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27화 (27/169)

제27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2)

“차장님, 얼음 요새의 용병이 온다는 소문이 사실일까요?”

“야, 주변에 스카우터들 몰린 거 안 보이냐? 대형 길드부터 중소 길드까지 죄다 다 왔잖아! 소문이 맞다면 분명 올 거야, 등급 재심사 받으러.”

헌터청 본청 로비.

카메라와 핸드폰을 든 두 사람이 주변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헌터 일보 박대성 차장>

<헌터 일보 하일건 기자>

그들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목에 건 사원증이 흔들렸다.

박대성 차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몇 시간 전, 정보방에 찌라시가 하나 올라왔다.

오늘 헌터청 본청에 얼음 요새의 용병이 등급 재심사를 받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얼음 요새의 용병.

정보 비공개로 인적 사항을 알 수 없지만 아신 길드에 잠입한 루미나스 두 명을 처치하고 얼음 요새 사건에서 헌터 네 명을 구했다는, 혜성처럼 나타난 기대주였다.

소문에 의하면 아신 길드의 길드장, 강철만에게 꺼지라는 일갈도 날렸다는 정체불명의 헌터.

아직 일반 대중에게까지 이 사실이 자세하게 퍼지진 않았지만, 여러 길드가 물밑에서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최근 헌터 업계에 주목할 만한 신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임팩트 있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보 확실한 거지? 오늘 여기 온다는 거.”

“그렇다니까. 별거 아니긴 하지만 다른 길드에선 이름도 알아냈대. 수천만 원씩 써가면서 말이야.”

“그 정도야?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네, 정말.”

헌터청 본청 로비는 온통 얼음 요새의 용병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헌터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도 했지만, 오늘 뜬 찌라시에 각종 길드에서 스카우터를 대거 보낸 것이다.

거기에 맞춰 여러 언론사에서 기자들까지 오기 시작했으니, 수많은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피로도가 확 올라간 사람이 있었으니.

“어휴, 많이도 모였네.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야?”

바로 헌터청의 제3 인사과장, 신대훈이었다.

한상우의 요청에 따라 등급 재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스카우터들이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정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딱히 공개한 것도 없는데 레이드를 도는 한상우를 미행할 뿐만 아니라 등급 재심사 일정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얼음 요새 사건 직후, 아신 길드에서 서울의 모든 사냥터에 정보원들을 파견해 한상우를 찾아냈고, 다른 길드들도 그 뒤를 따라 정보를 캐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저렇게 입구부터 감시가 심해서야 원…. 어쩌면 등급 재심사를 미뤄야 할 수도 있겠는걸?’

입구로 들어오면 당장 인파에 휩싸여 취조 같은 취재를 당할 텐데 진입이나 할 수 있을까?

신대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로비를 바라봤는데 그건 기우였다.

팔짱을 낀 채 한상우가 보이길 기다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과장님, 여기입니다.”

“엇! 하, 한상우 헌터님? 언제 오셨습니까? 아니, 어디로 오신 거예요? 분명 오는 건 안 보였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자신이 서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로비를 반드시 통과해야 했는데, 분명 한상우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대훈은 멍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규진의 스킬, [침투]로 아무도 모르게 진입한 한상우는 태연하게 대꾸할 따름이었다.

“뭐, 나름의 방법이 있다고 해두죠. 그나저나 재심사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아,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위층에도 파파라치가 있을 것 같으니까 특별관을 쓸 거거든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많이 귀찮아지실 텐데요. 등급 재심사를 하면 신원이 거의 드러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만 해도 많은 길드가 헌터님을 찾고 있거든요.”

지금 로비에 스카우트와 기자들이 모인 것만 봐도 그랬다.

어떻게 알았는지 100명은 족히 넘는 인파가 모여 있었다.

여기서 등급 재심사를 받는다면?

신원이 드러난다고 보는 게 맞다.

나름 보안에 신경을 쓰겠지만, 헌터청의 헌터들과 일반 길드의 헌터들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얼음 요새의 용병이 한상우라는 걸 상대적으로 소수만 알기에 이 정도인 거지, 등급 재심사를 할 경우 이름과 등급 등 기본적인 신상이 여기저기 퍼질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한상우는 그런 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괜찮습니다. 그거 제가 퍼트린 거거든요.”

“예…? 헌터님이 직접요?”

“네. 언제까지 숨어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신원을 비공개로 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요.”

“어떤 부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건….”

신대훈의 질문에 한상우가 말끝을 흐렸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능력이 드러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정도의 힘을 얻는 것.

그게 바로 이때까지 신원을 밝히지 않은 이유였으니까.

이제 B급 헌터를 이길 정도도 되었고, [캐릭터 소환]의 유지 시간도 꽤 늘었으니 악착같이 자신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히든 퀘스트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는 중이라 혼자 몰래 해결하기 어려워지기도 했고.

한상우 입장에선 이미 여러 방면으로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는데, 이걸 구구절절 신대훈에게 말할 순 없었다.

그럴 관계도 아니고, 완전히 신뢰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한상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충 둘러댔다.

“개인적인 거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그렇군요. 그래도 어느 정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등급 재심사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라도 알려주는 게 어디인가.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신대훈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한상우를 본관과 연결된 특별관으로 안내했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로를 지나자 주변에 보이는 사람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더니 서울 남부 헌터청보다 좀 더 깔끔하고 세련된 검사실이 나타났다.

한상우와 신대훈이 안으로 들어가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등급 재심사 요청하신 한상우 헌터님 맞으십니까?”

10여 명에 가까운 검사관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네, 맞습니다만 사람이 좀 많네요.”

