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2화 (12/169)

제12화

2장 행운도 만드는 것이다(5)

“이게 각성의 힘인가? 하루하루 달라지네.”

새벽이 되어 도착한 원룸 안, 나는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해봤다.

레벨 25 달성, 제국기사단의 검술 습득, 아이템 판매로 6,500만 원 수익.

마지막으로.

새로운 헌터증 획득.

나는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고,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냈다.

<임시 특급 헌터증>

<본 헌터증을 소지하고 있을 시, 신원 확인 없이 던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발행처 : 헌터청 본청>

<담당자 : 헌터청 제3 인사과, 과장 신대훈>

<기간 : 발행일로부터 1년>

기간제이긴 하지만 던전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특급 헌터증이다.

이걸 보고 있으니 조금 전, 서울역 사냥터의 카페에서 신대훈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정식 소속은 아니어도, 필요한 경우 말씀하시면 지원을 하도록 친구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지원이라면, 용병이라는 뜻인가요?’

‘예. 결국 일할 인원이 부족한 것 아니신가요? 소속되는 건 어렵지만, 적절한 대가만 있다면 용병이야 가능할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어떤 걸 원하시죠?’

‘특급 헌터증을 발급해 주시면, 2주에 한 번 요청하신 곳에 지원을 나가겠습니다.’

특급 헌터증.

던전 보초를 서다 보면 알게 되는 게 많다.

던전 진입과 관련해서 헌터청에서 보내는 공문이나 규정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하니까.

내가 알기로 특급 헌터증이 있으면 모든 입찰에서 우선순위를 가지며 갑작스럽게 등장한 최초 균열에도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있다.

발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정부와 관계된 일부 S급이나 SS급 헌터에게는 특급 헌터증이 발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신대훈은 난색을 표했다.

‘특급 헌터증 발급 시 신원 조회 없이는….’

‘그럼 그만두도록 하죠. 저도 중개를 하고자 한 거지, 매달리려고 한 건 아니니까요. 그럼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는 것 같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자, 잠깐만! 알겠습니다. 대신 영구 발급은 어렵고, 기간을 갱신하는 정도로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라면 제가 어떻게든….’

‘음…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보도록 하죠. 그리고 또 하나. 친구가 신원을 숨기고 싶어 해서, 헌터증은 제 이름으로 비밀리에 발급해 주세요. 입장도 저 혼자 하는 걸로 찍힐 겁니다.’

‘어…. 그건 상관없을 것 같은데, 꼭 같이 가려고 하시는 이유가…?’

‘저도 사이에서 개평 좀 챙겨야죠.’

결국, 신대훈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쩌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을.

헤어진 신대훈은 다음날 바로 나에게 연락했고, 얼마 뒤 특급 헌터증이 집으로 배달됐다. 기밀 유지를 위해 방문 수령도 안 된다나.

헌터청 인사과장과의 협상이라는 상황이 긴장될 법도 했지만, 특성 ‘평정’의 효과 덕분인지 침착함이 유지되어 충분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덕분에 업적도 달성할 수 있겠고.’

세 번째 업적이 개방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하여 세 번째 업적이 개방됩니다.]

[세 번째 업적이 개방됩니다.]

[세 번째 업적 – D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0/1)]

[히든 퀘스트: 군주의 업적(2/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업적은 D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클리어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세간의 통념으로 봤을 때 E급 던전 정도라면 던전에 따라 F급 헌터라도 클리어할 수도 있지만, D급부터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만약 F급 헌터 혼자 D급 던전을 클리어하겠다고 한다면?

들여보내 줄 던전 보초는 없다.

클리어한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귀찮아질 수 있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초가 존재하지 않는 오지의 던전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회성이지 점점 증가하는 업적의 난도를 봤을 때 좀 더 장기적인 대책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신대훈 과장에게 제안했다.

땡길거야의 실력이 노출된 것을 활용, 어느 던전이든 들어갈 수 있는 헌터증을 얻어낸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낸 기지.

‘그렇다면, 모처럼 얻은 기회를 결과로 바꿔야지.’

띠링-!

<헌터청 신대훈 과장 - 내일 오전 11시, 경기도 양평의 D급 No. 135 던전 클리어 지원 부탁드립니다.>

맥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신대훈에게 문자가 왔다.

일손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실력을 테스트하고 싶은 건지 시작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임무였다.

나로선 좋은 일이었다.

원래는 혼자 D급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히든 업적을 클리어하면서 헌터청의 임무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던전 입장을 생각하면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자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일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받아가 보세요!>

각성 후 현생에 집중하다 보니 매일 해야 하는 하이어의 일일 퀘스트를 수행하지 못했다.

