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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506화 (507/653)

506화. 질투의 원죄 & 최악의 상성 (1)

[칠죄종 '질투' - 베네티]

붉게 물든 상태창만큼이나, 원죄들 가운데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뿌리 깊은 죄를 관장하고 있는 자이다.

"계, 계약자?"

엘리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덜덜 떨리는 손.

눈앞에 있는 질투의 원죄가 너무나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여자의 옆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후후후. 이 이랑은 조금 전에 만났지만, 서로 잘 통하더라고. 나에게 한 눈에 반했다나 뭐라나?"

베네티의 하얀 손끝이 진혁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볼에서 목덜미로 그리고 가슴골까지.

진혁은 일말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마치, 이런 것쯤이야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빠직!

엘리스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구쳤다.

동공은 세로로 가늘게 쪼개졌다.

"너…… 너…… 너너너너! 미, 미쳤어? 진짜로 미쳤냐고!!!"

순간, 뿜어져 나오는 살기의 무거움은 마치 심해 속과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선혈이 파도가 되어 솟구쳤다.

쿠쿠쿠쿠쿠쿠쿠!

엑센시온에게 가주 자리를 빼앗겼을 때도 이토록 화가 나진 않았다.

아니, 살면서 지금껏 이토록 분노했던 적은 없었다.

영혼의 반쪽을 그대로 도려낸 것만 같은 허무함과 그걸 전부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은 질투심이 번갈아 몰아쳤다.

"잠깐만 기다려라!"

"엘리스 씨. 진성하세요! 아직 저 사람이 진혁 씨라는 보장은……."

천유성과 테레사가 만류했지만, 이미 엘리스에겐 사리분별을 할 이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영역에서만큼은 상식을 적용시킬 수 없었다.

죽인다.

누구를?

일단 감히 자신의 계약자를 유혹한 여우는 사형.

그리고 그 꼬임에 넘어간 진혁 역시 사형이다.

아니, 죽이면 다시는 볼 수 없으니 죽기 직전까지만 패고 또 다시 부활시킨 다음에 패고.

그 다음에 전신에 있는 피를 모조리 빨아버릴 생각이었다.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 때마다 계속해서.

파츠츠!

백금으로 만든 레이피어에서 핏빛으로 물든 강기가 넘실거렸다.

"죽어어어어!"

엘리스가 포효하며 날아올랐다.

동시에.

"역시 단순하네."

베네티의 보조개에 냉혹한 미소가 맺혔다.

[베네티가 Lv?? '표적 고정'을 발동합니다!]

엘리스의 눈동자에 아주 얇은 검은색 사슬이 나타났다.

표적 고정은 오롯이 한 명의 표적에게만 꽃히게 되는 힘.

주위의 다른 적에겐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된다.

질투심이 일정 수치 이상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일단 발동하기만 한다면 사기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터.

엘리스가 완전히 베네티의 술수에 걸려들었다.

콰콰콰쾅!

진혁의 분신체와 엘리스가 정면에서 충돌했다.

베네티가 날카로운 외날 혈조를 손가락 위에 꼈다.

"슬슬 가지고 놀아볼까."

대놓고 공격을 하더라도 엘리스의 시선은 진혁에게만 꽂힐 테니.

이제는 정말로 식은 죽 먹을 만큼의 수고만 더하면 될 것이다.

* * *

"어때?"

백발의 남자가 허공에 나타난 화면을 보며 키득댔다.

그곳엔 자신과 똑 닮은 놈과 엘리스 그리고 질투의 원죄인 베네티가 한데 어울려 혈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야이……씨……."

진혁이 속에서 나오는 욕을 조절하는데 실패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엘리스를 건드렸다간 뒷감당이 안 된다.

특히 이런 식의 장난질을 치는 거라면 후폭풍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큭큭큭. 이제야 좀 걱정이 되나 봐? 그래서 말했잖아. 재밌어질 거라고."

"하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오해를 풀려면 대체 뭘 해야 할까.

"우리는 안드리아만 무사히 돌려받으면 돼. 보니까 너희 쪽에서 노리는 건 정신병동이 아니라 나 같은데. 할말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해. 애먼 애들 잡지 말고."

"흐음. 뭐, 그렇긴 하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냄새 나는 인간들로 공격대를 조직한 것도.

굳이 한 입 거리밖에 안 되는 5층을 무대로 선택한 것도.

모두 진혁이란 대어를 낚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너하고는 꼭 대화를 나누고 싶었거든. 지금까지 참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어. 아…… 이건 원래 말하면 안 되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내가 누구 말을 듣는 성격도 아니고. 그리고 이편이 훨씬 더 재밌겠지."

남자의 손가락이 허공으로 향했다.

파츠츠츠!

'빙하천결'이 발동되자 공기가 얼어붙으며 얼음으로 만든 획이 그어졌다.

글자가 이어질수록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저 이름이 여기서 나온다는건 말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완성된 글자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종류였다.

'관짝송'.

방송 초창기에서 함께해온 시청자 중 하나였다.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얼얼하다…… 하는 말로는 형용하기에 한참이나 부족하다.

"네가…… 어떻게? 아니, 그보다……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 거지?"

길고 긴 BJ 생활.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며 그저 살아님기 위해 노력하던 하루의 연속이었다.

월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끼니도 밥 먹듯 거르던 궁핍한 삶이었단 말이다.

그걸 버티게 해준 유일한 원동력이 소수의 시청자들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 해주며 방송을 지지해준 고마운 이들.

비록 나중에 그들의 호의가 시련의 탑과 관련되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고마웠던 감정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오히려 적으로 나타날 줄이야.

진혁의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눈앞의 남자가 시청자 중 하나라는 건…… 곧 이 탑의 가장 깊숙한 베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

소위 운영자라 불린 이들 중 하나가 바로 관짝송이다.