“하하, 좀 더 정밀한 검사와 검증을 위해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첫 검사 때보다 훨씬 많은 인원에 한상우는 볼을 긁적였다.

게다가 구면인 사람도 있었다.

“반갑습니다. 또 만나네요?”

헌터청의 S급 헌터, 이은하였다.

검사관들 옆에 선 그녀가 한상우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제1 던전팀 팀장으로 레이드를 해야 할 사람이 여긴 웬일인 걸까?

한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사를 받았다.

“여긴 어쩐 일이시죠?”

“잠깐 지나가다가 들렀어요. 한상우 씨한테 묻고 싶은 것도 있고요.”

“묻고 싶은 거요? 얼음 요새에서 있었던 일은 서면으로 작성해서 이미 제출했습니다만….”

한상우는 이은하가 자신에게 궁금해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다른 듯했다.

“다른 거예요. 일단 검사부터 받으시겠어요? 제가 귀한 시간 뺏는 것 같네요.”

한상우의 말을 대충 얼버무리면서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웃을 뿐이었다.

‘구경하러 왔나 보군.’

예전보다 많은 인원에 한상우는 단박에 눈치챘다.

뭔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헌터청 직원이었어도 궁금해서 못 견뎠을 것이었다.

“아이템 내려 놓으시고, 여기 기계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한상우는 검사관의 안내에 따라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내려놓은 후, 원통형 기계 안에 들어갔다.

남부 헌터청에선 체중계처럼 생긴 기계에 올라가 손잡이를 잡았는데, 이번엔 저번 측정보다 좀 더 최신 모델로 보였다.

확실히 성능도 좀 더 좋은 듯했다.

띠링-! 우우우웅-!

<측정을 시작합니다. 측정을 종료합니다.>

안내 메시지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끝나더니.

[이름 - 한상우]

[레벨 - 75]

<스탯>

[힘 : 108] [민첩 : 107] [지력 : 97] [체력 : 115] [마력 : 145]

<스킬>

[제국기사단의 검술] [꼬마 대장장이의 축복] [침투]

원통의 유리 부분에 레벨과 스탯, 그리고 스킬의 항목이 측정되어 나타났다.

그러자.

검사관과 이은하, 신대훈 등이 프린터로 나온 결과지를 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어라? 생각보다 레벨이 높지 않네요. B급 헌터를 이겨서 180은 넘을 줄 알았는데. 레벨만 보면 D급입니다.”

“대신 스탯 부분이 높아요. B급까지는 무리고…. C급 수준이지만요.”

“스킬도 세 개밖에 없습니다. 이걸로 B급 헌터를 이기긴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걸까요?”

“그런데 성장 속도가 미쳤는데요? F급으로 측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로 성장했어요. 이런 성장 속도는 역대급입니다.”

호평과 악평이 동시에 나오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얼음 요새에서 루미나스를 제압한 걸 보면 전체적인 전력이 이것보다 더 높아야 하는데, 한상우의 레벨과 스탯은 D급 혹은 C급이라 보는 게 알맞기 때문이다.

반대로 얼마 전에 F급이었는데 지금 이만큼 성장했다고 하면 성장 속도가 말이 안 되고 말이다.

어쨌든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혼란을 가중하는 요인은 더 있었다.

스킬 미검출.

[캐릭터 소환]은 유일 스킬이기 때문인지 저번처럼 검출되지 않았고, [분화]와 [용암 전개]는 아이템에 장착된 스킬이라 검출되지 않은 듯했다.

레벨에 비해 스탯이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단독으로 B급을 이길 만한 수치는 아니다.

그렇다면 스킬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텐데 스킬도 패시브 두 개뿐이었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상우도 이걸 아예 눈치채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검사관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계에서 나오는 한상우에게 다가왔다.

“한상우 헌터님, 검출되지 않은 스킬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혹시나 해서요.”

“음, 그건….”

검사관의 물음에 한상우는 잠깐 고민했다.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말이 곧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오픈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유일 스킬인 [캐릭터 소환]은 비장의 무기로 최후의 최후까지 숨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상우는.

“아이템에 스킬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도 포함해야 할까요?”

화산검에 장착된 [분화]만 오픈하기로 결정했다.

이것만 보여줘도 루미나스 처치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아, 아이템 스킬이라면 지금 단계에선 검출이 되지 않는 게 맞습니다. 혹시 스킬 검증실에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안 될 거 없죠.”

한상우는 화산검을 들고 검사관의 안내에 따라 방 옆에 마련된 스킬 검증실로 이동했다.

충격 흡수를 위해 벽에 부착된 방폭제들과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샌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스킬 검증 측정 점수>

<1위 : 강철만 - 832점>

<2위 : 안지은 - 817점>

<3위 : 황현성 - 796점>

검증실 벽에 설치된 전광판도 시야에 잡혔다.

얼마 전에 봤던 것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은 순위.

땡길거야가 쳤던 샌드백은 터지기도 했고, 신원 미상이라 그런지 점수로 측정되지 않은 듯했다.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스킬 발현 후, 샌드백을 있는 힘껏 쳐주시면 됩니다!”

검사관은 검증 방법을 설명한 후, 검증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

‘좋아, 몇 점이나 나오는지 볼까?’

사실 궁금하긴 했다.

땡길거야가 아닌 자신이 치면 몇 점이 나올지.

한상우는 화산검을 들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반월베기]

[분화]

샌드백을 향해 두 개의 공격 스킬을 날렸다.

쩌어어엉-! 콰아아아앙-!!

스킬 검증실이 굉음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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