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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479화 (480/653)

479화. 바바리안들의 성인식 (2)

계획의 핵심은 ‘라이챠’.

큰곰 부족의 떠오르는 샛별이자 유망주이며. 맨 손으로 마운틴 베어를 때려잡을 만큼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바바리안이었다.

‘라이챠가 다른 부족의 전사들과 함께 우리 쪽에 합류한다라…….’

진혁이 턱끝을 쓰다듬었다.

남은 관문들을 통과하는데 힌트도 얻고, 마지막에 뒤통수를 날려 자신들이 최종 통과한다는 꿍꿍이가 틀림없다.

금붕어 수준의 아이큐를 보유한 것치곤 꽤나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속이려는 상대가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된다면 말이지.

‘하필 속이려 해도 나를 속이려하냐.‘

이건 뭐…… 귀여워서 쓰다듬어주고 사탕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엘리스.”

진혁이 화상 통화를 활성화시켰다.

“응?”

“다른 멤버들도 다 불러봐. 알려줘야 할 게 있어.”

“또…… 성인식 관련 이야기더냐?”

“그럼, 당연히 성인식 이야기지.”

“계약자. 우리가 한 약속은 완전히 잊어 버린 것이냐?”

엘리스가 볼멘소리로 칭얼댔다.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군타페르와의 전쟁 이후 엘리스가 원한 건 이런 퀴퀴하고 땀내 나는 시험이 아니라, 진혁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으니까.

31층에 다시 왔을 때만 해도 그런 희망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었지만…….

진혁의 철벽같은 행동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 탑 밖에서 같이 놀기로 했던 거? 물론, 기……억하고 있었지. 당연히.”

“거짓말.”

“진짜야. 내가 예매도 다 해두고 계획도 잡아놨다니까. 그…… 먹고 싶다던 거랑 VR 체험관이랑 해서.”

”진짜야……? 진짜로 다 준비해뒀다고?

””그럼.”

”…….”

엘리스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두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하얀 피부에 홍조가 맴돌았다.

“그, 그럼 짐이 열심히 한 번 해보마. 뭐 하느냐! 계약자가 할 말이 있다는데 다들 오지 않고!”

엘리스가 열심히 흩어져 있던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그럼, 먼저 상대방이 접근하길 기다려야겠군.”

“맞아. 들어보니 장로 중에 한 명이 이곳에 있는 히든 루트 중 하나를 알고 있나보더라고. 아마 곧 도착할 거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래, 네 말대로 하도록 하지.”

테레사와 천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저벅.

새로운 인기척이 들렸다.

라이챠와 다른 부족의 전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크흠! 여, 여기에 또. 다른. 도전자가. 있을. 줄. 줄이야!”

“나도 많이 놀랐다. 너무 놀라서 뇌가 떨어질 뻔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5년 동안 가장 놀랐다.”

“우리 나이는 5살이 아니다. 그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살았다. 20살이지.”

바바리안들이 국어책 읽는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제안을 하러 왔다. 이 앞은 역대 성인 전사들도 두려워했던 곳. 함께 힘을 합해서 통과하는 게 어떠한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

당장이라도 뒤통수를 치기 위해 도끼와 몽둥이들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바라던 바다.

잊지 못할 한 방을 날려주고 싶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빙그레 올라간 입꼬리.

진혁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미소를 지은 천유성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일행이 늘어남에 따라 산을 오르는 이동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콰아앙!

투쾅!

“크하하하! 내 이두가 울부짖는구나!”

“오늘 아침에 허벅지가 잘 먹히더니. 아주 펄펄 난다!”

바바리안들이 닥치는대로 몬스터들을 으깨버렸다.

온 몸이 근육질로 된 ‘예티’들이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인간들에게 박살나는 광경은 꽤나 그로테스크했다.

과연, 멍청하긴 해도 힘 하나만큼은 확실히 쓸 만하다.

물론, 저 녀석들 역시 이쪽이 가진 정보를 이용하려고 빌붙은 거겠지만.

‘당장은 수월하긴 하겠네. 문제는 저 앞부터인데…….‘

진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 성인식.

그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또 다시 몇몇의 고귀한 희생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수많은 통로들이 얽히고설킨 미로가 모두를 맞이했다.

[17번째 관문 ‘발할라 시련’에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는 양갈래길.

끝이 보이지 않는 두 개의 통로가 모두를 맞이했다.

한 쪽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다른 한 쪽은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

“크흠! 큼!”

“너무 무리하게 몸을 움직였나?”

“관절이 삐걱인다.”

“종아리가 부었다!”

바바리안들이 앓는 소리를 늘어놨다.

저마다 어깨와 팔다리를 주무르며 슬금슬금 발을 빼는 건 덤이다.

“강진혁, 저 녀석들이…….”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괜찮아. 놈들이 저럴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어. 장로들이 이 이상은 나서지 말라고 당부해 둔 거겠지.”

여기서부터가 좀 까다롭긴 하다.

발할라의 시련은 새로운 도전자들이 올 때마다 그 위치와 특성이 바뀌는데, 문제는 그 변화에 규칙성이란 없다는 것.

한 마디로 일일이 몸으로 돌파하면서 확인하는 수밖엔 없다.

원래라면 바바리안들을 미끼로 쓸 생각이었지만…….

저토록 완고하게 나오면 차선책을 쓸 수밖에.

“오른쪽, 이끼가 자라난 방향을 보면 저기가 분명해.”

