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2장 행운도 만드는 것이다(7)
“키에에에엑!!”
저택에 괴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쿠우웅-!!
지옥의 가고일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의표를 찌른 결과였다.
사실 첫 공격 때, 나는 일부러 [반월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벽을 타고 지붕까지, 가고일에게 접근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 탓에 공격 루트와 궤적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스킬을 사용한들 맞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위협으로 끝냈다.
첫 공격은 평범하게 검을 휘둘러 안전거리라는 인식을 심어준 다음, 두 번째 공격에서 검 끝에 오러를 생성해 허를 찌른 것이다.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하지만 한 번의 기지로 전투가 끝나진 않았다.
‘조금 얕았다.’
목을 노리고 [반월베기]를 사용했지만 가고일은 몸을 틀어 한쪽 날개가 잘리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게다가.
“헉! 용병 씨가 유효타를 냈어요!”
“역시 보통 실력이 아니었어요!”
“뭘 보고만 있어! 한쪽 날개가 잘린 지금 지원해야 해!”
공무원 헌터들이 바닥에 떨어진 가고일을 향해 돌진했지만,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크르르…. 캬아아악!!”
[지옥의 가고일이 지옥 망령 소환을 사용합니다.]
“소, 소환수를 꺼냈다!”
“으악! 떨어져, 개자식들아!!”
지옥의 가고일은 공중으로 날지 못하게 되자 연기처럼 흩날리는 괴물 십여 마리를 소환해 역공을 해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르륵-!!
“크캬악!!”
내가 바닥으로 내려온 뒤, 다시 [반월베기]로 공격하려 하자 녀석은 손아귀에서 화염을 만들어서 던져댔다.
악마 계열의 몬스터들이 쓰는 공격 스킬, [화염구]였다.
나는 거리를 좁혀보려 했지만 화염구의 양이 많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젠장, 까다롭네.’
내가 화염구를 회피하는 사이, 공무원 헌터들이 가고일을 협공하면 좋을 테지만 망령들에 둘러싸여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도움은 고사하고 망령들과의 전투에서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크헉!!”
“막내야!!”
안진수가 망령의 공격에 옆구리를 붙잡으며 쓰러졌다.
펑-! 펑-! 퍼퍼펑-!!
나는 화염구를 피하면서도, 공무원 헌터들을 힐끗 쳐다보며 검을 꽉 쥐었다.
‘장기전은 불리하다. 그냥 땡길거야를 불러버릴까?’
간단하게 처치하고픈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캐릭터 소환]을 사용해버리면 지금껏 신분을 숨긴 게 모두 의미 없게 돼버린다.
안 그래도 신대훈 과장이 땡길거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증인을 세 명이나 더 만들 수는 없다.
아직 만족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활동하는 데에 귀찮게 될 것도 자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어.’
가고일을 잡을 자신은 있었다.
비록 C급 보스라 레벨 차이가 나지만 [수호의 의지]와 [반월베기]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처치할 순 있을 것이다.
지옥의 가고일이 던지는 [화염구]도 마나가 바닥나면 더 이상 던지지 못할 테고.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한데 그때까지 공무원 헌터들이 버틸지 미지수였다.
‘뭔가 묘수가 필요한데, 아…!’
그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다만 처음 해보는 것이라 검증이 필요했는데 마침 적절한 대상이 찾아왔다.
“캬악!”
한창 화염구를 피하고 있는데 멀리서 지옥의 망령 한 마리가 내게 달려들었다.
아직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
그러나 나는 망령을 향해 검을 휘둘렀는데.
“끼에에엑!!”
최상의 결과를 맞이했다.
분명 검의 길이보다 한참 더 멀리 있건만 망령이 무언가에 베인 듯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됐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묘수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기술이었다.
이제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장 지옥의 가고일의 향해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땡길거야, 끌어오기 쓰고 곧바로 들어가도록!’
[캐릭터 소환 : 땡길거야]
[캐릭터 :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합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짧게 스킬을 사용하고 해제했다.
마치 FPS 게임에서 저격총으로 순간적인 줌으로 적을 잡는 테크닉, 순줌처럼.
땡길거야는 완전히 소환이 완료되기도 전에 흐릿한 상태에서 스킬을 쓰고 소환이 해제돼, 육안으로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유지보다 소환할 때의 마나 소비가 크긴 하지만, 지금처럼 소환이 어렵거나 혼자서 싸우는 게 효율적일 때에는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케켁!?”
멀리서 화염구를 던지던 지옥의 가고일이 마력 사슬에 감겨 땡길거야가 서 있던 자리로 끌려왔다.
“헛! 저건 무슨 스킬이지? 가고일이 용병한테 끌려가요!”
“젠장, 한눈팔지 마! 일단 우린 망령부터 제거해야 해!”
