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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652화 (653/653)

652화. 결전(決戰) (2)

파츠츠…!

파치칙!

피로 이루어진 스파크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화려한 문양이 각인된 손목 보호대와 머리 장식.

처음 보는 보석들로 치장된 목걸이와 반지 등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이 피어올랐다.

“…….”

엘리스가 정면을 바라봤다.

루비처럼 붉게 물든 눈동자와 새하얀 눈송이처럼 흰 은발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완전무장(完全武裝)’이 전개됩니다.]

엄청난 마력이 몰아쳤다.

탑의 강자들마저 고개를 숙이며 경외하게 만들었던 절대자.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어떤 것인지 여과 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몰아치는 폭풍의 중앙에서….

……엘리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쿠쿠쿠쿠쿠!

그러자 손끝을 타고 핏방울들이 모여 기묘한 형태의 꼬챙이를 만들었다.

단순히 꼬기만 했던 블러드 스피어즈가 아닌 혈액이 타오르는 듯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

언노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분명, 아타락시아의 보고는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뒀을 터. 엘리스가 완전히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엘리스는 아예 변수에서 제외하고 생포하는 것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진혁을 제압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모든 건 오판이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른침이 넘어가는 괴물이 나타났으니까.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것이다.”

[엘리스가 ‘개벽의 계시록’ - 블러드 이클립스를 발동합니다!]

붉은 선이 다시 한 번 그어졌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너무나 선명한 색의 선이다.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진 꼬챙이들이 허공을 꿰뚫었다.

“……!!??”

언노운이 다급히 무한의 서고를 발동했다.

빙하조형으로 만들어진 방패들이 겹겹이 주위를 둘러쌌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굵은 얼음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일격일격이 대기를 진동시키게 할 정도로 무거웠다.

“크윽!”

언노운이 사력을 다해 마력을 방출했다.

엘리스의 힘을 가늠하려던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지금 몰아치는 피의 폭풍으로부터 견디기에 급급한 상황이 되었다.

쩌쩌적!

이클립스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자 두꺼운 얼음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절단면에서는 붉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언노운이 혀를 찼다.

“한 번에 이걸 베어버리다니. 어떤 의미에선 강진혁보다도 더 까다롭군요."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진혁의 스킬 활용과 공격패턴은 차라리 익숙하다. 진혁을 답습하기 위해 그동안 무던히도 노력해왔었으니까.

적어도 진혁 하나에 관해서만큼은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부하고 또 연구했다.

하지만.

엘리스는 다르다.

공격패턴과 활용, 그리고 심리상태까지.

기본적인 것만 숙지하고 있을 뿐. 심도 있는 공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짐은 이제 시작인데, 그대는 가벼운 인사마저 버거워 보이는구나.”

공격이 재차 이어졌다.

언노운이 미친 듯이 방어스킬과 회피스킬을 발동했다.

“저 역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서고에 있는 책들이 정신없이 뽑히며 각양각색의 빛줄기들이 뿜어졌다.

[고유능력 '트리플 매직'이 발동됩니다!]

[고유성창 '카라카 디아슬라브'가 발동됩니다!]

[고유성창 '역천의 륜'이 발동됩니다!]

[고유성창 '뇌신'이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어스퀘이크'가 발동됩니다!]

막대한 마력의 원천으로부터 공급되는 에너지.

수많은 능력들이 동시에 발동되는 광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지면이 솟구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번개과 마그마가 뒤엉켰고. 갈라진 지면에서 붉은 화염이 뿜어졌다.

엘리스가 다가오는 자연재해를 마주하며 양 손을 하나로 모았다.

[완전무장 '선혈의 팔찌'가 발동됩니다!]

[완전문장 '검은 밤의 한숨'이 발동됩니다!]

우우웅!

엘리스가 착용한 성유물들이 은은한 붉은 빛을 띠었다.

[특수 스킬 '순혈의 성소'를 발동합니다!]

스킬의 발동과 동시에 엘리스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원이 떠올랐다.

직경 1km에 이르는 원 안으로 붉은 선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점과 점들이 점멸하며 복잡한 술식이 완성되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완벽한 한 폭의 자수가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잠시.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된 술식으로부터 규격 외의 빛기둥이 뻗어올랐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지면에서 하늘까지.

붉은 기둥이 대기를 뚫고 천장마저 꿰뚫어버렸다.

외부와의 단절을 위해 만들어둔 결계에 엄청난 크기의 구멍이 생긴 순간이었다.

당연히 그 폭심지에 있던 언노운은 가장 강력한 한 방을 고스란히 허용해야만 했다.

⁕⁕⁕

구름이 녹아 사라진 하늘.

치이익!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함 그 자체였다.

돌마저 타들어가버린 크레이터 속엔 살아 있는 생명체 따윈 존재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비틀.

가면을 쓴 생명체는 그 일격을 견디어 냈다.

"크아아아!"

가면의 입 부분이 위아래로 길게 찢어지며. 그 속에서 붉은 피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격통에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장 뇌수를 파고드는 고통보다 두려운 건 고고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밤의 귀족이었다.

[엘리스가 ‘블러드 스피어즈’를 발동합니다!]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꼬챙이들이 언노운을 목표로 고정되었다.

