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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31화 (31/169)

제31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6)

깡-! 깡-!

“여긴 아직 공사 중이네.”

“어쩔 수 없지. 전에 디바인 실드 녀석들 때문에 제3 실험실이 폭파됐으니까. 그래도 작업 속도가 빨라서 다행이야.”

경기도 남양주의 한 폐공장 단지.

제1 진행팀장과 제1 지원팀장이 한창 공사 중인 폐공장의 주변을 돌아보며 입구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제1 진행팀장님과 제1 지원팀장님 오셨습니까? 제가 여기 현장 책임자입니다.”

그러자 안전모를 쓴 현장 책임자가 후다닥 달려와 두 사람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의 인사를 들은 주변 루미나스의 단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제1 지원팀장님. 어서 오십시오, 제1 진행팀장님!”

“아, 신경 쓰지 말고 각자 할 일 해요. 안 그래도 시간 없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진행팀장의 말에 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다시 하던 일을 이어나갔다.

마치 군대와도 같은 완벽한 상하 관계의 서열.

그건 강자존을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루미나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미나스 한국 지부, 제1 진행팀장 황대건.

그는 단지 마음껏 싸우고 싶다는 이유로 대검 하나로 신생 길드 하나를 몰살시켰다.

그리고 루미나스 한국 지부, 제1 지원팀장 민수아.

그녀는 ‘헌터에 의한 위험’으로도 일반인이 각성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수십 명의 민간인을 납치·살해했다.

두 사람 모두 공식적인 등급은 A급이지만 실력은 S급 못지않은 한국 지부의 실세들이었다.

그리고 강함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루미나스이기에, 황대건과 민수아를 보는 단원들의 눈빛에는 존경이 서려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둘 이상의 강자는 단연코 없었으니까.

비록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해도 강하다면,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만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좀 더 둘러볼까?”

“그러지.”

두 남녀는 폐공장 구석의 지하 계단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현장 책임자가 재빠르게 붙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래층의 연구실은 복구를 거의 완료했습니다. 추출 장치도 정상적으로 설치했고, 설비 가동을 위한 전력과 마나도 비밀리에 공급받을 수 있게 세팅을 했습니다.”

“전력과 마나는 어디서 충당하고 있지? 양이 상당할 텐데.”

“예전에 커넥션을 만든 여당 쪽 의원들을 통해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새거나, 지원이 끊기진 않겠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쪽도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불법적인 조직인 만큼, 루미나스의 활동 자금 대부분은 암시장이나 정·재계와의 뒤가 구린 거래에서 비롯됐다.

지하로 내려가자 기다란 복도를 따라 원통형 기계가 쭉 나열되어 있었다.

“확실히 그렇네.”

현장 책임자의 말에 황대건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민수아는 반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안이 왜 이렇게 텅 비었어? 예전에는 꽉꽉 차 있던 것 같은데.”

“그게… 헌터 수급이 예전만큼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규진과 강두식의 수법이 발각된 이후로 헌터청에서 더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거든요. 길드들의 단속도 강화됐고요.”

“헌터 수급이 줄어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일반인 수급은 문제없지?”

“예, 고아와 노숙자 쪽 수급은 문제없어서 실험은 잘 되고 있습니다만, 그들은 강화 포션 추출에는 부적합합니다.”

“그럼 헌터를 추가로 수급할 수 있는 방법도 다음 회의 때까지 함께 보고해. 최소한 얼음 요새 사건 이전의 수급량은 유지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단호한 민수아의 말에 현장 책임자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황대건이 혀를 차며 말했다.

“고생이 많구만. 아랫것들 신경까지 쓰느라고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지. 맡은 역할이 이거니까.”

“역시 나랑은 안 어울려. 헌터라면 이름답게 사냥을 해야 하지 않겠어? 몬스터든 인간이든 말이야.”

“역시 넌 미친놈이야.”

“사람을 굽고 튀기던 너만 할까, 큭큭.”

연구실 투어를 마친 두 사람은 낄낄거리며 다시 폐공장 1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한 단원이 빠르게 폐공장에 들어와 보고했다.

