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26화 (26/169)

제26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1)

“흐워어어….”

[캐릭터 : 땡길거야가 용암 골렘(C)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 75를 달성했습니다.]

[민첩 +1, 지력 +1을 획득합니다.]

[선행 조건 - 레벨 75 달성(1/1)]

[선행 조건 완수 보상으로 마나 +1을 획득합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땡길거야의 검에 거대한 골렘이 녹아내리고, 시야에는 레벨업과 선행 조건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가득 찼다.

40번 넘게 클리어했나.

아무튼 예측이 적중했다.

본격적으로 레이드를 돌기 전, C나 D급 던전을 수십 번 정도 클리어하면 75레벨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맞은 것이다.

확실히 레벨을 올릴수록 다음 레벨업을 위해 클리어해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물론, C급이나 D급이 아닌 B급으로 가서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아직 도전할 때가 아니었다.

C급 던전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B급 역시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수 역시 고려해야 한다.

나는 아직 B급 던전에 갈 레벨이 아니다.

땡길거야가 강하다고는 해도 만약 내가 B급 던전의 몬스터를 이길 수 없다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히든 퀘스트의 선행 조건이 붙은 것도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이제 다음 목표는 다섯 번째 업적을 클리어하는 것인데, 이번 업적도 어느 정도 추측이 됐다.

그런데.

[다섯 번째 업적이 개방됩니다.]

[다섯 번째 업적 - 미해결 던전을 클리어하세요(0/1)]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4/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B급 던전 클리어가 아니네?’

이번엔 예측이 빗나갔다.

그간 F급에서 D급으로 클리어해야 하는 던전의 등급이 한 단계씩 상승했기에 다섯 번째는 B급 던전 클리어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미해결 던전으로 노선이 바뀐 것이다.

‘음, 이건 좀 어렵겠는걸.’

미해결 던전.

최초 생성 이후, 아직 한 번도 클리어되지 않은 던전을 얘기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엔 미해결 던전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는 심해나 오지, 낙후된 지역 등에 생성되는 던전은 클리어는 물론이고 발견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던전 브레이크는 주로 그런 경우에 발생하고.

하지만 한국은 헌터 강국인데다 국토도 크지 않아 미해결 던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해결 던전이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기도 전에 일반 길드들이 입찰 경쟁을 펼치며 미해결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최초 클리어 보상’이다.

미해결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면 이미 클리어한 던전에 비해 훨씬 큰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해결 던전은 등급이 ‘B급 이상’과 같은 식으로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고, 공략법이 없어 클리어하는 데 기존 던전보다 수 배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 최초 클리어 보상 때문에 대부분 입찰받고 싶어 한다.

아무리 임시 특급 헌터증이 있고,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입찰을 받지 못한다면 미해결 던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이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다섯 번째 업적이 개방됐지만 한동안 쉬지 않고 레이드를 하기도 했고, 도전할 만한 미해결 던전을 찾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정리하는 게 좋을 듯했다.

“고생 많았다, 땡길거야. 들어가서 쉬도록 해.”

“감사합니다, 주군.”

나는 보스 몬스터의 드랍템을 챙기고 땡길거야의 소환을 해제한 뒤, 던전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오, 헌터님 나오셨어요? 되게 오래 계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내가 던전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듯 근처 초소에 있던 던전 보초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서울역 보초는 진입한 헌터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이곳의 보초는 좋게 말하면 살갑고 안 좋게 말하면 피곤한 타입이었다.

던전을 드나들 때마다 이렇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대니까.

“실례지만, 혹시 어디 길드 소속이신가요?”

그래서 이번에 하는 말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더 귀찮아지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을 듯했다.

“어느 쪽에서 부탁받았습니까?”

“예, 예?”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자.

“헛!”

“쳐, 쳐다본다!”

휙- 휙휙-!

저 멀리 카페나 사냥터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시선을 회피했다.

어디서 온 건지 몰라도 10명이 넘는 사람이 며칠 전부터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루미나스가 저렇게 대놓고 감시할 리는 없고, 길드 여기저기서 어떻게 냄새를 맡고 영입을 위해 보낸 듯했다.

애초에 이런 걸 우려하기도 했지만 역시 헌터의 세계는 치열하다.

벌써 미행이 붙다니.

돌이켜보자면 얼음 요새 클리어 후에 나는 곧장 집으로 복귀했는데, 아무래도 그때 아신 길드가 거주지를 알아낸 듯했다.

그 뒤로 내가 신도림 사냥터로 이동하자 다른 길드도 냄새를 맡고 미행을 붙였고.

지금 보초가 내게 말을 거는 것도 소속 유무를 비롯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을 확률이 높다.

“죄송하지만, 생각 없습니다. 수고하세요.”

나는 그렇게 던전 보초를 지나쳐 신도림 사냥터를 나섰다.

확실히 슬슬 여기저기의 시선을 끈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냥터 입구를 막 통과한 순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날이었다.

“어라? 강 영감님?”

“헛, 자네는… 한상우 군 아닌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났다.

* * *

“죄송해요, 영감님. 각성하면 제일 먼저 말씀드리기로 했는데 늦었네요.”

신도림 사냥터 보초 초소 앞, 나는 근처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내려놓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하하, 아닐세. 농담으로 했던 얘기인데 이렇게 기억해주는 게 고맙지.”

