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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56화 (457/653)

456화. 야만의 심장 '바바리안의 세계' (2)

바바리안들은 보통 씨족을 중심으로 한 중소규모의 군집사회를 이루고 있다.

각각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드넓은 31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바바리안들의 왕이 거주하고 있는 왕국이었다.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는 규모.

3만이 넘는 바바리안들이 살고 있는 이 성채는 각종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31층 최고의 번화가였다.

뭐, 여기서야 번화가지, 차라리 고등학교 축제가 더 퀼리티가 높을 테지만.

“마을은 여기까지고 저 앞에 있는 성문부터가 왕도다.”

버락두가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주위를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성문에 도달했다.

꽤나 깊고 넓은 해자까지 갖춘 입구.

바바리안들이 만들었다고 믿기엔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다.

“버락두! 오랜만이다! 이런 궂은 날씨에 왕국까진 어쩐 일인가?”

경비대장인 듯한 바바리안이 다가왔다.

새삼스럽지만, 바라리안 놈들은 죄다 땀내가 나는 근육질 덩어리들만 모여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근육이 더욱더 살아있는 것 같았고.

쿠르릉… 콰앙!

번개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바리안들의 기준에서야 궂은 날씨지.

현대였으면 온 국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졌을 만큼 무자비한 날씨였다.

“오! 젠카르. 이게 얼마만… 하나 둘, 셋, 열 스물 오십 밤 만이다!”

“우리가 만난 날짜를 세다니, 역시 버락두는 똑똑한 바바리안이다.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인가?”

“다른 층에 있는 인간들이 왕을 만나고 싶어 한다.”

“왕을? 하지만, 왕은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

“아무나가 아니라 똑똑한 인간들이다.”

“미안하지만, 말만 가지곤 믿을 수 없다.”

그래도 왕국을 지키는 수문장이라고.

다른 녀석들보다 붕어만큼 정도는 더 똑똑한 모양이다.

“의심스러우면 문제를 내보거라.”

“알겠다. 이건… 왕국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다. 해결해준다면 왕과의 알현을 허락하겠다.”

젠카르가 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온갖 상형문자들이 즐비하게 적혀 있다.

규칙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아무 그림이나 막 갖다 붙인 문자였다.

막말로 이걸 쓴 놈도 자기가 뭘 썼는지 해석하기 힘들 판국이니, 플레이어나 다른 층계의 거주자들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리라.

바로 이것 때문에 바바리안들이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던 거겠지.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 자꾸 번개에 맞아 죽는 바바리안이 많다. 근성으로 버티라고 하기에도 한계가 있는 법. 이를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혁은 대강이나마 그 흐름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바바리안들뿐 아니라, 온갖 멍청한 종족의 문자들을 접하다보니, 자연스레 말을 하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나마나 이런 날씨에 온갖 날붙이를 다 걸치고 다니니 번개나 맞는 거겠지.’

‘근육! 근육!’거리면서 창을 높게 치켜세우다가 죽는 바바리안들이 많다는 건 그다지 놀라울 일이 아니다.

피뢰침을 세워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저 멍청한 놈들이 피뢰침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지 않았다.

‘바보랑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법이니까.’

딱 봐도, 최강의 전사는 가장 높은 곳을 점령해야 한다며 위로 오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혁이 아공간에서 녹색 빛이 나는 보석을 꺼냈다.

군타페르의 보물창고에서 훔쳐 온 5개의 속성석 중 하나. ‘번개의 돌’이다.

다음은.

“운디네야. 잠깐 나와 봐. 어허… 부려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진혁이 운디네를 소환했다.

“주, 주인, 무슨 일이야?”

“별건 아니고… 잠깐 목에 이것 좀 차고 있어봐.”

아름다운 빛깔을 띤 보석이 운디네에게 향했다.

잔뜩 경계하고 있던 운디네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우와아…. 선물이야? 고마워, 주인! 진짜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근데, 왜 고정 마법을 거는 거야? 아니, 응? 잠깐만!”