“지원팀장님, 방금 헌터청에서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 얼음 요새 사건으로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추가된 한상우가 미해결 던전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치가 근처에 있는 천마산입니다.”

“여기까지 왔다고? 완전 개꿀이잖아?”

민수아는 단원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 보고 내용을 확인했다.

약 한 시간 전, 한상우가 B급 미해결 던전에 진입했다는 문자였다.

황대건도 옆으로 다가와 단원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 진짜네? 이게 웬 횡재지?”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헌터를 어디서 수급하나 했는데 하나는 건지겠어. 시간도 아끼고 말이야.”

황대건의 말마따나 횡재가 따로 없었다.

“얘들아!”

“……?”

민수아는 삽과 곡괭이로 작업하고 있는 루미나스 단원들을 보며 외쳤다.

“나랑 깜짝 파티하러 갈 사람?”

* * *

“후, 대체 몇 마리째인지 모르겠네.”

오아시스가 곳곳에 펼쳐진 사막.

강철만은 뒤에서 나타난 거대한 꼬리에 한숨을 내쉬며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서걱-! 쿵-!!

대검에 잘린 꼬리가 모래 위로 떨어졌다.

귀찮다는 듯 휘두른 거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깔끔한 베기였다.

“본체는 대체 어디 있는 거지?”

강철만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잘린 꼬리를 돌아보며 투덜거렸고.

‘확실히 잘 싸우네.’

한상우는 팔짱을 낀 채 보스 방 입구 포탈 쪽에 서서 강철만의 전투를 감상했다.

이번 던전의 보스는 사막 곳곳에 있는 오아시스에 숨었다가 나타나는 거대 사막뱀이었다.

오아시스에서 솟아나 잡으러 가면 독침을 뱉은 후에 도망가거나 꼬리로 공격했는데, 중간중간 가짜나 잡몹도 섞여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철만은 혼자서도 무난하게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귀찮다고 투덜거려도 움직임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강철만은 두더지 게임처럼 오아시스를 들락날락하는 뱀들의 공격을 가볍게 쳐내거나 피했다.

“흡!”

그리고 수비에 그치지 않고 반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몬스터가 튀어나올 때마다 휘둘러지는 일격은 적을 가볍게 격파했다.

혈혈단신으로 수십 개에 달하는 오아시스를 커버하다니.

그야말로 미친 속도와 활동력이 아닐 수 없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행동이었다.

강철만은 이대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판단했는지 슬쩍 한상우를 쳐다본 다음, 한 손으로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유성의 심판.”

나지막한 속삭임과 함께 위에서 아래로 대검을 휘둘렀다.

분명 아무도 없는 허공에다 내리꽂은 공격이건만.

쿠궁-!!

변화가 일어났다.

하늘에 수많은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화염을 머금은 유성들이 땅으로 낙하한 것이다.

‘무, 무슨…!’

한상우는 재빨리 팔짱을 풀고 화산방패를 들어 올렸다.

떨어지는 유성 중 하나가 자신에게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철만의 스킬은 정확했다.

소환된 유성들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오아시스 안으로 떨어진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케에에에엑!!”

폭발과 함께 울려 퍼진 몬스터들의 비명이 사막의 공기를 찢으며 퍼져나갔다.

더불어.

푸슈우우욱….

보스 방인 사막 전체에 후끈한 열기가 퍼졌다.

수십 개에 달하는 오아시스를 한 번에 날려버린 대폭발이었다.

그만큼 강철만이 사용한 스킬의 위력은 대단했는데, 아쉽게도 보스 몬스터를 제거하진 못했다.

저 멀리, 아직 증발하지 않은 오아시스 두 개가 남아 있던 것이다.

“확률은 반이네.”

강철만은 대검을 늘어뜨리며 두 개의 오아시스로 다가갔다.

시커먼 구정물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꾸물거렸다.

둘 중 하나는 보스고, 하나는 잡몹일 것이다.

