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32화 (32/169)

제32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7)

“……!”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날카로운 단검이 강철만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보고 피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뭐지? 레이드가 안 끝났나?’

강철만은 슬쩍 고개를 꺾는 것만으로 단검을 피해버렸다.

이어지는 공격들도 마찬가지였다.

슉-! 슉-! 슈슈슈슉-!!

콰과과과광-!!

포탈 근처의 산속에서 수십 개의 단검이 날아들고 딛고 있던 땅에서 폭발이 일어났지만, 강철만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강철만이 옷을 털고 주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함정은 오랜만이네. 이런 걸 할 만한 놈들이면…. 너희들, 루미나스 맞지?”

“……!”

도리어 놀란 것은 습격을 감행한 쪽이었다.

노을이 지는 산속, 수풀에 숨어 있던 루미나스 단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것은 황대건과 민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뭐냐? 왜 저렇게 멀쩡해?”

“이럴 리가 없는데. 폭발 스킬이 잘못됐나?”

계획대로라면 흙먼지가 걷힌 후, 함정에 당한 이는 주검으로 발견돼야 했다.

아니, 주검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상이라도 입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상대방은 멀쩡할 따름이었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깐, 사진이랑 얼굴이 다른데?”

황대건은 핸드폰을 들어 전달받았던 한상우의 얼굴과 포탈에서 나온 이의 인상착의를 비교했는데 일치하지 않았다.

그때, 팀장들을 보좌하고 루미나스 헌터들을 통솔하기 위해 따라온 현장 책임자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진행팀장님? 저거 강철만 아닙니까…?”

“헉! 강철만이 왜 저기서 나와!”

“미친, 진짜 강철만이잖아…!”

미해결 던전에서 나온 이를 알아본 건 현장 책임자만이 아니었다.

수풀 사이에 숨어 있던 루미나스 단원들도 하나둘 강철만을 알아본 것이다.

함정 이후, 고요하던 주변에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반면, 강철만은 불시에 공격을 당했음에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여유가 넘치는 기색이었다.

“잘됐네. 마침 스트레스를 풀 상대가 필요했는데.”

처음 기습을 당했을 때, 강철만은 추가 던전이 나타난 줄 알았다.

포탈을 통과하자마자 기습당하는 것이 미해결 던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 겪었던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풍경은 분명 천마산이었고, 날아오는 단검과 발밑에서 터지는 폭발도 인위적인 것이었다.

강철만은 어깨를 풀며 주변에 숨은 신형들을 살펴봤다.

대략적인 인원은 50명 정도.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강철만은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루미나스.

아무래도 한상우가 이규진을 처치하고 강두식을 제압했으니, 보복의 일환으로 매복 작전을 펼친 것 같았다.

강철만이 동행했다는 것은 간과하고 말이다.

“오늘은 봉사하는 날인가 보네. 이따 한상우 헌터가 나오면 밥이라도 사라고 해야겠어.”

몬스터부터 루미나스까지.

모두 한상우를 대신해 상대하게 됐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강철만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 것도, 세게 그은 것도 아니었지만 파괴력은 가공할 만했다.

후우우우웅-! 콰과과과과광-!!

대검에서 나온 검풍이 주변 수풀로 날아가 그대로 폭발했다.

“쿠, 쿨럭! 이게 무슨…!”

“크윽! 사상자 발생! 사상자 발생!!”

수풀이 가득하던 포탈 주변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수많은 나무가 쓰러졌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복면을 쓴 헌터들이 피를 흘리며 널브러졌다.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했다.

현장 책임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퇴, 퇴각할까요? 피해가 너무 심합니다!”

“헛소리 집어치워. 이대로 퇴각하면 연구소가 발각된다.”

지금 이 장소에 모인 루미나스는 약 50명.

미해결 던전이니 한상우가 이번에도 솔플을 하진 않을 수도 있을 거라 판단하고, 가능한 많은 인원을 데려온 것이다. 누가, 몇 명이 나와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문제는 지금 SS급 헌터, 강철만이 나타났다는 것.

