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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66화 (467/653)

466화. 고대종 ‘베헤모스’ (3)

“응? 또 무슨 일이야 주인?”

“우리 얌전히 있었어.”

“맞아맞아. 절대 주인 뒤통수 치고 정령계로 도망칠 계획 따윈 세우지 않았어. 그치?”

“그럼. 도마뱀 꼬치구이 되고 싶지 않으면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지.”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5대원소의 정령수들이 호다닥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하벨리안과 말랑흑두루미 그리고 후라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요?”

“캬오오!”

“위대한 사신수 중 하나인 이 말랑흑두…… 아니, 청룡을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신수와 고대종들.

인간이야 마정석을 먹는 게 어려워도 이들에겐 불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마력의 에너지원으로서 훌륭한 식사거리에 가깝지.

‘어차피 마정석도 베헤모스 거니 손해 볼 일은 없어.’

물론, 만약 진다면, 가루가 될 테지만…….

글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다들 고생했잖아. 그래서 내가 특별히 만찬을 좀 차려봤어. 다들 사양하지 말고 먹어.”

“우와, 주인…… 감동이다.”

“멍청한 운디네야. 딱 봐도 함정이잖아.”

“응? 함정?”

“저 봐. 저기…….”

실피드가 베헤모스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엄청난 기세로 마정석을 흡입하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녀.

그 위에는 대조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보라색 구체가 떠 있었다.

화르륵!

스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뼈까지 증발해 버릴 만한 열기가 느껴진다.

심지어 구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절대 우리 고생했다고 주는 음식이 아닌 것 같아.”

말랑흑두루미도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냥 걱정 말고. 마음껏 먹어. 배가 터지더라도 많이 먹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설마, 저 소녀보다 많이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에이, 내가 그런 대결에 너희를 끌어들이는 더러운 짓을 하겠어?”

“……그대라면 그러고도 남아. 그보다 제발, 우리가 질 경우에 저 보라색 덩어리가 우리한테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해다오.”

호오. 이 녀석도 제법 오래 다녔다고 상황 파악이 빨라졌다.

“우리 말랑흑두루미는 눈치가 참 빠르네. 근데 그 빠른 눈치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시키는 것만 잘해라.

토 달지 말고. 묵묵하게.

그러면 오래오래 이 탑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곧이어 대식 대결이 시작되었다.

⁕ ⁕ ⁕

와드득! 우둑!

……꿀꺽!

게임이 시작된 지 15분.

시간이 긴 건 아니었지만, 그 찰나에 먹어치운 마정석은 상상을 초월했다.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다들 사력을 다해 마정석을 입에 욱여넣었기 때문이다.

“히이익……. 이, 이게 왜 이렇지? 내 배가 산더미처럼 커졌어.”

운디네가 터질 듯 빵빵한 배를 두드렸다.

작은 몸에 억지로 마정석을 넣다보니 이제는 물리적인 한계에 직면해버렸다.

“주, 죽여줘. 차라리……!”

실피드는 하늘에서 파닥이다 떨어졌다.

“허억, 허억…….”

“미요오오.”

말랑흑두루미와 후라이드 역시 기진맥진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다들 협박에 못 이겨서 버틴 거지. 몸은 이미 한계를 넘은 지 오래였다.

“주인, 이러다 우리 다 죽어.”

“그래그래. 나도 알지. 너희들 힘든 거. 안 그래도 내가 특별히 비장의 수를 준비했으니, 이제 마음 푹 놔도 돼.”

“비, 비장의 수라는 게 그만 먹어도 되는 거야?”

운디네가 일말의 희망이 담긴 눈을 반짝였다.

물론,

대부분의 현실에선 일말의 희망이란 어디까지나 일말의 희망으로 끝난다.

“아니, 더 먹을 수 있는 마법을 부려주는 거야.”

진혁이 화려한 솜씨로 후라이팬을 놀렸다.

