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6화 (16/169)

제16화

2장 행운도 만드는 것이다(9)

‘아니, 이 녀석이 왜 나와…!’

두 번째 캐릭터의 정체를 확인한 후,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제장이.

‘제작장인’을 줄인 캐릭터 명으로 게임 초창기에 이벤트를 하려고 만든 창고 캐릭터였다.

많은 캐릭터 중 하필이면 가장 레벨이 낮고, 아이템도 없는 캐릭터가 나오다니.

기존에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는데 내색할 순 없었다.

“우와, 제가 안식처 밖으로 나오다니! 감사합니다, 군주님! 여긴 정말 좁지만 아름다운 세상이네요!!”

하이어 밖으로 나온 꼬마 캐릭터가 해맑게 웃으며 내 방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이거 엄청 신기한 기계네요! 마나가 아닌 전기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정교함의 수준이 아주 높아요!!”

녀석은 TV와 컴퓨터부터 시작해.

“오오, 이건 천의 질감이 아주 부드럽네요! 가구도 벽 안쪽에 넣어 공간을 확보하다니, 센스가 멋져요!”

침대와 옷장 등 온갖 가구를 살펴보더니 끝없이 감탄을 터트려댔다.

땡길거야의 진중함과 반대되는 명랑함.

외견에 맞게 천진난만한 건 좋았지만 정신이 사나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정 좀 시켜야겠군.’

나는 두 번째 캐릭터를 부르려다 멈칫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캐릭터 명이 선뜻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곁눈질로 재빠르게 정보창을 확인한 다음, 말문을 열었다.

“그래, 제장아. 만나서 반갑다. 잠깐 침대에 앉아 있을래?”

“앗! 죄송해요! 군주님을 처음 뵙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신나서 그만….”

다행히 아이지만 말은 통하는 듯했다.

제장이는 내 말에 눈치를 보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앉았다.

그 사이, 나는 녀석의 능력치를 찬찬히 살폈다.

[스킬 : Lv 1. 내려찍기 - 무기를 내려쳐 10% 공격력이 상승한 타격을 가합니다.]

[스킬 : Lv 1. 제련 -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고 수리합니다.]

레벨과 스탯은 별 볼 일 없었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창고 캐릭이었으니, 창고 확장만 하고 육성은 하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딱 대장장이의 기본 스킬이었다.

전투할 때 쓰는 [내려찍기]와 아이템을 만드는 [제련].

이걸로는 딱히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충성도 - 110 / 999]

[오랫동안 교류하지 않아 충성도가 많이 낮은 상태입니다.]

몇 년간 접속을 거의 하지 않아서 충성도도 낮았다.

그 때문인지 제장이는 처음의 명랑함은 어디 갔는지 침대 위에 앉은 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난감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소환 캐릭터 : (1/1)]

현재 최대 소환 캐릭터 수가 한 명이라 땡길거야와 동시에 소환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제장이를 소환한 상태에서 땡길거야의 소환도 해봤지만.

[최대 소환 가능 캐릭터 수를 초과했습니다.]

[캐릭터 : 땡길거야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기존 캐릭터의 소환을 해제해야 다른 캐릭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불가능했다.

‘당장 도움은 안 되겠군. 그래도… 키우면 되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이야.’

나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기로 했다.

비록 레벨이 가장 낮은 캐릭터가 나왔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행운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도 키우면 그만이다.

특히 요즘 하이어는 저레벨에게 여러 혜택을 주어 옛날보다 빠르게 레벨업을 하게 해주고 있다.

게다가.

[세 번째 업적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네 번째 업적은 선행 조건을 달성할 시 개방됩니다.]

[선행 조건 - 레벨 50 달성(35/50)]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3/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다음 업적도 바로 개방되지 않아 당장 강한 캐릭터가 필요 없기도 했다.

사실 땡길거야가 가장 강한 것은 만렙일 뿐만 아니라 준종결템까지 갖춰서다.

동시 소환이 되지 않는 이상, 만렙 캐릭터가 나왔어도 땡길거야보다 약하니 큰 의미는 없었다.

뭐, 나중에 동시에 두 캐릭 이상을 소환할 수 있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오랜만에 저렙 캐릭터 키우는 재미가 있겠는데?’

