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3)
“……!”
“무, 무슨…!”
갑작스러운 폭발에 스킬 검증실 밖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많은 헌터가 샌드백을 치지만 이렇게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스킬 효과보다 더 놀라운 게 있었으니 바로.
삑-!!
<점수 - 525 / 1,000>
전광판에 뜬 점수였다.
레벨과 스탯을 보고 생각했을 때는 기껏해야 250점 정도 될 거라 예상했는데, 그보다 두 배 더 높은 525점이 나온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분명 스탯은 C급이었는데?”
“레벨은 D급이었습니다!”
“근데 스킬 점수는 A급 헌터 수준이잖아?”
525점이면 A급 헌터가 사용하는 공격 스킬의 수준이었다.
일반적으로 스킬은 스탯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단계나 등급을 뛰어넘는 파괴력을 보여주다니.
일반적으로 스탯과 스킬의 파괴력은 레벨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한상우는 그 법칙을 무시하고 있었다.
종합적으로 등급을 매겨야 하는 검사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헌터 표준 레벨 기준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검사관 중 한 명이 차트의 종이를 넘기며 전 세계에 적용되고 있는 헌터의 표준 레벨 등급표를 확인했다.
SSS급 : 레벨 601이상
SS급 : 401 - 600
S급 : 301 - 400
A급 : 231 - 300
B급 : 181 - 230
C급 : 121 - 180
D급 : 71 - 120
E급 : 31 - 70
F급 : 1 - 30
등차수열의 형식을 띠고 있는 헌터의 표준 레벨 등급.
레벨이 등급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건 아니고, 스탯과 스킬의 능력까지 종합해서 책정하지만 한상우처럼 각 부문의 편차가 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레벨은 D급, 스탯은 C급 헌터의 평균치, 스킬은 A급 헌터의 수준이라니.
“이거 어떻게 해야 하죠? 5년 넘게 근무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동감합니다. 보통 레벨을 따라가거나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정반대라니….”
“그런데 이렇게 보니 어떻게 B급 헌터를 제압했는지 이해가 되는군요. 레벨을 제외하고 실력만 본다면 C급 스탯에 A급 헌터의 스킬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럼 종합적인 등급은 어떻게 매겨야 할까요?”
종잡을 수 없는 결과의 연속에 검사관들은 혼란에 빠졌다.
반면, 당사자인 한상우는 스킬 검증실에서 태연하게 나와 신대훈에게 말을 걸 따름이었다.
“아쉽네요.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싶었는데.”
1등까지는 아니더라도 10등 안에는 들고 싶었는데 점수가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 신대훈은 한상우의 앓는 소리에 박수를 친 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감탄하는 건 신대훈뿐만이 아니었다.
이은하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상우에게 다가왔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F급이었는데 단숨에 B급이 되시다니. 비결은… 물어봐도 들을 수 없겠죠?”
“네, 죄송하지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역시…. 그럼 혹시 헌터청에서 일할 생각 없으세요? 이 정도 실력이면 던전팀의 팀장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팀장이요? 저는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데요.”
“경험이 많지 않다뇨. C급, D급 던전을 그렇게 많이 클리어하시고 B급 헌터도 혼자 상대하셨는데요.”
이은하는 한상우가 마음에 드는 듯 던전팀의 팀장 자리까지 제안하며 영입하려 했다.
이은하에게 직접 스카우트 제의가 올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한상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놀란 건 오히려 신대훈이었다.
‘이은하 헌터님이 누굴 스카우트하려는 건 처음 보네.’
그녀는 S급 헌터일뿐만 아니라 보는 눈도 높아 좀처럼 누구에게 먼저 제안하는 경우가 없었다.
신대훈이 알기로는 최초였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저는 고등급 던전에 가고 싶어서요.”
한상우는 나름의 이유를 대며 거절할 따름이었다.
“고, 고등급 던전이요? 그럼 저희 팀에 들어 오실래요? 저랑 같이 팀을 하면 원 없이 돌 수 있어요!”
“예? 왜 굳이 저를…. 이은하 헌터님 팀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헌터들은 널렸을 텐데요.”
“그, 그게… 아! 헌터청의 헌터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정의감도 필요하거든요. 루미나스를 처치하신 헌터님께 딱인 거죠!”
쉽게 거절당하자 당혹스러운 것일까.
이은하가 시뻘게진 얼굴로 다른 방식을 제안했다.
신대훈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 어지간히 마음에 드시나 보네.’
이은하가 누구던가.
국내 주요 작전에는 빠짐없이 불려가고, CF도 찍고, 헌터청 홍보대사도 하는, 그야말로 헌터청의 간판 스타가 아니던가?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매달리다니.
이것만으로도 진풍경이라 할 수 있었는데 더 가관인 것은 한상우의 반응이었다.
“그럼 저랑은 더더욱 안 맞겠네요. 루미나스와 싸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였거든요. 그리고 저는 혼자 다니는 게 좋아서요. 잠깐 용병으로 불러주시는 거라면 응하겠습니다.”
“아… 그, 그렇군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거절했다.
‘저렇게 될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영입하지 않은 건데…. 이은하 헌터님의 제안까지 거절할 줄이야.’
