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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34화 (34/169)

제34화

4장 인연은 바람을 타고(9)

쩌어어어엉-!!

산중에 어마어마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만 놓고 봤을 땐 충격파만으로 중상자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돌이었지만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한상우가 몬스터 황대건의 공격을 화산방패의 [용암 전개]로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아앗!!”

[분화]

퍼어어어엉-!!

“크워어어!!”

한상우는 방어에 그치지 않고 검 끝으로 몬스터 황대건을 조준해 화염 폭발을 먹인 후, 강철만과 함께 뒤로 빠져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곧, 감사 인사가 돌아왔다.

“고마워요, 한상우 헌터. 덕분에 살았네요.”

“인사는 나중에 하고, 싸움에 집중하죠. 아무래도 저 녀석 때문에 루미나스도 다 도망친 거 같으니.”

확실히 잡담을 나눌 때는 아니었다.

“크워어어어!!”

한상우의 [분화]가 황대건의 얼굴에 적중해 가면을 깨면서 잠시 시간을 벌었지만, 조만간 다시 공격해올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강철만이 몬스터 황대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도살자 황대건…이라고 했었죠?”

“아는 녀석입니까?”

“유명했어요. 헌터를 죽여도 몬스터를 죽인 것처럼 경험치를 주는지 확인하겠다며 신생 길드의 헌터 수십 명을 학살했던 놈입니다. 헌터청에서 제명당하고 체포당하기 직전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루미나스에 들어가 있었군요.”

지금까진 가면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몰랐지만, 가면이 부서지자 강철만은 곧바로 황대건을 알아봤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크게 도움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한상우가 추가적인 정보를 물었다.

“그럼 혹시 녀석의 약점 같은 것도 알고 있습니까?”

“아뇨, 교류가 없어서 그것까진 모릅니다. 그냥 동급보다 파괴력이 좀 더 세다고만 들었던 것 같아요.”

“특성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얼굴을 부여잡으며 괴성을 지르는 몬스터 황대건을 보며, 한상우는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강하긴 했다.

사실 몬스터 황대건의 공격은 [용암 전개]뿐만 아니라 땡길거야를 순간 소환해서 방어 스킬인 [삼중갑옷]을 사용해 막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30초 동안 피격량의 75%를 줄여주는, 수호 기사의 사기급 방어 스킬.

강철만이 눈치채지 못해서 그렇지 만약 [삼중갑옷]이 아니었다면 한상우도 황대건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S급으로 분류된 몬스터의 힘은 강했다.

한상우가 슬슬 진정하고 있는 황대건을 주시하며 물었다.

“강철만 길드장님. 저 녀석, 이길 수 있으시죠?”

“당연하죠. 그런데 지금은 마나가 부족해요. 혹시 마나 포션 남는 거 있습니까?”

“진작 말씀하시지. 여러 개 드릴게요.”

SS급인 강철만이 어째서 황대건에게 당할 뻔했는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한상우는 주머니에서 마나 포션을 꺼낸 뒤, 강철만에게 던져주었다. [캐릭터 소환]을 위해 마나 포션은 쟁여두고 있었기에 몇 개 정도 주는 건 여유로웠다.

그런데 강철만이 포션을 건네받은 그 순간.

“크롸아아아!!”

몬스터 황대건이 정신을 차리고, 한상우와 강철만의 사이를 향해 길게 늘어난 대검을 내리쳤다.

“헛…!”

후우우우웅-! 콰앙-!!

육중한 거구의 몬스터가 내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

한상우와 강철만은 서로 반대편으로 구르며 대검을 피했으나 마나 포션들은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크와아아아!!”

“제길…!”

“어쩔 수 없네요. 길드장님, 저건 제가 맡고 있을 테니 마나 포션을 찾아서 드세요. 루미나스 헌터들의 주머니를 뒤져보면 하나쯤은 나올 겁니다.”

이제 방금과 같은 여유는 부릴 수 없었다.

황대건이 얼굴에 난 상처를 수습하고, 커다랗게 변한 몸집으로 달려든 탓이었다.

“이쪽이다, 황대건!”