진혁의 음성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확실해? 주인? 어째 영 믿음이 안 가는데?”

”믿음이 안 가는 게 당연하지. 믿다가 죽는 애들이 한 트럭인데.”

”왠지 운디네의 원혼이 지금 주위에 있는 것 같아.”

“모기모기!”

정령수들과 고구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짜야, 확실하니까. 이번엔 믿어봐. 그 왜, 기왕이면 가장 믿음직하고 강한 신수가 앞장서주면 좋겠는데…….”

“가장 믿음직하고 강한 신수라…… 이거이거 어쩔 수 없지. 다들 내 뒤를 따라오거라.”

말랑흑두루미가 가장 앞에서 날아갔다.

“생각보다 꽤 아늑한 것 같기도…… 허억. 뭐, 뭐야 이게?”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끄아아아아!”

이내 처절한 비명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왼쪽은 아니네.”

이걸로 확실하게 왼쪽이 정답인 걸 알 수 있었다.

“…….”

“…….”

“주……인?”

“무서운 인간이다. 저 남자.”

지켜보던 정령수들은 물론, 바바리안들까지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 ⁕ ⁕

이후에도 충격적인 장면들이 이어졌다.

양자택일. 혹은 희생양이 필요한 과제들에선 어김없이 진혁의 술수가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미요오오!”

“켁! 케엑!”

바삭바삭하게 타버린 후라이드와 몸이 꽁꽁 얼어붙은 실피드.

타고남은 재로 ‘망할 주인놈’이라는 다잉 메시지를 남긴 살라맨더.

입에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해버린 고구마까지.

함께 동고동락했던 소중한 동료들이 쓰러져갔다.

“크읍.”

진혁이 화면 너머에서 눈시울을 훔쳤다.

당연한 말이지만, 손수건에 묻은 눈물은 한 방울도 없었다.

“그래도 모두의 자발적인 희생 덕에 거의 끝이 보이네.”

어느덧 산의 정상으로 가는 빛이 환하게 비췄다.

“오오오! 이제 다 온 건가?”

“역시, 외부에서 온 애송…… 아니, 인간을 믿고 따르길 잘했다!”

“근육은 형편없지만, 머리가 좋은 인간들이다!”

바바리안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끝이 거의 다 왔으니 배신을 하겠다…… 뭐 이런 뜻이리라.

하지만.

‘그 정돈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아무렴, 뻔히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걸 몰랐을까.

쿵! 쿵! 쿵!

“크르르…….”

3m에 이르는 근육질의 체구.

두 개의 대가리에선 연신 굵은 침이 흘러나왔다.

약 30마리에 이르는 ‘키메라 예티’.

바바리안들은 이쪽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놈들을 상대해야할 것이다.

“싸, 싸워라!”

“어린 전사들이여, 겁먹지 마라. 웅가루가 함께 할 것이다!”

“우리 족장 이름은 푸라닥이다.”

“맞다! 아무튼 겁먹지 마라!”

바바리안들도 이번에는 뒤에서 구경만 할 수 없다.

키메라 예티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모두가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곧바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막상 목숨이 걸리자 바바리안들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와 매섭게 타오르는 투기.

키메라 예티와 바바리안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쾅! 콰콰쾅!

“크오오오!”

“키에에에!”

피와 살점이 튀어오른다.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접전.

‘좋아, 딱 적절하네.’

진혁이 싸움을 관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치열할수록 조금 뒤에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승기가 완전히 바바리안들 쪽으로 기울었다.

애초에 기본 전력 차이도 비슷비슷했는데, 천유성과 테레사까지 가세했으니 당연히 급격히 승부가 날 수밖에.

진혁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이제 슬슬 타이밍이 됐는데…….’

분명, 이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치른 바바리안들은 반드시 공통된 증상을 보이게 된다.

“유성아. 그건 준비 다 해놨지?”

“그래, 막 싸움이 시작됐을 때 배치해뒀다.”

천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억. 허억. 허억…….”

“이제……한계다.”

“어서 빨리…… 지금 당장.”

거친 숨소리.

모든 전사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였으면, 30분 이내 단백질을 섭취해야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애써 운동한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지게 되리라.

그때였다. 모두의 시야에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가 들어온 건.

붉은 빛이 자르르 도는 속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기.

“저, 저건?”

“고기다!”

“프로틴!”

바바리안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먹음직스러운 단백질을 발견한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바리안들이 몸을 날렸다.

전투를 할 때보다 적어도 2배는 더 저돌적인 움직임이다.

우걱우걱!

모두들 미친 듯한 속도로 눈앞에 있는 고기를 쑤셔넣었다.

1분이라도 늦었다간 전신의 근육들에게 미안해질 뻔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문득, 가장 격하게 고기를 흡입하던 라이챠가 손을 멈췄다.

“크읍……?”

뭔가 이상하다.

“자, 잠깐, 모두 멈춰…….”

라이챠가 모두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머지에게서도 자신이 느꼈던 것과 동일한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효과는 빠르고도 강력했다.

“끄으으…….”

“꺼어어!”

“사, 살려줘.”

전사들이 배를 잡고 넘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

지금까지 단백질로 가득 차 있던 전사들의 머릿속엔 전혀 다른 소망이 자리잡았다.

화장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

일족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1초라도 빨리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장소가 필요하다.

바로 그때.

“이야, 다들 배탈이라도 났나 봐. 누군지 몰라도 음식에 아주 몹쓸 장난질을 해놨어.”

사악한 웃음소리가 키득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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