완전무장을 전부 다 사용한 게 아니었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태고의 존재들마저 정면 대결은 피했을 만큼 까다로운 강적이라는 게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반반… 정도밖에 안 돼.'

진혁을 상대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힘을 모조리 끌어 쓴다고 해도 그 정도가 한계리라. 문제는 엘리스를 상대하려 전력을 다 발휘한다면 천유성이나 나머지 적들에게 쏟을 여력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들 역시 만만치 않은 강적이었기에 약간의 기회만 준다면 얼마든지 변수를 창출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구멍은 순식간에 댐 전체를 무너뜨리는 균열로 번질 터.

다시 말해.

유리했던 싸움이 완전히 역전되어버렸다.

한 명이 본신의 힘을 완전히 되찾은 것으로 인해서.

***

같은 시각.

탑의 상층부의 비밀스러운 곳에서는 6명의 상급 관리자와 157명의 중급 관리자들이 모여 있었다.

탑의 유지를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상급 관리자와 중, 하급 관리자들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이 한 자리에서 회동을 한 것이다.

이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엔 합당한 이유가 뒷받침되어 있었다.

아포칼립스 언약이 발동되고 탑의 거대세력들은 물론 태고의 존재들까지 개입함으로써 탑 자체가 붕괴될 참사가 펼쳐진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나름 평화로웠던 탑이 이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어."

"누가 아니래? 이래서야 관리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꼴이라고."

"조용히들 해. 위에 분들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중급 관리자들이 술렁였다.

함부로 목소리를 높여선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언제나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현실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리고 불안감을 느끼는 건 상급 관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나무뿌리 위에 만들어진 저택 안엔 6명의 상급 관리자들이 갓 우려낸 차를 홀짝였다.

"그 와중에도 이런 고급 저택을 만드시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유일하게 커피를 마시던 릭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대로 고풍스러운 나무 장식이 추가된 뿌리 위 통나무 저택은 수백 평에 이르는 규모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식물계 '라이프 시드'에서 선출된 상급관리자 바스카빌의 능력 덕분이었다.

"고급 저택은 개뿔! 그딴 시답잖은 말이나 하려고 여기에 온 건가?"

콰앙!

붉은 산양의 외형을 한 관리자가 책상을 내리쳤다.

하스팅의 후임으로 상급 관리자가 된 '해테이스'였다.

기껏 상급 관리자라는 최고위 직책까지 올랐지만, 그 달콤한 과실을 채 누리기도 전에 모든 게 먼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잔뜩 성이 난 상태였다.

“다들 그쯤 하지.”

“맞아요. 저희끼리 싸울 때가 아니에요. 특히 바스카빌 님과 벤디비아 그리고 릭님은 더욱더요.”

부유석에서 벌어졌던 상급 관리자들끼리의 의견 충돌.

비록 당시 결착을 짓진 못했지만, 지금 당장은 대의를 위해 케케묵은 감정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군. 이자벨. 가능한가?"

또 다른 상급 관리자인 쿤달라가 입을 열었다.

“예. 가능해요.”

그러자 유일하게 모든 층계를 자유자재로 엿볼 수 있는 이자벨이 반투명한 거울을 소환했다.

우우웅!

['새벽의 거울'이 발동됩니다.]

거울에선 진혁이 이끄는 연합 측과 언노운이 이끄는 언약 측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팽팽한 전황이었다.

엘리스가 완전히 각성하기 전까지는.

"이럴 수가…."

"호오."

상급 관리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한다면. 아주 작은 변수 하나만이라도 더 추가된다면.

전쟁의 승패는 완전히 결정지어질 것이다.

그때였다.

"저희가 이 타이밍에 강진혁 플레이어 쪽을 돕는다는 선택지는…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줄곧 침묵을 지키던 벤디비아가 위험한 제안을 꺼냈다.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하는 상급 관리자가 개입해 언약을 마무리 짓자는 것. 탑의 규율을 어기는 대신 탑 자체를 존속시키자는 소리였다.

본래라면 다들 펄쩍 뛰며 반대를 하는 게 정상이었다.

누구보다 솔선수범을 해야하는 게 상급 관리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너무도 이례적인 데다, 태고의 존재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은 막아야 했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우리까지 나서야 한다라…."

"강진혁에게 배팅을 하자는 말씀이군요."

"그러고 보니 벤디비아 님은 예전부터 저 인간을 특별히 아끼셨죠."

결계사라는 공통점.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벤디비아는 예전부터 진혁의 행보를 주시해 왔다.

저 인간이라면…. 어쩌면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곳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진혁은 어떤 결계사도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한 분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동의한다."

"저도요."

"우리가 개입한 사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신중하게 고민하던 해테이스가 물었다.

"그 부분은 가장 조심스레 다룰 생각입니다. 최대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거예요."

"그렇다면 나 역시 함께 하겠다."

"릭 님은 어떻게 하실 거죠?"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릭이 긍정의 뜻으로 커피잔을 달그락거렸다.

"결정되었군요."

그렇게 관리자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이제는 실행만 남겨뒀을 뿐.

그런데 바로 그때.

모두의 예상을 깬 일이 벌어졌다.

우우웅!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둔 회담 장소 안에 제3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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