강철만은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오아시스에 재생 기능이라도 있는 것인지, 보스 몬스터에게 다가가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곳곳에서 물이 보글보글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체하거나 가짜를 처치했다간 보스 몬스터가 복구된 오아시스로 도망칠 것이었다.

“하아아아앗!!”

강철만은 빠르게 쇄도해, 진짜라고 판단한 오른쪽의 오아시스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촤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엑!!”

가짜였다.

분명 물속에 있는 사막뱀을 제대로 베었건만,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이다.

‘제길, 한 번 더 써야겠네.’

[유성의 심판]은 마나 소모량이 커서 연속으로 사용하기엔 부담이었지만 깔끔하게 끝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재생된 오아시스에서 다시 잡몹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강철만이 다시 대검을 들어 올린 그때.

쩌어어어엉-!!

“캬아아아아악!!”

[피에 굶주린 거대 사막뱀(B)을 처치했습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보스 몬스터가 처치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상은 곧 밝혀졌다.

“이쪽이 진짜였네요.”

입구 포탈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상우가 화산검의 스킬, [분화]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 것이다.

타이밍 적절한 백업이었다.

그러나 강철만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구경만 하는 거 아니었나요?”

“밥값은 해야 할 거 같아서요.”

한상우는 옅게 웃으며 둘러댔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섯 번째 업적 – 미해결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다섯 번째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바로 다섯 번째 업적 클리어 때문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만약 보스 몬스터를 잡는 데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면 클리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침 강철만이 한 번에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지 못하기도 했기에 한상우는 재빠르게 막타를 쳤다.

어떻게 보면 얍삽하다고도 느낄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강철만은 왠지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했다.

“지금이라도 도와줘서 고맙네요. 아참, 그런데 제가 마지막에 쓴 스킬은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됩니다?”

“당연하죠. 길드장님도 제 스킬 보셨으니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하핫, 그러죠.”

한상우의 말에 강철만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헌터들은 자신의 능력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 등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그렇다.

헌터의 등급이 상승할수록 루미나스처럼 고등급의 헌터를 노리는 적이 많아지는데, 주요 스킬을 노출하는 건 전략적으로 엄청난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강철만 혼자 싸우게 유도한 이유도 SS급 헌터의 전투 방식을 확인하는 동시에 자신의 스킬은 숨기기 위해서였다.

물론 군주의 특성 ‘독존’ 때문에 함께 싸워봤자 경험치를 먹지 못한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굳이 소득 없는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마지막에 와서는 [분화]를 보여주게 됐지만, 강철만의 스킬도 알게 됐으니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분화]는 이미 헌터청에서 등급 재측정 시 사용했던 스킬이기도 하고, 너무 아무것도 안 하기엔 찝찝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자, 그럼 아이템 회수하고 나가도록 하죠. 저는 마정석 하나만 들고 나가겠습니다.”

“예? 다른 건 정산 안 하시고요?”

“이후 일정이 좀 바빠서요. 그럼 저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아이템 회수하고 나오세요!”

던전 진입 전에 드랍 아이템은 반반으로 나누기로 했건만, 강철만은 가장 저렴한 마정석 하나만 가지고 나갈 뿐이었다.

“음, 고생하셨습니다, 길드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한상우는 감사를 표했고, 강철만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사막 한가운데에 생긴 출구 포탈로 향했다.

‘그냥 조심성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네. 꼼꼼한 성격이야. 일도 맡기면 잘하겠어.’

비록 혼자 몬스터를 잡느라 고생을 하긴 했지만, 강철만은 한상우를 높이 평가했다.

다른 일반적인 헌터처럼 탐욕적이거나 아부를 떠는 모습 없이 자신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마지막 같은 결정적인 순간을 파악하고 활약을 하는 날카로운 시각도 좋아 보였다.

‘재밌는 뉴비란 말이야. 키울 맛 나겠어.’

강철만은 오랜만에 등장한 슈퍼루키에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던전을 나섰다.

그런데 강철만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레이드를 마치고 던전 포탈을 통과해 밖으로 나온 순간.

쉬이이이익-!!

뭔가가 강철만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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