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1장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3)
헌터청 서울 남부지부.
“여기가 원래 이렇게 멋졌나?”
높다란 빌딩 정문 앞에 보이는 현판.
던전 보초 안전 교육을 위해 가끔 방문했던 건물인데, 오늘따라 유독 번쩍번쩍하게 느껴졌다.
각성을 했기 때문일까.
예전이었다면 아무 감흥 없었을 텐데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괜히 주변을 둘러본 후,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평소처럼 여기저기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몇 명이나 각성했으려나?”
“남부지부는 스무 명 내외겠지, 뭐. 중요한 건 인원이 아니야. 스킬 등급이지.”
“후우, 오늘은 부디 등급 높은 각성자를 스카우트해야 할 텐데….”
고등급 각성자를 영입하려는 스카우터들이었다.
헌터청 근처에서 아예 죽을 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헌터청 안쪽은 어림잡아도 수백 명은 될 법한 인산인해가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저 인원이 전부 각성자인 건 아니고, 대다수가 각성자의 가족 혹은 길드에서 온 스카우터였다.
각성자가 이후 활동을 위해선 반드시 헌터청에 들러야 하니, 길드 차원에서 상시 거주하는 스카우터를 배치해 놓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많아도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좋은 스킬을 가진 고등급의 헌터였기에, 수백 개의 눈이 오가는 치열한 탐색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게도 시선이 왔지만 대부분 금방 거두어졌다.
지금의 나는 던전 보초 복장을 입고 있다 보니 고랭크 헌터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야 신경을 꺼주면 오히려 좋지만.’
내가 가진 고유 스킬도 그렇고, 군주로서의 특성 ‘독존’ 때문이었다.
‘길드는 나중에 레벨을 충분히 높인 다음에 가입해도 늦지 않아. 초반엔 길드가 오히려 제약이 될 수 있다.’
경험치가 10배 상승하는 특성, 독존을 활용하려면 초반의 파티 사냥은 독이 될 수 있다.
갓 각성했고 능력치도 낮은 신출내기가 혼자 사냥을 다니는 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으니까.
분명 의심을 받을 테고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나는 유유자적 대기실에 비치된 서류를 집어 인적사항을 작성한 뒤 접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안전 교육 때문에 오셨나요?”
접수대의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말했다. 던전 보초 복장 때문에 안전 교육을 들으러 왔다고 판단했나 보다.
“아뇨. 각성 신고 때문에 왔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실례했습니다.”
나를 미각성자 보초라고 지레짐작한 것이 미안했는지 접수원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종이를 하나 뽑아줬다.
“여기 접수표입니다. 각성 축하드리며, 한층 위의 검사실에서 번호에 따라 검사를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실 그렇게 지레짐작할 만하긴 하다. 실제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각성자였고, 보초였던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접수원에게 인사를 한 뒤 안내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자 나처럼 검사를 기다리는 신규 각성자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어르신까지.
연령과 성별,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각성자들이 모두 대기실 의자에 앉아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각성은 편견 없이 찾아온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각성 검사받으러 오셨나요?”
“아, 예. 맞습니다.”
“이쪽으로 와서 신분증 보여주시고, 인적사항 작성해 주시겠어요?”
2층에 있는 안내원 역시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했다.
알려주는 대로 서류를 작성하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안내한다.
“제3 검사실로 가시면 됩니다. 5분 정도 기다리시면 이름을 부를 거예요.”
안내원의 말대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상우 님, 들어오시면 됩니다.”
곧바로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시작은 스탯 검사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검사관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 전에 다시 한번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한상우 님 맞으신가요?”
“넵, 맞습니다.”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쪽 손잡이에 손 올려주시고, 측정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안내에 따라 체성분 측정기처럼 생긴 기계 위로 올라갔다.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힘 8, 민첩 7, 지력 7, 체력 8, 마력 2. 수치가 높은 편…. 어라, 그런데 레벨이 3이시네요?”
