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1장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7)
“……?”
신대훈의 외침에 거래소 입구에 있는 헌터가 고개를 돌렸다.
‘찾았다!’
신대훈은 희열을 느꼈다.
발 빠르게 분석하고 움직인 탓에 애타게 찾던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슨 일이시죠?”
“어라?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붉은 망토의 헌터를 불러세웠지만, CCTV에서 봤던 얼굴이 아니었다. 그리고 붉은 망토의 헌터 옆엔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이 사람은 혼자였다.
머리칼도 금발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망토 색깔만 같고 나머진 전부 달랐다.
‘어디 간 거지? 분명 여기 들어왔는데…!’
신대훈은 황급히 사과한 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래소 로비는 헌터와 중개상인 등 백 명이 넘는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눈동자.
분명 쫓아오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대훈이 그 헌터를 찾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고생 많았다. 들어가서 쉬어.”
“감사합니다, 주군.”
땡길거야는 방금 한상우가 하이어로 돌려보냈으니까.
F급 던전을 클리어한 후, 한상우는 땡길거야의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넣고 소환을 해제한 뒤 던전을 나왔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인원이 다르면, 던전 보초의 출입대장 작성 때 귀찮아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거래소 근처의 인적 없는 골목에서 잠깐 아이템을 꺼내기 위해 땡길거야를 소환했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이 순간을 포착한 신대훈에게는 의도치 않은 희망 고문이 되어 버렸다.
신대훈은 거래소 근처는 물론이고, 거래소 건물 10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수색했지만 한상우로선 그런 노고를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소환을 해제한 한상우는 그저 아이템을 넣은 가방을 들고, 로비에 마련된 구매를 전문으로 하는 매장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한상우가 매장에 들어가자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직원이 친절한 미소로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템 판매는 이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템 판매는 처음인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 그러시군요. 별거 없습니다. 여기 테이블 위에 아이템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매장 안쪽엔 커다란 테이블이 20여 개 가까이 있었다. 옆을 슬쩍 보니 레이드를 마친 헌터들이 아이템을 꺼내 감정을 받거나 흥정하고 있었다.
한상우도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 위에 가방을 털었다.
촤르르르-!
단검, 부츠, 마정석 등 십수 개의 아이템이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직원은 돋보기와 태블릿처럼 생긴 휴대용 측정 장비로 아이템을 스캔하며 말문을 열었다.
“F급 No. 12…. 애꾸 고블린 던전을 다녀오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나요?”
고블린의 체취라도 남아 있는 걸까?
직원의 말에 한상우는 옷 냄새를 한번 맡아봤지만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 경력이 5년 가까이 됩니다. 드랍 아이템만 봐도 어느 던전의 것인지 알지요. 던전마다 나오는 아이템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특별한 아이템뿐만 아니라 잡템도 그렇습니다.”
“아,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마법사의 팔찌는 안 나왔나 보군요.”
“예? 아, 네….”
한상우는 장갑과 옷이 덮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잠시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아이템들을 살피며 계속해서 얘기했다.
“아깝네요. 손님도 그것 때문에 들어가신 것 아닌가요?”
“예? 아, 예. 뭐 그렇죠.”
사실 마법사의 팔찌를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상위 아이템인 현자의 팔찌로 업그레이드까지 됐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쓸 거니까.
“고급 등급인데도 마나 효율이 너무 좋아서…. F급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인데도 없어서 못 사죠.”
“그럼 가격도 꽤 비싸겠네요?”
“그렇죠. 마법사의 팔찌면 천 단위…. 혹시 운 좋아서 현자의 팔찌를 얻으면, 몇 억까지도 될걸요?”
“팔찌 하나에 몇 억이라고요?”
“네. 잠깐만요…. 아, 있네. 현자의 팔찌가 얼마 전에 4억이 조금 넘는 가격에 팔렸네요. 있는 집이나 상위 길드면 헌터 한 명 키우려고 엄청나게 쏟아부으니 가격이 이렇게 뛰기도 하는 거죠.”
“허어…. 입장 경쟁이 그렇게 치열할 만도 하네요.”
현자의 팔찌가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다니.
한상우는 태블릿 화면에 뜬 거래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자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필요하시면 구해 드릴까요? 저희 본사에 문의하면 비슷한 옵션의 일반 등급 하나 정도는 나올 것 같습니다만….”
“아뇨, 괜찮습니다.”
이미 획득했으니까 당연히 괜찮지.
한상우의 말을 들은 거래소 직원은 당연히 그런 사실을 몰랐고, 살짝 웃고는 태블릿을 이용해 아이템의 감정을 마저 진행했다.
“정산 가격은 세금을 제하고 총 천이백만 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일반 등급 아이템과 마정석은 여기 보시는 대로 가격이 정해져 있습니다.”
직원이 아이템 거래소 공식 홈페이지의 가격표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아이템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지만 등급이 낮은 것과 몬스터 부산물은 가격이 정해진 게 많았다.
