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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61화 (462/653)

461화 고인물 코퍼레이션 VS 군타페르 (3)

두 세력간의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쯤.

스윽….

군타페르의 성채 아래선 몇몇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가 마왕의 본거지인 거냐?”

천유성이 숨소리를 죽였다.

소수정예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까진 동의했지만….

설마 고작 이 인원으로 적의 심장부까지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응.”

“더 이상 지원은 없는 거고?”

“응!“

쾌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진혁을 보며, 천유성은 더더욱 이번 일이 미치도록 어려울 거라는 걸 절감했다.

“빌어먹을, 더럽게 힘들겠군. 이렇게 거대한 성채는 마계에 와서 처음이다.”

“뭐, 군타페르가 잔고가 좀 두둑하긴 한 편이지.”

거짓말 좀 보태면 베리엘의 영지보다 100배 정도는 거대해 보인다.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양과 질 역시 비교할 바 되지 못했고.

그럼에도 무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군타페르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겠….”

“전사라면 정면이다! 안 그런가? 동지여?”

천유성의 말을 푸달락이 대번에 집어삼켰다.

“크하하! 뭘 좀 아는군. 비겁하게 모략이나 쓰는 건 선비나부랭이들이나 할 일이지. 우리 같은 사내에겐 오롯이 돌격뿐이다!“

울끈불끈!

푸달락에 이어 암황까지 웃통을 벗어젖혔다.

살아 숨쉬는 듯한 근육이 당장이라도 ‘발할라’를 외칠 것만 같았다.

“아니,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

“다 죽여버리겠다!“

“크하하하! 너희는 천천히 뒤에 따라오거라. 앞길은 우리가 열겠다.”

사기가 충전된 두 사람은 말릴 새도 없이 지면을 박차버렸다.

“전방에 적습이다!“

“수는 둘, 강진혁이란 놈은 보이지 않는다!“

“고작 저걸로 덤비다니, 당장 찢어 죽여라!“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성채에 있던 마족들이 즉각 응전했다.

“우리도 어서 도와야…… 해요!“

테레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혹여라도 포위됐다간, 둘만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잠깐만요. 테레사 씨. 스승님과 푸달락 왕의 고귀한 뜻을 물거품으로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두 분은… 크읍!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자신들이 저기서 적들의 시선을 끌 테니, 그 틈에 비밀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라고요!”

진혁이 감정에 북받친 듯한 표정을 자아냈다.

어느새 손수건까지 꺼내 눈가를 닦았다.

당연히 눈물 따윈 한 방울도 묻어나오지 않았지만.

“그럴 리가… 아니, 분명히 뒤따라오라고 한 것 같은데….”

“어허. 환청입니다. 환청.”

진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채 아래로 이어지는 배수로로 몸을 돌렸다.

몇 계단인가 내려가자 단단히 잠긴 창살이 모두의 앞을 가로막았다.

“베어버리는 거라면….”

스릉!

천유성이 검을 뽑았다.

아무리 단단한 창살이라도 검강을 싣는다면, 그대로 잘려나갈 터.

“아니, 알람 마법이 걸려 있어. 억지로 열었다간 바로 놈들이 알아챌 거야.”

진혁이 손끝으로 문을 매만졌다.

알람마법이 비교적 서클이 낮은 초급 마법이긴 하지만, 마왕 정도 되는 녀석이 공을 들인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라리 결계였으면, 결계사의 특성을 이용했을 텐데….

“모르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냐?”

“통상적이라면 그랬을 거란 이야기야.”

그러나. 군타페르도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자기 집을 자기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고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진혁의 손놀림이 한층 바빠졌다.

분명, 7번째와 8번째 이음새 부분에 걸리는 부분이….

철컹!

역시나.

약 3도 가량 안쪽으로 들어간 창살.

진혁이 지그시 힘을 밀어 넣었다.

끼기긱!

창살이 미묘하게 옆으로 벌어지며,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틈이 만들어졌다.