“아, 던전 브레이크 때 각성했거든요. 바로 앞에 몬스터가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각성하자마자 레벨을 올려서 오신 분은 많지 않거든요.”
“그런가요?”
“네. 각성했어도 몬스터에게 죽는 경우도 있고, 달아나거나 레벨업을 할 만큼 경험치가 쌓이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특히 스킬도 없이 두 단계나 레벨업을 해서 오는 분은 처음 보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랬군요. 제가 운이 좋았나 보네요. 하하하.”
훈훈하게 대화가 오가는 중.
나는 미심쩍게 여기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한테 스킬이 없나요? 뭔가 본 것 같기도 해서요.”
내 말에 검사관은 검사지를 다시 꼼꼼히 살피고 말했다.
“네. 아직 스킬은 없네요. 잘못 보셨을 가능성이 큰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각성 직후에 없어도 레벨업을 하다 보면 생기기도 하니까….”
뒷말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스킬이 없다니.
분명 나에겐 땡길거야를 소환한 [캐릭터 소환]이라는 스킬이 있는데 검사관이 없다고 한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의아함을 느낀 나는 검사관이 프린트한 종이를 보며 말했다.
“죄송한데 잠시 결과표 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검사관이 건네주는 측정표를 받아 읽었다.
이름, 레벨, 스탯 등 다른 건 상태창에 표시된 것과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부분이 달랐다.
<스킬 : 측정되지 않음.>
상태창의 스킬에는 캐릭터 소환이 표기되어 있는데 결과지에는 측정되지 않는다고 뜬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유는 추측할 수 있었다.
유일 스킬.
내가 가진 [캐릭터 소환]은 다른 스킬들과 달리 ‘유일 스킬’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기계가 측정하지 못한 듯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 말아?’
측정되지 않는 스킬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자리에서 스킬을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기계가 측정하지 못하는 스킬을 공개하고, 고등급을 받을 가치가 있을까?
물론, 고등급 랭커가 갖는 혜택과 명예는 어마어마하다. 국가와 길드에서 집과 차는 물론이고 온갖 혜택을 주지 못해 안달이라고까지 하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런 대접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혼자 있을 때 경험치 획득을 높이는 ‘독존’의 특성은 물론이고, 땡길거야가 가진 힘에 비해 아직 내 레벨이 낮아 유지 시간도 턱없이 짧았다.
높은 등급을 받고 당장의 부를 챙길 것이냐, 낮은 등급을 받고 추후 더 큰 이득을 노릴 것이냐.
결론은 금방 나왔다.
“혹시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뇨,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나는 이대로 넘어가는 걸 택했다.
측정기가 유일 스킬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밝히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각성에서 특별한 스킬이나 특성을 얻었다는 건 로또에 당첨됐다는 것과 같다. 드러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건 잘한 선택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나요?”
“다음은 스킬 검사인데, 스킬이 없으니 생략하셔도 됩니다. 나중에 스킬을 얻으시면 그때 다시 한번 오셔서 검사해 주시면 됩니다.”
스킬 검사.
공격계 스킬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로, 특수 제작한 샌드백을 쳐서 스킬의 위력을 검증하는 일인데 지금의 나에겐 필요 없었다.
“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넵, 검사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여기 헌터증입니다.”
검사를 주도하던 검사관 말고 남은 둘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카드 하나를 건네주었다.
벌써 헌터증이 나오다니.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검사관 한 명이 카드 발급 기계에 붙어 계속 헌터증의 등록과 발급을 반복하는 게 보였다. 검사 중에 바로바로 내용을 입력하는 듯했다.
던전, 몬스터 등의 돌발적인 특성상 헌터청의 업무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감사합니다. 처리가 굉장히 빠르네요.”
“헌터님들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무운을 빌겠습니다, 한상우 헌터님.”
어쨌든 최하급인 F급이긴 하지만 이제 정식 헌터가 되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헌터증을 건네받은 후, 스킬 검증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아참, 자동 사냥 돌려야지.”
