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20화 (20/169)

제20화

3장 피할 수 없는 싸움(3)

‘역시나.’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보다 조금 앞에서 달리던 유상준의 등에 꽂힌 화살.

나는 뒤통수에서 연이어 몰려오는 싸한 느낌을 따라,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그러자.

쉬이이익-

푹!

유상준의 몸을 관통한 물체와 같은 게 내 머리 위를 지나 눈밭에 박혔다.

그 화살을 쏜 사람은 당연히.

“뭐야, 이걸 피했어?”

아신 길드의 C급 헌터 강두식이었다.

“피할 만했으니까.”

실수가 아닌, 살의를 담은 고의적인 일격은 느낌이 오기 마련이다.

피할 수 있는 속도라면 못 피할 이유가 없다.

“쿨럭! 케헥…!”

먼저 화살을 맞은 유상준은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두식은 그런 동료 헌터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흠. 재빠르네.”

강두식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패앵-! 쉬우우욱-!!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쏜살같이 날아왔다.

파공음이 날 정도로 빠른 속도.

그러나.

깡-!!

나는 재빠르게 자리를 옮기며 화산방패를 꺼내 막아냈다.

피하지 않고 막아낸 이유는 간단하다.

녀석이 노리는 게 내가 아니라 유상준이었으니까.

내가 막아낼 줄은 몰랐던 것일까?

강두식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오, 제법인데? D급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좀 더 높나 보네.”

“갑자기 무슨 짓이지? 내분은 아닌 것 같고…. 당신이 날 죽이려고 했으니, 나도 당신을 가만둘 수는 없겠는데.”

[군주의 특성, 평정이 발동합니다.]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고, 차분함을 유지합니다.]

나는 헌터와 헌터의 죽고 죽이는 싸움은 처음이다.

실제로 상당한 마음의 동요가 있었는지, 이전처럼 기본적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평정’이 발동했다는 창까지 떴다.

덕분에 마음은 여전히 차분한 상태였고 침착하게 상대와 대치할 수 있었다.

일단 최소한의 상황 파악은 되어야 상대에 대한 대응도 정할 수 있으니까.

“큭큭,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닌가? 그런 걸 내 입으로 말할 이유는 없지. 어차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 거고 말이야.”

물론, 강두식은 내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다행히 실마리를 알려줄 사람은 있었다.

“이봐요, 유상준 씨. 괜찮습니까?”

“커…흐, 으윽. 안… 괜찮습니다.”

“그럼 이것만 대답해 줘요. 혹시 강두식 씨 개인이나, 길드 내에 이런 일이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내 물음에 유상준은 피를 토하면서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루미…나스.”

“루미나스요?”

“길드 내에… 루미나스가, 케흑, 잡입했다는 소문이….”

루미나스.

살인, 약탈, 테러 등 각성의 힘으로 온갖 악한 일을 암암리에 하고 다니는 대표적인 음지의 비공식 헌터 조직이다.

전 세계에 루미나스 일원은 국적을 불문하고 반드시 긴급 체포한다는 규율이 있을 정도다.

다른 길드에 비밀리에 잠입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해도, 자기 길드 사람들을 의심하고 싶진 않았겠지.

그래서 이 얼음 요새에 대한 것도 사고 정도로 생각하고 싶었을 테고.

하지만 유상준에 대한 공격을 포함해 들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 소문은 진짜일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나는 방패를 든 채 강두식을 주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보호하면서 싸우긴 힘들 거 같은데.”

“죄송하지만 전 틀린 것 같습니다. 화살에 독이 묻어 있는 것 같아요. 체력이… 계속해서 깎입니다. 시야도 점점 흐릿해지고요.”

유상준은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옆으로 쓰러진 상태에서 힘겹게 말했다.

그 모습에 멀리 서 있는 강두식이 피식 웃어 보였다.

“짧은 시간에 전우애라도 생겼나? 둘이서 속닥이는 모습이 웃기네.”

“등에다 화살 쏘는 놈보다는 친할 것 같은데. 그보다 당신, 진짜 루미나스인가?”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파앙-!!

다시 한번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이전보다 조금 더 빨라진 속도.

하지만 방패로 막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강두식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화살의 각도를 비틀어 쏴댔지만, 나는 어김없이 막을 수 있었다.

제장이가 만든 화산방패가 워낙 튼튼한 할 뿐만 아니라.

[스킬 : Lv 1. 용암 전개 - 방패 가장자리로 용암을 전개에 방어 가동 범위를 넓힙니다. 60초 유지에 마나 1을 소모합니다.]

스킬을 사용하면 역삼각형인 검은색 방패의 가장자리로 30cm 정도 되는 주황색 용암 방패가 추가로 생성됐다.

면적이 상당히 넓어진 방패는,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든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저 개자식이! 왜 자꾸 막아내는 거야!!”

파지직-! 푸슈우욱-!!

강두식이 스킬을 사용한 듯 번개를 휘감은 화살까지 쐈지만, 어김없이 꼬마 대장장이의 화산방패에 막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확신이 들었다.

‘C급 헌터가 상대라도 해볼 만하다.’

헌터와의 싸움은 처음이라 확신이 안 됐지만, 스킬을 쓴 공격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솔직히 이대로 돌진해서 싸운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규진도 한패인가.’

전후 사정은 정확하지 않지만, 이규진과 강두식 모두 앞서 희생자가 나왔을 때 얼음 요새에 왔다면, 둘이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았다.

