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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574화 (575/653)

574화. 동이 틀 무렵 (3)

헤라클레스가 태산처럼 선 채 다가오는 진혁을 바라봤다.

“멀고 먼 길을 돌아 드디어 네놈과 맞붙게 되는구나.”

이전에도 몇 번이나 싸울 기회가 있었지만, 온갖 방해로 인해 대결은 무산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이제는 외길에서 만났으니까.

단 한쪽만이 살아남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저벅.

진혁이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지척에서 멈춰 섰다.

거리상으로는 약 10m.

하나, 헤라클레스의 도약력을 고려한다면 0.1초도 안 되는 찰나밖에 벌지 못한다.

“호오….”

서슴없이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묘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러왔건만.

그중에서 누구도 감히 자신에게 이토록 자신감을 보이는 놈은 없었다.

북유럽 최강의 신 중 하나인 토르라 할지라도 거리를 주는 건 최대한 피했으니까.

“설마, 그 작은 단검과 이쑤시개 같은 창으로 내 몽둥이를 막아낼 생각은 아니겠지?”

헤라클레스가 특유의 무기를 어깨에 걸쳤다.

육중하다 못해 무식해 보이는 몽둥이다.

스치기라도 했다간 뼈도 못 추릴 거다.

“글쎄, 그런 크고 느려터진 쇳덩이야 안 맞으면 그만 아닌가?”

“느리다라… 어디 그 몸뚱이로 시험해 보겠느냐?”

“얼마든지.”

진혁이 생긋 웃었다.

쿠쿠쿠쿠쿠!

서로 다른 마력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순간.

콰앙!

헤라클레스의 몸이 사라졌다.

덩치를 무색하게 할 만큼 엄청난 속도의 쇄도다.

횡으로 가로지른 몽둥이가 단숨에 진혁의 허리로 향했다.

부우웅!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뒤를 이었다.

진혁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즉시 단검을 찔러 넣었다.

카가각!

……얕다.

검강까지 발현시켰건만, 칼날이 피부의 표면을 살짝 긁는 데 지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호신강기가 펼쳐져 있는 게 이런 건가.

“쳇.”

혀를 차기도 전에 헤라클레스의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이번엔 주먹.

단검을 찌르느라 한 턴을 썼기에, 완벽하게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진혁이 반사적으로 서리혼령의 창에 마력을 주입했다.

[서리혼령의 가호 -‘설원의 크레바스’가 발동됩니다!]

쩌저적!

진혁의 앞에 두꺼운 얼음벽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지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틈이 생겨났다.

“……!?”

헤라클레스가 균형을 잃었다.

덕분에 주먹의 위력 역시 반감되었다.

콰아앙!

주먹과 얼음이 충돌했다.

곡예에 가까운 방어를 펼쳤는데도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꿰뚫었다.

한 번에 의식의 끈을 놓아버릴 정도의 파괴력이다.

“큭!”

진혁이 입술을 꽉 깨문 채 ‘툼그레이브’의 오른 팔과 다리를 꺼냈다.

검게 물든 팔과 다리에 흑염이 피어올랐다.

고유 성창 ‘페이즈 2’까지 사용하자 외형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

헤라클레스의 눈동자가 묵직해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그 불길한 흑염째로 박살내 버려 주마!”

또다시 몽둥이가 정수리로 향하려던 바로 그 순간. 진혁이 상대의 힘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훤히 드러난 품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투쾅!

헤라클레스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등 뒤로 퍼져나간 충격파로 인해 몇십 미터밖에 있는 나무들까지 쓰러졌다.

콰아앙! 퍼억!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연타.

명치와 심장 그리고 안면의 급소만을 노렸다.

기세를 몰아 진혁이 헤라클레스의 복부에 창을 갖다 댔다.

서리혼령의 창끝에 맺힌 시린 냉기.

육망성으로 이어진 고대 마법진들이 연이어 빛을 발했다.

점과 점이 선으로 연결되며 순백의 눈과 얼음이 완전히 개화했다.

파츠츠!

모든 걸 얼려버릴 듯한 혹한의 일격이 뿜어져나왔다.

일대의 기온이 바뀌며 공기 중의 수분마저 얼어버렸다.

피하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크으…읍!”

