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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55화 (456/653)

455화. 야만의 심장 '바바리안의 세계' (1)

시련의 탑 31층.

엑센시온 덕분에 상황이 급물살을 탔다.

‘뫼비우스의 모래시계’를 찾기 위해 각 길드에서 즉각 공격대를 투입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31층의 초입은 수많은 플레이어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중이었다.

“지금부터 저희가 하는 말을 잘 따르면 됩니다.”

당연히, 정보의 키를 쥐고 있는 건 크래쉬 길드였다.

애플릭과 엑센시온을 비롯해 크래쉬 길드의 간부들이 대형 길드의 랭커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쥐락펴락했다.

“……젠장.”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된 건지….”

“난 저 길드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어본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지금 당장은 맞춰주는 수밖에.”

“맞는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을 연장시킬 수 있는 아이템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만에 하나, 자존심을 부리다가 일이 실패라도 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원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할 거다.

특히, 쟁쟁했던 대형 길드들이 한 순간에 몰락하는 걸 봐왔기에 그 누구도 감히 크래쉬 길드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명령에 따르기만 할 뿐.

“이런 점을 이용하려 했던 거였군.”

“그러게요… 30층을 무사히 공략한 건 좋았지만, 이래서야 불안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겠어요.”

천유성과 테레사가 각각 한 마디씩 늘어놨다.

확실히, 이번 건 엑센시온이 날카롭게 움직였다.

정확히는 놈의 위에 있는 군타페르가 손을 쓴 거겠지만.

‘오랜만이네. 선수를 뺏긴 적은.’

이 정도 긴장감을 느낀 게 몇 년 만일까?

두근! 두근! 두근!

덕분에 심장이 기분 좋게 고동쳤다.

마치, 뉴비 때로 돌아가 시련의 탑의 온갖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퀘스트들을 클리어하는 기분이다.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할지. 그리고 마지막에 상대를 얼마나 처절하게 짓밟아야 할지.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다.

“우선, 숲으로 이동해보자. 가까운 바바리안 부족부터 만나봐야겠어. 스승님도 합류해주기로 했으니 접선 전에 적어도 부족 하나는 찾아둬야 해.”

31층은 워낙 안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라, 기억에도 오래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어딜 가려는 겁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진혁과 나머지 멤버들이 움직이려는 걸 본 엑센시온이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따로 움직일 거야.”

“흐음. 30층을 최초 공략한 저희를 따르는 게 인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일 텐데… 그걸 거부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정말로 그게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이끄는 길드장으로서 내놓은 공식 입장이고요?”

빌어먹을 뱀파이어 녀석이 인류니 뭐니 지껄이는 게 역겨워 죽겠다.

마음 같아선 십자가를 면상에 박은 다음 성수로 샤워를 시켜주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진혁은 상대의 도발에 대응하지 않았다.

설령, 신성력을 이용해 공격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저 몸이 진짜라는 보장이 없어.’

혹여 시체 인형으로 만든 가짜라면, 일이 돌이킬 수 없게 흘러가리라.

그렇다면….

“너희보다 내가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거든. 상위 신격으로부터 들은, 알짜배기 정보가 말이야. 뭐, 정 못 믿겠으면 누가 먼저 찾나 내기를 해보든가?”

불은 맞불로 잡는다고.

이쪽도 사기를 쳐주면 된다.

어차피 증거 따위야 필요 없다.

시련의 탑에선 모든 게 결과로 증명하는 법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여러 신격과 인연이 있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입증해뒀다.

“그게 정말이냐?”

“와아! 역시 진혁 씨!”

천유성과 테레사가 토끼 눈을 떴다.

아니, 너희까지 속아 넘어가면 어쩌자는 건데?

“…….”

엑센시온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뫼비우스의 모래시계는 만약 찾아내더라도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계륵이라는 걸.

게다가 놈의 목적은 모래시계가 아니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찾으려 하지도 않을 거다.

결국, 서로가 정체를 들어내고 전투에 돌입하는 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

저벅.

진혁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엑센시온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

“후우….”

진혁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이래서 31층은 싫었던 건데….

상황의 발단은 이러하다.

약 2시간에 걸친 수색 끝에 구릉지대에 있는 바바리안 부족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엑센시온이나 군타페르보다 먼저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까지는 참 좋았다.

문제는….

“거짓말하지 마라. 고기에 불을 지르다니. 그럼 고기가 모두 타서 가루가 된다.”

이 바바리안 놈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멍청하다는 점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랑 계약하면 맛좋은 고기를 준다는 뜻이었어. 불에 잘 구우면 훨씬 맛이 좋아지거든.”

“고기는 맛있다. 불은 안 된다.”

“그럼, 그냥 생고기를 주면 계약해줄래?”

“계약이 뭐냐?”

“X발.”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으려야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21세기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 있는 건지 모르겠네.

이런데도 힘은 무식하게 세서 한 놈 한 놈이 오우거도 맨손으로 잡을 만큼 강하다.

그러니 당당히 31층을 지배하고 있는 거겠지.

“저 머리로 잘도….”

“머리?”

바바리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머리가 큼지막한 게 똑똑할 것 같다고.”

“맞다. 나 버락두는 우리 부족에서 가장 머리가 크고 똑똑하다.”

“인정한다. 버락두는 얼마 전에 덧셈도 할 줄 알게 됐다.”

“우리 부족 최초로 덧셈을 깨우친 자다.”

“10년 후엔 곱셈까지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만테호리. 아무리 버락두라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왕국에 있는 장로들 중에서도 곱셈과 나눗셈을 할 줄 아는 분은 다섯…인가 넷인가 밖에 없지 않은가.”

