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화. 질투의 원죄 & 최악의 상성 (3)
“어……?”
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세 명의 동료들이 광기에 젖은 채 덤벼들었으니까.
베네티의 능력이 극상성에 위치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보다 훨씬 더 최악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 명쯤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게 질투심에 눈이 먼 놈들만 가득한 건지 모르겠다.
진혁이 신물을 속으로 삼켰다.
아무리 강하게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저 셋을 상대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저렇게 광기에 젖은 상태라면 더욱더.
그렇다면…….
‘닿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해.’
진혁이 재빨리 관짝송의 위치를 파악했다.
유일하게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관짝송과 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선 시간을 벌어줄 희생양…… 아니, 동료들이 필요하다.
“운디네…… 티본!”
진혁이 5대 정령수들을 소환했다.
“주인, 무슨 일…… 꺄아아악!”
운디네가 나오기 무섭게 하늘로 빙글빙글 날아가 버렸다.
“우아아악!”
“도, 도망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나머지 정령수들도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박살이 나버렸다.
“기억할게…….”
하늘의 별이 된 운디네와 정령수들에게 잠시 묵념을 한 진혁이 이번엔 티본을 불렀다.
갑주로 단단히 무장을 한 언데드 병사가 자세를 갖췄다.
“달그락. 마스터! 내가 왔으니 걱정하지…… 쿠에에엑!”
물론, 등장 신만 그럴듯할 뿐이었다.
운디네보다 더 멀리 날아간 티본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죽기 싫으면 다 꺼져!”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엘리스를 막아내기엔 터무니없이 역부족이었다.
마력 소모가 커서 가능하면 쟤들로 막으려 했는데.
이렇게 되면 더욱 강한 애들을 꺼내는 수밖에.
“모기! 후라이드!”
진혁이 아공간에서 새로운 지원군들을 불렀다.
“모오오기!”
“미요!”
두 마리의 고대종들이 진혁의 부름에 응답했다.
“최대한 버텨줘. 나중에 마정석 배터지게 먹게 해줄게.”
“모기모기?”
고구마가 엘리스와 진혁을 번갈아 바라봤다.
항상 사이좋게 지냈던 둘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고구마에게 일일이 설명할 시간 따윈 없다.
브레스를 퍼붓더라도 저 찰거머리 3인방을 떼어내는 게 관건이었으니까.
[고구마가 Lv13 ‘피어’를 발동합니다!]
“모오오기이이이!”
오직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
모든 생명체에게 경외심과 두려움을 심는 피어가 울려 퍼졌다.
“미요오!”
후라이드가 열기로 만들어낸 토네이도 역시 추격을 더디게 하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 ⁕ ⁕
“휴우. 진짜 이것도 못할 짓이네.”
귀찮은 3인방을 떨궈내자 비로소 관짝송과의 승부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먼저, 굳어버린 몸부터 좀 녹여볼까.
[고유 능력 ‘태양의 성역’이 발동됩니다!]
이집트 신화의 능력이 발동되자. 차갑게 얼어붙었던 대지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쿠쿠쿠쿠쿠!
서로 다른 상극의 능력이 맞부딪치자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얼음이 부서지며 그 자리에 대신 야자수가 가득한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물론, 관짝송의 빙하천결로 인해 오아시스의 절반가량은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이동속도 저하가 일부 해소됩니다!]
상태 이상을 해소하기엔 충분하다.
‘좋아.’
몸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걸 확인한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 뭐야?”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살기.
콰앙!
아슬아슬하게 세 명의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어딜 도망가! 왜 내가 아니라 저런 여자를 선택한 건지 말해! 해명하라고!”
엘리스가 즉각 ‘블러드 스피어’를 꺼냈다.
저 녀석은 해명을 하라는 건지 아니면 꼬챙이로 꿰뚫어 죽이겠다는 건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동공이 나가버린 걸 보니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듯싶지만.
“대결을 피하지 마라! 강진혁!”
천유성 역시 검을 뽑은 채 단숨에 뒤를 쫓아왔다.
저 찰거머리야 질투의 능력에 당하든 당하지 않았든 원래 멍청한 놈이고.
“저도…… 이번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뭘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테레사도 이성의 끈을 놓은 상태.
고구마와 후라이드의 포위망이 뚫릴 정도니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가늠이.
“흐음. 아무래도 네 친구들이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네가 데려온 질투의 원죄인지 뭔지 하는 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보니까. 니알라토텝 쪽에서 짠 작전 같은데, 왜 너 같은 놈이 그런 놈의 명령에 따르는 거지?”
“그 편이 가장 효율적으로 보였거든. 네 동료들이 하나같이 너에게 결핍을 느끼고 있는 것도 재밌어 보였고.”
“성격 나쁜 건 여전하네.”
“칭찬으로 듣지.”
관짝송이 어깨를 으쓱였다.
여유가 넘치는 말투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기에 보일 수 있는 거겠지.
파츠츠……!
진혁의 손끝에 얼음이 맺혔다.
레벨 20에 이른 ‘빙하조형’에서 지독한 한기가 일어났다.
“빙계 능력으로 날 상대하려는 거냐?”
“얼음 땡을 고른 이상 이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너무 실망하진 마. 나름 준비한 한 수가 있거든.”
“하하하! 다른 놈도 아니고 네가 말하니 기대되네.”
관짝송이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내뱉었다.
십여 년의 세월.
진혁을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하고 허를 찌르는 게 고인물이 보여준 최고의 드라마였으니까.
파팟!
진혁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앞, 뒤, 그리고 옆.
고속으로 이동하며 틈을 찾는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한 명의 암살자 같았다.