신대훈이 한상우를 적극적으로 영입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처음 헌터청 영입을 제안했을 때 느낀 거지만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이은하 헌터라면 다를까 싶었는데 결과는 매한가지였고, 덕분에 열화와 같던 분위기는 살짝 식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막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등급 책정을 마친 듯 검사관 한 명이 대표로 다가와 한상우에게 새로 발급한 헌터증을 건네주었다.
“축하드립니다, 한상우 헌터님. B급으로 재측정되셨습니다.”
“B급이요…?”
“레벨은 D급이지만 스탯과 스킬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혹시 너무 낮다고 생각하셔서 그런가요?”
“아뇨, 너무 높다고 생각해서요. 저는 D급을 예상했거든요.”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레벨이 D급 수준이고, 스킬의 수도 많지 않아 D급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무려 두 단계나 높은 등급이 나왔다.
한상우는 이것만 해도 과대평가가 아닌가 했는데 검사관은 반대로 과소평가를 했다는 분위기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스킬만 놓고 보면 A급을 받으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레벨과 스탯 때문에 B급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가지를 조금만 올리시면 바로 A급으로 산정되실 거예요. 레벨업이나 스탯업을 해서 오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높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등급 재심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한상우는 새로 발급받은 헌터증을 주머니에 넣더니 묵례한 다음, 검사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아….”
이은하는 뭔가 아쉬운 듯 옅게 탄식을 내쉬었고, 신대훈은 한상우의 옆으로 붙었다.
“혹시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실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불편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다음은… 미해결 던전을 클리어할 것 같네요.”
“미해결 던전이요? 근래 던전이 생성되는 경우가 잘 없어서 찾기 힘드실 텐데요.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클리어 최초 보상 때문에 길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다가, 새로운 던전의 생성 빈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해결 던전의 생성과 입찰을 기다리느니, 그 시간에 일반 던전을 도는 게 나을 수 있다.
신대훈은 한상우가 그럼에도 미해결 던전을 찾는다는 것에서, 직감적으로 뭔가가 있다고 느꼈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냥… 흥미가 생겨서라고밖에 답해드릴 수가 없네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말씀을 들어 보니 지금 당장 어딘가에 소속될 생각은 정말 없으신 것 같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스카우터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나가는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본청 로비에 많이 몰려 있으니 다른 출구로 가시죠.”
“사람들이 아직 기다리고 있나요?”
“예, 서상재 대리가 살펴보고 있는데, 아까보다 더 몰렸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더 많은 길드와 언론에서 헌터님께 관심을 갖고 있네요. 차 가지고 오셨나요?”
“아뇨, 걸어서 왔습니다.”
“그럼 도보로 나가는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신대훈이 한상우의 다음 행보를 물어본 건 출구 안내를 위한 이유도 있는 듯했다.
본청 로비에 스카우터와 기자들이 있다 보니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한상우는 신대훈이 안내하는 대로 특별관의 비상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과연, 저 멀리 본청 로비를 바라보자 들어왔을 때보다 2배는 더 많은 인파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대훈의 판단이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으니 바로 담배를 피우러 나온 스카우터들이었다.
“어라? 저기 저거… 신도림 사냥터에서 봤던 그 헌터 아닌가?”
“헉! 맞는 것 같은데?”
“부길드장님께 알려! 이쪽에 그 헌터가 있다고!”
“잠시만요! 한상우 헌터님 맞으시죠! 한상우 헌터님!!”
일반적인 기자나 스카우터면 모를까, 하필이면 신도림 사냥터에서 얼굴을 봤던 스카우터들이었다.
“이런…. 저쪽으로 가시죠. 야외 주차장 쪽 출구로 가면….”
신대훈은 방향을 틀어 한상우를 다른 길로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저기 사람이 모이는데? 그 헌터인 거 아냐?”
“가자! 얼음 요새의 용병이 맞는 것 같아!”
야외 주차장에도 기자와 스카우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헌터님! 얼음 요새의 용병 맞으시죠? 저희는 지상최강 길드입니다! 혹시 저희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한상우 헌터님! 바람 길드입니다! 저희 길드는 최적의 성장 루트를 제공합니다! 거기다 계약금도 원하시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오늘 등급 재심사를 받는다고 들었는데 재심사는 받으셨나요? 등급은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한상우와 신대훈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헌터청 본관에 있던 이들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하나둘씩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비키십시오!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신대훈이 몰려드는 인파를 어떻게든 막으려 해봤지만 역부족이었고, 사방이 사람들로 막혀 버렸다.
“죄송합니다만 생각 없습니다.”
한상우는 물밀듯 몰려오는 명함과 마이크를 손으로 밀어내며 어떻게 나가야 할지 고심했다.
그런데 그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됐다.
“미안한데 좀 지나갈게요.”
“헛! 아, 안녕하십니까!”
“헙…!!”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주변을 가득 메웠던 인파가 홍해를 가르듯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
어떻게 된 일일까.
한상우와 신대훈의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인파 끝에 있던 한 신형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여어, 만나서 반가워요. 그쪽 맞죠? 얼음 요새의 용병 헌터, 한상우 씨.”
아신 길드의 길드장, 강철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