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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589화 (590/653)

589화. 최악의 아포칼립스 (4)

“헉… 허억. 헉.”

“주, 죽을 것 같습니다. 마더.”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야지. 이러다간 탈진해 버릴 겁니다.”

‘마더’를 따르는 바운티 헌터들이 죽는 소리를 내뱉었다.

벌써 몇 시간째 쉬지도 못하고 달리며 전령 노릇을 하는 상황.

진혁이 남긴 메시지 중 절반가량은 전달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알겠다. 잠시 쉬어간다.”

마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이잉!

게거품을 물던 말이 비로소 잠시 쉴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달렸다간 그대로 쓰러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마더가 길고 긴 양피지를 꺼냈다.

그곳엔 진혁이 하라고 지시한 내용들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무림은 이걸로 다 전달했고….”

십만대산의 천마가 있는 본거지.

그곳에서 ‘월영’이라는 인물에게 도움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진혁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움직이는 걸 보니….

‘확실히 주변 인물들에게 신뢰를 많이 사는 인물은 맞나보군.’

층계와 층계를 이동하는 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 역시 모두 진혁 쪽에서 감당한다고 했다.

비록 당장 돈이 없어서 외상을 한다고 하긴 했지만, 확실한 보증을 받아둔 상태다.

‘저런 신뢰 받는 인물이 설마 사기를 치진 않겠지.’

마더가 품에 있는 또 다른 각서를 꺼내 읽고 또 읽었다.

[나 ‘플레이어 강진혁’은 위대하신 레인저 ‘사멸자’님의 이름을 걸고 3일 이내 모든 비용과 30%에 해당하는 이자를 마더에게 지불할 것을 약속함.]

그래.

그럴 리는 없을 거다.

“그대 역시 강진혁을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응. 그 사람은 믿고 따를 만해. 99.92% 확률이야.”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강자였다.

그 옆에는 전령 역할을 한 고구마라 불린 검은색 드래곤 역시 함께 있었다.

“그럼, 나 역시 그자를 믿고 따라도 되는 거겠고?”

“…….”

“모기모기.”

프레이는 침묵했고 고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 느낌이 쎄하다.

“이봐?”

“……당신이 뒤통수를 맞지 않지 않을 수도 있지 아니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그렇지만 동시에 슈뢰딩거의 고구마가 될 수 있는 확률은 92.25%야. 응. 아무튼 높아.”

뭔가 애매하게 확률이 내려간 것 같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확률이다.

“모기모기!”

프레이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입 속에 넣은 고구마도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노란색 눈을 반짝이며 믿으라는 듯 꼬리까지 살랑거렸다.

찜찜한 마음이 더욱 커졌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마더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아닐 거라 스스로를 속이면서.

“다음으로 이동한다.”

30층에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케이시’와 ‘주드로’. 그리고 일곱 개의 대죄 중 하나인 ‘나태’에게다.

***

철컥!

또다시 격철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근육이 수축되고 심장 박동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엘리스가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를 발동합니다!]

엘리스가 피로 만든 장막을 펼쳤다.

타앙!

또 다시 총성이 울려퍼졌다.

직선 궤도로 달린 한 줄기 섬광이 대기를 꿰뚫었다.

퍼퍼퍽!

“큭!?”

엘리스의 입에서 헛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막이 관통되면서 엘리스의 어깨에 바람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마저도 실드를 통해 궤도를 틀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당한 것은 어깨가 아니라 심장이 되었을 것이다.

“괜찮아!?”

진혁이 고함쳤다.

“이까짓 상처쯤은… 끄떡없느니라.”

엘리스가 가볍게 손으로 어깨를 어루만졌다.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큰 데미지를 입은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자존심에 난 스크래치였다.

곧바로 얇은 핏줄기들이 꼬여 기다란 꼬챙이를 만들었다.

무려 세 자릿수의 최상위 공격 스킬.

압축에 압축을 거듭해 만들어진 블러드 스피어가 사멸자를 향해 쇄도했다.

파아앙!

음속을 돌파한 꼬챙이는 탄환에 버금갔다.

하지만.

[사멸자가 Lv?? ‘종말의 탄환’을 발사합니다!]

꼬챙이의 끝이 정확히 탄환의 끝에 가로막혔다.

엘리스의 스킬 레벨이 훨씬 더 높았지만, 정확한 타점을 노린 건 사멸자 쪽이었다.

최소한의 마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낸 셈이다.

허나, 방금 전 공방전으로 사멸자 역시 깨달았다.

지금 상대해야 하는 적들이 결코 쉬운 이들이 아님을.

“…….”

사멸자가 말 없이 진혁의 진형을 살폈다.

그리고 그 옆엔 새로운 얼굴들이 함께 서 있었다.

“저 녀석이 그 유명한 강진혁이란 인간인가?”

“엘리스의 꼬챙이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오싹하군.”

알테라와 아덴.

골드 드래곤 일족인 쌍둥이 남매였다.

“대장. 저 녀석들이 우리 애들을 상하게 한 겁니까?”

“그래. 천유성이나 테레사는 없지만, 저기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가장 핵심 멤버들이다.”

“페시스…도 함께 있던 거군요. 이제야 저 녀석들이 이토록 빨리 미로를 주파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쥐새끼 같은 길잡이 녀석. 드디어 꼬리를 잡았구만.”

올드 가드들 역시 매의 눈을 한 채 으르렁거렸다.

살기에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저 인간들 때문에 몇 번이나 태고의 존재들을 실망시켰단 말인가?