이거라면 알람 마법을 건드리지 않은 채로 진입할 수 있으리라.

“정말… 모르는 게 없군. 진짜로 예전에도 마계에 왔던 적이 있던 거냐? 그게 아니라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알 수 없을 텐데?”

“설마요. 진짜예요? 진혁 씨?”

천유성의 말에 테레사가 토끼 눈을 떴다.

설마… 이 미친 망겜을 40층대까지 오른 사람이 있을 리가.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시련의 탑에 찌들어버린 망령이다.

가학적인 걸 좋아하는 변태거나.

“틀림없다. 저 녀석… 모르긴 몰라도 44층까진 와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엔 군타페르나 다른 마왕들에게 막혀서 등반을 포기했던 거겠지,”

천유성이 자신만의 가설을 늘어놨다.

“물론, 이제는 현실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공략을 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우리 도움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이렇게 가정한다면 앞뒤가 맞다.

다시 말해.

“네가 올랐던 최대층은 44층이란 소리다.”

“흐음.”

진혁이 턱을 긁적였다.

뭐,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긴 하네.

“글쎄, 어떠려나. 아! 그보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아. 이 창살 복원력이 좀 강해서 금세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거든.”

“대답 피하지 말고. 똑바로 좀 실토하란 말이다! 44층이 맞냐 아니냐. 그것만 제발 좀 말해라.”

천유성이 뭐라 외쳤지만, 진혁은 이미 배수로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

[‘태초의 불꽃’이 발동됩니다!]

화르륵!

주먹만 한 화염구들이 일제히 떠올랐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던 컴컴한 내부가 밝아졌다.

“생각보다 더 어둡군.”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화염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보이는 시야가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몇 미터 남짓.

그 이후는 여전히 암흑속에 잠겨 있었다.

“……굉장히 깊은 것 같기도 해요. 탐색 거리를 최대한으로 넓혀도 끝이 어딘지 잡히지 않거든요.”

테레사도 신중하게 주위를 살폈다.

바로 그때.

“후후후!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미개한 인간들이여! 너희들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왔는지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이 몸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아예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통로를 따라 음침하면서도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뭐지, 이 익숙한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진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쥐꼬리만 한 정보를 더 안다고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마냥 달싹이는 저 음성.

분명히… 기억에 있는 목소리다.

“특히, 네놈은 정말로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음. 나?”

“그래, 네놈 말이다 네놈 설마, 벌써 나를 잊었다고 하진 않겠지!?”

“아니, 기억이 날 듯 말 듯하긴 한데… 진짜로 생각이 안 나네.”

“맞은 놈은 기억해도 때린 놈은 기억하지 못한다더니. 좋다. 그럼 이 몸의 이름을 말해주지.”

허공에서 고함을 지르던 존재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발세테르…라고 하면 기억이 나겠느냐?”

“아! 발냄새!“

“발세테르라고 이. 잡놈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5층, 광신도들의 구렁텅이에 있던 시험관.

‘선택의 통로’를 담당했던 그 귀염둥이 녀석이다.

온갖 능욕을 견디다 못해 탈주까지 해버린 친구를 설마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이야.

아니, 그보다 출세했네. 5층의 말단이 44층까지 다 오고.

“그동안 잘 지냈어? 밥은 잘 먹고 다니….”

“밥이… 밥이 목구녕에 넘어가겠냐. 이 지렁이 똥구멍만도 못한 인간 놈아!”

아무래도 그동안 쌓인 게 많긴 많았나 보네.

인사가 아주 격하다 못해 정열적이다.

하긴, 우리가 좋은 추억을 쌓았던 사이는 아니긴 하지.

“다행히 군타페르께선 네놈과 만났던 경험을 높이 사 이곳을 맡겨주셨다.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셈이지.”

이곳으로 올 거라는 걸. 군타페르는 이미 알고 있었다라….

하여간 그 독사 같은 놈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대비해놨다.

딱 하나.

