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1장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5)
“여기가 던전인가? 의외로 평범하네.”
햇살이 내리쬐는 들판, 나는 자세를 잡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헌터로서 들어오는 던전은 처음이라 그런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F급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세요.]
균열을 통과하자 풍경이 숲으로 바뀌고, 메시지가 뜨면서 던전의 목표를 알려주었다.
이제 이곳에서 보스 몬스터를 찾아서 잡고, 포탈이 열리면 탈출하면 된다.
‘저기가 몬스터들이 있는 곳인가 보네. 가볼까?’
저 멀리 들판 끝, 절벽 아래에 있는 동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낡은 검과 부서진 방패를 들고 들판을 지나 동굴로 들어갔다.
그렇게 발광석이 박혀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통로로 진입하자.
한 신형이 날 반겨주었다.
“게르륵!”
F급 몬스터, 최하급 고블린.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동굴 초입부터 몬스터가 나타났다.
초록색 피부와 작은 키에 못이 박힌 몽둥이를 든, 이번 던전의 잡몹이었다.
‘생김새는 게임이랑 비슷하지만, 확실히 말도 안 통하고 적대적이네.’
최하급이지만 왜소한 몸집에서 흉포한 기운이 새어 나왔다.
어째서 사람들이 처음 몬스터를 마주하면 충격에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몬스터를 마주한 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놈을 처치할 완벽한 수단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나와라, 땡길거야.”
번쩍-!
“부르셨습니까, 주군.”
섬광과 함께 내가 키운 게임 캐릭터가 등장했다.
나는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몬스터를 가리키며 나직이 얘기했다.
“처치해.”
“명 받들겠습니다.”
명령을 내리자마자 땡길거야가 땅을 박차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쿵-!
“와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예전에도 봤지만 땡길거야의 스피드는 눈으로 따라가는 게 힘들 정도였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
고블린 역시 땡길거야가 빠른 속도로 쇄도해오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몸을 돌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싸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서걱-!
“쿠웩!”
몸을 채 돌리기도 전에 땡길거야의 검이 고블린의 몸을 갈랐다.
“역시 한방이네.”
E급 몬스터 잿빛 바위 곰을 일격에 처치했으니, F급 최하급인 고블린은 말할 것도 없이 저승행이었다.
그래서일까.
“게르르…!”
동굴 안쪽에서 연이어 고블린 열 마리가 나타났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모여 있으니 마침 잘됐네. 가서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주군.”
땡길거야가 짧은 목례와 함께 다시 땅을 박찼다.
머릿수만 치자면 10배 이상의 차이.
걱정은 되지 않았다.
레벨이 원체 높기도 하고, 아까 봤듯 한 마리를 잡는데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서걱-! 촤아악-! 슈화아아아악-!!
고블린들을 도륙하던 땡길거야가 전투 도중에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버렸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캐릭터 소환이 해제됩니다.]
마나가 모두 소진된 것이다.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역시 유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네. 초당 마나 2가 소모되나?’
사실 얼마 남지 않은 마나로 시험해 본 것이었다.
헌터청에서 사냥터로 오는 길, 마나가 거의 없었지만 나는 마나 포션을 마시지 않았다.
마나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지금, 조금 남은 마나라도 쥐어짜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땡길거야의 유지 시간을 재보는 게 필요하기도 하고.
소환 시를 제외하고 소모되는 마나량은 초당 2 정도.
즉, 현재 300의 마나로는 2분 30초 정도를 소환할 수 있다.
‘일단은 마나의 양을 올리는 게 급선무겠네.’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유지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지금이야 F급 던전이라 일격필살이지만, 조금만 위로 올라가도 그 정도 시간으론 택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케르륵?”
“한 마리 남았네. 저건 직접 잡아볼까?”
쑥대밭이 된 전장, 고블린 한 마리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비록 소환이 해제되긴 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땡길거야가 고블린 아홉 마리를 베고 사라진 것이다.
마나 포션을 마시고 땡길거야를 소환할 수도 있었으나, 남은 한 마리는 직접 상대해 보기로 결정했다.
최약체 몬스터이기도 하거니와 나도 어엿한 헌터니 직접 몬스터와 싸워보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쿠와륵!”
그때, 내가 혼자인 걸 파악한 고블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곤봉을 휘둘렀다.
확연히 성인 남성보다도 빠른 몸놀림이었다.
그러나.
‘뭐야, 느리잖아?’
나는 살짝 몸을 트는 것으로 녀석의 공격을 회피했다.
일전에 바위 곰을 상대해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그것과는 궤가 달랐다.
몸놀림이 가볍고,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이 빨라졌다.
분명 그때만 해도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는 순간마다 인생 역대급 명장면을 만드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쉬이이익- 퍽-!!
“쿠웨엑!!”
회피 후에 검을 휘둘러 고블린의 옆구리를 강타했는데,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생채기도 나지 않았던 바위 곰과는 상반되는 반응을 내보인 것이다.
