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뉴비-484화 (485/653)

484화. 바티칸의 내부로 (2)

대리석 바닥에 새겨진 문양.

그 중에서 문양과 문양이 어긋나 있는 부분이 있다.

“모기모기!”

고구마가 정확히 그 틈에 서서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쥐라도 물어온 고양이처럼 칭찬해 달라는 격한 제스처를 보내는 건 덤이었다.

“잘했어. 구마야.”

진혁이 고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곳엔 현재 4성급 결계 ‘왜곡된 시야’와 5성급 결계 ‘봉인’이 펼쳐져 있습니다.]

꽤나 귀여운 결계를 걸어뒀다.

제 딴에는 나름대로 공을 들인 것 같긴 한데…….

한 눈에 봐도 허술한 부분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고유 능력 ‘고대 결계’가 발동됩니다!]

가벼운 손짓 한 번에 결계가 그대로 사라졌다.

철컹! 쿠르르…… 쿠웅!

요란한 격철 소리와 함께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오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모험을 하는 기분이구나.”

“후우. 팔자 좋은 소리를 하시네요. 어쩌다가 바티칸이 이렇게 된 건지…….”

엘리스와 테레사가 각기 다른 감상을 늘어놨다.

그런데.

‘뭐지 이건?’

진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지하 통로 아래에서 느껴지는 마력.

바티칸에 있는 성유물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종류의 그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 성유물은 사용이 불가능한 반쪽짜리일 터.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을 텐데.

왠지 모르게 찜찜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가능하면 내 예상이 틀리면 좋겠는데…….’

스릉!

진혁이 두 자루의 단검을 꺼냈다.

“아마, 놈들도 아래에 뭔가 대비를 해뒀을 겁니다. 최대한 경계하면서 이동하도록 하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었기에, 내부는 곰팡이와 거미줄로 가득했다.

그렇게 얼마나 아래로 내려갔을까?

체감 상 지하 10층은 넘겼다고 생각이 들 무렵.

쏴아아아.

눈부신 빛이 모두를 맞이했다.

지하 감옥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

푸른 액체로 가득 차 있는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이었다.

과연, 만년필의 힘이 이 정도란 말인가.

보면 볼수록 최상층이랑 관련된 물건은 심상치 않다.

“으음.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테레사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두꺼운 갑주와 방패로 무장했기에, 물 속에선 호흡과 움직임이 제약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세요.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다양한 능력들을 복사하고 모아 놨다.

탑 상층부에 있는 호수도 아니고.

그저 담겨 있는 물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고유 능력 ‘해류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우우우웅!

수족관에 담겨 있는 물이 요동쳤다.

정확히는 진혁이 걷는 길을 따라 물이 갈라졌다.

“세상에나, 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 계열 랭커도 이런 수준은 꿈도 못 꾸는데…….”

“후후. 내 계약자가 엄청나긴 하지.”

“가시죠.”

“네?…… 네, 네!”

진혁을 선두로 엘리스와 테레사가 뒤를 따랐다.

⁕ ⁕ ⁕

그렇게 수족관 밑바닥에 도달했을 때였다.

“멈추십시오.”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백색 갑주에 바티칸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긴 장검.

전신을 완벽하게 감싼 신성력까지.

바티칸에 소속된 성기사가 틀림없다.

“화석들만 상대하느라 짜증났는데, 드디어 면상을 보게 되네. 아무리 초대받지 않고 왔다고 해도 손님 대접이 너무 박한 거 아니야?”

“불법으로 남의 땅에 들어와 놓곤 뻔뻔하군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이번 일은 한국에 정식으로 항의를 할 겁니다.”

“글쎄, 정부에서도 이 꼴을 보면 이해해줄 것 같은데? 오히려 탑 밖에서 이런 장난질을 쳤다는 게 알려지면 그쪽이 더 곤란해지지 않겠어?”

모르긴 몰라도 모든 국가의 공적이 될 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위험한 짓거리를 벌인 거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면 외부에 이번 일이 알려져선 안 된다…… 가 저희가 취하는 입장입니다.”