후퇴한다고 해도 대부분 격파당할 것이며, 아신 길드의 정보망에 한 사람이라도 꼬리를 밟히면 연구소를 들킨다.

믿었던 쪽수가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그, 그럼 어떻게….”

“목표물을 변경해야지. 지금부터 한상우가 아닌 강철만을 친다.”

“예? 강철만은 SS급 헌터입니다만….”

현장 책임자는 후퇴를 원하는 듯했지만 황대건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건 민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제1 진행팀장의 말대로 여기서 도망치면 연구소만 발각돼. 저 녀석도 우리를 보내줄 생각이 없을 테고 말이야. 싸워야 해. 강화 포션을 마셔서라도.”

“하, 하지만 강화 포션은 자칫 잘못했다간 부작용이….”

“그래서? 도망가도 죽어, 내 손에.”

부정적인 현장 책임자의 태도에 민수아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협박했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현장 책임자는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사방에 퍼져 있는 루미나스 단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목표물 변경! 강철만을 공격한다! 다들 그걸 마셔라!”

“그거…?”

갑작스럽게 들려온 외침.

강철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루미나스의 헌터들은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예, 알겠습니다!”

현장 책임자의 명령에 주머니에서 검은 액체가 들어 있는 작은 병을 꺼내 일제히 들이킨 것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낌새가 안 좋네. 먼저 공격해야겠어.”

쿵-!

강철만은 서둘러 땅을 박찼다.

방금까지 루미나스의 헌터들이 협공할 거라 예상하고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뭔가 불길한 기운을 방출하는 포션을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강철만이 재빠르게 접근해 루미나스의 일반 단원으로 보이는 헌터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서겅-!

강철만의 대검은 거침없이 루미나스 단원의 몸을 일도양단했다.

하지만 순간, 강철만은 이상함을 느꼈다.

‘반응했어?’

일반 단원이면 고작해야 C급이고, 그 정도면 강철만이 작정하고 한 공격에는 반응조차 할 수 없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상대는 방어 자세를 취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강철만의 움직임을 포착했고 방어를 시도했다.

원래 상대가 절대 그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당황한 강철만이 잠깐 주춤한 사이.

“하아아앗!!”

“죽어라, 강철만!”

근처에 있던 루미나스 헌터들이 강철만에게 달려들었다.

‘뭐야, 빠르잖아?’

강철만은 살짝 움찔했다.

아신 길드의 길드장인 만큼 테러리스트인 루미나스와의 충돌은 몇 번이고 경험했다.

그런데 그때 보아 왔던 루미나스의 보통 단원들에 비해, 지금의 헌터들은 분명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칫, 성가신 건 여전하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SS급인 강철만을 뛰어넘을 순 없었다.

철컥-!

강철만이 든 대검의 칼날 모양이 톱처럼 변하면서 붉은빛을 띠었다.

단순히 외형만 변한 게 아니었다.

강철만은 좀 전과 같은 속도와 자세로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검격의 결과는 앞과 전혀 달랐다.

쩌엉-! 카득-! 카드드득-!!

“끄아아악!!”

대검이 루미나스 헌터들의 무기뿐만 아니라 방어구와 신체까지 한 번에 갈라버린 것이다.

강철만에게 쇄도했던 헌터 대여섯 명이 순식간에 주검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이 아닐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루미나스 헌터들은 겁을 먹지 않았다.

“흐아아아!!”

“협공해! 물러서지 마!!”

오히려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더 많은 헌터가 덤벼들었다.

20명이 훌쩍 넘어가는 수.

이쯤 되자 강철만도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 전체적으로 강해졌어. 포션의 효과라기엔 상승 폭이 너무 큰데…. 대체 뭘 마신 거지?’

강철만은 루미나스 헌터들이 마신 포션의 정체가 궁금해졌으나 파헤칠 여유는 없었다.

“크하하핫! 어디 한번 강철만의 실력을 보실까!!”

뒤에서 루미나스 헌터들을 지휘하던 제1 진행팀장 황대건도 가면을 쓰고 전투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황대건이 강철만을 향해 시커먼 대검을 휘둘렀다.

쾅-! 쾅-! 콰아아아앙-!!