"아니, 아까부터 정체를 궁금해하길래 알려줬더니 너무 쌀쌀맞잖아. 우리 진혁이 소 먹고 외양간도 먹던 그 시절의 추억은 벌써 잊은 거야?"

"추억이야 추억이지. 내 뒤통수만 치지 않았다면 마링야."

"너무 안 좋게만 보지 마. 나도 우리 진혁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거든. 이건 진짜야. 아니면 내가 괜히 이러헥 공을 들였겠어?"

"혓바닥 그만 놀리고 목적이나 말해."

"수리부엉이."

관짝송의 입에서 또 다시 심상치 않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움찔하고.

진혁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하나, 아주 잠시뿐.

곧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설프게 부정하려고 하진 마. 너희 둘이서 만났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것 가지고 뭐라 하려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멍청한 놈의 꾐에 빠지지 않도록 도우려는 쪽에 가깝지."

"내가 볼 땐 네가 더 멍청한 쪽에 가까운 것 같지만…… 일단 들어는 볼게. 말해봐. 어째서 내가 너희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수리부엉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탑의 정상을 탈환하는 거야. 과거 네가 탑의 정상을 봤던 것처럼 현실이 된 지금 다시 한 번 등반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물색하고 있지. 당연히 네가 첫 번째 후보고."

관짝송이 말문을 뗐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로.

"하지만, 과연 그게 현명한 짓일까?"

"탑을 오르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거냐?"

"이미 탑은 완벽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각 세력들이 알력다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전체를 놓고 보면 사소한 문제지."

몇몇 세력이 멸망하더라도 그 자리는 새로운 세력들과 랭커들이 메우게 되어 있다.

소멸과 탄생을 반복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당연히 그 정점에 군림하는 포식자들은 전체적인 피라미드가 무너질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이 너무도 만족스럽고 달콤했으니까.

"우리랑 함께하자. 그럼, 인류의 존속이니 뭐니 하는 공포에서 해방시켜 줄게. 앞으로는 다른 신격들이나 보스몬스터들이랑 층계 공략 때문에 씨름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잔 푼돈에 불과한 성유물이나 아이템들 때문에 끙끙대지 않아도 될 테고."

매력적인 제안이 이어졌다.

생존의 보장과 막대한 영광.

무엇보다 원하는 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백지 수표는 거절하기엔 어려운 조건이었다.

"물론, 거절해도 상관없어. 그럴 수가 있다면 말이야."

관짝송의 시선이 힐끗 허공에 떠 있는 스크린으로 향했다.

베네티의 능력에 당한 엘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게다가.

스윽.

관짝송의 손짓에 얼어붙은 동상이 나타났다.

거대한 얼음 속에 갇혀 있는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영역을 지키려 했는지, 다수의 여우불을 소환한 상태였다.

그것까지 통째로 얼어붙긴 했지만.

"안드리아……."

진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말이 권유지.

사실상 손발에 족쇄를 다 채우고 협박을 하는 셈이다.

정확히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쥐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양자의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뿐.

"나는……."

진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 *

[Lv??? '사상붕괴(事象崩壞)'가 발동됩니다!]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

보라색 부유물들이 역으로 하늘 위로 솟구치며, 중력과 법칙이 사라진 세계가 펼쳐졌다.

바로 그때.

[Lv??? '영겁의 시간'이 발동됩니다!]

무너지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멈췄다.

시간 자체가 멈춰버린 것처럼.

끝없이 내리쬐던 햇빛마저 영원의 한 조각을 장식했다.

"제법이네. 예전부터 느꼈지만, 그 찰거머리 같은 집념은 놀라울 정도야."

그림자 속에 있던 남자가 손뼉을 마주쳤다.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이군. 나 역시 지겹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부딪쳐야 하지 어쩌겠나?"

수리부엉이가 양 손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절대자들의 대결.

하지만, 그 싸움도 이제 머지않았다.

"이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이제 그만 그 고집 좀 버리고 편해지라고."

이미 수백 번이 넘게 이어진 싸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울의 추는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것도 매우 급격히 말이다.

"이미 당신 쪽에 있던 이들 중 상당수가 나에게 붙었어. 뭐가 이득인지 그리고 당신들이 꿈꾸는 일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상인지를 깨달은 탓이지."

이제 머지않았다.

탑의 뒤에서 활동하던 운영자들은 모두 등을 돌리거나 죽을 것이고.

옳은 선택을 하는 이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직 아니야."

수리부엉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을 어지간히도 믿나 봐?"

"물론이다."

'안 됐지만 수리부엉이. 네가 바라는 미래는 없을 거야. 이미 우리 쪽 친구 하나가 강진혁에게 접근했거든."

"……접근이라면 설마?"

"그래. 과거엔 네 동료였던 관짝 친구가 움직였어. 게다가 골칫거리 엘리스에겐 칠죄종이 붙었으니 마지막 변수까지 모두 사라질 거야."

남자의 손끝에 하얀 빛이 점멸했다.

모든 걸 꿰뚫어버리는 마의 섬광.

수리부엉이가 자세를 잡았다.

"너야말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구나."

우우웅!

보라색의 기운이 모이더니 이내 검의 형태가 이루어졌다.

"내가 아는 강진혁은……."

탑의 1층부터.

탑의 정상까지.

그 모든 시간을 옆에서 지켜봤던 고인물이라면.

"절대 등반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누구보다 탑을 잘 알기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 탑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녔기에.

불가능하다 여겼던 수많은 관문들을 통과한 것이다.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재밌네. 뭐, 좋아. 어차피 결과는 곧 나올 테니까."

남자가 손끝에 모았던 마력을 한순간에 방출했다.

곧 모든 게 하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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