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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57화 (458/653)

457화. 야만의 심장 '바바리인의 세계' (3)

"선물이라고?"

웅성이는 소란 속에서 누군가 입을 열었다.

내부에 있는 바바리안들이 모두 한 가닥씩 하게 생겼지만, 그 중에서도 이 녀석은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육체뿐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마력 역시 엄청났으니까.

쿠쿠쿠!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덩치에선 흉흉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 남자가...?

진혁이 '탐식의 눈'을 발동했다.

띠링!

[인물 정보]

이름: 푸달락

레벨: ???

고유 능력: 어스퀘이크

스킬: ‘근육 이동술’ Lv28, ‘통각 완화’ Lv27, ‘한계 돌파’ Lv27, ‘끈질긴 생명력’ Lv26….

복사 조건: 바바리안의 왕 푸달락은 외길만 걸어온 고집불통의 폭군입니다. 그런 그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선 바바리안들의 성인식을 통과하십시오.(단, 성인식의 난이도는 왕의 정식 후계자에 준해야 합니다.)

당장 얼어 죽을지언정 상의엔 그 어떠한 것도 걸치지 않는 상남자.

팔다리가 부러져도 침 한 번 뱉고 자면 그걸로 족한 마초남.

그게 바바리안의 왕 ‘푸달락’이었다.

다른 층계에 비해서 정보가 제한되긴 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단서들을 토대로 굵직한 계획은 세울 수 있었다.

“그쪽이 왕입니까?”

“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어째서긴.

진혁이 혀에 침을 가득 발랐다.

“그거야. 이곳에 모인 전사들 중에서 가장 근사한 근육을 지니고 있거든요. 같은 남자지만, 언제 같이 운동을 해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호오.”

푸달락의 입가가 미묘하게 씰룩였다.

애써 웃음을 참으려는 거다, 저거 분명.

“완전히 보는 눈이 없지는 않군. 하지만, 그런 약해빠진 몸으로는 나와 대화를 하기 백 년…  아니, 만 년은 이르다.”

“왕. 만 년보다 백 년이 더 긴 거다.”

“그런가?”

“훗. 어제 위대한 역사서에서 직접 읽은 내용이다.”

“도서관이라니. 진심으로 거길 갔단 말인가?”

“정말 대단하군.”

“역시, 장로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백과 만을 구별할 줄 알다니. 잘은 몰라도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셌다는 뜻 아닌가?”

“고맙다. 그럼, 백 년으로 하지. 어쨌든 내가 직접 낸 시험을 통과해야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푸달락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정했다.

이 빌어먹을 근육덩어리 놈들.

어떻게 입구를 지키는 놈이나, 왕궁을 지키는 여자나.

죄다 입으로는 이것만 통과하면 된다더니 지켜지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진심으로 이럴 거면, 시험은 왜 만드는 건데?

진혁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머저리들을 죄다 군타페르 쪽에 넘긴 다음, 독약을 불로장생약이라 속이고 한꺼번에 몰살시켜버리고 싶었다.

“그럼, 대체 또 뭘 해야 하는 거지? 뭐, 힘 싸움이라도 해야 되나?”

“푸하하하!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인간은 왕인 이 몸과 힘 싸움을 할 수 없다. 그런 기회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일단, 외형에서부터 탈락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두들겨 팰 수도 없고….

바로 그때.

“잠시 비켜 보거라.”

저벅.

진혁의 앞으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흐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다니. 이 세계의 법도는 그러한 건가? 그래서 그 멋진 근육이 울겠군.”

“너는….”

“이럴 수가….”

모두의 입이 얼어붙었다.

“그 나이에 그런 몸을 유지하다니…. 진흙 같은 걸 덕지덕지 바른 건 아니겠지?”

푸달락 역시 두 눈을 부릅떴다.

“훗. 감히 본좌의 몸을 의심하는 겐가?”

툭… 투둑…!

암황의 상의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옷감이 근육의 팽창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곧이어 완벽하게 단련된 구릿빛 근육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인체로 구현할 수 있는 완벽한 철갑이다.

“…멋지군.”

이건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이 왕국에 오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내라는 걸.

“이 아이는 본좌가 인정한 진정한 남자다. 겉은 이럴지 몰라도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지.”

“그게 정말인가?”

“내 명예를 걸고 보장하마.”

진정한 사내와 사내는 눈빛만으로도 통한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심이 전해진다는 소리다.

“……알겠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주지.”

이걸로 대화의 발판은 마련되었다.

남은 건 군타페르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이들을 포섭하는 것뿐.

“바바리안들에게 줄 선물과 제안할 게 있습니다.”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흐음. 여기가 바바리안 놈들의 왕국이라는 곳인가?”

“쳇, 이런 거지굴이 왕국이라니… 진짜 맞긴 한 거야?”

“글쎄. 안내하는 놈이 그렇다고 하니 그냥 믿고 따라온 거지.”

각 마왕들이 보낸 상위 혈족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군타페르와 마몬의 명을 받고, 31층에 있는 바바리안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직접 여기에 온 것 까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자존심만 더럽게 세고 단순무식한 바라리안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히 짜증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그 누가 감히 마족들의 말에 토를 달거나 거역하려 한단 말인가?

10층이 넘게 차이나는 층계만 보더라도 바바리안들은 자신들에게 눈 한 번 마주쳐선 안 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렇게 화살이 향한 곳은 이번 일의 안내자 역할을 맡은 진조였다.

“그래. 인간들을 시켜 정보를 모은 거니 틀림없다.”

엑센시온이 단칼에 선을 그었다.

진혁 때문에 전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족들과 협력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인간들 사이에서 탄탄히 자리를 잡은 덕에 일이 수월하게 풀린 건 부정할 수 없지.’