[Lv15 ‘이세계 식당’이 발동됩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순식간에 완성된 특제 양념이 마정석 위에 뿌려졌다.

그냥 먹기만 하면 질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맛이라도 좋게 하려는 취지에서다.

“으으, 주인, 이거 보라색 수프에서 해골 모양 연기가 나는데?”

“보기엔 그래도 맛은 꽤 괜찮아.”

“그래도 이건 좀…….”

“정 힘들면 목구멍에 깔때기 박아 줄까? 꿀떡꿀떡 잘 넘어갈 텐데?”

“아, 아니야! 나 혼자서도 잘 먹어. 봐 봐. 후루룩…… 우웩. 욱! 후루룩!”

운디네가 눈물을 글썽이며 특제 마정석 수프를 마셨다.

그런데.

……맛있다?

아니, 맛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포만감도 잊을 만큼 놀라울 정도로 감미로웠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맛이…….”

운디네가 허겁지겁 2번째 수프를 집었다.

“진짜야? 그렇게 맛있다고?”

“주인놈이 만든 게 그렇게 맛있을 리가 없는데…….”

반신반의 하던 실피드가 수프를 한 입 먹더니, 이내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더 이상 말해 봐야 무엇하랴.

이미, 표정이 모든 걸 말했는데.

“나도 맛 좀 보자.”

“나도!”

그걸 시작으로 나머지 정령수들 역시 2라운드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위에 있는 보라색 구체도 제법 크기가 거대해졌다.

그러나.

“이젠 무리야…….”

“나, 나도 포기.”

애초에 맛과 향으로 속인 건 뇌와 마음뿐.

위장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모든 광경을 관조하던 베헤모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 나름대로 먹성 좋은 부하들을 모아둔 건 인정할 만하다.

특히, 사신수 중 하나인 청룡은 덩치에서부터 차원이 달랐으니까.

게다가, 마정석 위에 이상한 소스를 뿌려서 발악하는 광경은 솔직히 말해 꽤나 흥미로웠다.

‘상대가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저 꼼수로 어떻게든 이겼을 테지.‘

그렇다.

하필이면 ‘포식’의 대결에서 그 상대가 자신이라니.

이건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싸움이었다.

아직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도 않았건만…….

먹은 마정석의 양은 얼핏 봐도 족히 2배가 넘었으니까.

[남은 시간: 0h : 12m : 38s]

쿠쿠쿠쿠쿠!

하늘에 떠 있는 보라색 구체가 당장이라도 떨어지려 했다.

“멍청하게 날 도발한 걸 후회하며 죽으렴.”

베헤모스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며 키득거렸다.

“마치, 네가 다 이긴 것처럼 말하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가 따라잡힐 일은 없어.”

꿀꺽!

머리통만 한 마정석이 사라졌다.

여유 넘치는 베헤모스와 달리 정령수들은 얼굴이 하얗게 변하다 못해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설령, 베헤모스가 지금부터 아예 먹질 않는다 하더라도 역전할 가능성은 전무하리라.

“흠, 겨우 2배 정도 차이면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할 것 같은데…….”

“허무하게 죽게 돼서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괜히 억지 부리진 마. 그보다 왜 나한테 까분 거야? 그냥 하던 대로 그 조잡한 스킬들이나 써 가면서 싸웠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승산이 있었을 텐데?”

“너무 자신만만해 하지 마. 승부라는 게 참 묘해서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거든.”

“지겹도록 들어왔던 패자의 마지막 넋두리네. 그래, 이제 그만 끝내줄게.”

베헤모스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1m에 가까운 마정석으로 다가갔다.

아예 희망 자체를 짓밟아버리게 가장 거대한 마정석을 통째로 먹어치울 작정이었다.

허나, 뭔가 이상하다.

“어……?”

베헤모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금 전까지 코앞에 있던 1m짜리 마정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고유 능력이나 스킬을 써서 눈을 속인 건가?

아니면, 다른 술수를 써서?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이 대결은 ‘섭식성장’의 대전제 하에 시스템이 직접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온갖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모기.”