‘저걸 보고 누가 원거리 딜러라 생각하겠어.’
관짝송의 눈동자가 진혁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였다.
보고 쫓는 게 아닌,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진혁을 보면서 행동패턴을 예측한 것이었다.
‘뭐가 됐든 조심하는 게 좋겠지.‘
아무리 유리하더라도 굳이 틈을 보여줄 이유는 없었다.
[빙하천결 ‘설관(雪棺)’이 발동됩니다!]
눈송이들이 모여 직사각형 형태의 관을 만들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은 얇지만,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외부에서의 충격을 분산시키는 능력만큼은 방어 계열 능력 중에서도 최상위에 손꼽혔기 때문이다.
진혁이 양 단검의 끝에 냉기로 이루어진 강기를 끌어모았다.
[‘빙하조형’, ‘만년설’이 발동됩니다!]
공기마저 얼려버릴 듯한 새하얀 검신이 더욱더 주위를 백색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무슨 얼음 조형을 하든 이 벽을 뚫을 순 없을 것이다.”
관짝송은 그걸 눈앞에 두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두 개의 검이 관짝송의 얼음 벽에 닿았다.
쩌저저적!
냉기와 냉기가 만나 더욱 지독한 한기를 뿜어냈다.
“소용없다니까.”
관짝송이 혀를 끌끌 찼다.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칼은 표면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음?”
뭔가 이상했다.
위화감을 느끼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진혁의 능력이 빙하천결의 하위라고 하더라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하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적어도 약간의 흔적이라도 남겨야 정상이었는데…….
“……설마?”
관짝송의 입에서 묘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빙하조형으로 만들어낸 만년설이 오히려 설관의 벽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빙하조형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면 시간이라도 좀 벌어볼까 해서.”
애초에 방어를 위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설관 위에 냉기를 덧씌웠다.
아무리 얼음 계열 능력을 잘 다루는 관짝송이라 해도 혼합된 냉기를 솎아내는 건 쉽지 않을 터.
이걸로 몇 초는 벌었다.
[고유 능력 ‘만다라’가 발동됩니다!]
관짝송의 발바닥에 황금색 한자가 나타났다.
기이한 기운이 스며들며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식으로 내 발을 묶다니…… 확실히 재미있는 시도인 건 인정하지. 하지만, 고작 이런 걸 쓰기 위해서 시간을 벌었다는 거냐?”
관짝송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이다.
만다라 따위로는 백년을 때려도 빙하천결에 흠집조차 내지 못할 거라는 걸.
그러나, 관짝송이 이죽이건 말건. 진혁은 연이어서 또 다른 능력을 발동시켰다.
[고유 능력 ‘괴력난신(怪力亂神)’이 발동됩니다!]
진혁의 등 뒤로 네 개의 손이 나타났다.
한 개로 안 된다면 두 개를.
두 개로 안 된다면 네 개의 힘을 중첩시키면 될 뿐.
“겉으로 하는 방어 따위는 소용없어.”
네 개의 손끝에 검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무리 외부의 충격을 잘 분산시키는 방패라도.
방어구의 내부를 직접 타격하는 능력에는 취약할 터.
[‘패도의 왕관’을 착용했습니다.]
머리 위에 나타난 왕관의 능력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치들을 상승시켰다.
마력과 마력이 폭풍이 되어 결집했고. 이어진 폭풍은 이내 질풍이 되었다.
일보.
진혁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동시에 네 개의 팔이 앞으로 뻗었다.
‘천혼침련경(天魂侵聯競)’
콰아아앙!
얼음의 외벽을 뚫고.한 줄기 파동이 내부를 꿰뚫었다.
이건 아직까지 과거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천마의 독문무공이다.
⁕ ⁕ ⁕
후두둑…….
설관의 외부에 생긴 균열에서 몇몇 얼음 조각들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네.”
진혁이 얼음 속에서 나오는 관짝송을 보며 자축의 박수를 보냈다.
얼음 땡의 유일한 승리 조건은 ‘신체 접촉’.
그 규칙대로 관짝송의 몸에는 선명한 네 개의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었다.
“침투경……의 상위 버전까지 익혔을 줄이야. 네 개의 팔로 분할했으면 사용하기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을 텐데.”
관짝송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이 정말로 패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얼굴을 한 채.
“나도 마냥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약속은 지켜. 다른 건 몰라도 먹튀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너?”
진혁이 말을 끝낸 바로 그때.
“약속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설마, 이대로 싸움을 끝낸다는 건 아니겠지?”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질투의 원죄인 베네티였다.
“넌 빠져 있어.”
“빠져 있긴. 우리가 한 계약은 이게 아니었잖아. 당신이 그 강진혁인지 뭔지 하는 녀석을 포섭하고 대신 나머지는 전부 주기로! 만약 이 일을 ‘그자’에게 말하면 당신, 뒷감당할 수 있겠어?”
“닥치……라고. 한참 좋은 기분 망치지 말고.”
관짝송의 손바닥이 베네티에게 향했다.
베네티의 입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읍…… 으으읍!”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번엔 조용히 물러나도록 하지. 잔소리는 조금 듣겠지만, 대신 그만큼 재미는 봤으니까.”
관짝송이 어깨를 으쓱했다.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그럼,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명심해. 그땐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야.”
“가기 전에 잠깐.”
진혁이 게이트 너머로 가려는 관짝송을 붙잡았다.
"저 여자가 말했던 ‘그 남자’. 수리부엉이도 언급했던 것과 동일한 놈 맞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인물이라던.”
현실이 된 시련의 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변수.
베일에 숨겨진 놈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