“죽여서라도 막겠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못할 것도 없죠. 만약 이곳이 바티칸이 아니었다면 당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이곳은 저희 안방입니다.”

성기사가 검을 앞으로 뻗었다.

“제 이름은 알폰소. 이곳에 있는 성기사들을 총 책임지고 있는 기사단장입니다.”

굳이 소개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제국에 있는 신성왕국으로부터 정식 기사작위를 받은 랭커의 이름쯤은 들어봤으니.

쿠쿠쿠쿠쿠쿠!

저 멀리, 물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크기가 1m가 넘는 대형 피라냐와 상어들이다.

특이한 점은 이들 역시 만년필의 영향으로 인해 평범한 어류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

“전부 뜯어 먹어버려라.”

알폰소가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키에에에!”

“캬아아아!”

양쪽에 있던 수백 마리의 피라냐와 상어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왼쪽은 제가 맡을게요!”

“하찮은 미물들 따위가.”

테레사가 성호를 그었다.

엘리스는 피로 만든 꼬챙이들을 소환했다.

서걱!

퍼퍼퍼퍽!

아무리 강화가 됐다 한들, 신성력을 극한까지 갈고 닦은 테레사와 한 종의 정점을 찍은 엘리스의 적수가 될 순 없다.

칼질 한 번에 피라냐의 몸통이 토막 났고.

엘리스의 꼬챙이에 상어의 몸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변했다.

“모기모기!”

고구마도 자신에게 덤빈 피라냐 한 마리를 양 손으로 끌어잡고 열심히 물어뜯었다.

“켁! 케에에에!”

피라냐가 온몸을 마구 바동거렸지만, 고구마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런데.

분명 토막을 내고 숨통을 끊었을진대.

잘린 몸통 사이에서 촉수들이 튀어나와 절단면을 이어 붙였다.

“키이이…….”

빠르게 회복되는 상처.

피라냐와 상어는 언제 당했냐는 듯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성유물 ‘아폴론의 방’이 발동됩니다!]

상처를 수복하고 죽을 때마다 성장하게 만드는 능력.

이것이 바로 성유물이 가진 힘이다.

“게다가 신께서 주신 이 신성한 마력이 있다면, 그 효과는 몇 곱절이 되죠.”

피라냐의 몸에서 검은색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퍼퍼퍼퍽!

엘리스가 곧바로 응사했지만, 아까와는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다.

작살에 걸레짝이 되었어야 할 것들이 촉수를 잃는 수준에서 버텨낸 것이다.

“이 방 전체가 성유물인 셈. 아무리 당신이라도 끝없이 강해지는 이 녀석들한테서 벗어날 순 없을 겁니다!”

알폰소가 자신만만하게 고함을 질렀다.

확실히 준비를 잘 해두긴 했다.

보통 대형 길드들이 일처리를 하는 걸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철저한 셈이지.

하지만 알폰소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

성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란 점이다.

우우우웅!

엘리스가 가지고 있던 보석이 눈부시게 빛났다.

[성유물 ‘태양왕의 눈물’이 발동됩니다!]

루비에서 흘러내린 한 방울의 새빨간 액체.

마치, 핏방울처럼.

떨어진 액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족관에 있던 물에 스며들었다.

이 성유물은 조금 특별한데…….기

체나 액체를 자신의 속성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컨트롤이 워낙에 까다로운 탓에 선택한 사람이 없었지만, 만약 제대로 능력을 사용할 줄 안다면 터무니없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서히.

물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단순히 색깔만 변한 게 아니다.

이 특유의 비릿한 철분향.

“피……라고?”

알폰소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핏물에 갇힌 피라냐와 상어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반면, 엄청난 양의 혈액을 다루게 된 엘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맴돌았다.

“후후후후. 짐의 오른팔에 흑염룡이 날뛰려 하는구나. 힘이 넘치다 못해 주체를 하기 힘들 지경이다.”

손가락이 까딱였다.

퍼퍼퍼퍽!