A급의 황대건과 SS급 강철만의 격돌은 확실히 부하들의 습격 때와는 달랐다. 대검끼리 부딪칠 때마다 금속이 갈리는 소리가 아닌, 무언가 터지는 듯한 충격파가 연이어 터졌다.

움직임도 탁월했다.

강철만이 루미나스 헌터들을 베었던 대검의 스킬, [파쇄]로 맞받아쳤지만 황대건은 훌쩍 뛰어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강철만은 황대건을 루미나스의 지휘관이라 판단하고, 노려보며 말문을 열었다.

“방금 네놈들이 마신 게 뭐지?”

“큭큭, 날 바보로 보는 건가? 그걸 얘기하게? 아니면… 던전 안에 있는 동료라도 기다리나? 디바인 실드, 강철만.”

“……!”

강철만은 대답하는 대신 눈살을 찌푸렸다.

디바인 실드.

국제적으로 테러를 비롯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비공식 조직 루미나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 비공식 국제 조직.

창립 목적은 국가 단위로 해결하기 어려운 던젼이나 몬스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루미나스에 대항하는 조직 정도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강철만은 비밀리에 디바인 실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걸 적대적인 관계인 루미나스가 알고 있다는 건 어디선가 정보가 흘렀다는 의미였다.

강철만은 정보의 진원지를 알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망상이 심한 것 아닌가? 아는 선생님 한 분 소개해 드리지.”

“큭큭. 아니면 말고. 전원 공격!!”

가면을 쓴 황대건의 음침한 웃음 뒤로, 루미나스의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선 단검과 화살을 날려 강철만의 도주 경로를 봉쇄한 후, 일제히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게다가.

“방금 주변에 아신 길드 헌터가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이건 기회야.”

멀리서 지켜 보고 있던 제1 지원팀장 민수아도 스킬을 사용해 가세했다. 당장 지원 올 인원이 없다고 해도, 지원 요청을 할 틈도 줘서는 안 됐다.

촤차차차작-!!

강철만의 그림자에서 생성된 날카로운 작살이 발과 등을 노리며 솟아올랐다.

평소라면 아무런 피해 없이 이 모든 공격을 막아냈을 테지만.

“으윽!”

강철만은 어깨와 허벅지를 베이고 말았다.

물론, 반격 과정에서 루미나스 헌터 두 명을 저승으로 보냈지만 피해가 생긴 것이다.

이유는 마나 부족이었다.

‘제길, 마나가 반의반도 안 남은 것 같은데.’

적이 많은 만큼 마나가 많이 소모됐다.

대검으로 막을 수 없는 부분을 방어할 때나, 순간적으로 회피와 공격의 속도를 올리는 등 마나의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미해결 던전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유성의 심판]을 사용하는 바람에 마나의 소모가 컸다.

물론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기에 포션도 가져오지 않았고.

강철만은 슬쩍 사막 던전의 포탈을 바라봤다.

한상우라도 나와서 도와주면 조금 숨통이 트일 것 같았는데 아직도 아이템을 줍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사이, 루미나스의 공격은 계속됐다.

“여길 네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강철만…!”

황대건이 다시 헌터들을 이끌고 협공을 펼쳐왔다.

‘후우, 어쩔 수 없나.’

강철만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대검을 고쳐 쥐었다.

마나가 소진되어도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다만,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본격적으로 힘을 개방하려던 찰나, 이변이 발생했다.

“히힛, 천하의 강철만도 오늘로 끝이겠는걸? 꺄악!!”

멀리서 스킬을 시전하려던 민수아가 어깨를 베이며 습격을 당한 것이다.

“어떤 놈이 감히 지원팀장님을…! 끄악!!”

곁에 있던 현장 책임자가 뒤늦게 기습을 눈치채고 검을 뽑아 들었으나 그는 옆구리를 베여 바닥을 나뒹굴었다.

진상은 곧 밝혀졌다.

“누구긴. 너희가 찾던 사람이지.”

살포시 어둠이 내려앉은, 두 사람의 등 뒤쪽 사각지대.

한상우가 화산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