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뉴비-499화 (500/653)

499화. ‘나폴레옹의 대관식’ (3)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앙!

지형이 바뀐다.

끝없이 쏟아지는 빛은 그야말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꿰뚫어버렸다.

“끄아아악!”

안젤라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럼에도 빛줄기는 조금도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이 튀고 뼈가 박살난다.

시간으로 치면 고작 30초 남짓이었으나, 융단 폭격에 가까운 빛줄기는 안젤라의 고유 능력을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

심지어 시간을 왜곡하는 고유 성창 역시 진혁의 공격을 방해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치이익!

지면을 따라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서열 5위 안에 드는 강자인지라 안젤라는 방금 전 공격에 죽지 않았다.

거의 죽기 직전의 꼴이긴 했지만.

“으으으…….”

안젤라가 넝마짝이 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정말로 간신히 사람의 형상을 유지한 거지. 의학적으로 본다면 생명이 붙어 있다고 말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키에에에…….”

귀신 역시 대부분의 팔이 다 뜯겨나간 채 괴로워했다.

그러나, 완전히 이빨이 다 빠진 건 아니었다.

살기 위한 희망을 버린 건 더더욱 아니었고.

안젤라가 한 줌 남은 마력을 긁어모았다.

‘분명, 날 죽이려고 다가올 거야.’

지금까지 해온 행보를 보건대, 멀리서 처리하는 게 아닌 직접 죽이는 걸 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는 뜻.

저벅.

예상대로 진혁이 거리를 좁혔다.

“크윽…….”

안젤라가 일부러 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저벅.

이제는 서로의 간격이 5m도 되지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오면…….

그렇게 손과 손이 서로 맞닿을 만큼이 되었을 때였다.

“……다 죽어간다고 얕봤구나!”

귀신의 몇 개 안 남은 팔에 들린 검이 예기를 발했다.

[안젤라가 고유 능력 ‘죽음의 무도회 - 흑련포화(黑萰砲火)’를 발동합니다!]

화르륵!

검 끝에 모인 검은색 불꽃.

드래곤의 브레스와 동급의 마력이 일점으로 모여들었다.

제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 해도 이 거리에서 흑련포화를 맞는다면 무사하지 못할 터.

그런데.

흑련포화보다 한 박자 더 빨리 새로운 기운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Lv??? ‘트리거 리액트’ - ‘그래비티 블랙홀’이 발동됩니다!]

둥! 둥! 둥! 둥! 둥!

귀신의 발 밑에 5개의 빛이 떠올랐다.

각각 다른 문양이 새겨진 오망성.

고대 룬어로 된 술식은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아무렴, 올드 가드나 되는 놈이 그리 쉽게 포기할까? 장난질을 칠 거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어.”

레인저는 단순히 총만 잘 다루는 게 아니다.

수색과 첩보 그리고…….

적의 활동 반경을 예측해 함정을 설치하는 것 또한 레인저가 지녀야 할 덕목이었다.

우우우웅!

흑련포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력이 응집됐다.

동시에.

귀신의 머리 위로 직경 10m 크기의 검은색 구체가 나타났다.

과거에 사용했던 능력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게 바로 이 ‘트리거 리액트’다.

오망성 안에 엄청난 인력이 나타났다.

“키에에에에!”

블랙홀은 모든 걸 빨아들인다.

설령, 그 대상이 빛이나 마력 같은 종류라 할지라도.

귀신의 거대한 몸이 머리 위에 나타난 블랙홀로 뒤틀려 빨려 들어갔다.

반쯤 발동되던 흑련포화 역시도 블랙홀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우드득!

우득!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였다.

그렇게 몇 초도 안 되는 찰나.

머리 긴 대전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덜덜덜!

완전히 혼자 남은 안젤라가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날…… 죽이면 정……말로 큰일 날 거다. 서열 5위…… 안의 올드 가드가 소멸한다면 니알라토텝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까지 구질구질한 목숨 구걸인가. 그것도 썩은 동아줄을 잡고 발악을 해대는 게 어이가 없네.”

“태, 태고의 존재……보고 썩은 동아줄이라고?”

안젤라가 말을 더듬었다.

감히 누가…… 그들을 보고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탑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신격들과 상급 관리자들조차 고개를 조아리는 절대자들.

그 누구도 50층이란 금역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천재지변을 마주하듯,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게 당연한 상식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남자만은 예외다.

‘두려워하고 있지 않아.’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이 아니다.

모든 것을 경험하고 그걸 뛰어넘은 자에게서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

체념과 달관의 경지에 이른 절대자에게서만이 뿜어낼 수 있는 경지다.

철컥!

격철이 움직였다.

“기…… 기다려! 그럼, 뭔가 다른 방식…….”

타앙!

깔끔한 총성과 함께 안젤라의 심장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컥…… 켁! 커억…….”

안젤라의 입에서 연신 헛바람 들이 마시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아무리 강한 괴물이라도 심장을 잃어버린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파츠츠!

대관식의 그림이 더욱 거세게 타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약 30초.

올드 가드 셋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분이 넘지 않았다.

진혁이 재빨리 엘리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

창백한 얼굴과 차갑게 식은 몸.

열기가 완전히 떠나기 직전의 모습이다.