쩌저적!

헤라클레스의 몸이 통째로 얼음 기둥 속에 갇혔다.

⁕⁕⁕

“괴, 굉장하네요.”

“이게 진혁 님의 전투인가요.”

테레사와 안드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두 괴물의 싸움을 관전했다.

이미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절대자들의 대결은 자신들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가 말린다.

천유성 역시 분한 듯 어금니를 잘근 깨물었다.

‘빌어먹을….’

고유 성창을 개방함은 물론, 디오니소스 마저 1:1로 쓰러뜨렸다.

이제는 탑을 지배하는 절대자들과도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장하고 강해져도….

저 고인물을 상대로 이긴다는 경우의 수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이제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격차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두둑! 콰드득!

완전히 가뒀다고 생각했던 얼음 기둥에 균열이 일어났다.

곧이어 거대한 얼음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제법이군.”

헤라클레스가 몸에 묻은 얼음 가루를 툭툭 털어냈다.

약간의 충격을 받긴 했지만, 투기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타이탄들과 싸우는 동안 아쉬웠던 걸 풀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잔뜩 달아오른 상태다.

“이야. 나름 공을 잔뜩 들인 한 수였는데, 설마 이렇게 쉽게 벗어날 줄이야. 올림포스의 최강자라는 말이 사실이긴 한가 봐.”

진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런데.”

물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 올림포스가 가장 위급할 때 선두에 나서는 당신이… 어째서 이토록 찬밥 취급을 당하는 거야?”

“내가 찬밥 취급을 당한다고?”

재차 공격하려던 헤라클레스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잔잔하던 수면에 파동이 일어났다.

진혁이 조금 더 큰 조약돌을 준비했다.

“그렇잖아. 타이탄들로부터 올림포스를 지켰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뿐. 어디까지나 파수꾼으로서 그리고 덜떨어진 반신으로서 이용당할 뿐이지. 그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받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더 이상 그 뚫어진 입으로 지껄인다면 곱게는 못 죽을 줄 알아라. 네놈이 대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알아.”

“뭐?”

“네가 원치 않게.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헤라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도. 그 누구보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했다는 것도. 언제나 약자들을 위해 싸우고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헤라클레스라는 반신은 골칫덩어리로 있어 줘야만 했으니까.

힘은 세지만, 무식하고 누군가가 이끌어줘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니까.

신화에는 그렇게 기록된 것뿐이다.

“그걸 어떻게….”

헤라클레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지금껏 그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던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알면서도 쉬쉬한 채 모른 척했던 거지만.

“나와 함께 한다면 지긋지긋하게 이용당하는 걸 멈추게 해주겠어. 네가 살고 싶은 대로 네 의지대로 말이야. 물론. 당신 곁엔 가족들도 함께 있을 거고.”

헤라클레스의 아내와 아이들은 죽지 않았다.

스틱스 강을 넘기 전 하데스가 볼모로 잡아 가둬둔 것이다.

그 이후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의 충실한 손발이 되어 온갖 궂은일들을 처리해 왔다.

또다시 가족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

진혁의 말이 계속됨에 따라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대영웅의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본다.

너무 놀라 입까지 쩍 벌린 채 굳어버렸으니까.

‘당황스럽긴 하겠지.’

난데없이 나타난 인간 한 명이 내부 사정을 주신보다 더 잘 꿰고 있었으니.

믿음과 의심으로 혼란스럽겠지만, 어차피 선택은 정해져 있다.

헤라클레스로서는 절대 이 미끼를 포기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올림포스의 최고신이 당신의 망언에 기함합니다!]

[헤라클레스에게 뱀의 혓바닥에 넘어가지 말라며 엄중히 경고합니다!]

파츳…!

파치칙!

하늘에서 다수의 아스트라페가 점멸했다.

“아버…지?”

헤라클레스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저 많은 수의 아스트라페가 전부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헤라클레스와 달리, 진혁의 표정에선 일말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흐음. 이번에도 또 번개를 던지려고? 하데스 때 했던 것처럼 나와 함께 자기편까지 다 쓸어버릴 생각인 건가?”

지금 저 위에선 제우스뿐만 아니라 나머지 주신들도 함께 있다.

