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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613화 (614/653)

613화. 천세의 신격들 (3)

한 차례 거친 폭풍이 휩쓸고 간 뒤의 평화.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시련을 함께 극복해온 이들은 서로를 더욱 믿고 결속을 다지게 되었다.

그것은 올림포스 산의 꼭대기에서 여유롭게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즐기며 햇살을 만끽하는 올림포스도.

만물을 굽어살피며 번영을 약속한 위그드라실을 개화시킨 북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전쟁을 하며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었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우리 종족을 위해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을.”

페르세포네가 번창하는 층계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제우스가 올림포스를 지배했을 당시 최상층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을 때보다 지금이 몇 배는 행복한 삶이었다.

히이잉!

막 태양을 떠오르게 한 아폴론이 마차를 끌고 나타났다.

“워워….”“저희 왔어요!”

그 옆에는 아르테미스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말과 마차를 마구간에 넣은 아폴론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웬일로 올림포스에 다 계시고. 명계는 괜찮은 겁니까?”

“예. 다들 힘 써준 덕에 이제야 좀 안정이 됐네요. 특히 헤라클레스와 크로노스 님께서도 도움을 많이 주셨죠.”

진혁 덕분에 새롭게 올림포스를 지배하게 된 타이탄 일족.

그들은 기존 올림포스의 주신들을 내쳐내는 대신 그 자리를 인정하고 함께 공생하는 길을 택했다.

복수와 숙청이 되풀이된다면 그 결과는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라는 진혁의 조언을 들은 덕분이다.

“그 인간이 이토록 큰 은인이 될 줄은….”

“저희도 미처 몰랐습니다.”

“나중에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네요.”

모든 신들이 진혁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상한 문구가 뜨기 전까진 말이다.

띠링! 띠링!

[미완결의 책갈피가 강제로 발동되었습니다.]

[‘라그나로크’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응…?”

“엥?”

“뭐, 뭡니까 이건?”

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과 함께 조금 전까지 북적이던 올림포스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같은 시각.

위그드라실이 펼쳐져 있는 북유럽의 새로운 영토에서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때 올림포스에게 패퇴해 몰락했지만, 이제는 올림포스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된 북유럽은 그야말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

북유럽 최고의 주신 오딘이 거대한 웅덩이 앞에 섰다.

[‘기억을 저장하는 웅덩이’가 개방됩니다.]

북유럽을 구원해준 영웅.

진혁을 위해서 금지된 책에 관한 단서를 찾아줄 생각에서다.

“여기는….”

“괜찮으신 겁니까?”

토르와 로키가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위그드라실 내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그중에서도 ‘기억을 저장하는 웅덩이’는 북유럽 전체의 안녕을 위해 일부러 그 위험성이 터무니없이 높은 정보들을 따로 빼둔 곳이었다.

개개인이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신화의 종말을 맞이할 수 있을 터.

당연히 토르와 로키로서는 그런 금기를 깨려 하는 오딘의 선택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오딘 또한 이 단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니, 우리는 그 인간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설령 그 대가가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더라도 나는 기꺼이 감수하고 싶구나.”

“아버지….”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우우웅!

샘물에서 기억이 뽑히자 보랏빛 파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일곱가지 색깔 중 가장 끝에 위치한 색.

동시에 모든 입수 난이도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까다로운 걸 상징하는 게 바로 이 ‘보라색’이다.

오딘이 아주 조심스럽게 뽑은 기억을 유리 병 안에 담았다.

[‘봉인된 태고의 기억’]

입수 난이도: 측정 불가

다시 한 번 생각해도 후회는 없었다.

분명…

그리 생각했는데.

바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

격하게 흔들리는 위그드라실.

“우와아아악!”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토르와 로키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단순히 지진 같은 게 아니다.

모두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위그드라실이….

북유럽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위그드라실이!

뿌리째 뽑혀 공간이동을 하려 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강진혁에 의해 공간이동이 이루어집니다!]

“허허….”

오딘이 사라져 가는 몸을 체념한 듯 바라봤다.

⁕⁕⁕

세상의 모든 선이 가득한 구름 위의 세계에서도 수상한 마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신이시여….”

에덴의 중앙에 위치한 베드로 대성당.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이 가득한 예배당엔 특히나 밝고 환한 빛이 비추고 있었다.

그 중앙에선 가브리엘이 양손을 꼭 잡은 채 아침 예배를 올리는 중이었다.

['영혼의 기도'가 발동됩니다!]

[신성력이 +20만큼 상승합니다!]

[관용과 사랑의 감정이 증가합니다!]

[깊은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영원의 세라핌' 칭호를 얻기까지 앞으로 5% 남았습니다.]

하얀 비둘기들이 날아다니고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가브리엘의 마음에 평화와 안식이 가득했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해주옵시고. 저보다 약한 자를 위해 검을 휘두르게 해주옵소서.”

기도가 이어질수록 더욱더 감정이 벅차올랐다.

정체됐던 신성력이 상승했고.

결코 부술 수 없는 벽이라 생각했던 깨달음 역시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행복이군요.'

지금이라면 마왕이 같이 지옥으로 피크닉을 가자고 해도 하하호호 웃으며 함께해줄 것만 같았다.