‘아직 호흡은 있어.’

가냘프지만, 끊어지진 않았다.

진혁이 전투에 사용하던 마력을 전부 쓰러져 있는 엘리스에게 쏟아 부었다.

화르륵!

엘리스의 어깨로 남은 마력들이 빨려 들어갔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아직 약속한 것도 다 지키지 못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엘리스를 잃을 순 없었다.

진혁이 식은땀을 흘리며 엘리스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으응.”

엘리스의 눈꺼풀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드디어 의식을 차린 모양이다.

진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이 좀 들어?”

“계……약자? 난 분명…… 칼에 맞았는데 어떻게…….”

엘리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력한 성유물에 직격당해 쓰러진 게 마지막 기억.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눈을 감았고. 그렇게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살아서 계약자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이번 일이 다 끝나고 할게. 아직 반 정도만 온 거거든.”

진혁이 검게 그을리고 찢어진 그림을 바라봤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손상률 98.2%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장인의 솜씨나 혹은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한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제 더 이상 대관식의 힘을 빌릴 순 없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이다.

“미안해. 계약자. 그거 얻느라고 되게 고생했던 거잖아. 괜히 나 때문에……."

“괜찮아. 무사하면 그걸로 됐어.”

진혁이 엘리스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머릿속에선 이번 일에 들어간 각종 부대비용 등을 계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걸 회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도.

“…….”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엘리스는 얌전히 진혁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헤헤, 따뜻하구나.”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진혁이 혀로 아랫입술을 적셨다.

솔직히 말해 검을 한 번 휘두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엘리스를 치료하느라 남은 마력의 대부분도 소진했기에, 지금부터가 전투의 변곡점이 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 ⁕ ⁕

“…….”

“……!”

엘리스의 치료가 진행되는 사이, 엑센시온과 타미아가 한 발 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직까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전신을 가득 감싼 전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금…… 봤어?”

타미아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런 실력을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놀란 건 엑센시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의 제약을 풀어 본래 계층의 힘을 오롯이 발휘할 수 있게 된 지금.

인간들 중에선 적수 따위가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가주들조차 사냥할 수 있다고 알려진 올드가드 안젤라가 제대로 된 발악조차 하지 못한 채 죽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저 힘의 원천이 사라졌다는 거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그림 한 장.

분명 그걸 기점으로 힘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 지금 그 그림은 검게 그을리고 찢어진 상태.

다시 말해 조금 전 보여줬던 위용을 다시 발휘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설령 어느 정도 다시 사용이 가능하다 해도…….

‘상관없어.’

아공간에 보관 중인 최강의 성유물.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해둔 건 시스템의 제약을 푸는 것만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하겠다. 어차피 놈들에겐 더 이상 쓸 수 있는 카드는 없을 테니까.”

“그거 확신할 수 있는 거야? 만약 힘이 빠진 게 아니라면 고대룡의 뼈고 나발이고 간에 우리도 저 꼴이 될 거라고.”

“아니, 놈은 엘리스를 회복시키느라 남은 마력까지 죄다 써버렸다. 게다가…….”

엑센시온이 힐끗 하늘을 바라봤다.

이번 일을 뒤에서 모두 준비한 하스팅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젠장. 그럼, 먼저 지네들을 통해 간을 좀 봐야겠어. 진짠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잖아?”

“……알겠다.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니. 겸사겸사 몇 놈 정도는 피를 빠는 데 써야겠군.”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엑센시온이 다시 한 번 근처에 있는 블랙 카이저를 훑었다.

기왕이면 마력이 가장 많은 놈을 흡수할 생각에서다.

“또 다시 내 아이들을 희생시킬 생각인 것이냐?”

리어퀸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기려면 희생은 당연한 일 아닌가? 어차피 우리 제약을 푸느라 수백이 죽었는데, 몇 마리 더한다 해서 문제될 건 없다.”

“그거야…… 너희들 생각인 거고! 동맹을 맺었으면 응당…….”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아앙!

벽의 한쪽 면이 무너졌다.

“젠장, 내가 늦은 건가.”

돌쇠, 아니, 천유성이 나타났다.

“유성아!”

진혁이 반갑게 외쳤다.

그러나, 천유성은 진혁을 한 눈으로 넘기며, 목표물을 찾았다.

이곳에 온 건 빌어먹을 인도식 카스트 제도에서 탈출하기 위함.

더불어 바니걸로 취직이 될 가능성 또한 없애야 했다.

“저긴가!”

천유성이 즉각 리어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왕을 먼저 확보하는 쪽이 승리하기로 된 만큼, 최우선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른 이들도 진혁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천유성에게 대응하는 게 한 발짝 늦었다.

“뭐, 뭐냐! 네놈은!”

리어퀸이 기다란 낫을 소환해 휘둘렀다.

부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낫이 천유성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공격에 당할 천유성이 아니었다.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허를 찌른다.

최단 거리에 최속을 살린 기습.

검강을 끌어올린 천유성이 낫을 단칼에 쳐냈다.

카앙!

낫이 허공 위로 날아가 빙글빙글 회전했다.

“이걸로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은 끝이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었다.

만약.

카앙!

누군가가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천유성의 검이 단검에 맞고 튕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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