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1장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6)
게임에서 몬스터를 가장 효율적으로 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바로 ‘몰이 사냥’이다. 그리고 이건 대부분의 유저가 알고 있다.
RPG 게임에서 스펙 좋은 유저가 낮은 유저와의 파티 사냥, 소위 쩔을 할 때 던전에서 몬스터를 한꺼번에 잡는다.
스펙이 낮은 유저가 몬스터를 모아와 역할을 분담하고,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게 가능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스펙이 좋은 유저가 던전의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할 것.
이것만 충족하면 던전을 최단 시간에 클리어할 수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 이야기다.
현실에서 헌터의 목숨은 하나이기에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아무리 등급이 낮은 던전이더라도 차근차근 함정을 체크하고 몬스터를 상대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효율을 택했다.
던전 곳곳을 누비며 고블린 수십 마리를 끌어모은 다음, 땡길거야를 소환해 한 번에 정리했다.
무려 보스 몬스터까지 어그로를 끌어버린 몰이사냥.
리스크가 있고, 직접 뛰어다니느라 힘들었지만 보상은 확실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모든 보상을 한눈에 파악할 순 없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철컥-!
“감축드리옵니다, 주군. 간악한 무리를 토벌해 한층 강대해지셨군요.”
“그래. 고마워.”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땡길거야가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할 정도로 내 능력치가 향상됐다는 것이다.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뭐부터 확인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능력치부터 확인해 볼까.’
나는 우선 상태창을 열어 레벨과 스탯을 확인해봤다. 그게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항목이니까.
그런데.
“허, 완전 사기네.”
상태창을 확인하자마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상태창]
[이름 - 한상우]
[레벨 - 13]
[고유 특성 - 하이어의 군주]
<스탯>
[힘 : 26] [민첩 : 24] [지력 : 23] [체력 : 28] [마력 : 11]
<스킬>
[유일 스킬 - Lv 2. 캐릭터 소환]
<특성창 열기>
<장비>
예상했던 대로 독존 특성의 효과는 사기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 레벨 1의 헌터가 레벨 2가 되려면 F급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하는 정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F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한 것으로 단번에 레벨 13, 대부분의 스탯 20을 돌파했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레벨 3에 스탯 대부분이 10을 넘지 않았는데 단번에 점프해버린 것이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리고 성장한 것은 스탯만이 아니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 역시 증가했다.
나는 상태창의 스킬 항목을 눌러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레벨 10을 돌파했습니다.]
[조건 달성]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1에서 2로 상승합니다.]
[스킬 레벨 상승에 따라 새로운 효과와 기능을 획득합니다.]
[효과 : 무언의 명령 -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 상승에 따라 이제부터 생각만으로도 소환 캐릭터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개방 : 충성도 - 소환 캐릭터와의 관계에서 충성도 부분이 개방됩니다. 충성도가 높아지면 캐릭터별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능 : 캐릭터 인벤토리 열람 - 소환 캐릭터의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안식처의 아이템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제법 유용하겠네.”
무언의 명령과 인벤토리, 그리고 충성도.
설명대로라면 편의성이 엄청나게 향상될 것 같았다.
나는 새롭게 획득한 능력을 재빠르게 파악하고는 시험에 들어갔다.
몸을 옆으로 돌린 후, 눈을 감고 간단한 명령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내 앞으로 와라, 땡길거야.’
“부르셨습니까, 주군.”
몇 걸음 떨어져 있던 땡길거야가 내 앞으로 와서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진짜 되네.”
생각만으로 명령을 내리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효과는 확실했다.
나는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다음 기능도 살펴봤다.
“인벤토리라…. 땡길거야, 인벤토리 오픈.”
촤르륵-
사용법을 알 수 없어 상태창을 열 듯 해봤는데 정답이었다.
명령어를 말하자 눈앞으로 하이어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인벤토리 창이 나타났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게임속 땡길거야의 인벤토리는 거의 꽉 차 있는데, 이건 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벤토리 설명 칸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식처의 아이템은 이용할 수 없다는 문구.
아무래도 하이어의 아이템은 표시되지 않는 듯했는데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땡길거야, 잠깐 검 좀 볼 수 있을까?”
다소 무리인 부탁일 수 있었다. 검은 기사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기에.
하지만.
“여기 있습니다, 주군.”
[캐릭터 : 땡길거야]
[현재 충성도 - 580 / 999]
[캐릭터가 시전자를 강하게 신뢰하는 상태입니다.]
[소환 캐릭터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사건이 많아질수록 충성도가 증가합니다.]