운디네가 당황하며 보석을 떼려 했다.

하지만, 단단히 고정된 보석은 아무리 애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그렇게 느낀 순간.

쿠르릉… 콰아앙!

검게 물든 하늘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뻗어나가는 금빛 섬광.

또 다시 애꿎은 바바리안 한 명을 태워버리기 위해, 불길이 직선 궤도로 내달렸다.

그런데.

“이거 왜 안 떨어… 꺄아아악!”

화염에 휩싸인 운디네가 비명을 질렀다.

번개를 정통으로 얻어맞았으니, 당연히 정신이 없을 수밖에.

“이제, 번개 문제는 해결됐어.”

“그게 무슨 말인가. 비리비리한 전사여?”

비리비리하긴, 지금 딱 좋은 몸매구만.

“하여간. 앞으로는 이 애한테만 벼락이 떨어질 거야. 그러니 너희가 고민하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깟 보석하나 달았다고 번개가 한 명한테만 떨어진다는 걸 나보고 믿으라는….”

쿠르릉… 콰아앙!

“꺄아아! 저, 정령 살려!”

쿠릉… 쾅! 쾅! 콰콰콰콰쾅!

“…꺄으아아….”

“믿겠다. 비리비리하지만 똑똑한 전사여! 그대는 왕을 만날 자격이 충분하다! 여기, 통행증을 주지.”

젠카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운디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인해, 성 내부의 진입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진짜 엄청나긴 엄청나군.”

“이게 야만인들의 세계인 건가요…. 어째서 무림에서 30층 너머로 영토를 확장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네요.”

천유성과 추혼사영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바바리안 한 명이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빗물을 마시면서 강수량을 측정하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꿀꺽꿀꺽! 커억, 쿨럭! 비가 많이 내린다. 토를 할 정도니 이건 폭우가 틀림없다!”

“고생한다. 네가 아니었다면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온 왕국이 몰랐을 거다!”

“어흠! 전사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럼, 계속 수고해라.”

“알겠다. 꿀꺽! 커억! 컥! 컥!”

반대편에선 성이 물에 잠기는 걸 막기 위한 고군분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상의를 탈의한 근육남들이 연신 곡괭이와 삽을 놀렸다.

“헛! 후웁!”

“조금만 더 힘내라! 거의 다 왔다!”

퍽! 푸욱!

엄청난 속도로 땅을 파내려간 것까진 좋았다.

물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깊이와 넓이도 충분했고.

문제는,

“크아아악!”

“휘, 휩쓸려 간다!”

너무 깊이 파버린 탓에, 오히려 지반침식이 일어나버린 점이었다.

훅 꺼져버린 흙에 수많은 바바리안들이 생매장 당해버렸다.

“미친놈들인가 진짜.”

진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워낙에 기본 스펙이 좋은 놈들이니 저 정도로 죽진 않겠지만….

……정말이지 용케 이 왕국이 지금껏 멸망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길을 따라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자, 굵은 통나무로 만든 거대한 저택이 보였다.

바바리안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깃발.

여기가 바로 바바리안들의 왕이 사는 궁전이다.

물씬하고.

입구에서부터 지독한 테스토스테론 냄새가 가득 풍겼다.

“웬 놈이냐?”

성문을 지키는 놈보다 족히 머리 하나가 더 큰 바바리안이 길을 가로막았다.

허리까지 오는 금발과 면도날도 안 들어갈 것 같은 굵은 수염. 신장은 2m 이상에… 팔이 무슨 어지간한 성인 허벅지만 하다.

딱 봐도 왕을 지키는 근위대중 하나인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위압적인 기운을 내뿜는 전사가 존재할 줄이야.

외모로만 본다면, 오우거들 사이에서도 우두머리를 차지할 거다.

“입구에서 허락을 받고 왔다. 젠카르라는 바바리안이 준 통행증이지.”

“흠? 통행증?”