공무원 헌터 삼인방도 전투 도중 가고일이 끌려간다는 건 파악했지만 내가 사용한 스킬로만 보고 있었다.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보스 몬스터.
어떻게 보면 단순히 거리를 좁힌 것에 불과하지만 지금 내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내 힘으로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나는 다가오는 지옥의 가고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반월베기]
장검 끝에서 생겨난 오러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가고일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고.
“키에에에엑!!”
[지옥의 가고일(C)을 처치했습니다.]
대저택엔 악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흠, 잘하고 있으려나….”
헌터청 제3 인사과, 과장 신대훈은 업무를 보다가 힐끔 핸드폰을 쳐다봤다.
서울역 사냥터에서 만난 헌터에게 첫 임무를 내린 지 약 여섯 시간.
지금쯤이면 D급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연락이 와야 하건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사실 신경은 아까부터 쓰고 있었다.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던전 진입 예정 시각부터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평소였다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일이지만, 무리하게 진행한 일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발 헌터를 볼모로 잡혀, 절차를 무시하고 특급 헌터증까지 발급해 준 상태라 더욱 그랬다.
결국, 신대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깐 외근 나갔다 올게!”
“과장님? 이거 결재해 주셔야…! 어디 가십니까!”
뒤에서 서상재 대리가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신대훈은 자신을 금발의 헌터와 만나게 한 예의 ‘감’을 믿고 움직였다.
신대훈은 차를 몰고 양평으로 향했다. 그리고 30분 정도 산을 탄 뒤, D급 No. 135 던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힘겹게 도착했건만 게이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클리어 예정 시각을 한참 넘겼음에도 헌터들의 모습은커녕 나온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신대훈은 그 이유를 곧 깨달았다.
“이, 이건… 던전 중첩!”
포탈의 색깔이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
신대훈은 등에 멘 가방에서 간이 균열 측정기를 꺼내 포탈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측정 완료]
[데이터가 존재하는 던전입니다.]
[No. 135]
[측정 등급 : D급]
[별칭 : 까마귀 던전]
[입장 권장 헌터 등급 및 인원 : D급 3명]
[No. 180]
[측정 등급 : C급]
[별칭 : 지옥불 던전]
[입장 권장 헌터 등급 및 인원 : C급 3명]
[현재 상태 : 공략 진행 중입니다.]
화면에는 두 개의 던전 정보가 떠올랐다.
신대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미친, C급! 이러니까 당연히 제시간에 나올 리가…!”
한상우라는 금발 헌터의 친구가 말하길, 오늘 던전은 등급이 D급밖에 되지 않아 금발 헌터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었다.
레이드에 참여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 걸 보니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만약 금발 헌터가 이 던전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보기에 공략은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신대훈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던전이 공략 진행 중인 걸로 봐서 생존자는 존재했다. 그리고 D급 공무원 헌터 세 명과 함께 들어갔으니 아직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지원 요청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진행 중인 던전에 진입하는 건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해 비용이 많이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대훈은 서상재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과장님.
“여기 D급 No. 135 던전인데 지금 당장 지원팀에 연락해서 C급 이상 헌터 세 명….”
그런데 막 지원 요청을 하려던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우우우우웅-!!
붉은색이었던 포탈의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밝은 빛을 뿜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익히 알고 있는 현상이었다.
던전 클리어.
-과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따 다시 전화할게.”
신대훈은 전화를 끊은 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포탈을 바라봤다.
몇 명이 살았을 것인가.
던전 중첩을 깨고 나온 건 좋았으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애초에 진입 인원이 네 명으로 많지도 않았거니와 중첩된 던전도 C급으로 기존의 던전보다 한 단계 더 높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더라도 중상은 피할 수 없을 거야.’
신대훈은 곧 아비규환이 될 귀환 현장을 예상하며 부상자를 이송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팀장님, 오늘 삼겹살 회식 가시나요?”
“막내야, 무슨 삼겹살이냐. 이 정도면 소고기로 조져야지!”
분명 부상에 신음을 흘리거나 희생자가 발생해 침통할 것을 예상했으나 분위기가 너무 밝았다.
게다가 포탈을 나온 인원도 이상했다.
“그래, 오늘처럼 죽다 살아난 날에는 소고기로 달려야 해! 목숨을 살려준 귀인께 돼지고기를 대접할 순 없다! 한우로 가자, 내가 쏜다!”
“저는 괜찮습니다.”
선발 두 명에 이은 후발 두 명.
총 네 명이 균열에서 나왔다.
“어, 어떻게…?”
신대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나오는 신형들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봤지만.
“음? 여긴 웬일이십니까?”
공무원 헌터들과 함께 나오는 용병, 한상우는 신대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