간만에 옛 기억을 떠올리며 플레이할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럼 샤워하고 하이어를 시작해 볼까?’

급하게 보상을 확인하느라 씻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탐구를 끝내고 소환을 해제하려던 그때, 제장이가 꼼지락거리던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저기 군주님, 이거 드실래요?”

“음…?”

“맛있는 거예요.”

나는 소환 해제를 멈추고 제장이가 주는 걸 건네받았다.

녀석이 준 건 네모나게 생긴, 포장이 반 정도 뜯어진 초콜릿이었다.

“나 주는 거니?”

“네! 군주님 드리려고 아껴둔 거예요! 그거 진짜 맛있어요!”

제장이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어서 먹어보라는 듯한 눈이었는데 나는 선뜻 초콜릿을 먹을 수 없었다.

<던전의 물품은 절대 섭취하지 말 것.>

이건 던전 보초를 비롯해 헌터들에게까지 가장 먼저 안내하는 주의사항이다.

던전은 지구와 다른 세상, 이계로 분류되기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포션처럼 몬스터가 드랍하는 아이템 중에서도 안전한 게 있지만 그런 걸 제외하면 먹지 않는 게 좋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장이가 준 선물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군주님, 어서 드셔보세요!”

제장이가 잔뜩 기대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하하, 그래….”

‘저렇게 쳐다보니 안 먹을 수도 없고…. 근데 몬스터가 드랍한 것도 아니고, 하이어에도 있는 초콜릿이니까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괜히 초콜릿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섭취를 망설이던 그때.

[꼬마 대장장이 연계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꼬마 대장장이 연계 퀘스트]

[꼬마 대장장이의 선물 섭취하기(0/1)]

[퀘스트 완료 시, 보상이 수여됩니다.]

갑자기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퀘스트가 생겼다.

연계 퀘스트라는, 처음 보는 명칭이었는데 내용도 생소했다.

제장이의 초콜릿을 먹으라니. 이게 뭐라고 퀘스트까지 한담.

피식 실소가 나왔지만 어쩌랴. 보상을 준다는데 수행해야지.

‘먹고 죽진 않겠지.’

나는 제장이가 준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으로 달콤한 맛과 향이 퍼지는 게 일반적인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맛을 느끼며 삼킨 그 순간.

번쩍-!

갑자기 초콜릿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내 전신을 휘감았다.

“엇, 군주님…!”

제장이가 놀란 목소리로 날 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녀석의 손이 닿기 직전.

화아아아악-!!

의식이 빛무리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 * *

-축하한다, 너도 드디어 선택받은 존재가 되었구나!

어두컴컴한 시야 속, 난데없이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려고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감각도 평소와 달랐다.

‘빙의…한 건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곧바로 사태를 파악했다.

캐릭터에 빙의해 과거를 체험하는 현상은 이미 한 번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과연,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리자 암흑밖에 보이지 않았던 시야에 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대장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저씨였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그는 목에 건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더니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렇게 위대한 존재와 계약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기도가 통한 모양이야, 으하핫!

‘대장간 NPC, 파토스로군.’

아이템 구매와 판매 등 저렙 구간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되는 NPC인지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장장이의 호탕한 웃음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전부 아저씨 덕분이에요! 대장간에서 일하면 계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셨는데 진짜였네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네가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따라온 결과지! 자, 이제 위대한 존재의 안내에 따라 열심히 하거라!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역시 내가 빙의한 사람은 제장이였다.

오래된 일이지만 처음 대장장이 직업을 플레이했을 때가 떠올랐다.

캐릭터 생성을 했을 때, 대장간이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해서 아이템을 만드는 퀘스트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초반엔 쉬운 퀘스트였다.

마을 앞에 있는 늑대들을 잡아 가죽을 얻고, 그걸로 가죽 신발을 만드는 것이었다.

역시 내 기억대로였다.

-그르르…. 컹컹!!

-얌전히 내 재료가 되라!!

제장이는 짤막한 망치로 늑대들을 처치했고, 그 후엔 곧바로 대장간으로 와서 가죽을 손질하고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

다음 퀘스트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서 나무를 베어 방패를 만드는 것이었다.

-촤락! 촤라락!!

-으윽! 떨어져, 이놈들아!