베헤모스의 귓가에, 이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 ⁕ ⁕

호박색 눈동자.

흑요석처럼 새까만 피부.

고대종 고구마가 잔뜩 쌓여 있는 마정석들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모오오기이이!”

“그래, 구마야.”

진혁이 한껏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고구마를 쓰다듬었다.

나머지 정령수들은 그저 베헤모스의 방심을 유도해 역전승을 할 수 있는 눈속임용.

그리고 승패를 결정할 메인은 바로 고구마였다.

‘남은 시간은 약 10분‘

승부를 걸기엔 최적의 시간이다.

“이거 남김없이 싹 다 먹으면 돼. 다 먹으면 새로운 마정석이 또 나올 테니까. 양 걱정하지 말고 너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어.”

“모기!”

고구마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이가 없네. 이제 와서 그런 파충류 한 마리로 뭘 어쩌겠다는 건…… 헉?”

말을 하던 베헤모스의 두 눈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와드득! 콰드득!

우걱우걱!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다.

마정석 더미 위로 폴짝 뛰어든 고구마가 게 눈 감추듯 마정석들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미친 도마뱀은?”

뭐긴.

“너와 마찬가지로 고대종이지.”

“저 덜떨어져 보이는 놈이…… 고대종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한 눈에 봐도 굶주린 멍멍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방심할 순 없다.

이 짧은 순간에 몇 십 킬로가 넘는 마정석을 먹어치웠으니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격차는 많이 벌어져 있었으나.

문제는…….

이미 페이스가 깨져버린 데다, 갑작스러운 추격으로 인해 제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어졌다는 점이었다.

‘큭! 이걸 노린 건가.’

베헤모스가 허겁지겁 마정석을 삼켰다.

빌어먹을. 마음처럼 쉽지 않다.

격렬하게 추격을 해오는 고구마를 보자니, 더더욱 여유가 없어졌다.

“모기모기!”

순수하게 즐기는 고구마 덕에, 어느새 머리 위에 떠 있는 두 구체의 크기가 엇비슷해졌다.

이대로라면 남은 시간 내에 따라잡히게 될 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어쩌면 질지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베헤모스의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베헤모스가 Lv?? ‘거대화’를 발동합니다!]

쿠쿠쿠쿠쿠!

베헤모스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했다.

30m가 넘는 거대한 체구.

쩍 벌어진 아가리와 날카로운 두 개의 뿔은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크라켄과 비교해 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역시나 거대화도 먹는 것과 관련된 능력의 범주로 쳐주는 건가.

진혁의 볼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그깟 마정석 따위, 모조리 집어삼켜주마.”

베헤모스가 쌓여 있는 마정석들을 한입에 집어 삼켰다.

단숨에 격차를 벌려 찍어 눌러버리겠다는.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 한 수였다.

그런데.

욤뇸뇸!

“아니 몸이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무슨 블랙홀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고구마의 먹방은 상식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남은 시간: 0h : 0m : 53s]

“우걱!”

“콰득! 모기!”

이건 더 이상 싸움이 아니다.

자존심이 걸린 두 고대종의 대결이지.

그리고 그 결과는…….

동률.

정확히 같은 양을 먹어치웠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한계까지 쑤셔넣었다.

이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정석 한 톨도 먹지 못한다.

“굉장한 도마뱀이네. 이 몸과 비슷한 위장을 가지고 있다니.”

“모기…… 모기모기!”

치열한 접전에 둘 사이에 묘한 동질감까지 생겨 버렸다.

만약,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또 다시 이런 대결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제 남은 시간은 단 1초.

그런데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바로 그 순간.

[제한시간이…….]

오독.

“윽…… 다들 이런 걸 어떻게 먹나 몰라.”

진혁이 마정석 한 귀퉁이를 조금 깨물어 먹었다.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승자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입니다.]

“어라, 이겨버렸네?”

진혁이 생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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