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2장 행운도 만드는 것이다(3)
‘그래서 땡길거야의 이야기에 직접 빙의하게 했던 건가.’
두 번째 히든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한 순간, 나는 어째서 보상 수여와 함께 빙의라는 체험을 하게 됐는지 깨달았다.
검술은 정해진 능력을 글로 보거나 머리로 생각한다고 익혀지는 게 아니다.
직접 몸에 체화해야 하기에 그 분량이 방대하고, 수많은 경험도 따라야 한다.
기초 위에 심화 과정이 있고, 그 위에 응용 버전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단기간에 습득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빙의를 통해 직접 오랜 세월을 경험한 내 손엔 땡길거야가 휘두르던 검의 감각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해져야 한다. 내가 강해져야만 나를, 동료를, 그리고 약자들을 지킬 수 있다.
검을 대하는 땡길거야의 의지 역시 내 가슴을 맴돌고 있었다.
누군가를 수호하고픈 열망.
이것은 이내 새로운 특성으로 발현되었다.
[Lv. 1 수호의 의지를 획득합니다.]
[패시브 스킬 : LV 1. 수호의 의지 - 타인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될 때, 모든 스탯이 5% 상승합니다.]
검술은 검과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마음가짐 역시 중요하다고 들었다.
육체와 정신. 그 둘을 아우르는 방법이 바로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 보상, 검술과 특성을 얻고 나니 빙의의 이유가 이해가 됐지만, 확인 작업은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보물 더미로 걸어가 조금 전에 봐두었던, 낡은 목검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하나를 땡길거야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대련 한번 할까?”
“…대련 말씀이십니까?”
“응. 새로운 검술을 습득했거든.”
나의 뜬금없는 제안에 땡길거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하긴 나라도 저럴 것이다. 기절했다가 깨어났는데 갑자기 대련이라니.
그래서 나는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쉬익-!
기습적으로 땡길거야의 가슴을 향해 목검을 휘두른 것이다.
따악-!!
땡길거야는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이건… 제국기사단의 검술이로군요.”
검술의 정체를 파악했다.
“맞아, 콧수염 단장님이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검술이지. 고서에 봉인되어 있었어.”
“그랬군요. 그럼 잠시 검을 봐 드리겠습니다.”
“좋아, 간다.”
땡길거야를 유지할 수 있는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지체없이 대련이 성사됐다.
사실 실력만 놓고 보면 게임이 안 됐다. 레벨만 봐도 땡길거야와 나는 900 넘게 차이가 나니까.
땡길거야는 마음만 먹으면 몬스터를 일격에 처치하듯 한 번에 날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내 검술을 시험하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히려 땡길거야는 최적의 대련 상대였다.
내가 전력을 다해도 땡길거야는 가볍게 받아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쉭-! 휘이익-!
몬스터를 상대하듯 진심으로 검을 찌른 후, 변칙적으로 그 상태에서 올려 쳤다.
일전에 일반 고블린을 직접 상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일취월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체계가 잡힌 검술.
그러나 땡길거야는 목검으로 막지도 않고, 몸을 두 번 트는 것만으로 가볍게 내 공격을 회피했다.
검의 궤적을 완벽하게 읽은 것이다.
나는 연이어 들어가는 대신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과연, 내가 있던 자리로 땡길거야의 목검이 지나갔다.
그러자.
“움직임이 가벼우시군요. 갑옷이라도 스치면 주군의 승리로 하겠습니다.”
“그래? 무르기 없기다.”
내 전력을 파악한 듯 땡길거야가 내기를 걸어왔다.
피할 이유가 없지.
나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땅을 박찼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옆으로.
베기가 실패하면 횡으로 그었던 목검을 중앙으로 다시 가져온 뒤 찌르기로 변환했다.
땡길거야가 암살자들과 싸웠을 때의 움직임 그대로.
나는 땡길거야의 검술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아직까진 흉내 내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검술의 ‘ㄱ’도 모르던 초짜였으니까.
땡길거야는 미숙하게나마, 자신과 같은 제국검술을 사용하는 나를 보며 조금 놀란 듯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짧은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신 것 같습니다.”
땡길거야는 그렇게 말을 하며 검을 고쳐쥐었다.
순간, 단단한 검기가 나를 압도했다. 방어 일변도였던 땡길거야가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공격은 충분히 봤으니, 이번에는 수비를 보겠다는 건가?
“이번엔 제 쪽에서 가겠습니다, 주군.”
내 공격을 유연하게 흘린 땡길거야는 몸을 살짝 뒤로 빼고, 처음으로 공격을 위해 검을 휘둘렀다.
궤적이 뻔히 보이는, 회피든 방어든 자유롭게 해보라는 듯한 일격.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고 수세에 몰릴 생각은 없다.
[제국기사단의 검술 제2식 - 반월 베기]
“……!”
나는 공격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단순한 검술을 넘어 마나를 이용한 기술을 시도한 것이다.
반월베기.
마나를 사용해 검 끝에 10cm 남짓한 날카로운 오러를 만들어 휘두르는 검술로, 제국 기사라 하더라도 평기사 이상이 되어야 익힐 수 있는 기술이었다.
설마 이걸 쓸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것일까.