놈이 보유한 전력 중 가장 골치 아픈 천마들도 이걸로 사라질 테니까.

‘다른 마왕은 몰라도 군타페르는 확실히 쓸모 있어.’

그걸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은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다 쓸어버리고 왕이란 놈이랑 담판을 지으면 되는 건가?”

“놈들과 동맹을 맺을 게 아니라 전쟁을 할 거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

“쳇. 성가시군. 그럼, 뭐 어쩌란 거냐?”

“바바리안들은 철저하게 힘을 숭상하는 집단이다. 마침, 우리 쪽에도 덩치라면 어디서 밀리지 않는 마족이 있지.”

엑센시온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마몬의 대리자 격으로 온 ‘페트리스’.

붉은빛이 도는 피부에 네 개의 팔이 돋아난 마족이었다.

최전방에서 적을 쓸어버리는 게 주요 역할인 만큼, 덩치 역시 5m에 육박했다.

“시험을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왕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다. 당근이 있는데, 굳이 채찍부터 쓸 이유는 없겠지.”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우리야 네 안내를 받으라는 명령이 있었으니까.”

마족들이 순순히 엑센시온의 말에 따랐다.

쿠쿠쿠쿠!

바바리안들의 성 안에서 낯익은 마력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이건…?”

엑센시온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묵직한 무언가를 밀어 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발산된 폭풍.

틀림없다.

‘놈이 이곳에 있다.’

“전부 안으로 들어가라!”

“뭐라고? 아까 전엔 놈들과 전면전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그거야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야기고. 그 능구렁이 같은 놈이 먼저 초를 치고 있지 않느냐!”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그 누구보다 엑센시온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진혁에게 선수를 빼앗겼다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거라는 걸.

지금 당장은 무리를 해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한다.

적어도. 상대가 무슨 더러운 계획을 세웠을지 정도는 알아내야 한다.

“빌어먹을.”

“진입해라!”

콰앙!

툭!

마족들이 일제히 성 안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툭….

진혁이 테이블 위에 가지고 온 아이템을 꺼내 놨다.

군타페르의 보물창고에서 훔쳐온 보물 중 하나.

‘알락트론 뿌리의 즙’이다.

찰랑이는 액체가 병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꿀꺽….”

“이, 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인간! 그걸 어디서 손에 넣은 거냐?”

“탐이 난다. 당장 마시고 격하게 운동하고 싶다.”

“남자에겐 참 귀하고 좋은 건데….”

바바리안들이 몸을 들썩였다.

알락트론 뿌리에서 나온 즙은 힘의 정수 그 자체.

근성장을 5배가량 늘려줌은 물론, 운동의 효율을 극한까지 올려준다.

헬창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보물은 존재하지 않을 터.

진혁은 이점을 노리고 무수히 많은 보물들 중 이 즙을 골랐다.

“크흠! 한 입만 어떻게 안 되겠나? 요즘 몸을 쓴 후에 영 근육이 안 커지는 것 같아서….”

푸달락 역시 군침을 흘렸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 나름 근엄한 우두머리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효과 좋은 약 앞에서는 탐욕에 젖은 망아지가 되어버렸다.

“저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요. 좋은 건 나눠 쓰는 법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옳은 말을 하는 인간이다!”

“똑똑한 인간이 말도 잘 한다!”

바바리안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막말로 주지 않겠다고 했다간 도끼라도 집어들 기세다.

진혁이 슬쩍 테이블 위에 있는 즙을 몸 쪽으로 당겼다.

“하지만, 나도 이걸 구하느라고 정말 갖은 고생을 했거든요. 수많은 함정을 뚫는 과정에서 소중한 동료를 잃어버리기도 했고요.”

착 가라앉은 음성.

촉촉하게 젖은 눈가에선 옥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동료가… 죽은 건가?”

“예….”

운디네라고.

지금도 벼락 맞고 활활 불타고 있는 친구가 있다.

전도성이 높은 탓에 아주 제대로 지져지고 있지.

[기록된 영상이 재생됩니다.]

진혁이 스크린샷 모드로 운디네의 현재 영상을 보여줬다.

“으으… 사, 살려 줘… 이 원한을…. 나중에 반드시… 피의 복수를….”

입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운디네가 하늘을 향해 작은 손을 뻗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두 눈에 핏발이 선 채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게 조금 수상해 보이긴 하지만….

어차피 멍청한 놈들이니 이런 식으로 사기를 쳐도 충분히 먹히리라.

“크읍! 나도 동료의 죽음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렇게까지 어렵게 얻은 즙을 준다면… 바바리안의 왕인 이 내가! 너에게 그 무엇이라도 주겠다!”

……걸렸다,

눈물 연기가 아주 제대로 통했다.

어느새 눈물자국이 감쪽같이 사라진 진혁이 두 손을 비비적댔다.

“사실, 저희를 일방적으로 공격한 놈들이 있습니다. 한밤중에 한 기습으로 인해 소중한 동료들이… 함께 근력 운동을 하며 무게를 올리던 파트너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습이라니, 그런 더러운!”

“전사는 낮에만 싸워야하는 것을!”

“운동 후에는 두 번째 밤까진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법도도 모르는 건가!”

“긍지도 없는 놈들이다!”

바바리안들이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놈들은 바로…!”

진혁이 판을 뒤집으려 할 때였다.

콰앙!

왕궁의 정문이 완전히 박살났다.

후두둑….

부서진 파편들이 바닥을 가득 채웠다.

“역시나… 그 뱀 같은 혓바닥을 놀리고 있을 줄 알았다.”

엑센시온.그리고 그를 따라온 마계의 혈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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