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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21화 (21/169)

제21화

3장 피할 수 없는 싸움(4)

내 대답에 더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단검이 날아왔다.

대화가 끝날 무렵, 이규진이 나를 향해 단검을 날린 것이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칼날.

하지만 단검은 내게 닿지 못했으니.

챙-!!

“지원하겠습니다, 용병님!”

공무원 헌터 삼인방의 막내, 안진수가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며 내 옆으로 붙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온 지원이었지만 나는 이규진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아뇨, 팀원들을 데리고 보스 방 앞으로 대피하세요. 방해만 될 뿐입니다.”

도움은 고맙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두식과 마찬가지로, 이규진은 약점을 철저하게 공략하고 있었다. 부상자를 지켜야 한다는 페널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방금 던진 단검도 궤적을 보면 내게 던졌다기보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이는 서춘복과 박남일을 노린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만약 무리하게 막아내느라 자세가 무너졌다면 곧바로 거리를 좁혀 추가타를 가했겠지.

“용병님,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용병님이 지면 저희도 끝난 목숨인데 차라리 같이 싸우는 게….”

“저 혼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마나 포션을 먹는 모습을 보일 걸 생각하면, 오히려 혼자 싸우는 게 편하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뒷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진수는 공격 자세를 유지한 채 뒤로 빠져 서춘복과 박남일을 부축하고 후퇴했다.

이규진은 당연히 분개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용병 주제에…!”

이규진은 연이은 공격들이 실패하자, 여유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단번에 내게 달려들었다.

슉- 슉-! 슈슉슉-!

단검이 사방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나는 화산검과 화산방패로 녀석의 단검 쇄도를 막아냈지만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퍽-!!

“윽…!”

공격 말미, 패턴에 변칙을 줘서 단검 대신 발로 내 복부를 걷어찼는데 그걸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육체적으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데굴데굴 굴러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레버를 지키는 중간 보스 몬스터 앞이었던 것이다.

“흐워어어어!!”

“제길…!”

정신을 차릴 새도 없었다.

나는 기우뚱하는 방향 그대로 땅을 박차 중간 보스의 창을 회피했다.

그러자 이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운지 이규진이 박장대소했다.

“크하핫! 꼴 좋다! 주제 파악을 못 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멀리서 들려오는 비아냥거림.

이규진은 추가 공격을 하지 않고,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중간 보스의 공격을 바라볼 뿐이었다.

괜히 들어왔다가 어그로가 끌릴 수 있으니 진입 자체를 하지 않는 듯했다.

거기다.

“보아하니 강두식도 겨우 이겼을 것 같은데, 혼자 중간 보스는 이길 수 있겠어?”

녀석은 내가 중간 보스를 이기지 못할 거라 여기고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만했다.

중간 보스의 공간에 들어온 후, 나는 공격을 피하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았으니까.

이규진의 눈에는 아마 내가 중간 보스를 이길 수 없어서 피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이건 당연한 움직임이었다.

내 진짜 목적은 중간 보스인 말을 탄 설원 기사를 처치하는 게 아닌.

“흐읍!”

철컥-!

레버를 당기는 것이었으니까.

중간 보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한 나는 갈림길 끝에 있는 레버를 당겼다.

사실 이규진에게 복부를 걷어차인 것도 다 의도한 것이었다.

독이 묻어, 맞으면 위험한 단검은 모두 막아내고 일부러 중간 보스가 있는 방향으로 걷어차여 자연스럽게 레버가 있는 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대놓고 중간 보스에게 다가가면 이규진이 눈치챌 수가 있었고, 이규진을 쓰러트리고 가면 시간이 걸렸을 테니까.

“……!”

이규진은 그제야 내 전략을 눈치챈 듯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반월베기]

[설원 마상기사(C)를 처치했습니다.]

레버를 당긴 후엔 내가 설원 마상기사를 반월베기로 너무 쉽게 처치했기 때문이다.

철퍼덕-! 쨍그랑-!!

제자리에 서서 길게 오러가 생성된 검을 휘두르자 얼음 말과 설원 기사가 바닥에 허물어지며 부서졌다.

“너, 이 새끼…. 일부러 거기 들어간 거였군.”

“뭐, 그런 셈이지.”

-주군, 하달하신 임무 완료했습니다.

조금 전, 머릿속으로 땡길거야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내렸던 임무를 완수하고 진언으로 보고한 것이다.

하여 나는 레버를 당길 전략을 세우고 실행했다.

보스 방으로 향하는 성문만 열린다면 땡길거야가 던전 클리어까지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꽤 촉박했다.

지금은 마나 포션을 마실 수도 없는 상황이라 땡길거야의 소환을 오래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음 같아선 땡길거야를 다시 소환해서 이규진을 빠르게 처치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한시라도 빨리 유상준을 던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게다가 안진수와 공무원 헌터들이 도착하기 전에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기도 해야했다.