바바리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설마….

“난 통행증 같은 건 모른다. 여긴 오롯이 자격이 있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빌어먹을, 바바리안 놈들.

이럴 거면 대체 왜 통행증을 쳐만든 거냐?

행정이라는 걸 누구한테 배웠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래. 그렇다 치고. 그럼, 그 자격이라는 건 어떻게 얻으면 되는 건데?“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 왕을 만나라.”

“그렇게 간단히?”

“그렇다.”

너무 쉬우니까 오히려 의심스럽다.

“뭐가 됐든, 빨리 들어가자. 왕이든 뭐든 만나보면 답이 나오겠지.”

턱!천유성이 문고리에 손을 갖다 댔다.

“……음!?”

그러나 문은 덜컹였을 뿐, 아예 움직이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유성의 이마에 굵은 심줄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쿠웅!

아까보다 조금 더 문이 들썩이는 게 고작이다.

“무슨 놈의 문이… 이따위로 무식하게 무거운 거냐?”

“끄응! 이, 이거, 진짜 너무 무거운데요?”

테레사도 두 손으로 문을 잡고 낑낑댔다.

“그 문은 한 쪽에 약 3톤이다. 강인한 전사들도 힘겨워하는 마당에 그대들처럼 비쩍 곯은 몸으로는 어림도 없는 무게지.”

보아하니 이게 첫 번째 관문인 모양이다.

왕을 만나려면 적어도 이 문을 열 정도의 근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

3톤이라….

확실히, 근력 스탯에 몰빵을 하지 않는다면, 현 시점에서 단순히 완력으로 이걸 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말이다.

[고유 능력 ‘툼그레이브의 오른팔’이 개방됩니다!]

쿠쿠쿠쿠!

진혁의 오른팔 위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흐음?”

바바리안의 동공에 불꽃이 튀었다.

심상치 않은 힘에, 자신도 모르게 근육이 잔뜩 경직됐다.

그리고 그 순간.

쿠쿠쿵!

두꺼운 문이 좌우로 개방되었다.

“어떻게….”

“단순히 근육이 크다고 해서 힘이 센 게 아니야. 앞으로는 이런 인간도 있다는 걸 좀 기억해두라고.”

“과연, 세상은 넓다 이건가….”

바바리안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인간. 너가 마음에 들었다. 나와 함께 위대한 전사를 탄생시키는 게 어떠냐?”

잠깐. 잠깐만….

지금 혹시 잘못들은 건가?

“탄생이라면… 혹시 아기를?”

“그렇다.”

“아이가… 남자랑 여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아무리 멍청해도 정도가 있지.

설마, 그 정도일 리가.

“실례군. 나는 여자다. 그것도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지.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건강한 아기를 낳기엔 부족함이 없을 거다.”

“…….”

단언컨대, 31층에 와서 아니,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 ⁕ ⁕

같은 시각.

문이 열린 왕궁 내부에서도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저 문이 열렸다고?”

“어린 전사들 중에서 벌써 그리 성장한 이가 나왔다니?”

“고드리트 부족의 아이일 거다. 12살에 덩치가 물소만 한 녀석이 있었어.”

“힘이라면 메라 부족이지. 하루에 빵을 100개씩 먹던 걸 기억하고 있다.”

“거짓말 마라. 네 기억력이 고블린 수준이라는 건 온 왕국이 다 알고 있다.”

내부에 있던 바바리안들이 웅성거렸다.

‘시험의 문’이라 명명된 정문이 열린 건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된 근육과 미쳐버린 정신을 지닌 이들만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터.

모두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벅.

안으로 들어온 이는 바바리안 전사가 아니었다.

전사들 눈에 보기엔 너무나 가녀린 체구.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이 당당히 왕궁 안을 가로질렀다.

“바바리안 역사에 길이 남을 선물을 가져왔는데… 어떻게, 여기서 제일 똑똑한 친구가 누구입니까?”

진혁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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