짧은 순간, 땡길거야의 눈빛에 당혹이 짙어졌다.
따악-!! 퍽-! 쿠웅-!
“크윽!!”
땡길거야를 향해 휘둘렀던 목검이 위로 솟구쳐 보물 창고 천장을 치고 땅으로 내려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주군!”
“아, 괜찮아. 걱정하지마.”
내가 당연히 막거나 피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땡길거야는 크게 놀라며 나동그라진 나에게 뛰어왔다.
“죄송합니다, 주군. 힘 조절에 실패해서….”
“아니, 괜찮다니까. 그리고….”
나는 말을 잇는 대신 땡길거야의 갑옷 한쪽을 가리켰다.
땡길거야의 은빛 갑옷, 가슴팍 쪽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어때?”
“…예. 주군의 승리입니다.”
본래라면 내 검이 땡길거야의 갑옷에 닿을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구사한 반월베기에 이어 연장된 오러의 길이는 예상치 못했는지 작게나마 일격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훌륭합니다, 주군.”
“그래. 종종 대련 부탁할게. 아직도 갈 길이 머니까.”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주군과 검을 나눌 수 있어 영광입니다.”
희미하게 웃는 땡길거야의 모습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마나가 슬슬 한계에 달해 소환이 해제된 것이다.
그때였다.
[캐릭터 : 땡길거야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였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의 충성도가 50 상승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
[현재 충성도 - 630 / 999]
[충성도가 600을 돌파하여 캐릭터 : 땡길거야의 마나 소모량이 6% 감소합니다.]
갑자기 메시지가 뜨면서 땡길거야의 충성도가 증가했음을 알려왔다.
충성도가 올라가면 추가 효과를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캐릭터 소환]의 마나 소모량이 감소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소환을 유지하는 부담이 한층 줄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국 기사단의 검술]을 얻음으로써 땡길거야의 소환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싸울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으니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잡템도 더 챙기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끌어 모으자.”
그러고 보니 중간에 거래소 한 번 들르지 않고 열 번이나 던전을 돌았더니 땡길거야의 인벤토리는 꽉 찬 상태였다.
나는 혹시 몰라 챙겨온 가방에 남은 잡템을 챙겨 던전을 나왔다.
* * *
“하아, 역시 안 나타나는 건가.”
서울역 사냥터의 아이템 거래소.
신대훈은 로비를 배회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째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역 사냥터를 쉴새없이 돌아다녔지만, 금발 헌터의 모습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 가본 데가 없었다.
F급부터 D급까지. 서울역 사냥터에 모여 있는 던전을 빠짐없이 방문하고, 아이템 거래소도 모든 층을 올라가 봤다.
이제는 서울역 사냥터를 눈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로 찾았는데 안 보이는 거면 없는 거겠지.’
노력은 할 만큼 했다.
사실 애초에 직감만 따라 온 거였으니,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고등급 헌터가 D급까지밖에 없는 서울역 사냥터에 올 리가 없었다.
만약 어제 진짜 왔다 하더라도 잠깐 온 것일 가능성이 컸다.
‘다른 데로 간 건가? 아니면 아예 이쪽에 온 적이 없는 건가?’
수색을 포기하고 로비에 앉아 있던 신대훈은 눈앞에 보이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아이템은 없었지만,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뭐라도 하나 사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잠시 아이템 구경 좀 하겠습니다.”
“예. 편하게 보시고, 필요하면 불러주십시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50대쯤 되어 보이는 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신대훈은 직원과 짧게 대화를 나눈 후, 매장 한쪽에 진열된 아이템들을 살펴봤다.
‘장비는 비싸고, 그렇다고 포션 같은 걸 사자니 그것도 필요가 없고….’
보복성 소비를 하러 들어왔지만, 막상 구매하자니 필요한 게 없었다.
고민은 10분 넘게 계속되었는데, 한참 저가 아이템을 보며 고심하던 그때.
딸그락-! 촤르르르르-!!
갑자기 옆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허어, 아이템이 엄청 많군요, 헌터님. 오늘은… E급 No. 46 던전을 다녀오셨군요. 한데 한두 번 레이드한 양이 아닌데요?”
“예.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좀 받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서, 빠르게 정산 부탁드립니다.”
“아, 예. 5분 안에 끝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레이드한 아이템을 팔러 온 것일까?
풍기는 분위기로 보건대, 그다지 고랭크의 헌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정산하는 아이템의 양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도움을 받았다’라는 말.
신대훈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그를 몰래 주시했다. 자신이 찾고 있는 헌터와 연결점이 있을 거라는 감이 왔다.
자세히 보니 어제 봤던 금발 헌터의 일행과 비슷한 행색인 것 같기도 했다.
신대훈은 아이템을 구경하는 척 판매대를 기웃거리다가, 정산이 끝난 뒤 나간 헌터의 뒤를 쫓았다.
이동하는 동안 이상한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치챈 기색도 없었다. 스카우터라는 직업 특성상, 이런 스토킹(?)에는 도가 튼 신대훈이었다.
대상이 점점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그 헌터와의 접선 장소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신대훈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은 쫓는 게 아니라, 쫓기고 있었다는 것을.
“멈춰라.”
어느새 나타난 금발의 헌터가 신대훈의 목에 검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