‘땡길거야, 성문 열렸으면 들어가서 보스 몬스터 처치해.’

-예. 방금 성문이 열렸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주군.

나는 생각으로 땡길거야에게 던전을 클리어할 것을 명령했다.

물론,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규진은 비웃음만 흘릴 따름이었다.

“크크크큭! 그 레버를 당겨서 뭐하게? 설마 그 공무원들이 혹한의 마법사를 처치하고,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보험을 들어둬서 나쁠 건 없지. 만약 유상준과 공무원들이 보스 몬스터를 잡고 살아나간다면 네놈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유상준? 같이 안 왔기에 죽은 줄 알았는데…. 뭐 상관없어. 혹한의 마법사를 D급들이 잡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건 모르는 거지.”

이규진은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지만 내 자신만만한 모습에 뭔가 있다고 느낀 것일까?

돌연 웃음기를 싹 지우더니 단검을 치켜들고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여기서 살아나갈 순 없을 거다.”

“그래, 나 말고 네가.”

목표를 달성했으니 더 이상 대화는 할 필요가 없었다.

쿵-! 쩌어어엉-!!

나는 땅을 박차고 이규진과 격돌했다.

* * *

“음, 오늘은 마음이 편안하네.”

헌터청 제3 인사과 사무실.

신대훈은 컴퓨터 앞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마우스를 클릭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느긋함이던가.

한상우를 위험 던전에 보냈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어쩌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지만 던전 중첩 사건으로 실력을 확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동행한 아신 길드도 든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대훈은 느긋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우웅-!

<제14 던전팀 팀장 서춘복>

‘어라? 아직 레이드 진행이 안 됐나?’

화면에 뜬 발신자를 본 순간, 신대훈은 시간을 확인했다.

레이드 시작 예정 시간을 약간 지나 있었다.

얼음 요새를 클리어했다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었기에 자연스레 레이드가 지연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팀장님, 아직 던전 안 들어가셨….”

-인사과장님! 아신 길드, 아신 길드 길드원들이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예…?”

핸드폰 너머에서 난데없이 고성이 들려왔다.

‘뭐라고? 지금 뭐라는 거야?’

순간, 서춘복이 아닌 목소리가 믿기 힘든 소리를 했다.

그로 인해 잠깐 사고가 정지했던 신대훈은, 이내 그 목소리가 안진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사과장님, 저 안진수입니다. 같이 던전에 들어간 아신 길드 사람들이 저희를 죽이려 들었고, 팀장님이랑 남일 형은 중상입니다. 저만 겨우 나와서 팀장님 폰으로 연락드리는 겁니다!

“잠깐만요, 안진수 씨. 그럼 지금 던전입니까? 다른 사람들은요?”

안진수의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신대훈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물었다. 혹시라도 사망자가 있으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지원 온 아신 길드 중 B급 이규진과 C급 강두식이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용병님이 강두식을 기절시켜 제압했고, 현재 B급과 대치 중이며 나머지 C급, 유상준은 강두식에게 당해 혼수상태입니다. 더불어 팀장님과 남일 형님은 중상이고, 저만 멀쩡합니다.

“요, 용병 혼자서 대치 중이라고요!? 서상재 대리, 지금 당장 No. 223 얼음 요새에 지원 병력 보내. 당장!”

“네? 아, 알겠습니다!”

자세한 상황 설명은 없었지만, 급박한 상황을 눈치챈 서상재는 바로 지시에 따랐다.

신대훈은 마음을 추스리며,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연이어 발생한 같은 던전의 희생자, 이번에도 헌터를 습격한 두 명의 헌터.

생각이 정리되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집단이 하나 있었다.

‘루미나스.’

뚜렷한 물증은 없지만, 최근 여러 길드 내에서 도는 이야기였다.

루미나스에서 길드에 잠입해, 다른 헌터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인하고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상황만으로 확신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과장님, 일단 지금 지원 가능한 병력에 바로 지원 요청했습니다.”

“잘했어. 긴급 상황이니까 청장님께 직통으로 연락도 드려. 나는 아신 길드 길드장에게 바로 연락해 볼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

한 단계씩 위로 보고를 전파하는 게 보통이지만 사항이 긴박했다.

이럴 땐 바로 최고 권위자에게 얘기하는 것이, 몇 건의 참사 이후 생긴 헌터청의 특별 규칙이다.

신대훈은 외투를 집어 들고 사무실 밖을 나섰다. 그리고 아신 길드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헌터청 본청 제3 인사과장 신대훈입니다. 강철만 회장님 바로 연결 가능합니까? 긴급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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