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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58화 (459/653)

458화. 야만의 심장 '바바리안의 세계' (4)

후두둑…….

파편들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거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상관없다.

성난 바바리안들을 달랠 만한 사탕은 충분히 가져왔으니까.

“역시, 그 뱀 같은 혓바닥을 놀리고 있던 중이었나.”

엑센시온이 진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흐음. 저놈들이 그 고인물 코퍼레이션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야?”

“그래. 금발은 테레사란 성기사고 저기 똥폼 잡고 있는 놈이 천유성이다. 인간들 사이에선 검성이라는 칭호로 불린다더군.”

“검성은 개뿔. 그거야 약해빠진 인간 놈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이야기고.”

“무림에서 온 떨거지들도 함께 있어. 싸워도 된다면 즉각 처리하지.”

엑센시온과 함께 온 혈족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할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해보시죠.”

천유성과 테레사가 무기를 뽑았다.

스릉!

철컹!

두 개의 검에 서로 다른 기운이 맺혔다.

“크하하!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하지 않는다. 어디, 마족이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본좌가 직접 시험해보지.”

“어머나, 머리에 뿔 달린 분들은 처음이네요.”

암황과 추혼사영도 언제든지 즉각 움직일 채비를 갖췄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엑센시온은 모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곳에 온 건 자잘한 싸움이 아닌, 바바리안 전체를 포섭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내 이름은 엑센시온, 위대한 뱀파이어의 가주…….”

“저놈들이에요! 저, 저 흉악한 범죄자들이 결국엔 여기까지……. 크흡!”

엑센시온의 말을 끊으며, 진혁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가늘게 들썩이는 것은 덤이었다.

“저놈들? 그게 무슨……. 네놈답지 않게 뭔 역겨운 말투로 흐느끼고 있는 거냐?”

엑센시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진 몰라도 이쪽엔 푸달락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물건이…….

“저 명예도 근육도 없는 놈들을 쳐라!”

푸달락이 의자 옆에 놓아둔 전투 도끼를 냅다 집어들었다.

“우오오오!”

“왕을 따르라!”

“근육 운동한 후에 쉬는 틈을 노리다니,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

“아주 통으로 빻아버리겠다!”

왕궁 내부에 있던 바바리안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그것은 성난 파도였다.

쿵! 쿵! 쿵! 쿵!

흔들리는 지축.

육중한 체구의 바바리안들이 사방에서 덤벼드는 건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뭐, 뭐야?”

“이것들이 미쳤나!”

“갑자기……!?”

마족들이 깜짝 놀라 실드를 끌어올렸다.

만에 하나 공격을 했다가 누구라도 죽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기에.

방어 외엔 대응할 수마저 없었다.

콰콰콰쾅!

각종 도끼와 검이 실드를 두드렸다.

엄청난 힘이다.

실드째로 압사당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온 신경을 자극했다.

“푸달락! 잠깐 멈춰라! 우리는…… 커억!”

당황스러운 건 엑센시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저 고집불통 외골수인 바바리안들이 저리 반응한단 말인가?

각종 금은보화와 코인 혹은 다른 층계의 소유권을 제안하더라도 꿈쩍도 하지 않던 게 바로 그들이었다.

한데…….

무슨 수를 써서?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저 인간과 엮인다면 언제나 기존의 상식이 모조리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으득!

엑센시온이 이빨을 부러져라 깨물었다.

“흑흑흑……. 어흐흑…… 운디네야. 우리 불쌍한 운디네 어떡해. 아이고…….”

눈가에 눈물을 훔치는 와중에도 입은 킬킬대고 있는 진혁을 보자니, 속이 뒤집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푸달락! 멈추란 말이다! 나는 너희의 증표를 가지고 있다!”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터져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

가장 선두에서 맹공을 퍼붓던 푸달락이 순간 멈칫했다.

엑센시온의 품 안에서 나온 돌멩이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래! ‘전사의 맹세’다. 너희 선조들이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겠지?”

‘전사의 맹세’는 먼 과거, 탑의 31층에 일어났던 대전쟁에서 바바리안들이 그들을 도운 용맹한 동맹에게 주었던 증표다.

좌우로 교차된 도끼와 방패는 그때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한 상징인 셈.

이걸 본 바바리안들은 반드시 그 맹세를 이행해야만 했다.

“나도 알고 있다. 깃발이며 창문이며 바닥이며, 죄다 저 그림을 새겨놨으니까. 이 돌멩이를 가진 자의 부탁을 들어 줘야 한다는 것쯤은 바바리안들이라면 태어났을 때부터 듣고 자랐지.”

설령, 왕이라 하더라도 그 규칙을 어겨선 안 된다.

푸달락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웠다.

깊게 파인 주름살이 유독이나 더 깊어 보였다.

‘……됐구나.’

엑센시온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나 이게 있는 이상 반전 따윈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흐음. 이거 진품 맞아?”

진혁이 턱을 쓰다듬으며 다가왔다.

어느새 커다란 돋보기와 콧수염 그리고 나비넥타이까지 착용한 상태로.

“당연하지 진품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아니,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야 말이지. 착한 바바리안들 등처먹을려는 놈팽이 같은 것들도 잔뜩 있을 테고.”

“그, 그건 네놈 이야기잖느냐!”

“어허, 나처럼 선량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보다 푸달락 왕. 이것 좀 보세요.”

“뭘 말인가?”

“여기 돌멩이의 도끼 보면, 영 날 부분이 뭉툭해 보이지 않습니까?”

“흐음. 뭉툭이라…… 그런 건가?”

푸달락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눈에는 그놈이 그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잘 보세요. 잘. 명색이 바바리안의 도끼라면 훨씬 강하고 튼튼해 보여야 정상 아닙니까? 저쪽에 방패 부분도 날이 좀 상한 것 같기도 하고요.”