충성도가 높아서 그런 것인지 땡길거야는 흔쾌히 검을 건네주었다.
나는 검을 받은 후, 떠오르는 메시지를 살펴봤다.
땡길거야의 검은 인식표 색깔이 주황색으로 최고 등급인 신화급 아이템이지만.
[신성한 기사단장의 장검]
[효과 적용 불가]
[아직 조건이 맞지 않아 열람할 수 없습니다.]
확인할 수 없었다.
성능이 뜨는 아이템들과 달리 그 정보가 가려진 것이다.
그렇다고 당황스럽진 않았다.
인벤토리의 설명을 본 순간, 이미 예상하고 있던 거니까.
“내가 하이어의 아이템을 쓰려면 좀 더 성장해야 하는 건가. 지금은 인벤토리에 현실의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는 거고.”
땡길거야의 검을 잠깐 들어보는 것으로 인벤토리에 대한 설명과 하이어 아이템과의 관계를 파악했다.
인벤토리 기능은 현실의 물건만 보관할 수 있고, 하이어에 있는 건 꺼내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내친김에 인벤토리의 기능을 써보기로 했다.
‘뭐로 시험하는 게 좋을까.’
주위엔 고블린이 드랍한 아이템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포션 제작과 에너지 발전 등에 사용되는 마정석부터 창과 방패 등 무구까지.
나는 그중 가장 가까이 있는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땡길거야가 의중을 파악한 듯 내게 물었다.
“여기 있는 것들을 보관하시겠습니까?”
“응. 그런데 어떤 식으로 하면 되지? 그냥 게임에서 하던 것처럼 하면 되나?”
“저에게 주셔도 되고, 안식처에서 저희를 조작하시던 것처럼 직접 하셔도 됩니다.”
직접 해도 된다라.
나는 손에 쥔 마정석을 인벤토리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쑤욱- 파앗-!
마정석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더니 인벤토리의 네모 칸에 아이콘 모양으로 안착됐다.
“좋네. 짐꾼 쓸 필요가 없겠어.”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여긴 F급 던전이라 템 드랍이 많이 되지 않아 괜찮지만, 상위 던전으로 가면 혼자 부산물을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이 나온다.
그래서 혼자 처리하기 힘들 거라 예상했는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굳이 짐꾼을 고용하지 않아도,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아이템을 챙겨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벤토리 용량에 한계가 있고 내가 필요한 물품은 직접 챙겨야 한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나는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는 땡길거야를 보다가 잠깐 만류했다.
“아, 그건 보관 안 해도 돼. 내가 쓸 거거든.”
“그렇군요. 여기 있습니다, 주군.”
아이템을 수거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그중 하나는 당장 필요한 것이었다.
바로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낮은 확률로 드랍하는 아이템이었다.
마법사의 팔찌.
천으로 만들어져 애꾸 고블린은 안대처럼 쓰고 있었지만, 사실은 팔찌로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마나를 상당량 늘려주며 스킬의 마나 소모량까지 줄여 줘 마력이 낮은 초보 헌터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애초에 내가 이 던전을 선택한 것도, 지금 부족한 마나의 양을 최대한 커버할 수 있는 이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였다.
방금의 폭렙 덕분에 마나가 제법 상승했지만 그래도 아직 마나의 양은 수백에 지나지 않고, 소환을 몇 분 남짓밖에 유지할 수 없다.
지금은 최대한 마나의 절대치와 효율을 늘려 [캐릭터 소환]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연마하는 게 중요했다.
‘드랍 확률이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한 번에 뜨다니.’
솔직히 몇 번 정도는 더 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나온 걸 보니, 운이 상당히 좋았다.
드랍 확률은 낮고, 노리는 사람들은 많아 던전의 예약이 어렵기로 유명한데 말이다.
나는 땡길거야가 주는 보스 몬스터의 드랍템을 건네받았다.
한데.
‘파란색?’
아이템 이름의 색깔이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원래 마법사의 팔찌는 고급 등급으로, 녹색 이름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온 아이템의 이름 색깔은 파란색.
즉, 고급 등급보다 한 단계 위의 등급인 ‘희소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이름 또한 ‘현자의 팔찌’로 원래 노렸던 아이템과는 달랐다.
“설마 이번에 잡은 보스 몬스터가…….”
나는 메시지 창으로 시선을 돌려 땡길거야가 처치한 보스 몬스터의 이름을 확인했다.
[캐릭터 : 땡길거야가 레어 애꾸 고블린(F)을 처치했습니다.]
“역시 레어 등급이었네.”
과연, 평범한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던전에선 낮은 확률로 레어 보스 몬스터가 뜨는 경우가 있다.