‘이런 머저리에게 일을 맡기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한 번 상대한 경험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배수로 전체를 맡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이 녀석이 가진 능력이라고 해봤자, 저층에서나 통용되는 수준이었으니까.

“후후. 여전히 이 몸을 얕잡아 보고 있군. 걱정 마라. 그렇게 실망하지 않아도 될 만한 걸 준비해뒀으니.”

[발세테르가 고유 능력 ‘시험의 통로 페이즈2’를 발동합니다!]

통로 전체에 묘한 마력이 퍼졌다.

동시에.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워낙 희미하긴 했으나, 무언가 직선 궤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카앙!

“……!”

가장 먼저 반응한 추혼사영이 대번에 검을 휘둘렀다.

암기가 그대로 허공을 핑그르 돌았다.

……화살이다.

그것도 검기에 맞고도 잘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솜씨 좋은 궁수…네요.”

추혼사영의 팔이 가늘게 떨렸다.

완벽하게 상쇄시켰다고 생각했건만, 하얀 손목을 따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스. 스승님!”

“추혼사영 씨!”

“쉿! 소리를 내면 오히려 상대에게 이쪽 위치만 알려주는 꼴일 거예요. 그리고 강 공자. 불부터.”

“…예.”

진혁이 즉시 불덩이들을 꺼뜨렸다.

추혼사영의 말처럼 이런 곳에서 불을 켜고 있는 건, 정확히 맞혀달라고 광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험의 효과로 인해 배수로 내부에 유독가스와 분진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제한시간 0H : 4M : 59S]

“크하하하! 첫 번째 시험은 바로 ‘암습’.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것이다! 아! 참고로 이 안엔 분진이 가득 퍼져 있으니 능력을 사용하는 건 자제하도록. 통구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지.”

발냄새가 잔뜩 신이 난 듯 속사포처럼 설명을 늘어놨다.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할 터. 그래도 가여운 마음에 힌트를 주자면….”

“필요 없어.”

“야이… 개새…!”

진혁이 단칼에 발냄새의 말을 끊었다.

부우웅!

번개처럼 날아오는 2번째 화살.

처음 것은 예고였다는 듯, 이번엔 소리마저 지워져 있었다.

콰앙!

또 다시 어둠속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그것이 시작이다.

퍼퍼퍼펑!

불꽃이 일어난 자리에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아악!”

“막으면 안 돼요!”

분진이 차오른다는 메시지가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 정도 위력이라니.

이래서야 받아치는 것도 위험하다.

부우웅!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화살이 연이어 날아왔다.

기척을 감추고 정확하게 급소만을 노려온다.

무엇보다 발을 디딜 지점을 미리 예측하는 탓에, 피하는 것마저 녹록치 않았다.

이 층계에서 이 정도 활 솜씨를 가지고 있는 건 단 하나뿐.

“파리스….”

그리스의 영웅 녀석이 첫 번째 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

치칙… 푸슉!

허공에 떠 있던 불들이 일제히 꺼졌다.

배수로의 끝에서 활을 쏘던 파리스가 시위를 당기는 걸 잠시 멈췄다.

“호오,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니군.”

우왕좌왕 날뛰다 죽는 불나방들을 기대했건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수고를 해야겠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문제다.

이 정도로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하는 저격.

대영웅에 해당하는 아킬레우스마저 쓰러뜨렸는데….

……고작 저런 놈들 하나 처리하지 못할까?

피식 웃은 파리스가 재차 화살을 걸었다.

우우웅!

강한 마력이 응집되었다.

화살은 점점 더 강해지고 또 빨라질 거다.

다만, 상대는 그걸 볼 수조차 없다.

그저 비루한 목숨이 최대한 연장되길 비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지.

‘천천히 한 놈씩 끝내주마.’

그렇게 파리스가 세 개의 화살에 서로 다른 마력을 주입했을 때였다.

데구르르….

저 앞쪽에서 무언가 굴러왔다.

원 모양의. 황금빛을 띤.

사과가.

“이게 왜 여기에…?”

파리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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