당연히 저 능구렁이 같은 놈이 하데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진 않았겠지.

기껏해야 당시에 함께 있던 헤르메스.

한 명이 전부이리라.

[올림포스의 최고신이 근거 없는 헛소리는 자제하라 합니다.]

[헤라클레스에게 돌아올 것을 강력히 명합니다.]

번개들이 일제히 불타올랐다.

이 이상 회유를 계속한다면 다 쓸어버리겠다는 협박이다.

헤라클레스를 잃을 바에는 나머지 주신들의 신뢰를 버리겠다는 소리기도 했고.

“뭐, 첫날은 이 정도로만 해두지. 이런 길목에서 네 번개를 상대하고 싶진 않으니까.”

“잠깐, 이대로 물러간다고?”

“진심이세요 진혁 님?”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포기한다는 말에, 지켜보던 동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봐도 회유까지는 한 걸음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하긴 애들 눈에는 이게 안 보일 테니 그럴 수 있겠지.’

적과 싸우는 데 있어.

아니, 시련의 탑을 오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복사 조건: 헤라클레스는 평생 올림포스에게 이용만 당했습니다. 그런 대영웅의 몸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면 그가 가진 고유 성창과 고유 능력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선결 조건으로 가족들의 자유를 먼저 확보해야 하며, 제우스에 대한 헤라클레스의 적대치 역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단 적대치도 좀 올리고 가족도 구하든지 한 다음에 회유해야겠네.’

올림포스가 북유럽과 운명을 걸고 싸우든.

어떤 주신이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든.

솔직히 말해 그딴 건 이쪽의 알 바가 아니다.

신파극이야 뷰튜브만 쭉 돌려봐도 종류별로 넘쳐났으니까.

‘중요한 건 맛있는 능력을 어떻게 복사할 수 있느냐는 거지.’

헤라클레스의 고유 능력 ‘12개의 과업’.

이걸 거신족인 ‘툼그레이브’의 능력과 융합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혁이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헤라클레스의 마음을 흔드는 것 외에도 이곳에서 달성해야 할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똑똑히 들렸겠지?’

이토록 난리를 쳤으니 틀림없이 눈치챘을 거다.

그리고 아마….

오늘 밤쯤이면 누군가 찾아올 것이다.

“이만 가자. 해야 할 건 다 했어.”

남은 건 물고기가 미끼를 물도록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뿐이다.

⁕⁕⁕

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곳에는 하룻밤을 보낼 곳이 제법 많았다.

조금 다듬기만 하면 말이다.

물론. 정령수들을 비롯해 든든한 일꾼들이 넘쳐났으니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헤엑. 헥….”

“주인. 진짜 나 죽는다. 봐 봐.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어. 이거 보여?”

“모기이이….”

“미요오오오…!”

“그냥 움막도 아니고 3시간 안에 욕조에 화장실 4개랑 방 4개 달린 집을 어떻게 만드냐고!!”

“냉장고야 얼리면 된다고 쳐도 공기 청정기라는 건 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절규가 터져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기각이다.

진혁이 선글라스를 낀 채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다.

“퇴사 마려우면 언제든지 말만 해. 부담 갖지 말고.”

“정말이야?”

“그러엄. 사직서 쓸 때 쓸 펜이 없으니까 여기 이 검으로 쓰면 돼.”

발뭉의 칼날이 서슬 퍼런 예기를 뿜어냈다.

“그, 그걸로 어떻게 쓰란 거야? 잉크 같은 것도 따로 없는데?”

어떻게 쓰긴.

“한 번 푹 찌르면 잉크가 콸콸콸 쏟아져 나오니 그런 부분은 걱정 마. 어디 얼마나 진한 잉크가 나오는지 시험해 볼래?”

“……히이익!! 여, 열심히 할게. 나 집 짓는 거 정말 좋아해. 그치?”

“맞아맞아.”

“강남 저리 갈 정도로 멋진 집을 지어볼게!”

“모기모기!”

다들 열의를 가진 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질 무렵 근사한 저택이 완성되었고. 피로를 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어둠 속.

화르륵!

희미한 바람이 불어와 모닥불의 불길을 흩뜨렸다.

긴 두건으로 전신을 완전히 감싼 모습.

낯선 방문자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거처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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