중간에 슬라임들이 촉수를 날리며 방해했지만 제장이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나무를 수급해 방패를 만들었다.

임무들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퀘스트의 난도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다음 퀘스트는 광산에서 광물을 채굴해 망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여기서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하지 않았다.

애초에 제장이를 만든 게 하이어의 초보자 이벤트를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10레벨까지만 올리면 강화 확률을 높여주는 주문서를 준다고 했기에 딱 거기까지만 레벨을 올리고, 계정 창고로 이벤트 아이템을 옮긴 다음 플레이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캐릭터도 키우고 있었고, 하이어에서 대장장이는 그렇게 좋은 직업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몇 년 동안 접속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도 제장이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퀘스트 진행을 멈춘 이후, 제장이는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엉엉 울며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흑흑, 파토스 아저씨! 위대한 존재의 안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요. 혹시 저 버림받은 걸까요?

-음, 조금 기다려 보거라. 위대한 존재들께서 잠깐씩 자리를 비우는 건 흔한 일이니까.

파토스가 수건으로 제장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말대로 퀘스트가 진행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제장이를 플레이하지 않았으니까.

그 후, 제장이는 마을을 배회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또래 아이들이 노는 걸 보거나 뒷동산에 올라가 하늘을 보는 등 홀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파토스가 제장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만 보내지 말고, 선물을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느냐? 위대한 존재께서 복귀했을 때 기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선물요? 좋아요! 한번 만들어볼게요!

-좋다, 그렇다면 잠자는 화산으로 가서 화산석을 캐오거라! 최고의 장비를 만드는 법을 알려줄 테니!

파토스의 말에 제장이는 화산석을 캐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비록 그 광석은 수많은 몬스터와 용암 근처에 있어 채굴하기 힘들었지만.

-헉헉, 위대한 존재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해! 분명 언젠간 돌아오실 거야!

제장이는 작은 몸집으로 잠입해 땀을 뻘뻘 흘리며 화산석을 캐냈다.

녀석의 노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화산을 다녀온 후, 조금 쉴 법도 하건만 대장간에서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며 광석을 제련했다.

파토스가 휴식을 권할 정도였다.

-요 녀석아, 쉬어가면서 해!

-괜찮아요! 위대한 존재께서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 미리 준비해야죠!

-쯧쯧, 미련한 녀석. 그럼 이거라도 먹고 하거라! 모름지기 대장장이는 잘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니!

파토스는 볼록 나온 배를 팡팡 치더니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던져주었다.

제장이는 포장지를 깐 후,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먹었다.

‘맛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저 초콜릿 한 조각일 뿐이지만 먹고 나니 온몸에 힘이 돌았다.

-좋아, 힘내서 만드는 거야!

제장이는 남은 초콜릿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다시 망치를 잡았다.

깡-! 깡-! 깡깡-!

대장간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

[연계 퀘스트를 종료합니다.]

어느덧 체험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깡깡-! 깡깡-! 깡-!

시야가 완전히 암전될 때까지 제장이는 망치질을 계속했다.

하염없이.

언젠가 다시 만날 나를 기다리며.

* * *

화아아아악-!!

의식이 돌아오고, 풍경도 익숙한 원룸 천장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군주님! 정신이 드세요? 괜찮으세요?”

제장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몸을 일으켜 제장이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 번 겪었던 일이라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내 몸에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제장이는 처음 겪는 거라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죄송해요! 군주님께 괜히 초콜릿 같은 걸 드려서…. 이쪽 세계라 몸에 안 맞으셨던 걸까요? 제가 먹었을 때 독은 분명 없었어요!”

“아니, 그런 거 아니니 자책 안 해도 돼. 오히려 잘한 일이야.”

이건 제장이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이었다.

[캐릭터 : 제장이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하였습니다.]

[캐릭터 : 제장이의 충성도가 100 상승합니다.]

[캐릭터 : 제장이]

[현재 충성도 - 210 / 999]

[충성도가 200을 돌파하여 캐릭터 : 제장이가 시전자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상태가 됩니다.]

초콜릿을 먹은 덕분에 충성도가 오르고, 내가 방치한 캐릭터가 하이어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꼬마 대장장이의 선물 섭취하기(1/1)]

[꼬마 대장장이 연계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습득합니다.]

연계 퀘스트도 클리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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