폰을 꺼내 하이어를 켰다.
지금은 땡길거야가 아닌, 다른 캐릭터의 사냥을 돌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 로그인을 하려던 찰나, 뭔가가 시야에 잡혔다.
<스킬 검증 측정 점수>
<1위 : 강철만 - 832점>
<2위 : 안지은 - 817점>
<3위 : 황현성 - 796점>
복도 한가운데, 비어 있는 스킬 검증실의 전광판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강철만? 저놈 저것도 1등이야?’
수호 기사의 랭킹 1위를 가져간 헌터맨, 본명 강철만.
녀석의 이름을 여기서도 볼 줄이야.
‘잠깐, 강철만이 저 정도면 땡길거야는 몇 점이 나올까?’
그때, 별안간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솔직히 의도적으로 스킬 검증을 회피하긴 했지만 궁금하긴 했다.
하이어에선 만렙인 땡길거야가 현실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면 어떻게 될지, 과연 내 추측대로 세계 최고 헌터보다 땡길거야가 강할지 말이다.
강철만은 SS급, 추정 레벨 590이니 만약 내 예상이 맞는다면 땡길거야가 더 높은 점수를 갱신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 이 정도는 미리 파악해두면 이후에도 도움이 되겠지.’
마침 복도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마나도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조금 회복돼 스킬을 사용할 정도는 되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나는 어두컴컴한 제7 스킬 검증실로 몰래 들어갔다.
안은 단순했다.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하얀 벽에는 검, 도끼, 망치 등 다양한 무기가 배치되어 있고, 방 중앙에는 5m 높이의 거대 샌드백이 하나 걸려 있었다.
CCTV가 있긴 하지만 샌드백이 있는 검증실에만 있어 어차피 나까지 찍힐 일은 없었다.
물론, 샌드백을 치면 걸릴 가능성이 있지만 뭐 어떠랴?
CCTV에 찍힐 사람은 이 세상에선 절대 찾을 수 없는 존재일 텐데.
“나와라, 땡길거야.”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스킬을 사용하자 빛과 함께 땡길거야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래. 마나가 얼마 없으니까 빨리 말할게. 근데 이거… 공격 명령은 어떻게 내리는 거지? 그냥 말로 하면 되는 건가?”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게임에서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있지만, 현실엔 그런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내 물음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된 캐릭터는 언어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명령 이외엔 소환된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스킬은 명령 혹은 캐릭터창의 아이콘을 통해 조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콘… 이건가?”
처음 소환했을 땐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캐릭터 창의 스킬 항목을 누르자 하이어와 마찬가지로 땡길거야가 보유한 스킬 아이콘들이 나열되었다.
어떤 걸 선택해야 샌드백에 가장 강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우선 명령부터 내렸다.
지금은 마나가 얼마 회복되지 않아 캐릭터 소환을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땡길거야, 저기 방의 가운데에 있는 샌드백을 공격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철컥- 철컥-!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땡길거야가 움직였다.
그 사이, 나는 샌드백에 사용할 스킬을 고심했다.
너무 강한 스킬을 쓰자니 주변이 시끄러워질 것 같고, 다른 걸 쓰자니 땡길거야의 수호 기사라는 직업상 방어 스킬이 많았기 때문이다.
“뭐, 일단 가장 약한 스킬부터 써볼까?”
나는 샌드백을 향해 걸어가는 땡길거야를 바라보며 스킬 아이콘을 하나 눌렀다.
그러자.
[캐릭터 : 땡길거야가 방패 치기를 사용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스킬이 시전됐다.
검과 방패를 들고 안전실 안으로 들어간 땡길거야가 그대로 거리를 좁히더니 샌드백에 방패를 휘두른 것이다.
과연 얼마나 셀 것인가?
게임에선 공격 스킬 중 가장 약해 견제기로만 사용되는 [방패 치기]라 큰 기대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
땡길거야가 몸을 회전시키며 방패로 후려친 순간.
후우웅-!!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샌드백이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