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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611화 (612/653)

611화. 천세의 신격들 (1)

[‘미완결의 책갈피’가 발동되기까진 10분이 소요됩니다.]

촤르르르….

책장이 빠르게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미완결의 책갈피는 과거 완벽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재현하는 것.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기적인 아이템이었지만….

정작 이 아이템이 ‘거래 불가’ 카테고리에 있는 것 또한 터무니없는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밌겠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잠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훤히 머릿속에 그려졌던 탓이다.

그 모습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다.

“뭘 그리 웃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상황이 웃기기라도 한 거냐? 아니면 우리가 그리도 가볍게 보이는 거냐?”

쿠마르가 진혁을 죽일 듯 노려봤다.

단순히 상대를 찍어 누르겠다는 분노와 호승심 따위의 감정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짙고 어두운 감정.

‘열등감’.

인간에게 있어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무려 14억이 넘는 세계 최대 인구수를 자랑하는 대국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라는 칭호를 받았다.

니라샤가 간다라의 이름을 망친 이후 절치부심해 최강의 자리에까지 올랐단 말이다.

특히 천세와의 사도 계약 이후엔 타국의 대형길드 마스터들마저도 한 수 접어주는 게 현실일진대….

딱 하나.

‘강진혁’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는 건 불가능했다.

시련의 탑이 나타난 이후 쌓아온 수많은 업적.

감히 인간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신화를 쌓아온 랭커를 이기려면 탑의 정상을 먼저 정복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적어도 지금의 수준에서 40층 대의 보스들을 쓰러뜨린다는 건 아무리 희망적으로 바라보려 해도 바라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죽여야 해. 온갖 지원을 다 받고 있는 이때야말로 가능성이 있어.’

그것만이 저 신화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쿠쿠쿠쿠쿠!

무시무시한 마력이 모여들었다.

‘만다라’와 ‘혼신일체’.

천세 신격의 권능이 쿠마르의 양 손에 있는 차크람을 통해 그대로 발현되었다.

“화가 많이 났나 보네. 전투 중에 평정심을 유지해라. 뭐 그런 말 안 들어봤어?”

“이미 네놈을 사냥하기 위해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평정심 따위 유지하지 않아도 변수는 없어.”

1:1이라면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는 주신마저도 단신으로 사냥한 적 있는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싸움은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니다. 다수의 인원을 통해 유리한 사냥을 하는 거지.

“간다.”

쿠마르가 옆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유명한 랭커 사냥이라… 기대되네요.”

“전설의 종지부를 우리 손으로 찍어주지.”

간다라의 랭커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진혁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는데도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준비한 게 있다는 건데….’

동시에.

[한정 고유 성창 - ‘트리무르티’가 발동됩니다!]

파츠츠…!

황금색 빛이 서로를 향해 이어졌다.

마력과 마력이 공명하며 엄청난 열기가 뿜어졌다.

단순히 능력을 증폭시키는 수준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진혁이 단검을 움켜쥐며 움직이려 했다.

그 순간.

[‘신화 창조’가 성립되었습니다!]

[차원이 연결됩니다!]

마력이 폭발하며 온 세계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큭!?”

진혁이 쏟아지는 광채에 팔로 두 눈을 가렸다.

⁕⁕⁕

안구가 그대로 타들어갈 것만 같은 열기는 그로부터 몇 초나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온도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땐, 기존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넓디넓은 호수 위.

분홍빛 연꽃들이 평화로이 떠 있다.

아름다운 대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풍경과 그 주위로는 수많은 목탑과 각종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시련의 탑 45층.

천세의 신격들이 거주하는 장소다.

정확히는 그 층계를 모방하고 재현한 제3의 세계라는 표현이 맞겠지.

“네 명의 마력을 동기화시켜 하나의 고유 성창으로 발현시키는 케이스는 굉장히 드문데….”

그걸 실제로 가능하게 하다니.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고 알고 있긴 했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확실히 인도에서 제일 가는 랭커들이라 할 만하다.

“어떠냐? 여기라면 그 잘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도움도 받지 못 하겠지.”

쿠마르가 자신만만하게 양 팔을 활짝 폈다.

현대이지만 현대가 아닌 심상 세계.

‘파이널 제네시스’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게다가.

첨벙.

자욱한 호수의 수증기 속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마력. 소름 끼치는 피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후우. 거참 가지가지 하네.”

진혁이 짙은 피비린내가 풍기는 곳을 향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천세의 본거지엔 그곳에서 거주하는 놈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세월을 가진 초거대 신화답게 신들의 수 또한 엄청나겠지.

곧바로 수증기를 뚫고 무시무시한 신격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의 여신’ 칼리가 현현합니다!]

검푸른 피부에 길게 늘어뜨린 혀에선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칼리의 곁에는 ‘사자’와 ‘뱀’이 각각 호위하듯 서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건방진 인간이여.”

“누추한 곳에 누추한 분이 왔네. 우리끼리 적당히 놀려고 하는데 굳이 인간 싸움에 껴야겠어?”

“인간 싸움이라기엔 걸린 게 꽤나 커서 말이다.“

칼리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정확히는 진혁의 머리 위에 있는 왕관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바로 몇백 미터 지척에서 다수의 강한 마력이 탐지되었다.

진혁의 등장과 함께 천세의 신격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들끼리만 덤빌 것처럼 갖은 폼은 다 잡더니… 결국에 신격들의 도움으로 이기겠다는 거였나?”