“인정한다. 내가 말을 실수했다.”

옆에 있던 바바리안들이 서둘러 외쳤다.

진심으로 버락두라는 놈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 배어 있는 걸 보니 딴지를 거는 것도 힘들다.

바바리안들이 워낙 힘만 숭상하다보니 자연스레 지능이 퇴화되긴 했지만….

큰 마을에 있는 놈들이나 대족장 녀석은 얼마나 더 멍청해졌으려나.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려 한다.

군타페르만 아니었다면,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 바바리안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층계를 공략했을 텐데.

이번엔 그 방법을 쓸 수 없게 됐다.

최대한 바바리안들과 교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진혁이 생고기를 도로 내려놨다.

이래서야 버락두를 회유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때.

“버락두! 또 누가 오고 있다!”

목책 위에 있던 바바리안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적인가?”

“모르겠다.”

“아군인가?”

“그것도 모르겠다. 보니까 고기는 들고 있지 않다.”

“고기가 없다니, 그럼, 일단 화살부터 쏴라.”

“알겠다.”

“자, 잠깐!”

진혁이 다급히 말렸다.

이런 미친놈들이 뭔 적아가 구분도 안 됐는데, 화살부터 날리려 하냐.

먹을 게 없다면 일단 주먹부터 날리라는 바바리안들의 격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뭔가?”

“우리 쪽에서 온 사람이야. 쏘지 마.”

“그대는 점쟁이인가?”

“뭐?”

“보지도 않고서 너희 쪽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 거지?”

“그거야 이 시간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진혁의 말에, 바바리안들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

“……!!?”

“지, 지금 뭐라 그런 건가? 시간을 안다고? 정확한 시간을?”

“설마, 버락두보다 똑똑한 인간이 있을 줄이야. 믿을 수 없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가 아니라, 이 녀석들 입장에선 거의 첨단과학인 셈이겠구나.

새삼스레 그 누구도 31층을 포섭하지 않으려 한 이유가 떠올랐다.

사기도 어느 정도 머리가 있어야 당하는 거지, 아예 뇌가 없다면 사기를 치는 것조차도 불가능에 가깝다.

콰앙!정문이 박살난 건 바로 그때였다.

산산이 조각난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감히, 화살을 쏘다니…. 모조리 쓸어버려주마.”

“어머나. 이런 환영인사는 오랜만이네요.”

뿌연 먼지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암황과 추혼사영이었다.

“버락두!”

“적이다!”

바바리안들이 즉각 무기를 움켜쥐었다.

감히, 자신들에게 덤빈 침입자를 토막을 치리라 다짐하면서.

“골치 아프게 됐군.”

“진혁 씨. 싸워야 하나요?”

천유성과 테레사 역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능력을 해방할 준비를 했다.

암황과 추혼사영이 공격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가만 있어도.”

진혁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걸로 됐다.

스승님이 이곳에 온 순간부터. 모든 고민거리는 사라졌으니까.

파스스….

연기가 걷히며 암황의 모습이 들어났다.

무기를 세우고 있던 바바리안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상대는 노인이다.

손주들이 사냥해온 사냥감이나 얻어먹는 게 당연한 나이.

그럼에도 나이를 무색케 하는 울룩불룩 터질 듯한 근육.

주먹 한 번으로 정문을 박살내는 압도적인 힘과 일당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까지.

저자는 단지 노인이 아니다.

“…전사다.”

그렇다.

암황은 모든 바바리안들의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

암황의 합류로 인해 모든 게 수월하게 풀렸다.

“근육의 비결이 뭔지 알려달라. 위대한 전사여.”

“근육이라고?”

“그렇다. 그 크고 탐스러운 알통.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호오. 요즘 것들은 내공만 갈고닦느라 죄다 비리비리하건만…. 그래도 너희들은 싹수가 좀 보이는구나.”

암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침을 내려주마. 바른 근육을 가진 애송이.”

울끈!

암황의 오른쪽 전완근이 불규칙하게 꿈틀거렸다.

“근육이란 곧 살아 숨 쉬는 것. 갈고닦으면 닦을수록 더욱 커지게 되어 있다. 하루에 200리(80km) 정도 뛰고 2000근(1200kg)짜리 바위로 가볍게 팔운동도 해주는 게 좋다. 본좌가 소싯적엔 산을 통째로 옮기는 것도 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으니 참고하도록 하거라.”

불끈!

이번엔 왼쪽 상완근이 거칠게 요동쳤다.

마치, 기괴한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밥을 먹고 측간에 가고 잠을 자는 그 순간까지도 오롯이 강해지는 것만 생각해라. 그리하면 본좌 같이 완벽한 몸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 하지만. 안 쉬고 계속하면 몸이 더 안 좋아졌다.”

“맞습니다. 스승님. 초회복이라고 파열된 근섬유가 회복되려면 최소….”

진혁이 한 마디 거들었다.

최적화된 현대 스포츠에 따르면….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면…. 그럴 비명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더더욱 혹사시켜주면 된다. 진정한 사내라면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

……그런 건 없다.

헬창들에겐 하루라도 쉬는 것 따윈 용납되지 않나보다.

“아….”

버락두가 감격에 겨운 눈으로 암황을 바라봤다.

뭐, 본인이 만족한다면야 상관없지.

덕분에 바바리안 부족 하나를 완벽하게 손에 넣었다.

진혁이 버락두에게 다가갔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말해라. 위대한 전사를 스승으로 둔 인간이라면 뭐든 대답해주겠다.”

그럼 이제….

“바바리안들의 왕이 현재 머물고 있는 장소. 알고 있지?”

군타페르의 계획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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