캐릭터도 많아서 지금 한다면 네 시간이 넘게 걸릴 루틴.

이대로는 던전에 갈 때까지 잠 한숨 자지 못할 테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돈 좀 쓰지 뭐.”

원래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던 유료 강화 포션.

PVP나 레이드 때나 쓰던 포션을 일퀘에 쓰자 숙제 시간은 확실히 단축되었다.

‘흠, 원래보다 금방 끝났는데, 좀 더 돌릴까.’

물론 그렇게 단축된 시간은, 다른 파밍에 썼다.

* * *

“후우, 얼마나 더 걸어야 나오는 거야?”

“진짜 더럽게 오지에 있네요. 대체 왜 이런 곳에 던전이 생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던전 브레이크 방지하는 게 우리 일이라지만 진짜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경기도 양평 외곽, 헌터청 소속 공무원 헌터 삼인방이 산을 오르며 그렇게 투덜거렸다.

서춘복, 박남일, 안진수.

헌터청 경기지부의 제14 던전팀으로 모두 헌터 등급은 D급, 나이는 40대로 수도권 비인기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왔다.

오늘은 양평의 산속에 있는 D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날이었다.

산 깊숙이 자리하고, 좋은 아이템도 나오지 않아 20일 넘게 입찰조차 되지 않은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는 것이다.

포탈을 찾아 올라가는 산길, 제일 후미에 있던 팀 막내 안진수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좀 편하지 않겠습니까? 본청에서 용병을 두 명 보냈다고 하던데요.”

“용병? 쳇, 성가시게 됐구만. 고작 D급 클리어하는데 용병은 무슨 용병이야. 등급은 뭔데?”

“자세한 건 비공개라고 하던데요. 요즘 공무원 헌터들 피해가 심하다 보니 본청에서 지원해준 모양이에요.”

팀장 서춘복의 질문에 박남일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서춘복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등급을 모른다고? 애물단지 확정이네. 등급 오픈 안 하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 적이 없어.”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본청 인사과에서 추천했다고 하니 한 사람 몫은 하지 않을까요?”

“내기할까? 그놈이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낙하산이라는 데에 최하급 마나 포션 하나 건다.”

아직 당사자가 나타난 것도 아니건만 서춘복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사이, 목적지인 D급 No. 135 던전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던전 앞에 있네요.”

마침 한 명이 도착해 있었다. 비인기 던전인 만큼, 오기로 한 용병이 분명할 것이다.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없는 한 사내가 바위 위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막내 안진수는 서춘복과 박남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바위 위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하하, 안녕하세요. 본청에서 파견된 헌터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경기지부 제14 던전팀 헌터 안진수입니다.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아뇨, 크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아하, 다행이군요. 그리고 두 분이 오신다고 들었는데, 또 한 분은 오고 계신 건가요?”

“아니요. 오늘 용병으로 온 건 저 혼자입니다.”

“네?”

“나머지 한 명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 올 겁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그는 이어폰을 빼고, 게임을 켠 상태 그대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D급 박남일이라고 합니다.”

“반갑수다. 팀장인 D급 서춘복이요. D급 던전이라도 오늘 하루 같이 돌 텐데, 통성명은 해야지.”

“이름을 밝히긴 좀 그래서, 그냥 편하게 용병이라고 불러주세요. 던전 클리어까지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네요.”

용병은 그렇게 말하고는 던전 방향으로 앞장섰다.

나름 살갑게 대하면서 등급을 비롯한 정보를 최대한 캐내려고 했거늘, 상대의 가드가 의외로 튼튼했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정보를 숨기는 헌터들은 적지 않다. 헌터에게 있어 자신에 대한 정보는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세 보이진 않네요.”

고등급 헌터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망했네, 망했어.”

박남일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에서 마나 포션을 하나 꺼내 서춘복에게 건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용병의 겉모습만 보고 실력도 허접할 것이라 결론 내린 것이다.

진입을 약속한 두 명 중 한 명만 온 것을 보면, 정부의 지원금을 타 먹으려고 이름만 올린 놈들일 게 분명했다.

즉, 사실상 짐짝을 달고 던전을 도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안진수와 박남일은 용병 헌터가 들어간 포탈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서춘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따름이었다.

“고작 D급인데 뭐 별일 있겠냐. 빨리 끝내고 삼겹살이나 때리자고.”

“예, 끝나면 팀장님이 쏘세요.”

공무원 헌터 삼인방은 각자의 무기를 꺼낸 뒤, D급 No. 135 던전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몰랐다.

던전에 진입한 직후, 균열의 색깔이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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