“고유 성창으로 주신들을 현현시킨 것 또한 우리의 능력.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그보다… 네놈 걱정이나 해라. 천세의 신격들은 결코 자비롭지 않으니까.”

“어련하시겠어.”

진혁이 전신에 마력을 천천히 재분배했다.

그걸 기점으로.

부우웅!

상대가 움직였다.

시작은 측면에 있던 데쉬무크였다.

거대한 헬버드가 바람을 가르며 쇄도했다.

위력은 있어 보이지만, 속도가 느리다.

콰앙!

단숨에 헬버드를 튕겨낸 진혁이 데쉬무크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우선 하나….

라고 생각한 순간.

“쉬이익!”

칼리의 뱀이 수면을 스치며 다가왔다.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나왔다.

카앙!

홍련과 이빨이 부딪쳤다.

검강이 가득 실려 있음에도 이빨엔 금조차 가지 않았다.

“죽어라!”

안티아가 진혁의 등 뒤를 노렸다.

[만다라 - ‘연화옥(蓮火玉)’이 발동됩니다!]

꽃의 형태를 띤 수십 개의 구슬이 발사되었다.

퍼퍼퍼퍽!

황금색 구체들이 방금 전까지 진혁이 서 있던 곳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한 진혁이 데쉬무크를 향해 뒤치기를 날렸다.

퍼어억!

“크아악!”

데쉬무크의 몸이 기역 자로 꺾였다.

‘태청화랑’과 ‘침투경’이 합쳐진 일격.

전신에 걸친 두꺼운 갑주는 아무런 방패가 되어주질 못했다.

“이번엔 내 차례지?”

그 틈을 이용해 진혁이 두 번째 공격을 퍼부었다.

[고유 능력 ‘괴력난신’이 발동됩니다!]

등 뒤에서 나타난 4개의 손.

‘만다라’와 ‘별의 가호’를 중첩시킨 주먹이 한 점으로 향했다.

뇌화붕권.

응축된 마력이 무방비 상태의 안면에 파고들었다.

콰콰콰콰콰콰…콰아앙!

튕겨나간 데쉬무크가 수면을 가로질러 목탑을 강타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그 뒤에 있는 목탑과 목탑을 박살내며 한참이나 더 날아갔다.

제아무리 튼튼한 몸뚱이를 가졌더라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를 해치웠다는 안도감을 채 즐기기도 전.

투콰앙!

엄청난 충격이 머리를 짓눌렀다.

뿌오오오!

무지막지한 체구.

코끼리의 형상을 한 천세의 주신 ‘가네샤’다.

“다이어…트 좀 해라. 무슨 놈의 무게가….”

우두둑…! 콰득!

가네샤가 다리에 더욱더 체중을 실었다.

진혁이 딛고 있는 지면이 쩍쩍 갈라졌다.

“혼자서 제법이긴 했다만…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순 없을 거다. 적어도 이 영역 안에서는 무리야.”

칼리가 가볍게 낫을 어깨에 걸쳤다.

[현재 트리무르티 안에는 ‘연등만화’가 개화된 상태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50%만큼 감소합니다.]

모든 연꽃을 지게 하든가.

아니면 이 심상세계를 구현한 쿠마르를 제거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해야지만 디버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 조작’을 쓰면 당장 변수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지금 그걸 썼다간 언노운을 죽일 비장의 카드 하나를 버리는 셈이 되겠지.

게다가 계속해서 2개의 왕관을 활용하느라 마력 소모값 역시 만만치 않았다.

가네샤와 칼리뿐 아니라 이후에 브라흐마 비슈누까지 고려해야 했으니까.

“원래라면 너 정도 되는 실력자는 영입하고 싶었지만… 우리도 탑에서 살아남아야 해서 말이다.”

칼리가 낫을 높게 치켜들었다.

온갖 저주와 죽음이 낫의 표면에 응집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남은 시간 0H : 0M : 0S]

[‘미완결의 책갈피’가 발동됩니다!]

빠르게 넘어가던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되었다.

⁕⁕⁕

마계.

세상의 만악(萬惡)이 모여 있는 장소이며 동시에 마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왕들의 거처가 있는 층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모든 마왕 중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베리엘의 왕궁에선 늦은 오후의 애프터 눈 티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후후. 차가 아주 깊게 우러났군. 고귀한 이 몸에게 딱 어울리는 맛이야.“

베리엘이 진한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달콤하면서도 온갖 풍미가 느껴지는 차는 온 몸에 가득 쌓인 피로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거기에 부드러운 티라미수와 딸기 타르트를 곁들이자 이런 게 사는 행복인가라는 생각까지 절로 들었다.

우중충한 마계의 하늘과 후줄근한 날씨.

매일 같이 날뛰던 다른 마왕들이 모처럼 조용한 환경까지.

모든 게 완벽한 하루였다.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특수 아이템 ‘미완결의 책갈피’로 인해 시련의 탑 밖으로 강제 전송됩니다!]

“……응?”

아니 지금 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환영인가?

분명 그럴 거다.

강제 송환이라니. 누가 감히 위대한 마계의 마왕을 오고 가라고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 상으론 대상의 동의 없는 강제 전송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파츠츠….

베리엘의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냐아아아!”

그 처절한 비명 소리를 끝으로 마계의 마왕 중 하나가 완전히 마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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