레어 보스 몬스터는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보다 강하지만, 대신 더 좋은 템을 드랍할 확률이 높다.
땡길거야가 일격에 쓸어버려서 몰랐지만 이번에 잡은 녀석이 레어 보스 몬스터였던 것이다.
덕분에 기대했던 마법사의 팔찌보다 한 등급 위의 현자의 팔찌가 나왔다.
‘1트 만에 나온 것도 대박인데, 희소 등급을 얻게 될 줄이야.’
그야말로 초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행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초 업적 달성]
[해당 던전을 역대 최단 시간 내에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팔찌가 빛을 내며 바뀌었다.
* * *
“후우, 제대로 추적했다면 여기 밖에 없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서울역 사냥터, 헌터청의 인사과장 신대훈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영상을 본 후, 신대훈은 이곳으로 왔다.
모든 게 발에 땀 나도록 뛴 결과였다.
영상 속 인상착의를 토대로 남부 헌터청 주변의 주차장, 길거리 일대의 CCTV를 분석한 결과 영상 속 남자의 유력한 도착지는 여기였다.
CCTV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은 바로 이곳뿐이었다. 무엇보다 신대훈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에 바로 자신이 찾는 헌터가 있다고.
물론,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과장님, 안 보이는데요?”
“다른 데로 간 게 아닐까요? 여긴 고등급 던전이 없어서 SS급 헌터가 올 법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팀원들 역시 이 점을 짚어주었다.
서상재 대리를 비롯해 함께 나온 직원 세 명이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영상에서 봤던 헌터는 찾지 못한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던전에 들어가서 안 나왔을 수도 있어. 좀 더 기다려 보자고. 그분, 반드시 모셔야 해.”
팀원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신대훈은 좀 더 기다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 헌터계의 중심인 헌터청.
하지만 그 명성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인재들이 유출되고 있었다.
아무리 세금 혜택과 공권력이 있다고 해도 높은 등급의 헌터가 일반 길드로 많이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인류 멸절의 위기를 극복해야 했을 때나 힘을 뭉쳤지, 평화가 찾아온 지금 고등급의 헌터는 부와 명예를 좇아 길드로 가고 있다.
만약 이대로 간다면 헌터청은 유명무실한 식물 기관이 될 것이었다.
헌터청을 이끌 인재가 필요하다.
신대훈은 확신하고 있었다.
CCTV 속의 헌터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SS급 헌터일 것이라고. 그리고 영입만 한다면 헌터청, 아니 헌터계의 간판스타가 될 것이라고.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
반짝이는 팀장의 눈빛에 서상재 대리와 팀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팀장님이 저렇게까지 하시는 건 오랜만에 보는데? 진짜 대박인가 봐.”
“영상만 봐도 알잖아. 스킬 검증실 샌드백을 일격에 터뜨렸는데, 그거 SS급 헌터도 하기 힘들걸?”
“하긴. 그거 나도 했었는데 오지게 단단하더라….”
헌터청의 샌드백은 각성자라면 한 번씩은 쳐보는 것이기에 인사팀 직원들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헌터가 헌터청에 등록도 안 되어 있다니…. 대체 정체가 뭘까?”
“머리랑 갑옷을 보면 외국인이 아닐까?”
영상 속 남자는 천연으로 보이는 금발에, 국내에선 많이 사용되지 않는 서양식 갑옷을 입고 있었다.
“외국인이 헌터청의 샌드백만 가격하고서 CCTV를 피해 사라진다고?”
“하긴 그것도 그렇네. 대체 정체가 뭐지? 혹시… 이계에서 온 영웅?”
“푸하핫!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헌터청 인사과 팀원들은 사냥터에서 대기하며 영상 속의 헌터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때였다.
“어라, 저 망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신대훈의 눈에 저 멀리 이동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F급 던전에서 나와 사냥터에 마련된 간이 아이템 거래소로 향하는 사내 둘.
팀장다운 눈썰미가 발휘됐지만, 팀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 같습니다, 팀장님. 고등급 헌터가 저런 데서 나올 리가 없으니까요.”
“동의합니다. 저긴 초보 헌터들이 경험을 쌓으려고 들어가는 곳이니까요. 고등급 헌터가 갈 이유가 없어요.”
“아니, 그래도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뒷모습이긴 하지만 분명 영상으로 봤던 것과 비슷했다.
신대훈은 간이 아이템 거래소로 들어가는 두 헌터를 쫓아갔다.
그리고.
“저기, 잠시만요!!”
붉은 망토의 헌터를 불러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