가 휴가를 보내는 방법 (2)

"호오. 내기라고요?"

진혁의 입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맺혔다.

"별건 아니고.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단합과 휴가의 재미를 위해 제가 제공해드리는 이벤트라고 생각해 주십쇼. 아! 물론, 지거나 해도 페널티 따윈 없습니다. 그저 순수히 이 팀의 미래를 보고 싶은 늙은이의 욕심……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흐음…….

저렇게 말하니 더 의심스럽긴 하다.

저 능구렁이 같은 상단의 대주인이 남 좋자고 이런 일을 벌일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뭐가 됐든 조건을 들어보고 나서 결정해도 된다.

"그건…… 좀 재밌겠네요. 땀을 흘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걸린다면요."

"후후. 아무렴, 제가 내기의 흥이 떨어지게 하겠습니까?"

릭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띠링!

['릭 헤네시'의 특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내용: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팀을 나눠 대항전을 하여 최종 승리한 팀에게 '선장의 모자'(1일), '브루힐 사막의 소금'(1병)을 보상으로 드립니다.

[선장의 모자]

입수 난이도: 관리자 전용

내용: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 모자를 쓴 자는 나머지 동료들에 대한 절대 명령권을 획득합니다. 단, 여럿이 모자의 소유권을 공유하게 될 경우 명령의 절대성은 약화될 수 있습니다.

[브루힐 사막의 소금]

입수 난이도: 관리자 전용

내용: 요리를 할 때 이 소금을 첨가할 경우 최악의 식재료마저 최상의 음식으로 탈바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상급 관리자 '쿤달라'가 독점한 최상급 조미료이기 때문에 심지어 신격들조차 이 소금을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거…… 꽤나 재미진 게 튀어나왔다.

선장의 모자야 관심 밖이었지만, '브루힐 사막의 소금'은 미식가인 진혁으로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미끼였다.

어지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쿤달라는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계속해서 이동하는 녀석의 개인 영지는 탑에 어디 있는지 위치마저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탑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들을 다 먹어봤지만…….

손에 넣지 못한 극소수의 재료 중 하나가 바로 저 소금이었다.

"이 정도면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마음을 조금은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사로잡을 수 있느냐고?

레인보우 슈림프에 저걸 뿌려먹으면 대체 얼마나 맛이 있을지…….

꿀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목에 군침이 넘어갔다.

"하겠습니다."

고민 따윈 없었다.

진혁이 릭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 * *

평화로웠던 휴가에 커다란 변수가 생겼다.

릭이 제안한 조건이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던 탓이다.

[팀원 선택 시간은 30분입니다.]

[승부의 핵심이 될 30분이니 각자가 신중하게 양 팀의 선장을 선택해 주십시오.]

[남은 시간: 0h: 29m: 59s]

타이머가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말없이 머리를 굴렸다.

-선장의 모자만 있으면 저 빌어먹을 고인물이 내 밑에서 설설 기게 될 거라 이건가?

천유성이 의학서적을 모래사장 저 너머로 던져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뼈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각 염증에 어떤 항생제가 적절한지 공부하는 게 아니다.

갈비뼈를 통째로 내주든, 염증에 걸려 죽든, 그보다 저 모자를 손에 넣는 게 우선이다.

-계약자를 구속하고 계약자랑 밥 먹고 계약자랑 단 둘이 석양이 지는 근사한 숙소에서 장미꽃을 뿌리고…… 꺄아아아!

상상을 하던 엘리스의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한계치를 넘어선 망상을 스스로가 감내하기 힘들었다.

-주인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차례인가.

-피라냐를 풀어둔 수영장에 넣고…….

-아니야.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민트초코를 코로 먹이는 게 더 나을 걸?

-24시간 동안 지금까지 받은 걸 다 갚아주려면 너무 시간이 부족한데.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도 각기 다른 마음을 품었다.

확실한 건, 이번 팀 대항전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보상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훈훈했던 분위기는 간데 없고. 두 눈이 탐욕과 살기로 이글거리는 이들만 남게 되었다.

"우선, 팀부터 나눠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천유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이게 내기가 되긴 할까? 다들 내 편이 되려고 할 텐데……."

진혁이 곤란하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팀 게임이라는 게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아야지. 한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면 그건 게임이라 할 수 없다.

저 싹퉁머리 없는 검성이야 그렇다 치고.

계약자인 엘리스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해 온 고구마는 이쪽 편이다.

'내 자식새끼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정령수들이랑 티본도 당연히 나한테 오겠지. 청룡도 말랑흑두루미라는 친근감 있는 이름도 지어주고 목숨까지 살려줬는데, 말해봤자 입만 아프겠고.'

테레사에 월영이 누굴 고를지도 너무나 뻔했다.

결국, 이 싸움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응?"

진혁이 뭔가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건지, 주위에 서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천유성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심지어 계약을 맺고 있는 엘리스와 고구마 그리고 정령수들까지도 말이다.

"뭐, 뭐야? 다들 왜 거기 있어?"

진혁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게 민심이라는 거다. 폭정에 맞서는 자유의 투사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군."

"아니,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구마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벌써 다 잊어먹은 거야?"