강 영감님이 환하게 웃으며 커피를 받았다.

마땅히 커피를 마실 만한 공간도 없는 초소 안.

카페에서 마시며 얘기를 나누면 좋을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 영감님은 근무 교대를 위해 사냥터를 방문한 것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보초 경력자이기도 하고, 강 영감님도 제법 짬이 차서 초소에서 커피 정도는 마실 수 있었다.

이렇게 초소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마치 옛날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늦긴 했지만 약속은 지켰습니다. 각성했다고 제 입으로 얘기하는 건 영감님이 처음이에요.”

“너스레는 여전하구만. 고맙네. 그리고 축하하네. 역시 자네는 뭐가 돼도 될 줄 알았어.”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좋았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야 맨날 똑같지. 보초 서고, 남는 시간에는 아내 병문안 가고. 나보단 자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군. 여긴 C급 던전인데… 벌써 여길 올 정도로 성장한 겐가?”

“그게…, 예. 밤낮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말을 돌려야 하나.

잠깐 고민됐지만 나는 지금 내 레벨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강 영감님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속인다고 해도 이득 볼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허허, 엄청난 성장 속도로구만. 그래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자넬 주시하는 겐가?”

“뭐, 그런 셈이죠.”

강 영감님이 주변에서 날 감시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티가 난 것이다.

특히 던전 보초라면 매번 한 자리에서 주위를 감시하기에, 주변에서 수상한 게 나타나면 바로 눈치챌 수밖에 없다.

“너무 걱정하진 말게. 저들이 자네에 대해 물어도 얘기하진 않을 테니. 뭐, 아는 게 그리 많지 않기도 하지만 말일세.”

강 영감님은 커피를 홀짝 마시더니 내게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배려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강 영감님의 말에 안심이 되었지만, 나는 영감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영감님. 저들에게 저에 대해 알려주세요.”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저들이 와서 제 이름을 묻거나 나이, 어떤 관계인지 등을 물어보면 다 얘기하셔도 됩니다. 단, 돈을 받고요.”

“돈을 받고, 자네에 관해 얘기하라고…?”

영감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눈빛이 마치 혹시 농담하는 거냐고 묻는 듯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저 사람들, 헌터 스카우터일 겁니다. 저를 영입하려고 여러 정보를 캐내려 할 거예요. 그냥 돈 받고 제 정보를 알려주세요. 금액은… 한 사람당 삼천만 원이 적당하겠네요.”

“사, 삼천만 원…!”

강 영감님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금액이었지만 과장된 건 아니었다.

실제로 던전 보초들에게 헌터의 정보를 묻는 경우가 왕왕 있을뿐더러.

<헌터청 신대훈 과장 - 헌터님, 당분간 몸을 사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신 길드부터 시작해서 여러 길드에서 영입 전쟁을 벌일 거예요. 처음엔 탐색만 하겠지만 나중엔 등급 재심사까지 요청하면서 귀찮게 굴 수 있습니다. 정보 비공개를 원하신다면 관심이 사그라들 때까지 칩거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얼마 전, 신대훈도 내게 주의하라며 문자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나는 커피를 마신 후, 차분히 얘기를 이어갔다.

“큰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들에겐 푼돈이라 흔쾌히 줄 겁니다. 대부분 중견 혹은 대형 길드 스카우터일 테니까요.”

“자, 자네 스타 헌터라도 된 겐가? 자네 몸값도 아니고 정보에 그 정도 값을 부른다고?”

“음…. 장담할 순 없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뭐라도 되진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

최근 국내 헌터 업계에서는 이렇다 할 대형 신인이 나타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대형 길드들은 헌터 영입에 더욱 목이 말라 있었고, 그래서 헌터청에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원 미상의 신인 헌터인 내가 큰 사건 속에서 등장했으니, 다들 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조금 쑥스럽지만 나는 강 영감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강 영감님이 눈물 맺힌 눈으로 날 바라봤다.

“고맙네, 한상우 군. 정말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드려야죠. 영감님 덕분에 던전 보초 생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제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내 정보는 어차피 널리 퍼질 것이다. 신대훈 과장이 막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영원히 막을 수도 없으니까.

차라리 오픈될 거면 이렇게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착하고 좋은 사람에게 이득이 되게 하는 게 낫다.

“그럼 전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병원에 계신 사모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정말 고맙네, 한상우 군…. 조심해서 가게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드는 강 영감님을 뒤로한 채 보초 초소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헛! 가, 간다…!”

“보기만 하고 뭐해! 빨리 뛰어가!”

“먼저 가서 뭐라도 캐내!”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가 초소를 나오자 주변에 있던 염탐꾼들이 우르르 강 영감님께 몰려갔다.

낭중지추, 군계일학이라고 했던가.

나름 숨긴다고 숨겼지만 뛰어난 능력은 결국, 많은 사람이 알아보는 법이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자기들끼리 물어뜯을 수 있도록 정보를 풀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정보와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는 걸 바라만 본다는 뜻은 아니다.

사건에 휘말린 만큼, 세상에 나가되 비장의 무기는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신도림 사냥터를 나서는 길,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인사과장님. 혹시 지금 등급 재심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신대훈에게 문자를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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