‘이게 각성의 힘인가?’
확실히 다르다.
던전 브레이크 때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온몸을 휘감은 것이다.
한번 본격적으로 해보자.
“하아아앗!!”
견적이 나오자 한결 여유가 생겼다.
나는 다시 일어서는 고블린을 향해 돌진했고.
쉬이이익-! 서걱-! 퍽-!!
“쿠뤠엑!!”
[최하급 고블린(F)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검을 몇 번 휘두른 끝에 녀석을 먼지로 산화시켰다.
적의 유효타는 일격도 허락하지 않은 일방적인 학살.
처음으로 직접 몬스터를 처치한 거라 기쁨을 느껴도 되지만 내 감상은 다른 것이었다.
“하아, 하아…. 어후, 숨차.”
때리는 것도 체력이 요구되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리고 효율도 떨어졌다.
나 혼자 최하급 고블린 한 마리를 상대하는 데는 3분 정도가 걸렸다.
10초도 안 되는 동안 아홉 마리를 잡았던 땡길거야와 비교해 보면 사냥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이다.
“역시 캐릭터 소환이 답이네. 나와라, 땡길거야.”
“부르셨습니까, 주군.”
결론을 내린 나는 마나 포션을 전부 들이킨 후, 다시 땡길거야를 소환해 사냥을 진행했다.
하지만 열다섯 마리 정도 잡았을까.
[마나 - 140 / 300]
마나가 반도 남지 않았다.
몬스터가 한데 모여 있지 않고 띄엄띄엄 있기도 하며, 이동하는 시간도 있다 보니 소환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마나 포션도 최하급인 만큼 회복량이 쥐꼬리만 해서 두 개를 다 마셨는데 순식간에 바닥이 보였다.
이제 겨우 던전 초입인데 이렇게 되면 보스 몬스터한테 도달할 때쯤엔 마나가 바닥날 게 분명했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추가적으로 마나를 회복할 수단도 없었고, 앞으로도 던전을 계속 돌 것이기에 전략을 짤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마나를 아끼면서 던전도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한 뒤, 동굴을 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주변에 널브러진 고블린들의 아이템을 본 순간.
“잠깐,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면…?”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 * *
‘거점을 지켜야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F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 애꾸 고블린은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지켰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깨어난 곳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같은 종족들과 함께 눈을 부릅뜨고 사주를 경계했다.
그렇게 하기를 몇십 분.
“덤벼라, 이 더러운 고블린 자식들아!!”
“케르륵!!”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고개를 돌리자 웬 인간이 낡은 검과 부서진 방패를 들고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침입자다. 죽여야 한다!’
애꾸 고블린은 몽둥이를 치켜들며 뛰어갔다.
쿵쿵-! 두두두두-!
동굴을 울리는 뜀박질 소리.
다른 고블린들도 인간의 뒤를 우르르 쫓고 있었다.
족히 수십은 될 법한 수였다.
애꾸 고블린도 추격 대열에 합류했다.
‘멍청한 인간, 잡는다!’
애꾸 고블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인간이었다. 저런 약골이 자신을 비롯한 고블린 수십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도망치는 것도 자신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 아니던가?
동료 고블린들도 그 사실을 아는 듯 환희의 웃음소리를 내며 인간의 뒤를 쫓았다.
‘이겼다!’
애꾸 고블린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었다.
한데.
“후우, 다 모았나? 자그마한 던전에 몬스터는 더럽게 많네.”
패배가 확정되었음에도 인간은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공포가 무엇인가.
갑자기 달리는 걸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땀까지 닦아냈다.
심지어는 자신들을 향해 양팔을 쭉 펴며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와라, 이놈들아!!”
“케르윽!!”
“케르르륵!!”
고블린들의 눈이 회까닥 돌아갔다.
약자가 여유 부리는 모습은 참을 수 없었다.
애꾸 고블린은 동료 고블린들과 함께 인간에게 돌진했다.
이제 곧 인간은 수많은 몽둥이에 찜질 되어 곤죽이 될 터였다.
그런데 몽둥이를 휘두른 순간, 애꾸 고블린의 시야에 들어온 건 인간의 피가 아닌.
“나와, 땡길거야!!”
번쩍-!!
한 줄기 섬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굴엔 인간 한 명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눈 부신 빛이 일더니 웬 철갑 기사가 강림한 것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애꾸 고블린의 동공 위로 반사되는 서슬 퍼런 장검의 궤적.
그걸 끝으로 애꾸 고블린의 의식은 암전됐다.
반대로 동굴을 한바탕 돌며 고블린을 모은 인간, 한상우의 시야엔.
[캐릭터 : 땡길거야가 최하급 고블린(F)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최하급 고블린(F)을 처치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레어 애꾸 고블린(F)을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 1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힘 +1, 민첩 +1을 획득합니다.]
빛으로 된 메시지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