한상우는 몬스터 황대건의 어그로를 끌며 강철만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강철만이 마나 포션을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만 버텨주면 강철만이 마나를 회복하고, 황대건을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을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물론, 한상우가 직접 처치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선 땡길거야의 스킬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캐릭터 소환]으로 땡길거야를 소환하면 강철만이 바로 알아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공격 스킬이 그렇다.

조금 전에 사용했던 [삼중갑옷]은 크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이펙트가 화려한 [끌어오기]나 [신성 폭발] 같은 걸 사용하면 강철만이 바로 눈치챌 확률이 높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강철만도 수호 기사 캐릭터가 하이어 랭킹 1위인 고인물이니까.

마찬가지로 만약 한상우, 자신의 눈앞에서 하이어의 스킬이 사용된다면?

어떤 것이든 한 번에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어찌 됐든 지금 당장은 목숨이 위태롭지 않기에 굳이 힘을 모두 개방할 필요는 없었다.

이규진 때처럼 퀘스트가 뜬 게 아니기도 하고.

“으워어어어!!”

후우우웅-! 쾅-!!

한상우는 옆으로 뛰어 황대건의 거대해진 대검을 피했다.

몬스터 황대건이 S급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충분히 상대할 만했던 것이다.

이건 레벨업으로 강해진 것도 있지만 제장이의 공이 컸다.

[캐릭터 소환 : 제장이]

[제장이를 소환하여 꼬마 대장장이의 축복이 활성화됩니다.]

[패시브 스킬 : Lv 2. 꼬마 대장장이의 축복 – 꼬마 대장장이를 소환할 시, 각인된 아이템의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캐릭터 : 제장이가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를 사용합니다.]

[스킬 : Lv 1.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 – 1분 동안 제작 아이템 사용자의 능력치를 20% 상승시킵니다.]

황대건의 공격을 피하며 메시지 창을 슬쩍 바라보자 사용자의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제장이의 패시브와 버프 스킬이 적용되고 있었다.

루미나스 헌터들을 습격하기 전, 수풀에 제장이를 소환해 숨기고 버프 스킬만 사용하도록 지시했는데 지금까지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루미나스 헌터들이 사라지니 발각될 확률이 낮아져서 그런지 패시브 스킬만 적용하던 초반과 달리 액티브 스킬인 [꼬마 대장장이의 용기]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 멀리 제장이를 숨겨놓은 장소를 바라보자 조금씩 수풀이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화산검과 화산방패의 능력치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스탯 역시 20%나 상승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루미나스와 싸울 때부터 한상우는 이미 B급을 뛰어넘은 스탯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S급 몬스터인 황대건을 압도하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은 됐다.

그리고 황대건의 특성도 크게 까다롭지 않았다.

‘이 녀석, 거대화 쪽이 특성인가 보군.’

대개 헌터들은 스킬을 얻을 때 한 가지 특성 쪽으로 얻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물이면 물, 화염이면 화염처럼 레벨이 올라 스킬을 획득하더라도 하나의 특성과 연관된 걸 얻는 것이다.

아이템에 귀속된 스킬일 경우엔 얘기가 다르지만 레벨에 기인한 헌터의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황대건은 몸집이나 아이템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거대화 쪽 특성인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상대하기 편하겠어.’

사각지대로 파고들며 몸을 숨기던 이규진만 해도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쉬운 건 아니지만 거대화가 여타 다른 능력에 비해 상대하기 편한 건 사실이었다.

크기가 좀 부담스럽지만 어쨌거나 시간을 버는 게 목적이라 피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후우우웅-! 쿵-!!

“느려.”

한상우는 몬스터 황대건이 내려찍는 대검을 뒤로 가뿐하게 피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역시 S급은 만만하지 않은 것일까?

이어지는 공격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황대건은 다시 한번 한상우를 향해 대검을 내리찍었는데 칼날의 크기가 이전에 비해 3배는 더 넘게 커진 것이다.

‘무슨…!’

전후좌우, 어딜 가도 피할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한상우는 서둘러 화산방패를 들어 올렸다.

쿠우우웅-!!

머리 위에서 이전보다 더 큰 충격파가 발생했다.

다행히 막기는 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검의 공격력이 워낙 막강해 허벅지의 절반이 아예 땅에 파묻혀버렸다.

“크워어어어어!!”