"모기?"

고구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헛수고하지 마라. 고구마는 그동안 네 학대에 지쳤다고 했으니까. 그렇지? 구마야? 그래그래. 이거 먹고 힘내거라."

천유성이 고구마의 입에 푸른빛이 도는 마정석을 건넸다.

오도독! 오독.

빌어먹을 검성 녀석.

그사이에 뇌물까지 썼다.

"구마야. 그깟 거에 우리 사이가 틀어질 거야? 우리 그 정도밖에 안 됐냐고?"

"모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 짓지 말고! 그래, 마정석. 나랑 같이 팀하면 내가 코인 거래소에서 한창 핫한 고대종 전용 간식 세트 사줄게. 알지? 영양만점 마정석 소스로 만든 특별식?"

이딴 걸 사는 호구도 있느냐며 비웃던 바로 그걸 사줘야만 하는 때가 도래했다.

"모, 모기!"

고구마가 쪼르르 진혁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나마 간신히 한 명, 아니, 한 마리는 포섭했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제한시간이 모두 경과 되었습니다.]

30분을 꽉 채워서야 간신히 팀 선택이 끝났다.

진혁은 옆에 있는 고구마와 월영을 바라봤다.

뇌물도 써보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다 해봤지만, 결국 모을 수 있는 멤버는 이게 한계였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천유성이 이끄는 '정의구현' 팀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반면, 진혁이 이끄는 '미워도 다시 한 번' 팀은 그 이름값을 못하게 되어버렸다.

"크하하! 이거 보기에도 안쓰럽군. 셋이서 최선을 다해 보거라.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천유성이 광소를 터뜨렸다.

승리를 확신하자 내면의 어두운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 혹시 수중에서 하는 경기가 있다면 옷이 물에 젖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널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둔 옷이 있으니까."

"옷? 무슨 옷?"

진혁이 물었지만, 천유성은 자신이 할 말만 반복했다.

"이제 곧 24시간 동안은 내내 그걸 입고 있어야 할 거다.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해온 옷이니 품질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

오싹하고.

진혁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이번 내기에서 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곧,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비치 발리볼]

말 그대로 백사장에서 펼쳐지는 스포츠다.

보통 선남선녀가 하하호호 웃으며 청춘을 불태우는 그런 놀이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르다.

다들 목숨을 걸고 경기에 임하는 중이었으니까.

부우웅…… 콰앙!

불꽃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천유성이 스파이크를 내리 꽂았다.

빠르다. 하지만…….

진혁이 '검마천령보'를 사용해 단숨에 공을 받아냈다.

스윽.

"하압!"

이어진 월영의 토스와.

"모오오기이이!"

공중에서 720도 회전한 고구마의 꼬리 치기가 작렬했다.

회전이 제대로 실려 있기에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바로 그때.

"어림도 없느니라!"

혈계 마법을 발동시킨 엘리스가 공을 받아냈다.

핏방울들이 몰아치며 공이 하늘 높게 솟구쳤다.

"바보 성녀!"

"맡겨 주세요!"

우우웅!

'별의 가호'가 공 안으로 응축됐다.

아니, 그냥 모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거대한 유성우를 하나의 구에 담아내는 수준이다.

잠깐, 저건 좀 심한데?

받아내는 건 둘째치고 근처에 있기만 해도 통째로 증발되어 버릴 수준이다.

"저도 선장이 돼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아니, 알겠는데. 선장이 선원들을 죽이면 어떡하려고?

"그걸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진혁 씨도 그러셨잖아요. 앞으로는 저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그건 맞는데, 그렇다고 정신줄까지 놓아버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소원이길래 엘리스랑 같은 편에 서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테레사 씨. 잠깐……."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눈부신 빛이 직선으로 내달렸다.

콰아아앙!

코트 반대편에 거대한 황금 십자가가 나타났다.

* * *

같은 시간.

탑의 한편에서는 또 다른 변수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곳까지 와야 될 줄이야. 정말 더럽게도 덥군."

거대한 체구에 터질 듯한 근육질.

묠니르를 든 천둥의 군주 토르가 불평을 늘어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신격들도 침묵을 깨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어쩔 수 없지.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인 건 우리니까."

장난의 신 로키와.

"그나저나 여기가 맞긴 해?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데?"

빛의 신 발두르.

"알려준 좌표 그대로 온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스가르드의 문지기인 헤임달까지 있었다.

올림포스에 의해 위그드라실을 잃고 층계를 부유하던 잔존 세력들은 지옥 같던 추격대를 뿌리치고 이곳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헤르메스를 피하느라 몇 번이고 아래 층계를 전전했던 터라,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심지어 미끼 역할을 맡게 된 나머지 라그나로크의 신격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쫓기고 있을 것이기에, 더더욱 마음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 왔건만.

정작 오아시스 부근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속은 건가?"

"그럴 리가. 그 인간이 직접 한 말이야. 뭔가 사정이 있겠지. 아니면, 조금 더 소란을 떨면 반응할지도 몰라."

토르와 로키의 대화가 한 차례 더 이어지는 순간.

쿠쿠쿠쿠쿠!

오아시스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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