가브리엘이 기도를 이어나갔다.

이제 머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한다면 미카엘과 루시퍼를 제외한 그 어떤 대천사들도 갖지 못한 칭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지독한 원수라 해도 용서할 수 있게….”

그런데 기도가 막 끝을 맺으려 할 때였다.

[…공간이동이 이뤄집니다.]

[예배를 중간에 무단 중단했기에 신성력이 -1,000만큼 감소합니다.]

[100년 동안 새벽 기도를 하지 않을 경우 각종 디버프가 영구히 걸리게 됩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요… 용서를…. 원수를 용서를….”

가브리엘의 안면이 파르르 떨렸다.

“…X발. 용서 같은 소리 하네.”

그 말을 끝으로.

가브리엘의 모습 역시 한 줌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우우우웅!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빛의 기둥.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심상 세계 안으로 쏟아졌다.

“무, 무슨….”

“주신급에 해당하는 신격들이 다수 넘어오고 있습니다!”

“여섯 일곱… 열… 젠장. 하여튼 더럽게 많아요!”

“대체 뭔 지랄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여긴!?“

간다라 길드의 랭커들이 비명을 질렀다.

전신을 짓누르는 터무니없는 기운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심상세계에 거대한 압력이 가해집니다!]

[결계 유지까지 남은 시간 1H : 05M : 33S]

고유성창으로 만들어진 심상 세계가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4명의 사도가 천세 신격의 가호를 받아서 만들었다고 한들.

허용치를 아득히 넘어선 신화들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마저도 천세의 신격들이 부담을 나눴기에 1시간이란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런 아이템이 존재했던 것인가….”

칼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설마, 진혁이 이런 노림수를 가지고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계에 이어 북유럽과 올림포스까지 상대해야 하다니….”

“심지어 저건… 위그드라실 아닌가. 아예 신화 전체의 존폐를 걸고 싸우겠다는 뜻이잖아.”

“더 최악은…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어.”

아직까지 빛의 기둥은 계속해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완전히 다 잡은 물고기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천세 신격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크흠! 내 얼굴에 뭔가 묻었나?“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단 한 명이었다.

플레이어 강진혁.

지금까지 나름대로 잘 이어져오던 탑의 균형을 완전히 뭉개버린 인간이 말이다.

“역시,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죽여야 돼. 더 이상 내버려두면 우리가 죽게 생겼어.”

아그니가 살기가 가득 담긴 불길을 뿜어냈다.

“뭐, 좋게 생각해보자면 위험부담은 대폭 늘었지만, 아직 저놈들이 완전히 회복하기 전인 이 시점이 오히려 적기였을 수도 있겠어.”

죽어간 영웅들과 수많은 정예병력부터 소모된 아이템들과 성유물들까지.

큰 전쟁의 상처는 단기간에 복구될 수 없는 법.

그건 북유럽이나 올림포스 역시 그 예외는 아니었다.

거대 신화와 거대 신화.

서로 다른 세월과 격을 축적시킨 시련의 탑 상층부의 전력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어느 한 세력이 지금 이 자리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광경이다.

일촉즉발의 상황.

“흐음….”

지금까지 한 번도 개입하지 않았던 주신이 움직였다.

천세의 최고 주신 중 하나인 ‘브라흐마’다.

브라흐마가 손가락으로 턱끝을 톡톡 건드렸다.

아직까지 비슈누와 천세의 본대가 현현하기 전인 지금 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그보다 이 빈약한 심상세계가 이 정도의 대규모 전투를 버텨낼 수 있을까?

변수는 너무도 많았다.

“언약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이제 5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5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부분은 문제가 없는데….

“아수라 쪽은?”

천세의 양대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악신족의 수장 아수라.

지하세계인 ‘파탈라’와 지옥 ‘나락’을 통일한 아수라는 엄청난 수의 병력을 이끌고 있는 중이었다.

“그게… 워낙에 숫자가 많다 보니 심상세계로 들어오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당장은 기대하기 힘든 전력.

그래도 허용범위 내다.

이미 어떤 식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지는 계산이 끝났으니까.

“사도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라.”

“한창 싸우고 있는 인간들을 말씀입니까?”

“…….”

“아니, 아닙니다! 바로 대령하겠나이다.”

의문을 품던 호위병이 즉각 머리를 조아렸다.

브라흐마의 말 한 마디만으로도.

아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한 줌의 티끌이 되어 사라질 수 있는 게 자신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병력을 서쪽 사원에 집결시켜두도록. 일을 끝마치는 대로 바로 움직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호위병이 명령을 따르기 위해 재빨리 자리를 떴다.

그러자 브라흐마의 곁에 선 금발의 여성이 배시시 웃었다.

“직접 출전하시는 겁니까?”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인 호리호리한 체구.

주변에는 귀엽게 생긴 번개들이 떠 있었다.

천세 고위 신 중 하나인 뇌신 ‘인드라’였다.

“잠깐 인사를 하러 가는 것뿐이야. 아무리 미천한 생명이라도 그 끝은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후후. 재미나게 즐기다 오시죠. 모처럼 제대로 된 판이 깔렸으니 말이에요.”

“그래. 놀다 오마.”

우우웅!

브라흐마의 모습이 알갱이가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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