수없이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 바닥에 떨어진 이상, 그걸 다시 쌓아올리는 덴 몇 배의 성과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박살내는 건 반드시 필요한 선결과제였다.

스릉!

촤르륵….

각종 무기들이 뽑혔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구나.”

“하하. 올드 가드… 상위 서열들이 죄다 모인 데다가 서열 1위인 ‘크림슨’도 보이네요.”

엘리스와 페시스가 긴장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용족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은 골드 일족이 둘이나 개입했고. 그런 고위 랭커들을 사냥하는데 특화된 올드가드의 최정예들까지 모조리 집합해버린 탓이다.

무엇보다 정체불명의 권총을 사용하는 아포칼립스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골치 아프게 되긴 했네.’

진혁이 혀로 바싹 마른 입술을 적셨다.

니알라토텝 이 망할 자식이. ‘50층의 존재 개입’이 자유로워진 시점에서 아주 제대로 함정을 팠다.

죽은 줄 알았던 사멸자의 부활도 충격적이었으나, 골드 드래곤의 개입은 더욱더 치명적이었다.

하필 지금 타이밍에.

골드 일족 중에서 이례적으로 호전적인 저 지독한 남매가 튀어나올 줄이야.

이미 발뭉을 꺼내두긴 했지만, 이 셋으로는 저 모두를 막을 순 없다.

특히 사멸자는 1:1로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으니.

“페시스 씨는 최대한 도망치는 것에 주력하시고 엘리스. 너는 나랑 같이 정면에서 시간 좀 끌어줘야 해. 적어도 천유성과 나머지 멤버들이 합류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야 해.”

“짐이 도마뱀이랑 올드가드인지 뭔지 하는 머저리들을 맡으면 되는 것이냐?”

“응. 페시스 씨한테 몇이 붙긴 할 테지만, 주력은 너한테 집중될 거야. 괜찮겠어?”

“뭐, 노력하자면야 할 수 있는데 그러자면… 크흠! 흠!”

엘리스가 갑자기 목을 가다듬으며 묘한 눈빛을 보냈다.

설마….

“무리하려면 계약자의 피가 좀 필요하다.”

젠장할.

목적은 그거였나.

하지만, 이 타이밍에 거부할 순 없다.

벅찬 적들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했으니까.

진혁이 모든 걸 체념한 채 비스듬히 목을 기울였다.

엘리스가 뾰족한 송곳니를 세우며 진혁의 품에 달려들었다.

시큰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목덜미를 따라 퍼져나갔다.

은발의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목을 따라 뜨거운 핏방울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직접 흡혈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흐응. 그래. 이 맛이구나. 정말 그립고도 감미로운 향이었어.”

엘리스가 만족한 듯 진혁의 목덜미에서 송곳니를 뽑았다.

동시에.

우우웅!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졌다.

[고유 성창 ‘개벽의 계시록’이 발동됩니다!]

붉은 날개와 원으로 된 고리가 펼쳐지며, 아타락시아의 가주가 한껏 모은 마력을 해방시켰다.

***

쿠쿠쿠쿠쿠!

마을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고 전신에 소름이 솟구쳤다.

“과연….”

“애들이 고전했던 게 이해가 되는군.”

“크하하하! 이런 느낌 참으로 오랜만이오!”

올드가드들이 오싹오싹한 살기에 저마다 감탄사를 터뜨렸다.

무시무시한 진조와 맞서 싸우게 된 것에서 오는 공포와 긴장감.

한편으로는 그런 강적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된 것에 따른 고양감과 흥분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단 두 명.

진혁과 사멸자를 제외하곤.

저벅.

진혁이 사멸자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자연스레 거리를 좁혔지만, 사멸자는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자유 의지인 걸까?

아니면 무언가 명령을 받은 것 때문에?

이유는 모르겠으나, 싸우기 앞서 상대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분명 과거의 정보대로라면 사멸자는 죽었어야 정상이었으니까.

“보아하니 죽지도 살지도 못한 몸이 된 것 같은데…. 대화는 가능한 건가?”

“…….”

“아무래도 좀비 비슷하게 된 게 맞나 보네. 한때의 탑건이라 해서 조금 기대했는데, 아쉽게 됐어.”

진혁이 오른쪽 허리춤에서 슬쩍 권총을 보여줬다.

마더에게서 받은 A랭크짜리 리볼버였다.

바로 그때.

“총을… 쓰는 건가?”

사멸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호오. 역시 이거에 반응하는 건가?

아무리 몸과 정신이 구속되었다고 한들, 평생 동안 다뤄온 총에 관해선 남다른 애착이 있나 보다.

이제야 좀 흔들어볼 구멍이 생겼네.

게다가.

자유 의지가 있다는 건 능력 또한 복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날카로운 안광이 모든 걸 꿰뚫었다.

띠링!

길고 긴 상태창이 나타났다.

고유 능력 ‘어바웃 타임’과 고유 성창 ‘빌리 더 키드’ 그리고 26개에 이르는 길고 긴 스킬들.

절반가량은 이미 알고 있거나 유추가 가능한 것들이다.

좋아.

진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어지는 복사 조건을 보기 전까진.

[복사 조건: 사멸자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선 총과 총의 대결에서 이겨야 합니다. 단, 대결 중에는 반드시 과거 ‘티모 대령’이 했던 레인저 콘셉트를 따라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유 성창과 고유 능력을 제외한 스킬 중 하나만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씨X.

어지간해선 욕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자연스레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멸자의 능력은 만에 하나 있을 보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종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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