한상우는 설명은 들을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대로 처리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가져오신 물건들은 가격이 정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만, 고등급 아이템을 가져오신다면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쳐 드리겠습니다. 다음에도 또 찾아주세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방문하겠습니다.”
한상우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직원과 거래를 완료한 후,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 * *
“진짜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었네.”
가구와 컴퓨터가 전부인 단출한 원룸.
나는 잔뜩 사 온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긴 하루였다.
분명 어제와 오늘, 똑같은 방에 있건만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각성을 했고, 헌터증을 발급받았으며, F급 던전을 클리어한 데다 하루 만에 천만 원 넘게 벌기도 했다.
그래서 모처럼 자축하기 위해 치킨과 맥주를 브랜드별로 사왔다. 조금 과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고 축하받을 수도 없기에 혼자서라도 단출한 파티를 여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 그뿐인가.
‘끝내주는 아이템도 얻었지.’
나는 맥주캔을 책상에 내려놓은 후,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손목에 찬 팔찌 위로 글자들이 떠 올랐다.
[찬란한 현자의 팔찌]
[등급 : 희소]
[효과 : 지력 +15, 마력 +20, 마법 저항 +5]
[추가 효과 1 : 마나 증가 - 착용자의 최대 마나를 20% 증가시켜 줍니다.]
[추가 효과 2 : 마법사의 지혜 - 스킬 사용에 소모되는 마나의 양을 30% 감소시켜 줍니다.]
금색 자수가 새겨진 검은색 천 팔찌.
애꾸 고블린을 잡고 얻은 보상이었다.
F급 던전에서 희소 등급이라니.
아이템의 등급은 일반, 고급, 희소, 전승, 영웅, 신화 순으로 총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희소 등급이라면 세 번째 등급으로 높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현자의 팔찌는 희소 등급 중에서도 탈 희소 등급, 유사 전승이라고도 불리는 고성능 장비였다.
그런 현자의 팔찌가 억대를 호가하는데, 나는 수식언까지 붙었으니 무조건 5억 이상이겠지.
오면서 살짝 찾아보니 애초에 경매장에는 등록된 적도 없었다.
솔직히 경매에 부쳐서 얼마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당장의 돈보다는 미래를 보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최초 업적 달성]
[해당 던전을 역대 최단 시간 내에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희소 등급인 현자의 팔찌를 획득한 순간 영문 모를 빛이 뿜어져 나왔고, 눈앞에 뜬 메시지들이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업적을 달성하여 히든 퀘스트가 개방됐습니다]
[첫 번째 업적 - F급 던전 최단 시간 클리어(1/1)]
[보상으로 획득 아이템이 강화됩니다.]
히든 퀘스트.
숨겨져 있던 첫 번째 업적을 달성해서 보상으로 획득 아이템인 현자의 팔찌가 강화된 것이었다.
‘히든 퀘스트가 있을 줄이야. 하이어의 캐릭터만이 아니라 시스템도 적용되고 있었어.’
하이어에도 이런 히든 퀘스트들이 제법 있다.
퀘스트 목록엔 뜨지 않지만, 업적이나 숨겨진 조건을 달성하면 엄청난 보상이나 히든 피스를 주는 것이다.
현실의 헌터한테는 히든 퀘스트가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에겐 퀘스트가 수여됐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었다.
[첫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하여 히든 퀘스트가 일부 개방됩니다.]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1/10)]
[두 번째 업적이 개방됩니다.]
[두 번째 업적 - 탐욕 많은 원숭이 주술사의 고서를 획득하세요(0/1)]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업적을 클리어하자 두 번째 업적의 목록도 떴다.
히든 퀘스트의 이름은 군주의 업적.
숫자를 보니 총 열 개의 업적으로 이루어진 히든 퀘스트인 것 같았다.
개별적으로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을 줄 뿐만 아니라 모두 완수하면 히든 보상도 따라온다.
과연 마지막엔 어떤 걸 줄 것인가.
“뭔지는 몰라도 현자의 팔찌보다 좋은 걸 거야.”
연계 퀘스트의 경우, 다음 보상이 첫 보상보다 좋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연계 퀘스트를 마무리했을 때 가장 좋은 보상을 주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첫 번째 보상이 강화된 현자의 팔찌였으니, 마지막 보상은 최소 그 이상이라는 건데.
물론, 벌써 마지막을 생각하는 건 김칫국을 마시는 거고 당장은 두 번째 업적부터 달성해야 했다.
“탐욕 많은 원숭이 주술사라…. E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던 것 같은데.”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에 들어갔다.
역시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로 녀석은 E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주술을 이용해 헌터들을 환각에 빠트리는 특성이 있고, 아이템도 비싼 걸 주지 않아 크게 인기가 없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데다 서울역 사냥터에도 있는 곳이었으니까.
‘좋아, 이번엔 어떤 보상이 나오는지 볼까?’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원숭이 던전의 입찰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