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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9화 (9/169)

제9화

2장 행운도 만드는 것이다(2)

“마치 문처럼 생겼군요.”

땡길거야도 내 옆으로 다가와 동굴의 벽을 관찰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분명히 있었다.

3m 정도 되는 네모난 크랙.

벽에 난 건 다름 아닌 정사각형으로 생긴 금이었다.

자연적으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는 모양인 것이다.

아무리 봐도 비밀 공간으로 향하는 문인 것 같았는데 헌터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정보를 본 적이 없다.

인기가 없다고 해도 수많은 이들이 다녀간 던전인데 왜 그럴까.

잠깐 생각해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원숭이 주술사의 스킬, 혼돈.

이곳에 오는 헌터는 모두 들어오자마자 저주에 걸려 인식 저하가 일어나니 이걸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반면, 나는 평정의 효과로 저주 자체가 걸리지 않았으니 그나마 열 번째 도전에서나 발견한 것이고.

이제 남은 일은 열쇠를 찾는 것인데 이것도 쉽게 해결됐다.

“이거 완전 지팡이랑 똑같이 생겼네.”

네모난 벽 한가운데, 원숭이 주술사가 있던 지팡이와 똑같이 생긴 모양의 홈이 파여 있었다.

과연, 녀석의 지팡이를 주워 와 홈에 꽂자.

쿠구구구궁-!

벽이 굉음을 일으키며 옆으로 밀려나면서 기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대단한 추리이십니다, 주군.”

“이 정도로 뭘. 그럼 들어가 볼까?”

“함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장서겠습니다, 주군.”

역시 괜히 수호 기사가 아니었다.

땡길거야는 방패를 치켜든 채 앞서 걸었는데 다행히 함정은 없었다.

대신.

“허, 괜히 ‘탐욕 많은’ 타이틀이 붙은 게 아니었네.”

보물 더미가 나타났다.

통로 안쪽에 마련된 자그마한 공동에 각종 금은보화와 왕좌, 가구, 갑옷 등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다.

다만 화려한 광경과 달리 실속은 별로 없었으니.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건 몇 개 없네.”

들고 갈 수 있는 게 몇 개 없었다.

금은보화가 있긴 해도 아이템이 아닌 물품은 던전 밖으로 들고 나가면 사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보물 더미 한편에서 내가 찾던 물품을 발견했으니까.

[탐욕 많은 원숭이 주술사의 고서]

[등급 : 희소]

[특징 : 탐욕이 가득한 원숭이 주술사가 폐허가 된 도시에서 훔쳐 온 고서입니다.]

[열람 시, 아이템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해당 아이템의 열람은 조건을 달성한 존재만 가능합니다.]

“좋았어.”

두 번째 히든 퀘스트의 완수가 코앞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아이템 효과 습득을 위해 책을 펼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음…?”

책장을 펼쳤는데 눈에 들어온 건 종이가 아니라 새하얀 빛이었기 때문이다.

번쩍-!!

“주군…!!”

귓가로 땡길거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화아아아악-!!

섬광 사이로 의식이 스며들었다.

* * *

-빨리빨리 움직여! 그렇게 굼뜨다간 몬스터 밥이 된다고 몇 번을 말하나!

뜬금없이 들려온 고성.

‘여긴…?’

정신을 차리자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훈련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움직이긴 하는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의식은 있는데 내 몸이 제멋대로 훈련장을 뛰고 있었다.

마치 빙의라도 한 것처럼.

나는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허수아비들이 꽂힌 연병장, 검을 들고 휘두르는 기사들.

그리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한 건물과 콧수염 난 교관의 얼굴.

‘제국기사단의 훈련장…?’

주변을 돌아보다가 깨달았다.

이곳이 하이어 속의 맵인 제국기사단 훈련장과 똑같은 곳이라는 걸.

누군가 듣는다면 무슨 미친 소리냐 하겠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주변 풍경이 완전 똑같기도 했거니와.

-체력은 모든 것의 근원이다! 뛰어난 검술은 탄탄한 체력에서 시작한다, 알겠나!

-예! 기사단장님!!

생도들을 직접 가르치는 콧수염 교관, 기사단장의 외침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땡길거야의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진 않지만 나는 땡길거야의 몸에 빙의된 상태였다.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땡길거야의 감각과 생각 등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건… 그냥 지켜보는 게 좋겠군.’

잠깐이지만 나는 상황 파악을 끝내고, 관망하는 걸 선택했다.