즉, 공무원 헌터 삼인방 역시 같은 상황에 처했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있던 유상준도 고개를 완전히 의식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빨리 끝내야겠군.’

깡-! 깡깡-!!

나는 화살을 막아내면서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땡길거야의 힘을 사용하기로.

다만 완전한 소환을 할 순 없었다.

우선 1차 목표는 강두식을 죽이는 게 아니라 기절시켜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강두식이 왜 이랬는지 밝히려면 제압해 생포할 필요가 있었지만, 동시에 땡길거야의 모습을 보여줘서도 안 됐다.

그래서 나는.

‘땡길거야 소환, 끌어오기, 소환 해제.’

순간적으로 땡길거야의 힘을 쓰는 기술인 순간 소환, 줄여서 순소를 사용했다.

소환한 직후, 아주 잠깐 스킬 하나만 쓰고 소환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땡길거야를 불렀다가 보낸 것이다.

가고일을 잡을 때 이미 시연은 완료했기에, 스킬은 문제없이 나갔다.

파지지직-!!

“뭐, 뭐야…!!”

마력으로 만든 사슬이 날아가 강두식을 끌어왔는데 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모르면 맞아야 한다.

‘스킬은 이거 하나가 아니지.’

나는 연이어 순소를 이용, 땡길거야에게 [방패 치기]를 지시했다.

땡길거야가 검을 휘두르면 일격에 죽을 수도 있기에 조금은 약한 [방패 치기]로 기절시키려 한 것이다.

마침 [방패 치기]는 기절 효과가 붙어 있는 스킬이기도 하고.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퍽-!!

“크헉!!”

털썩-!!

순소를 쓴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강두식은 입에서 피를 흩뿌리며 그대로 기절했다.

그 과정에서 강두식의 이가 우수수 떨어진 건 좀 안타까웠지만 말이다.

“땡길거야, 나와.”

“부르셨습니까, 주군.”

이제 모두 기절해 땡길거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땡길거야를 소환한 다음, 인벤토리에서 비상용으로 넣어놨던 밧줄과 붕대를 이용해 강두식을 포박하고 눈을 가렸다.

동시에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저기 중간 보스를 처치하고, 레버를 당긴 다음에 이 둘을 보스 방 앞으로 옮겨 줘. 다 되면 나한테 전언 보내고.”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전언.

얼마 전에 발견한 기능으로 소환 캐릭터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소환 캐릭터와 머릿속 생각만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발견했을 당시 여러모로 유용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나는 강두식의 포박을 마친 후, 몸을 일으켜 반대쪽 갈림길로 달려갔다.

땡길거야 쪽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갈림길 초입으로 돌아온 그 짧은 시간에.

[캐릭터 : 땡길거야가 설원 마상기사(C)를 처치했습니다.]

레버를 지키던 중간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

이번에도 일격에 처치했겠지.

‘강한 만큼, 마나 소비가 크긴 하지만 상관없어.’

캐릭터와 거리가 벌어지면 마나 소비에도 차이가 있는지, 마나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소비량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가방에 챙겨온 하급 마나포션을 꺼내 청량음료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신대훈의 요청은 물론이고 혼자 던전에 가서 번 돈도 있었기에, 최하급보다 배 이상 비싼 하급 포션을 잔뜩 사올 수 있었다.

‘번 돈의 상당수를 여기에 쓰긴 했지만.’

마나 소비량이 많아 하급임에도 벌써 몇 병을 마셨지만, 땡길거야 정도의 전력에 이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다.

그렇게 뛰어가면서도, 공무원 헌터 삼인방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졌다.

아무리 D급 헌터 세 명이라 하더라도 B급 헌터 한 명을 이기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살아만 있어라.’

반대편 갈림길로 달려가는 도중,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바람이 통한 것일까.

“어라? 저거 용병님 아닌가?”

“그런 것 같은데요? 왜 벌써, 아니 이쪽에는 왜 오시는 거지?”

다행히 공무원 헌터 삼인방은 살아 있었다.

이제 막 잡몹을 모두 처치한 듯 중간 보스 몬스터 처치를 앞두고 옹기종기 모여 이규진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여기서 상황을 밝혔다간, 상대가 바로 공격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규진도 날 보자마자 사태를 눈치챈 듯 망설임이 없이 움직였다.

“커헉!”

“이규진 헌터님…? 크악!”

내가 다가가는 와중, 이규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단검을 휘둘렀다.

공무원 헌터 삼인방도 나름 빠르게 거리를 벌렸으나 어느 정도의 상처는 감수해야만 했다.

“크윽, 몸이…!”

“독! 독입니다 이거!”

문제는, 강두식의 화살처럼 단검에도 독이 발려 있었다는 것이다.

“요, 용병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강두식과 이규진은 애초에 우리를 습격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이전에 다른 헌터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요.”

나는 빠르게 상황을 공유한 뒤, 방패를 들고 이규진과 대치했다.

그러자.

“뭐야, 설마 했는데 강두식이 당한 거야? 이거 제대로 김샜네.”

이규진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날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야, 너 뭐냐…?”

“나?”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하이어의 군주? 아니면 유일 스킬 각성자?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많았지만 내뱉기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그때, 내 등 뒤로 피신한 공무원 헌터 삼인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검과 방패를 들며 대답했다.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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