수백 개의 꼬챙이들이 일격에 수족관 전체를 난도질했다.

압도적인 위력.

피로 만든 폭풍이 이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것만 같다.

“키이이…….”

“켁……케에…….”

이번에는 재생조차 되질 않는다.

완벽하게 개방된 ‘블러드 로드’는 상처가 회복되는 자체를 막아버렸다.

“꽤 쓸 만하네. 헤헤.”

엘리스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목에 매단 루비를 바라봤다.

역시나 모든 성유물들 중에서 가장 끌렸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알 것만 같았다.

반면, 알폰소는 이 모든 게 한 편의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필승을 자신하던 성유물이 파훼됐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

소문은 과장되는 법이라 생각했건만.

완전히 반대였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힘은 오히려 한참이나 저평가되어 있었다.

“여기서…… 뚫렸다간 추기경님을 뵐 낯이 없어진다. 그럴 순 없어. 고작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 해선…….”

으득!

알폰소가 결심한 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제는 뒤가 없다.

“발동시켜라!“

"예!”

“명을 따르겠나이다.”

“신께서 기사단장과 함께 하시길.”

계속해서 몸을 감추고 영창을 하던 성기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식 다중영창.

성화(聖火) ‘샤이라이나’.

[성유물 ‘최후의 만찬’이 발동됩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와 12제자의 마지막 만찬이 가세했다.

여차하면 이 일대를 통째로 날려버리기 위한 성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카타콤의 천장 너머로.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그게 시작이자 끝이다.

콰콰콰콰콰콰콰!

대지를 통째로 태워버리는 듯한 열기.

한 줄기 섬광이 아폴론의 방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 ⁕ ⁕

치이이익!

지면을 따라 연기가 피어올랐다.

알폰소는 물론, 성기사들까지 전부 희생한 성마법.

그러나,

모든 게 증발되어버린 와중에도 피로 만든 구체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지막지한 공격이네. 설마, 거기서 자폭을 해버릴 줄이야.”

“제법 위력이 세긴 했지만, 짐이 있지 않느냐?”

“성기사분들이 어쩌다가 이런 짓까지……. 대체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엘리스 덕분에 모두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다.

루비에 담긴 마력을 대부분 소진하긴 했지만, 치명타를 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이다.

‘성기사들을 다 잃었으니 이제부터는 좀 쉽게 풀리겠네.’

추기경은 명예와 권위를 우선시 하는 직책.

전투에 능한 건 아니다.

마력의 파장으로 보아 만년필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느껴졌다.

고구마의 안내를 따라 카타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킥킥…… 살아 있는 인간이다.”

“육체…… 신선한 육체를 다오!”

“파라오에게 영광이 있으라!”

너덜너덜한 미라들이 길을 막긴 했지만,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걸 가장 초반에 배치해둔 탓에 이후부턴 제대로 된 함정들이 없었다.

그렇게 30여 분이 흐르자 세 사람은 카타콤의 최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배당과 비슷한 장소.

중앙에는 이곳에 온 목적인 만년필이 보였다.

물론.

“……왔군.”

“……큭.”

이번 일의 주범인 레이트만 트로치아 추기경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둔 건 전부다 박살냈는데, 어떻게, 끝까지 추하게 저항할 생각이야? 아니면, 우리 애들 얌전히 풀어주고 그것도 넘길래? 그렇게 하면 굳이 이번 일을 외부에 알리진 않을게.”

진혁이 싱긋 웃으며 협박 아닌 제안을 건넸다.

이제는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끝날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쉽게 풀릴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키신 대로 다 했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마, 맞습니다.”

갑자기 레이트만 트로치아가 고개를 조아렸다.

동시에.

저벅…….

기둥 사이에서 제3의 인물이 나타났다.

“어머니를 그렇게 괴롭혔던 인간을 드디어 직접 보게 되는군.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

이 목소리는 설마…….

두근! 두근! 두근!

빠르게 고동치는 심장.

온 몸에 신경들이 모조리 일어났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