도망갈 곳이 없는 가운데, 황대건이 다시 한번 대검을 치켜들었는데 그 양상이 이전과는 달랐다.

칼날에서 방출되고 있는 막대한 마나.

한상우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강대한 마나였다. 저 정도 마나라면, 화산방패로는 막을 수 없는 파괴력이 응집되어 있을 것이다.

‘공격 전에 막아야 한다.’

막을 수 없다면, 공격을 못 하게 하는 게 상책이다.

한상우는 황대건을 향해 화산검을 겨누고 [분화]를 발포했으나 황대건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대검은 불꽃을 짓이기며 그대로 내려왔다.

후우우우웅-!!

‘제길, 땡길거야를 불러야 하나?’

대검이 점점 가까워지는 가운데, 한상우는 순간 소환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땡길거야를 순간 소환하려던 순간.

“유성 일격.”

번쩍-! 서걱-!!

갑자기 섬광이 번쩍하더니 몬스터 황대건의 머리와 상반신이 아예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콰아아아아앙-!!

[광기의 도살자 황대건(S)을 처치했습니다.]

“늦어서 미안해요, 한상우 헌터.”

막대한 폭발 뒤로 강철만이 한상우의 앞으로 착지해 손을 내밀었다.

한상우가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강철만이 마나 포션을 찾아내 마시고 몬스터 황대건에게 스킬을 날린 것이다.

한상우는 강철만이 내미는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며 투덜거렸다.

“마나 포션을 만들어서 오는 줄 알았네요.”

“그래도 어그로를 끌어주신 덕분에 한 방에 처치할 수 있었어요. 탱커의 자질이 있어 보이는데, 진짜 저희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으세요?”

“죄송합니다. 저는 느린 건 딱 질색이라서요.”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제안에 한상우가 마찬가지로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강철만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한상우 헌터를 영입하려면 뭐든 빨리 해야겠네요. 좋습니다. 저는 이 기세를 몰아서 나머지 루미나스 헌터들도 추격하도록 하죠. 한상우 헌터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당장 추격하신다고요? 진담입니까?”

농담으로 대꾸했는데 예상외의 결론이 도출됐다.

한상우는 강철만이 아직도 농담을 하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예. 방금 지원 요청은 했습니다만 병력이 오려면 최소 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늦어요. 루미나스는 그 사이에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추격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까 싸우면서 한 놈의 다리에 추적 장치를 붙여 놨거든요.”

강철만이 핸드폰을 꺼내 한상우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과연, 지도처럼 보이는 화면에 빨간 점이 움직이고 있었다.

강철만은 진심으로 루미나스를 추격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상우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사실 루미나스를 추격한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방금 겪었듯 루미나스는 동료가 당하면 복수하러 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맘 편히 발 뻗고 자려면 지금 쫓아가서 일망타진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루미나스를 추격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한상우는 슬쩍 손바닥에 쥐고 있는 물건을 바라봤다.

[네 번째 열쇠 조각]

[등급 : 일반]

[특징 : 네 번째 열쇠 조각입니다.]

[효과 : 모든 열쇠 조각을 모으면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2/5)]

몬스터 황대건이 처치되자마자 자신의 앞에 떨어졌던 황금빛 조각.

일전에 이규진이 드랍했던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한 아이템이었는데 두 개 이상 모아서 그런지 [효과] 항목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이걸 본 순간, 한상우는 재빠르게 눈치챘다.

루미나스가 단순히 복수를 위해 온 게 아니라 이규진이 남긴 다섯 번째 열쇠 조각을 노리고 찾아왔음을.

과연 어떤 보상이 있기에 그렇게 많은 루미나스가 자신을 습격한 것일까.

강철만의 말대로 지금 당장 추격한다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단점이라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리스크는 좀 있더라도 성공했을 시, 더 큰 보상을 얻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SS급 헌터라는, 든든한 조력자도 있고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상우 헌터.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 남아 계시겠습니까.”

강철만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상우를 바라봤다.

뭔가를 시험하기라도 하는 듯한,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었는데 사실 답은 나와 있었고 한상우도 그걸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같이 가시죠.”

“정답입니다. 역시 현명하시군요.”

한상우는 강철만과 함께 루미나스 헌터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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