이게 보상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지금 땡길거야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가 하이어에서 메인 퀘스트로 플레이했던 것이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 기사로서의 성장.

내가 플레이하며 봤던 퀘스트들을 직접 이렇게 겪을 줄이야.

혹시 이후의 이야기들도 이렇게 겪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예상은 적중했다.

휘익-!

잠깐 시야가 암전되더니 한창 달리던 몸이 허수아비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콧수염 난 기사단장이 외쳤다.

-검은 직선이지만 궤적은 곡선이 되어야 한다! 유연하게 움직이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도록!

-예!

땡길거야는 쉴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때로는 동료와 목검을 가지고 대련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또 시야가 바뀌었다.

휘이익-!

이번엔 고요한 성벽 밑이었다.

뜬금없는 장면 전환이었지만 나는 곧바로 눈치챘다.

황제를 시해하려는 암살단이 있다는 첩보를 받고, 기사단장과 함께 소수 정예로 그들을 막는 퀘스트였다.

물론, 그건 함정이었다.

반란에 앞서 제국기사단을 제거하기 위해 적들이 계략을 꾸민 것이다.

퀘스트 후반부에는 처음에 들었던 것보다 10배는 많은 적군을 상대하게 된다.

하지만.

-하아아아앗!!

땡길거야는 아이템과 사냥을 통해 성장한 것을 바탕으로 모든 적들을 물리쳤다.

일당백을 넘어 일당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

기사단장도 감탄할 정도였다.

-실력이 좋군, 부기사단장을 해도 되겠어!

-감사합니다, 단장님.

또다시 시야가 암전됐다.

다음은 세상의 멸망을 원하는 흑마법사가 자신을 제물로 바쳐 소환한 용족 군단과의 전쟁터였다.

기사단장이 선봉에 서서 소리쳤다.

-제국의 기사들이여! 간악한 무리를 토벌하라!!

-와아아아아아!!

인간과 용족의 전쟁이 시작됐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하늘에선 화염이 쏟아지고, 땅에선 난폭한 용족 전사들이 진격해왔다.

인간보다 훨씬 강한 존재들이었지만 제국기사단은 용맹하게 맞서 싸웠다.

그러나 희생은 피할 수 없었다.

전투 막바지, 파멸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용이 등장한 탓이었다.

드래곤 루드리아.

점점 전황이 기울고, 기사단장은 홀로 루드리아와 맞서 싸우다가 브레스를 맞고 땡길거야 앞에 쓰러졌다.

-이제부턴 네가 기사단장이다. 잊지 마라, 기사는 약자를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단장님…!

늘 진중하고 흐트러짐 없던 땡길거야의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눈물도 올라오려고 했다.

그때였다.

-끄아아아악!!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땡길거야는 기사단장을 안은 채 주변을 돌아봤다.

기사단장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훈련했던 동료들도 용족 전사들의 무기에 베여 쓰러지고 있었다.

후회와 분노, 그리고 강렬한 열망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애도할 시간은 없었다.

‘강해져야 한다. 내가 강해져야만 나를, 동료를, 그리고 약자들을 지킬 수 있다.’

연이어 들어오는 극한의 깨달음들.

위기를 극복하는 건 나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검이다.

-드래곤 루드리아!!

땡길거야는 기사단장의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수호의 이름 아래, 그대를 처단하겠노라!!

-쿠르르르…!!

죽음의 화염을 내뿜는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 *

화아아아악-!!

“허억, 허억….”

눈이 번쩍 뜨였다.

이번엔 몸이 의지대로 움직였다.

풍경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희끄무레한 보물 창고 안,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아, 별일 아니야. 어떻게 된 거지?”

“책을 여시는 순간, 섬광과 함께 책이 사라지고 주군께서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몇 초 정도였습니다. 함정이라 판단해 대응하려는 순간, 주군께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렇구나. 고마워.”

보상이라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무방비하게 당해버렸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몇 초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몇 년의 세월을 체험하고 나니, 긴 꿈을 꾼 듯 그리우면서도 씁쓸했다.

아마도 이건 내가 플레이한 하이어 속 땡길거야의 기억이겠지.

무엇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밀려왔는데 그걸 사유할 여유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자 고서의 효력이 발동한 것이다.

두 번째 히든 퀘스트의 보상은.

[두 번째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탐욕 많은 원숭이 주술사의 고서의 책 내용을 흡수합니다.]

[보상을 습득합니다.]

[Lv. 1 제국기사단의 검술을 획득합니다.]

땡길거야의 검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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