“확실히, 우리 위대함을 담아내기엔 뭔가 부족해 보이긴 한다.”

“궤변이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돌멩이가 좀 닳을 수도 있지. 그것만으로 거짓이라 지껄이는 것이냐?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진위 여부가 아니라 가품이라 세뇌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참다못한 엑센시온이 달려들려 했다.

눈앞에서 사기를 당하게 생겼으니 당연히 분노가 솟구칠 수밖에.

“저…… 저, 꼭 사기꾼들이 논리로 안 되니 주먹부터 나간다니까. 쯧쯧. 다들 똑똑히 보십쇼. 진짜는 어떻게 생겼냐면은…….”

진혁이 손 안에 감추고 있던 것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외형이 비슷한 돌멩이.

군타페르의 보물창고에서 가지고 온 특수 아이템 중 하나다.

이것 역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돌멩이 중 하나지만,차이점이라면…….

……이 돌멩이엔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갈망을 담는 돌멩이’의 능력이 발동됩니다!]

우우둑! 콰득!

돌멩이에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진 엑센시온의 것과 거의 똑같았지만, 마력이 주입되자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할 정도로 날카로워진 도끼.

음각으로 새겨진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패.

그 가운덴 푸달락의 모습과 똑 닮은, 아니, 현재의 푸달락보다 족히 1.5배 정도 더 꿈틀거리는 근육을 가진 육체미의 남성까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가짜다.

“이런 장난질이 통할 거라고……!”

“크흠! 전사의 맹세와 꼭 어울리는 증표다. 마음에 든다. 어쩐지 나와도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푸달락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렇다. 역시 우리 왕은 잘 생겼다.”

“왕국에서 제일 강한 바바리안이라면 역시 푸달락이지.”

“선조들도 인정한 왕이다!”

“이게 진짜라는 건 이 장로가 보장하겠다! 저 살아 숨 쉬는 듯한 근육을 보라!”

“아니, 이것들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저 돌멩이가 있었을 당시엔 푸달락은 살아 있지도 않았단 말이다!”

엑센시온이 고함을 쳤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바바리안들에게 그런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진짜보다 나은 가짜라면 가짜가 진짜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지금 여기에 있다.

적어도 31층에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독재자의 입맛에 모든 걸 맞춰야 한다.

“크아아아! 죽여 버리겠다!”

결국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엑센시온이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았다.

콰콰콰콰!

붉은 마력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워낙 갑작스러운 기습인데다, 마력을 한껏 응축했기에 그 기세가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헙!”

진혁이 다급히 두 개의 단검을 교차했다.

파츠츠!

붉은 기운이 검의 빗면을 타고 가까스로 벽을 강타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어떻게든 공격을 흘려보내긴 했다.

딱 하나.

“젠장…….”

하필이면 가장 측면에 서 있던 천유성을 제외하곤.

붉은 칼날이 허벅지를 제법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

휘청하고.

천유성의 균형이 무너졌다.

덕분에 생겨버린 빈틈을…….

툭!

엑센시온이 놓칠 리 없었다.

순식간에 천유성의 뒤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부터 손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이 녀석을 죽이겠다.”

인질극인가.

“강진혁! 나는 짐이 될 생각 따윈 없다. 그러니…….”

“응.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할 일 할게.”

“……?”

“뭐……?”

엑센시온과 천유성의 두 눈이 크게 팽창했다.

“아니, 그렇잖아. 인질 하나 구하려고 질질 끌려다니다간, 오히려 더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다 따른다고 해서 풀어줄 거란 보장도 없잖아.”

괜히 선진국에서 테러범들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거는 게 아니다.

천유성에겐 좀 안 된 말이긴 하지만…….

“복수는 맡겨 둬.”

당한 것의 100배를 갚아 줄 테니, 억울해하진 않아도 된다.

“이 쓰레기 같은…….”

“야 이 자식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이번엔 두 명이 동시에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제 쳐도 되는 건가? 자꾸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근육이 빠진다.”

“예. 한꺼번에 쓸어버려도 됩니다.”

기왕이면 죄책감 안 가지게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연, 시원시원해서 좋군. 쳐라!”

푸달락이 재차 공격을 개시했다.

⁕ ⁕ ⁕

엑센시온과 마계의 혈족들은 그대로 왔던 길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본인들의 힘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이 많은 수의 바바리안들을 동시에 상대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천유성이 죽일 듯이 덤벼드는 걸 막는 게 그나마 제일 힘든 부분이었지.

그래도 다행히 볕이 잘 안 드는 지하에 가둬두는 데 성공했다.

머리가 좀 식으면 꺼내 준다 했으니, 이 정도면 일이 깔끔하게 잘 마무리된 셈이다.

“그럼,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전사의 증표를 지닌 이의 부탁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푸달락이 가슴을 쾅쾅 쳤다.

멍청한 게 답답할 때도 있었으나, 이렇게 빠꾸 없이 지르는 점은 또 마음에 든다.

바바리안들의 든든한 지원이 함께할 테니, 이 정도면 마계와의 전투에서 꽤나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제 남은 건 놈들이 만들어둔 게이트를 찾는 건데…….’

바바리안들을 마계로 데려가기 위해 군타페르 쪽에서 준비해둔 관문.

틀림없이 31층 어딘가에 게이트가 있다.

그걸 찾기 위해 엑센시온의 꼬리에 정령수인 노움과 실피드를 붙여 놓긴 했지만…….

글쎄, 워낙 여우같은 놈이라 도중에 눈치챌 확률이 높겠지.

거기에 희망을 기대면 안 된다.

“혹시…….”

진혁이 푸달락을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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